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돌봄과 작업 : 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려는 여자들' 중 영화 시나리오와 드라마 대본을 쓰는 정서경 작가의 글로부터 옮긴다.

The Lovers' Heaven, 1964 - Marc Chagall - WikiArt.org






내게 아직 아이가 없었을 때 아이를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설마 그 아이를 내가 키우게 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설사 내가 키우게 되더라도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이상한가? 그러면 아이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면서 다들 아이를 낳으려 든단 말인가? 아니다. 나 같은 여자들은 꽤 있다. 친한 친구나 친척들 가운데 아직 아기를 낳은 사람이 없거나, 있다 해도 관심이 없어서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 지인 중에 누군가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당분간 연락을 끊는 사람들, 아이를 갖는 것을 운전면허를 따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막상 아기를 낳으면 깜짝 놀라 울부짖는 사람들.

늘 성숙하고 지적인 남성에게 끌린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막상 결혼한 남자는 햇볕에 그을린 천진한 운동선수 내지 농부 타입이었다. 그의 이름은 ‘순철’이다. 살면서 결혼을 하리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으니 이상형이네, 아니네 불평하고 싶진 않지만 어쨌든 처음부터 순철에게 그런

힘이 있다는 걸 알아봤어야 했다. 내가 전혀 원하지 않던 일을 하게 하는 힘.

그런 순철이 어느 날 ‘우리 아이는 언제 가질까?’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좀 더 긴장했어야 옳았다.

나       (곰곰 생각해보고) 내가 낳을 테니까, 니가 키워.

여기까지 말했을 때, 신혼이었던 나는 결혼한 남자에 대한 환상을 아직 가지고 있었다. 결혼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공공영역의 책임을 반씩 나누어 질 거라는 환상.

내 예상과 달리 순철은 끝내 내 말을 긍정해주지 않았다. 말로만이라도 그러마고 하지 않았다. 그냥 내 기분을 좋게 해주려고 늘 헛된 약속을 남발하는 캐릭터였는데도!

순철   내가 키울 수야 없지 않을까?

나       그럼 내가 키울까? 낳기까지 했는데 키우는 것도 내가 해야 되냐고? - 정서경 | 진짜가 아닌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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