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 수록작 '흰 꽃'(1996)은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의 씨앗이라 할 수 있겠다.

제주(2020년6월) 사진: Unsplashjoongil Lee


cf. 창작과 비평 2024 겨울호 '노벨문학상 수상 특별기획_한강의 문학세계' 중 '백지연 / 삶의 본모습을 찾는 ‘목소리’의 여정: 『내 여자의 열매』 『채식주의자』 『노랑무늬영원』 읽기'에 단편 '흰 꽃'이 거론된다.


문학동네 '작별하지 않는다 코멘터리북'에 '코멘터리「흰 꽃」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로'가 실려 있다.





일 미터 사십 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하얗게 센 눈썹의 숱이 많고 눈이 부리부리하던 그녀는 "사삼 때 그 사람 총살 맞아 죽고 사 형제를 나 혼자서……"를 시작으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자신의 생애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거의 남자처럼 느껴지는 강인하고 무뚝뚝한 얼굴에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내가, 눈물로 세수함서 살아온 사람"이라고 탄식한 적도 있습니다.

"여기 이 벽이 사삼 때 사람들이 줄줄이 서서 총 맞던 데……" "저 팽나무 밑이 사람들 모아놓았던 데……""하나도 안 변했지, 다 변했다고들 해도…… 오십 년이 지났어도 안 변할 것은 정말로 안 변하는 거야……" - 흰 꽃

소설은 북제주군의 소읍에서 두 달을 지내고 난 뒤 돌아오던 화자가 완도행 페리보트에서 마주하게 되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제주 4·3 사건을 비롯해 거듭 애도되어야 할, 그러나 끝내 애도를 그칠 수 없을 죽음들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어떤 예의 바른 애도도 그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처절하게 겪어내야 할 당사자들에게 미치지 못할 것임을 헤아리듯이, 소설은 죽음을 만들어낸 어떤 사건에 가까이 가 파헤쳐 들어가는 대신, 거듭 무명천을 싸듯 하얀 이미지들을 덮어간다. - 해설 | 빛을 향해 가는 식물의 춤_강지희

흰 꽃 <하이텔 문학관> 1996년 여름 - 수록 작품 발표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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