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플이 알려준 재작년 오늘의 독서로부터.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 '런던탑'(을유문화사)이 아래 글의 출처로서 런던탑에 갇힌 어린 왕자들을 보려고 어머니가 찾아온 장면이다.

 

《1483년 런던탑의 두 왕자 에드워드와 리처드》1878년 By 존 에버렛 밀레이 - Royal Holloway Art & Culture


'런던탑'은 문예출판사판 '도련님'(나쓰메 소세키)에도 실려 있다.




홀연히 무대가 빙빙 돈다. 탑 문 앞에 여자가 홀로 검은 상복을 입고 꿈인 양 서 있다. 얼굴은 창백하고 까칠하게 여위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기품이 넘치는 부인이다. 이윽고 자물쇠 따는 소리가 들리고 끼익, 하고 문짝이 무겁게 열리자 안에서 사내가 하나 나와 부인 앞에 공손히 절을 한다.

"만나는 걸 허락받았는가?" 하고 여자가 묻는다.

"아니옵니다." 측은하다는 듯 사내가 대답한다. "만나게 해드리고 싶어도 국법이 추상같사오니 체념해 주시옵소서. 제 힘이 못 닿음을 용서해주소서." 그리고는 갑자기 입을 한일자로 굳게 다문 채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호 안쪽에서 농병아리 한마리가 훌쩍 튀어오른다.

여자가 목덜미의 금목걸이를 풀어 사내에게 건네며, "그저 한순간 얼핏만 보아도 한이 없겠네. 내 이 소망을 그대는 들어주지 않으려나." 하고 간절히 청을 넣는다.

사내는 목걸이를 손가락 끝에 감고 생각에 잠기는 눈치다. 농병아리가 휙 물 속에 잠긴다. 잠시 후 사내가, "옥지기는 옥의 법을 부수지 못하옵니다. 왕자님들은 별 탈 없이 있사오니 그리 아시고 돌아가 주시옵소서." 하며 금목걸이를 되돌려준다. 여자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돌위에 떨어진 목걸이가 쨍 날카롭게 운다.

"도저히 못 만난다는 얘긴가?" 여자가 묻는다.

"황송하오나." 문지기가 단언한다.

"검은 탑 그림자, 단단한 탑벽, 인정 없는 탑지기." 여자가 중얼거리며 하염없이 운다. - 런던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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