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졌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집에서 에어컨을 튼 날이다. 덥기도 덥지만 습기가 장난 아니다. 6월의 마지막 일요일, 복숭아를 주문했다. 올해의 첫 복숭아, 여름이다. 산문집 '작가의 계절'로부터 옮긴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Ursula Schneider님의 이미지





나는 생각한다. 여름밤에는 오래된 차가운 우물이 있고 복숭아나무 잎이 무성하며 창가에 양등이 놓인 소박한 은신처 하나쯤 갖고 싶다고. 여름밤이 좋아서일까. 펜을 움직이다가 지치면 문득 가칠가칠한 방 안을 둘러본다. 이윽고 외로워진다.

복숭아나무 잎이 무성하고 차가운 오래된 우물이 있는 시원한 은신처를, 나는 무더운 여름밤마다 어린아이처럼 꿈꾼다. 그런 생각이 듦은 필시 혼자 지내는 생활을 동경하는 마음이 있어서일 텐데, 이처럼 시원함을 좇는 동안이 행복한 때인지도 모른다.

대가족 사이에서 사치를 부리지도 못하고 번거로운 일투성이에 여유 없는 생활이긴 해도 가슴 한구석에 숨통이 트이는 시원한 은신처를 만든 것만으로도 구름처럼 자유로울 수 있다. 원고지를 껴안고 글로 먹고사는 가난한 사람이 부릴 법한 사치란 이 정도이리라. - 하야시 후미코, 시원한 은신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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