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에센셜 한강' 수록 산문 '저녁 여섯시, 검고 긴 바늘'은 그 앞의 '종이 피아노'에 이어지는 내용으로서 중3 한강은 어릴 때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를 뒤늦게 부모님이 강권하여 배우게 된다.

사진: UnsplashDeclan Sun


cf. 듀오 더 클래식(김광진과 박용준)의 '종이피아노'를 조동희(이 노래를 작사한)가 새로 부른 버젼이다. https://www.melon.com/song/detail.htm?songId=33051150&ref=W10600 Paper piano (종이피아노) · 조동희




집에서 한 정거장 거리의 피아노학원은 자그마했다. 피아노는 모두 세 대였는데, 나는 『바이엘』부터 시작했으므로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현관 쪽 피아노를 쳤다—입시 준비를 하는 학생들은 방음시설이 된 안쪽 방들을 썼다. 평일에는 여섯시에서 일곱시까지 한 시간씩 쳤고 토요일에는 청음 등의 이론 강의가 있었다. 시큰둥하게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피아노가 좋아졌다. 지루하다는 『바이엘』도 즐거웠다. 11월까지 9개월 동안 『체르니 30번』까지 쳤는데, 나이 탓에 비교적 진도가 빨랐던 셈이다.

학원의 현관에 막 들어서면 커다란 벽시계가 보였는데 내가 도착하는 시각은 늘 여섯시 오 분 전이었다. "참, 항상 정확해." 푸들 선생님은 특유의 초연한 말씨로 감탄하곤 했다. 실은 앞의 사람이 조금 일찍 끝내고 일어서면 오 분이라도 더 할 수 있으니까, 난 그게 좋았던 거였다.

다만 기억한다. 내가 그토록 성실했던 저녁 여섯시, 검고 긴 바늘이 조금이라도 늦게 한 바퀴를 돌기를 바랐던 그 시간의 두근거림을. 늦었지만 고맙다. 그때 곁에 있었던 이들에게. 그 나이에는 깊이 알기 어려웠던, 숨겨진 따뜻한 마음들에게. (2007) - 저녁 여섯시, 검고 긴 바늘

• 저녁 여섯시, 검고 긴 바늘 ……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비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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