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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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몰입해서 읽은 책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어제 오후부터 읽기 시작했다가 아이들과 남편 귀가로 이래저래 책을 손에서 놓을 때마다 머리속은 책으로 가득차 있었다.   다시 책을 본격적으로 집어 들고는 밤 늦게 까지 다 읽고 잠자리에 들었다.

결말이 궁금해서 잠을 자려고 해도 잘 수 없을 정도.  


<7년의 밤>이 7년에 걸친 서사였고, 

<28>이 전염병과의  28일간의 사투였다면, 

<종의 기원>은 3일 동안의 잠재되어 있던 악의 분출이었다.  

점점 시간적으로  단축되면서 호흡은 더 가빠지고 더 옥죈다는 느낌이 들었다.    


<종의 기원>을 읽다보니 어느새 가슴이 쿵 내려앉은 상태로 읽고 있었다.    시작부터 피냄새로 시작하더니 이런 피의 향연은 3일간 계속되었다.    상황 하나 하나 긴장을 이끌어내기 위한 묘사로 넘쳐났다.   상상력의 부재를 실감하곤 하던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 상황이 그려졌고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묘사에 나의 오감은 활성화되었고 손에 땀이 났다.  이런 긴장 상태는 소설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에필로그에 이르러서야 긴장 상태는 풀리고 마지막을 음미할 수 있었다.  

음.. 내 멘탈이 강한가.  이런 책을 읽고도 바로 잠을 잘 잤으니 말이다. 


줄거리는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해 아껴야겠다.  나도 이 소설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읽었는데, 그 낯선 것에 대한 재미와 공포를 고스란히 느껴보면 좋을 것 같다.  

다만 이 소설이 광의적으로 종의 기원라고 했지만, 악의 기원에 대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악의 기원은 최근 사건들을 떠오르게 한다.  계획적으로 동거남을 살해했던 범인의 얼굴이 훈남형이어서 놀라웠던 사건도 있었고, 여성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해서 모르는 여성을 살해한 화장실 살인사건도 있었다.   범인의 내면이나 진짜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사건들이었다.   


최근 사건들도 그렇고 이 소설을 읽으니, 악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 것인지, 주변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정해질 수 있는 것인지, 주변 요인에 의해 키워지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악은 누구나 저 아래 무의식 속에 금지된 채 억눌려 있는데 보통 인간과 사악한 인간의 차이는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을 영화화해도 좋을 것 같다.    다만  어떤 영상미를 담아낼 만큼의 배경도 없고, 공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인물의 표정과 행동에 집중해야만 소설이 주는 공포와 긴장감을 잘 담아낼 수 있겠다.  감독의 역량도 주인공의 연기력도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이다.    26살 청년의 역할로  어느 배우가 적당할까.  음 요즘 임시완의 연기가 물올랐던데..  그 외는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본격적인 더위가 찾아왔다.    더위에 이 소설을 읽는다면 잠시나마 온몸이 쏴해지면서 더위를 피해줄 수 있을 것이다.   피서용으로 딱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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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의 사생활 - 이승우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7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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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읽는다 벼르고 벼려왔던 <식물들의 사생활>을 읽었다.

첫장을 읽는 순간 이런 문장을 만나길 기다려왔다는 듯이 책속에 빨려들었다.

일인칭으로 서술되는 화자의 내밀한 감정과 세밀하면서도 빠른 전개는 독자로 하여금 빨려들어가게 만든다.  

 

이 소설 바로 전엔 장강명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읽었다.  이 책은 인물을 특정하지도 않고 그 여자, 그 남자, 소년, 남자 아이 이렇게 언급하는데다가 이야기도 시간과 공간을 넘다들며 교대로 반복되어 명확하지 않게 다가왔다.  짧은 소설이라 적응할 만한 하니 끝났다.   <댓글 부대>도 흥미진진하게 읽은데다 이 소설도 추천을 많이 받아서 읽었는데, 이런 소설 형식에 내가 익숙지 않는 것인가 보다.  스토리 구성이나 메시지는 분명했다.   

 

바로 이어서 <식물들의 사생활>을 읽었더니 명료한 배경과 인물들의 묘사에 소설의 뇌가 작동되는 듯 했다.     주인공 기현이 거리의 여자를 골라 차에 태우는 장면부터 인상 깊더니,  그 여자는 자신이 아니라 불구가 된 형을 위한 여자라는 데에서 나의 호기심을 불러낸다.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가 궁금증을 풀어준다.

형 우현이 어쩌다 불구가 되었는지, 더 거슬러서 순미라는 여자가 기현과 형 사이에 개입하면서, 아니 형 우현의 입장에서는 자신과 순미 사이에 동생이 개입하면서 유발된 사건들이 전개된다.   네명의 가족은 각자의 방에 콕 박혀서 공유하는 공간도 공유하는 시간도 적었다.  서로 알고 있는게 보잘것 없을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어머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형 우현이 불구가 되면서 네 가족 간의 관계는 더욱 피폐해져만 갔다.        

 

사람이 다리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면 식물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리는 걸까. 

식물이라고 해서 움직이지 않고 한곳에 고정되어 있는다는 생각은 정말 편견일까.  이 소설은 식물에 대해서 질문을 많아지게 만든다.

 

순미는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연인이 바다를 가운데 두고 각각 나무가 되었는데 밤이 되면 두 나무의 뿌리가 바닷속을 달려가 서로를 애무한다는 꿈을 꾸었고, 형 우현은 "좌절된 사랑의 화신으로서의 나무" 이미지를 글로 표현하고 있었다.   순미와 우현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뿌리가 만나는 나무처럼 그렇게 두 남녀는 영감이 통했고, 사랑의 생명력은 질겼다.  우현과 순미의 사랑에,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도 더해져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룬다.  아버지와 기현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어머니의 사랑도, 우현의 사랑도 완성되어 간다.   

 

남녀간의 사랑, 변하지 않는 그 속성, 질긴 생명력은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 경험해 보는 것으로, 이 생애에서는 만족해야 겠다.    본래 두 남녀는 떨어뜨려놓아야 사랑이 더욱 절절해지는데, 그런 사랑하면 가슴아플 것 같아서 경험안한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 하나..  거기에 이 소설은 가족 간의 사랑,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고 따뜻한 말한마디로 애정을 표현해 보는 사랑도 다시 한번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쳐 준다.    내가 생각하는 소설의 정석이 이런 소설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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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가라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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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올해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저자의 소설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웃님 블로그에서도 저자의 소설들의 서평들이 간혹 보이기도 한다.   올라오는 글에서 대부분 한강의 소설 분위기가 우울하고 무겁다고들 말한다. 

 

이 소설도 시종 그렇다.   죽음의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는다.  

소설 속 인물들은 참으로 무력하다.   죽음, 자살, 병마와 싸우다가 굴복하고야 마는 삶, 아니면 죽음보다 더한 나약한 삶 속에 바스라질 것만 같이 던져져 있다.   사랑에도 나약한 집착을 보여준다. 

중반 이후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인물들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토리 전개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저자 한강의 이성적이면서 감성적인 문장, 모두 이해하기에 부족함을 느끼지만, 그 분위기만은 고스란히 전달되어 온다 . 

 

한강은 식물의 속성에 천착하고 있는 것일까.  <채식주의자>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식물적인 상상력이 결합되어 있다고 한다.  최근에 읽은 단편소설 <내 여자의 열매>에서는 식물로 변해가는 여자가 나오는데 그로테스크하다.   이 소설에서도 식물의 속성을 이용한 화풍이 나와, 왠지 저자 특유의 감각이 느껴졌다.

 

"먹과 물의 농도가 다르니까, 삼투압의 원리와 모세관 현상을 이용하면...

이만큼, 이 손바닥만큼 번져나가는 데 열흘이 걸려요.  그러니까 저만한 크기의 그림이 완성되려면 두 달에서 석 달쯤 걸렸을 거에요.  ... 

식물이 자라는 속도와 비슷한 거라고 했어요."

 

이 소설은 화가였던 인주가 사망한 이후 1년이 지나,

인주가 자살이었다고 생각하고 화가로서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평전을 펴낸 작가 정석원과,

그리고 인주의 학창 시절 친구로 인주는 자살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 소설의 화자, 정희가

만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인주는 자살일까. 자살이 아닐까. 

정석원과 정희는 나약하지만 끈질기게 인주에게 집착한다.  

 

정희는 인주의 사망 1년전으로 돌아가 인주의 삶을 추적해 나간다.  인주와는 중학생 시절부터 만나 가장 친한 친구였음에도 3년간의 단절이 만든 공백은 서로에게 숭숭 뚫린 구멍을 만들어 버렸다.    정희가 인주에 대해 파헤치고 다니는 얘기들은 어떻게 보면 추리 소설 기법으로 상당한 궁금증과 긴장감을 조성한다.    

 

정희는 정석원의 평전과는 다른, 평전을 써보려고 한다.  죽음의 대물림을 막기 위해 자살로 결론을 내고 싶지는 않았다.  인주의 자식을 위한 것이라지만, 정희 본인야말로 진실을 알고 싶었던 게 아닐까. 

 

정희는 진실을 탐문해 갈수록 자신도 모르고 있던 인주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전까지 자신이 믿어온 인주와의 관계에서 미처 몰랐던 점이 드러난다.    인주는 자신의 어머니와 삼촌의 죽음으로 인한 삶의 무게를 제대로 견뎌낸 것인지 부터 회의가 들고, 인주의 어머니가 왜 알콜 중독으로 살다가 죽어갔는지 알게 되면서 인주에 대한 진실은 더 희미해져 갔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을 진실로 받아들이려는 성향이 있다.   그게 아닌 것 같아도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에 꿰어맞춰가면서 믿고 싶어한다.  이 소설 속 정석원과 정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각자에게 결정적인 진실은 털어놓지 않았기에 알고 있는 정보라고 해도 잘못된 것일 수도 있기에, 진실은 허망하기만 하다.  인생을 한없이 가볍게만 살아가는 나로서는 그들의 삶에서 이해할 수 없는 무거움이 느껴져서 힘들었다.  

 

"내가 찾을 수 있는 모든 퍼즐 조각을 합한다 해도, 결코 알아낼 수 없는 것들이 고스란히 남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몰랐다.

네가 나를 몰랐던 것보다 더.

하지만, 어쩌면 너도 나를 모른다고 느낄 때가 있었을까.

내가 너를 몰랐던 것보다 더."

 

"난 말이지, 정희야.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이상한 기분이 들어.

....  나를 사랑한다는 그 어떤 남자의 말은,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말일 수도 있고,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고, 내가 그를 위해 많은 걸 버려주길 바란다는 말일 수도 있지.  단순히 나를 소유하고 싶거나, 심지어 나를 자기 몸에 맞게 구부려서, 그 변형된 형태를 갖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고, 자신의 무서운 공허나 외로움을 틀어막아달라는 말일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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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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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집>으로 급관심 작가가 된 줌파 라히리..

인도계 미국인이라는데에서부터 호기심은 발동한다.  책날개에 실린 그녀의 사진을 보면 상당한 미인이다.  인도인다운 깊고 큰 눈과 짙은 눈썹, 피부가 까무잡잡해서 그렇지 서양인다운 마스크를 가졌다.   미국인과 결혼했는데, 그녀의 단편 <길들지 않은 방>의 내용과 같이 부모님의 반대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와 쭉 자라왔는데도, 그녀의 단편 소설을 보면 인도인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보였다.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집에서는 영어 말고 인도 벵골어로 말하게 양육되었기 때문일까.  집에서는 벵골어, 학교에서는 영어를 사용해야만 했다.   그녀는 뱅골어를 완벽하게 말해 부모님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고, 미국인으로서도 온전히 인정받기 위해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싶었다.   둘 다 뿌리내리지 못했고 둘 다 불완전함을 느꼈다고..  

 

"이 두 언어는 서로 맞지 않았다.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양립할 수 없는 원수 같았다.  벵골어와 영어는 나를 빼곤 서로 공통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 때문에 나 자신도 언어에서 모순을 느꼈다"(120페이지)

 

이중 언어 사용자의 분열된 정체성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영어로 글을 써서 인정받았는데도 영어에 깊이 안착하지 못했다.  이탈리아어를 듣는 순간 어떤 친숙함, 인연, 애정을 느꼈다.  이탈리아어를 배우지 않으면 자신을 채울 수 없고 완성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이탈리아어를 점차 알아가는 것은 그녀에게 흥분과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이 작은 사전은 부모라기보다 형제 같다.  여전히 내게 필요하고 아직도 날 이끌어준다.  사전에는 비밀들이 가득하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18페이지)

 

그녀가 이탈리아어를 처음 접한 것은 동생과 함께 이탈리아 피렌체로 여행을 가서이다.   본격적으로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대학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17세기 영국 극작가들에게 미친 이탈리아 건축의 영향"으로 쓴 이후였다.   

 

"이탈리아어 공부는 나의 삶 안에서 벌어진 영어와 벵골어의 긴 싸움으로부터 도주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모국어 벵골어도 새어머니인 영어도 거부하는 길이었다.  독립적인 노정이었다"(123페이지)

 

이탈리아어 공부에 빠지더니 남편, 아이들 모두와 함께 아예 로마로 이주했다.   영어 작가로 인정받은 이후여서 모두들 의아해 했다.   그녀는 이제 마치 한번도 글을 써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왜 작가로 명성을 안겨준 영어를 포기하고 불완전하고 빈약한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려고 했을까. 

 

"이탈리어어로 글을 쓰면서 난 영어에 대한 패배감이나 성공에서 도망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탈리아어는 아주 다른 문학 과정을 내게 선물한다.  작가로서의 장비를 떼어낼 수 있기에 난 다시 나를 만들어갈 수 있다.  나 자신을 전문가라 생각하지 않은 채 단어를 모으고 문장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이탈리아어로 글을 쓸 때 나는 갖은 애를 써도 실패한다.  하지만 오래전 영어에 대해서 느꼈던 패배감과는 달리 난 실패해도 고통스럽지 않으며 고민하지 않는다"(133페이지)

 

줌파 라히리의 어머니가 미국에 살면서도 미국 문화에 저항하고, 인도인의 정체성을 지킨 것에 자부심을 느낀 것에 반해, 그녀는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어했다.  전에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 우리를 움직이는 뭔가를 찾고 싶었다.  그녀는 새로운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작가다운 변모이지 않나.    건물에 무너질지 몰라 가설물, 비계를 설치하는 것처럼, 그녀도 지금은 이탈리아어로 글을 쓸 때 비계를 필요로 한다.  그녀는 언젠가 이 비계를 제거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글을 쓸 날을 기대하고 있다.  

 

이탈리어어가 어떤 언어인지 이 책을 읽다보니 궁금해진다.  어떤 언어이길래 줌파 라히리가 듣는 순간 친숙함과 아름다움을 느꼈을까.   새로운 언어가 이렇게 사람을 휘감아 몰아칠수도 있구나.  언어적으로 뛰어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마법같은 걸까.  이탈리아 문학도 갑자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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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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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에, 작가 김영하의 북 콘서트에서 한 청중이, 자녀를 두지 않는 것이 소설을 쓰는데 경험의 결핍이 되지는 않는가라는 요지의 질문을 했다.   김영하 작가의 대답은 이렇다.  예전에도 선배 작가가 그런 질문을 했을 때,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녀를 두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쓴다면, 자녀가 없는 작가도 있어야 자녀 없이 늙어가는 부부의 얘기도 쓸것 아니냐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나에겐 사물을 비틀어 보는 관점을 제공하는 현명한 대답으로 보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선 평소 자녀가 있는지 그런 것은 생각치 못했는데, 이 책 <먼북소리>을 읽고 자녀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당시 하루키는 부인과 단둘이서 유럽 곳곳을 짧게는 며칠, 길게는 한두달 머무르면서 여행과 소설 두개 모두를 잡을 수 있었다.  자녀가 없으니 가능하지 않았을까.  김영하 작가도 부인과 함께 여행을 자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의 하루키.  ^^  한동안 미국에 머물다가 부산으로 돌아오더니, 최근엔 집이 서울 어디라고 밝혔다.  

 

하루키는 로마를 기본적인 주소로 하고, 주로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도시나 섬으로 이주하면서 지냈다.  그 외의 도시로는 핀란드의 헬싱키나 오스트리아의 짤츠부르크 정도가 이 책에 여행지로 실려 있다.   그동안에 장편 소설 <노르웨이의 숲>과 <댄스 댄스 댄스>를 썼고, 글이 잘 안써질 때는 번역을 했다.  물론 이 여행 에세이도 함께 쓰면서..  

 

하루키는 이 책에서, 이탈리아의 교통난이나 운전 습관, 변혁을 꺼려하고 다른 방법을 찾는 사회 의식, 도둑들의 만행에도 못본척하는 시민정신, 역사적인 맥과 함께 하는 정치 상황과  선거 실태, 관공서의 나태함  등 이탈리아의 사회 문화 현상을 적나라하게 그러나 적당히 꼬집었다.  

 

아무리 1980년대의 이탈리아라지만 그 국민성이 쉽게는 바뀔것 같지 않다.   하루키에게는 이탈리아가 까발림의 대상이었지만, '줌파 라히리'에게는 끌림의 나라였다.  1990년대에 '줌파 라히리'가 로마로 여행을 갔다가 이탈리아어를 듣고 그 언어에 매료되어서 공부하기 시작했고, 로마로 아예 이주해서 살기도 했으니 말이다.  왠지 두 사람의 나라가 전혀 다른 나라인 것 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미국 작가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은 어떨까.  이 책도 유럽 여러 나라를 그렇게 풍자했다고 하던데, 혹시나 하고 로마 챕터를 살짝 열어 보았다.  역시나 이탈리아인은 시끄럽고, 질서 잘 안지키고, 규칙이나 격식이란 걸 전혀 모른다고 씌여있다.  때는 하루키와 동일하게 1980년대이다. 

 

하루키는 그 국민성의 배경까지 설명하기도 해서 조금은 이탈리아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흔적이 보인다.   각 나라의 문화와 사정은 다 있기 마련이니깐 이해할 것은 이해해 보면 좋겠다.   세계 어느 나라라도 문제 없는 나라가 없고, 그 문제와 더불어 나아가고 살아가는 것이니깐. 

 

로마에서의 교통난은 이렇다.  로마의 건물은 대부분 역사적인 건축물인데, 이런 건물에 주차장이 딸려 있을리 없다.  한국처럼 20~30년만에 재건축하는 나라가 아니다.  최신축 건물도 1930년대 건물이라고 하니 말 다했다.  지하에 주차장을 만들려고 조금만 파고 내려가도 유적이 나오니 이도 여의치 않다고 하니, 주차난에 몸살을 앓는 것이다.   소형차들이 소파 쿠션만 한 공간만 있으면 주차를 하고, 이중 삼중 주차까지 척척 해내는 묘기 장면은, 하루키가 즐겨 구경하는 장면이란다.  

 

로마에서의 날치기의 대범한 행동은 혀를 내두를 만하다.  하루키의 부인도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날 가방 날치기를 당한 적이 있는데, 주변에 있던 시민들은 부인이 날치기와 한동안 실갱이 하는데도 외면하고 있다가 끈이 떨어져 가방을 뺏기고 나니 위로의 말을 건네더라구..  마피아나 조직파의 보복이 무서워 연루되길 꺼려하는 것은 아닐까.  

 

"무솔리니는 대담하게 나라의 구조를 바꾸는 데 성공한 유일한 정치가였어.  그는 국민들이 찍소리 못하게 만들었지.  그 정도로 강하게 나오지 않으면 이탈리아 사람을 상대로 정치하기 힘들어.  무솔리니는 마피아까지 꼼작 못하게 했지.  다만 그의 유일한 실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전쟁 능력을 과대평가한 점이야.  이탈리아 사람에게 전쟁을 시켰다가는 끝장이라는 걸 몰랐거든"(이탈리아 친구의 말이다)

 

하루키가 그리스의 여러 섬에 머물면서 그 곳의 기후나 계절에 따른 관광지의 변화에 대해서 서술한 부분도 좋았다.  그리스의 이국성이 글을 통해서도 느껴졌다.   이탈리아가 하도 인상적이라 이탈리아만 주로 소개했다.  ^^ 

   

소설가는 이야기를 창조하기 전에 실재하는 것을 잘 관찰해서 묘사할 줄 알아야 한다더니..  머무는 곳의 풍경과 일상을, 주변 사람들의 특징과 이미지를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읽기 쉽게 서술한 하루키의 묘사력은 단연 돋보였다.  왜 하루키의 에세이가 좋다라고 하는지 이 책을 읽어보니 바로 알 수 있었다.   하루키가 달리기를 굉장히 좋아하고 매일 달린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하루키는 쓰기 위해 달리는 것은 아닐까.   이 책에도 달리기에 대한 짧은 얘기들이 언급되어 있지만, 그의 쓰고 달리는 인생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   그의 다른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읽어봐야 겠다.

 

"그리스에는 참으로 다양한 나라에서 배낭족이 찾아온다. ......

독일 사람은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는 데다 가장 터프한 장비를 갖추고 있다.  캐나다 사람과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배낭에 국기를 붙이고 있으므로 금방 알 수 있다.  북유럽 사람들은 독일 사람한테서 터프함을 뺀 느낌으로 어딘가 공상에 잠겨 있는 듯한 얼굴이다.  행동인 민첩할 것 같고 어딘지 모르게 냉소적인 인상을 주는 얼굴은 프랑스 사람이고, 그러면서도 약간 붙임성이 있을 것 같으면 네델란드나 벨기에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약간 불편해(본인은 즐겁겠지만) 보이는 것은 영국 사람이다.  ...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이탈리아 배낭족들은 거의 볼 수가 없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기묘한 일이다.  나는 폴란드 배낭족도 보았고 한국인 배낭족과도 만났고 탄자니아 배낭족도 보았지만 이탈리아 배낭족은 전혀 본 적이 없다."

 

"내가 처음으로 이탈리아인 배낭족을 발견한 것은.. 페리 선상에서였다.  ... 아무튼 눈에 잘 띈다. ...  이탈리아 사람들만이 소란스럽게 떠든다.  하지만 그들도 배낭족이기는 하다.  배낭을 둘러메고 조깅화를 신고 있는 그들을 보며, 나는 이탈리아에도 배낭족이 있기는 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파트라스 항에 도착하여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들은 배낭을 둘러메고 있었을 뿐, 전혀 배낭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배에서 내리자 모두들 시끄럽게 떠들며 단체로 관광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잽싸게 사라졌다.  물론 배낭족들은 단체로 버스를 타거나 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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