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산책자'(배수아 역)로부터 옮긴다.

BERN. Christmas Tree. Bundesplatz. Switzerland.(2008) By Николай Максимович
'우리 몫의 후광은 없나 보네 - 세계 크리스마스 단편선'에 '한 편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 로베르트 발저'가 실려 있고, '세상의 끝 - 로베르트 발저 산문.단편선집'(임홍배 역)에도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1878년 스위스 베른 주 비엘의 독일어 사용 가정에서 출생. 가정 형편상 14세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학업을 중단함. 처음에는 배우가 되고 싶어 했으나 하인 학교에 등록했고, 슐레지엔의 성에서 집사로 일하며 겨울을 보냈다. 나중에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며, 1956년 크리스마스 날 눈 속에 얼어붙은 시신으로 쓰러진 것이 어린아이들에게 발견되었다. 산책길에 심장발작이 왔던 것이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듯한 산문 <크리스마스 이야기> 중에서처럼.
"눈으로 덮인 채, 눈 속에 파묻힌 채 온화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자여. 비록 전망은 앙상했지만 그래도 생은 아름답지 않았는가."- 옮긴이의 말
눈이 내리면 내 마음은 행복한 시민계층, 행복한 가장의 심정이 되어버리는구나. 무의식중에 아몬드, 오렌지, 대추야자를 먹으며 크리스마스트리의 전나무 가지가 촛불에 타들어가는 소리를 듣는구나. 온 세상 축제의 향기가 내 앞에서 넘실거리고 나는 기꺼이 한 명의 착실한 남자가 되어버린다. 튼튼하고 강직한 가장이 되어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아늑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집으로 돌아갈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눈으로 덮인 채, 눈 속에 파묻힌 채 온화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자여. 비록 전망은 앙상했지만 그래도 생은 아름답지 않았는가. - 크리스마스 이야기
크리스마스는 특히 아이들에게 가장 신나는 시기이다. 크리스마스트리가 휘황하게 불빛을 발한다. 트리의 촛불이 방 안을 경건하고도 찬란한 광채로 가득 채운다.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는지! 전나무 가지에는 맛난 간식거리가 매달려 있다. 예를 들면 천사 모양 초콜릿, 설탕 바른 소시지, 레컬리3, 은박지에 싼 호두, 새빨간 사과. 트리를 둘러싸고
가족들이 모두 모인다. - 겨울 (3 꿀로 굳혀 만드는 바젤 지방의 전통 비스킷.)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매년 기분이 들뜨는 봄이면 즐거운 봄의 산문을, 가을이면 갈색으로 물든 가을 산문을,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크리스마스 산문이나 흰 눈이 흩날리는 산문을 써왔다. 이제 앞으로는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며 지난 10년간 내가 해왔던 짓은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을 생각이다. - 최후의 산문
나 때문에 아빠는 걱정이 많다. 아빠에게 나는 집안의 걱정거리다. 아빠는 나를 야단칠 수 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아빠가 다시 웃음을 터트리게 만드는 일을 일종의 세련된 의무라고 생각한다. 아빠는 자주 야단을 친다. 아빠는 유머감각이 풍부한 만큼 아주 다혈질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 때면 나를 선물더미에 파묻히게 만든다. - 작은 베를린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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