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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몇 주 전에, 작가 김영하의 북 콘서트에서 한 청중이, 자녀를 두지 않는 것이 소설을 쓰는데 경험의 결핍이 되지는 않는가라는 요지의 질문을 했다. 김영하 작가의 대답은 이렇다. 예전에도 선배 작가가 그런 질문을 했을 때,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녀를 두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쓴다면, 자녀가 없는 작가도 있어야 자녀 없이 늙어가는 부부의 얘기도 쓸것 아니냐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나에겐 사물을 비틀어 보는 관점을 제공하는 현명한 대답으로 보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선 평소 자녀가 있는지 그런 것은 생각치 못했는데, 이 책 <먼북소리>을 읽고 자녀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당시 하루키는 부인과 단둘이서 유럽 곳곳을 짧게는 며칠, 길게는 한두달 머무르면서 여행과 소설 두개 모두를 잡을 수 있었다. 자녀가 없으니 가능하지 않았을까. 김영하 작가도 부인과 함께 여행을 자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의 하루키. ^^ 한동안 미국에 머물다가 부산으로 돌아오더니, 최근엔 집이 서울 어디라고 밝혔다.
하루키는 로마를 기본적인 주소로 하고, 주로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도시나 섬으로 이주하면서 지냈다. 그 외의 도시로는 핀란드의 헬싱키나 오스트리아의 짤츠부르크 정도가 이 책에 여행지로 실려 있다. 그동안에 장편 소설 <노르웨이의 숲>과 <댄스 댄스 댄스>를 썼고, 글이 잘 안써질 때는 번역을 했다. 물론 이 여행 에세이도 함께 쓰면서..
하루키는 이 책에서, 이탈리아의 교통난이나 운전 습관, 변혁을 꺼려하고 다른 방법을 찾는 사회 의식, 도둑들의 만행에도 못본척하는 시민정신, 역사적인 맥과 함께 하는 정치 상황과 선거 실태, 관공서의 나태함 등 이탈리아의 사회 문화 현상을 적나라하게 그러나 적당히 꼬집었다.
아무리 1980년대의 이탈리아라지만 그 국민성이 쉽게는 바뀔것 같지 않다. 하루키에게는 이탈리아가 까발림의 대상이었지만, '줌파 라히리'에게는 끌림의 나라였다. 1990년대에 '줌파 라히리'가 로마로 여행을 갔다가 이탈리아어를 듣고 그 언어에 매료되어서 공부하기 시작했고, 로마로 아예 이주해서 살기도 했으니 말이다. 왠지 두 사람의 나라가 전혀 다른 나라인 것 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미국 작가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은 어떨까. 이 책도 유럽 여러 나라를 그렇게 풍자했다고 하던데, 혹시나 하고 로마 챕터를 살짝 열어 보았다. 역시나 이탈리아인은 시끄럽고, 질서 잘 안지키고, 규칙이나 격식이란 걸 전혀 모른다고 씌여있다. 때는 하루키와 동일하게 1980년대이다.
하루키는 그 국민성의 배경까지 설명하기도 해서 조금은 이탈리아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흔적이 보인다. 각 나라의 문화와 사정은 다 있기 마련이니깐 이해할 것은 이해해 보면 좋겠다. 세계 어느 나라라도 문제 없는 나라가 없고, 그 문제와 더불어 나아가고 살아가는 것이니깐.
로마에서의 교통난은 이렇다. 로마의 건물은 대부분 역사적인 건축물인데, 이런 건물에 주차장이 딸려 있을리 없다. 한국처럼 20~30년만에 재건축하는 나라가 아니다. 최신축 건물도 1930년대 건물이라고 하니 말 다했다. 지하에 주차장을 만들려고 조금만 파고 내려가도 유적이 나오니 이도 여의치 않다고 하니, 주차난에 몸살을 앓는 것이다. 소형차들이 소파 쿠션만 한 공간만 있으면 주차를 하고, 이중 삼중 주차까지 척척 해내는 묘기 장면은, 하루키가 즐겨 구경하는 장면이란다.
로마에서의 날치기의 대범한 행동은 혀를 내두를 만하다. 하루키의 부인도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날 가방 날치기를 당한 적이 있는데, 주변에 있던 시민들은 부인이 날치기와 한동안 실갱이 하는데도 외면하고 있다가 끈이 떨어져 가방을 뺏기고 나니 위로의 말을 건네더라구.. 마피아나 조직파의 보복이 무서워 연루되길 꺼려하는 것은 아닐까.
"무솔리니는 대담하게 나라의 구조를 바꾸는 데 성공한 유일한 정치가였어. 그는 국민들이 찍소리 못하게 만들었지. 그 정도로 강하게 나오지 않으면 이탈리아 사람을 상대로 정치하기 힘들어. 무솔리니는 마피아까지 꼼작 못하게 했지. 다만 그의 유일한 실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전쟁 능력을 과대평가한 점이야. 이탈리아 사람에게 전쟁을 시켰다가는 끝장이라는 걸 몰랐거든"(이탈리아 친구의 말이다)
하루키가 그리스의 여러 섬에 머물면서 그 곳의 기후나 계절에 따른 관광지의 변화에 대해서 서술한 부분도 좋았다. 그리스의 이국성이 글을 통해서도 느껴졌다. 이탈리아가 하도 인상적이라 이탈리아만 주로 소개했다. ^^
소설가는 이야기를 창조하기 전에 실재하는 것을 잘 관찰해서 묘사할 줄 알아야 한다더니.. 머무는 곳의 풍경과 일상을, 주변 사람들의 특징과 이미지를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읽기 쉽게 서술한 하루키의 묘사력은 단연 돋보였다. 왜 하루키의 에세이가 좋다라고 하는지 이 책을 읽어보니 바로 알 수 있었다. 하루키가 달리기를 굉장히 좋아하고 매일 달린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하루키는 쓰기 위해 달리는 것은 아닐까. 이 책에도 달리기에 대한 짧은 얘기들이 언급되어 있지만, 그의 쓰고 달리는 인생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 그의 다른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읽어봐야 겠다.
"그리스에는 참으로 다양한 나라에서 배낭족이 찾아온다. ......
독일 사람은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는 데다 가장 터프한 장비를 갖추고 있다. 캐나다 사람과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배낭에 국기를 붙이고 있으므로 금방 알 수 있다. 북유럽 사람들은 독일 사람한테서 터프함을 뺀 느낌으로 어딘가 공상에 잠겨 있는 듯한 얼굴이다. 행동인 민첩할 것 같고 어딘지 모르게 냉소적인 인상을 주는 얼굴은 프랑스 사람이고, 그러면서도 약간 붙임성이 있을 것 같으면 네델란드나 벨기에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약간 불편해(본인은 즐겁겠지만) 보이는 것은 영국 사람이다. ...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이탈리아 배낭족들은 거의 볼 수가 없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기묘한 일이다. 나는 폴란드 배낭족도 보았고 한국인 배낭족과도 만났고 탄자니아 배낭족도 보았지만 이탈리아 배낭족은 전혀 본 적이 없다."
"내가 처음으로 이탈리아인 배낭족을 발견한 것은.. 페리 선상에서였다. ... 아무튼 눈에 잘 띈다. ... 이탈리아 사람들만이 소란스럽게 떠든다. 하지만 그들도 배낭족이기는 하다. 배낭을 둘러메고 조깅화를 신고 있는 그들을 보며, 나는 이탈리아에도 배낭족이 있기는 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파트라스 항에 도착하여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들은 배낭을 둘러메고 있었을 뿐, 전혀 배낭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배에서 내리자 모두들 시끄럽게 떠들며 단체로 관광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잽싸게 사라졌다. 물론 배낭족들은 단체로 버스를 타거나 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