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가라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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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올해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저자의 소설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웃님 블로그에서도 저자의 소설들의 서평들이 간혹 보이기도 한다.   올라오는 글에서 대부분 한강의 소설 분위기가 우울하고 무겁다고들 말한다. 

 

이 소설도 시종 그렇다.   죽음의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는다.  

소설 속 인물들은 참으로 무력하다.   죽음, 자살, 병마와 싸우다가 굴복하고야 마는 삶, 아니면 죽음보다 더한 나약한 삶 속에 바스라질 것만 같이 던져져 있다.   사랑에도 나약한 집착을 보여준다. 

중반 이후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인물들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토리 전개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저자 한강의 이성적이면서 감성적인 문장, 모두 이해하기에 부족함을 느끼지만, 그 분위기만은 고스란히 전달되어 온다 . 

 

한강은 식물의 속성에 천착하고 있는 것일까.  <채식주의자>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식물적인 상상력이 결합되어 있다고 한다.  최근에 읽은 단편소설 <내 여자의 열매>에서는 식물로 변해가는 여자가 나오는데 그로테스크하다.   이 소설에서도 식물의 속성을 이용한 화풍이 나와, 왠지 저자 특유의 감각이 느껴졌다.

 

"먹과 물의 농도가 다르니까, 삼투압의 원리와 모세관 현상을 이용하면...

이만큼, 이 손바닥만큼 번져나가는 데 열흘이 걸려요.  그러니까 저만한 크기의 그림이 완성되려면 두 달에서 석 달쯤 걸렸을 거에요.  ... 

식물이 자라는 속도와 비슷한 거라고 했어요."

 

이 소설은 화가였던 인주가 사망한 이후 1년이 지나,

인주가 자살이었다고 생각하고 화가로서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평전을 펴낸 작가 정석원과,

그리고 인주의 학창 시절 친구로 인주는 자살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 소설의 화자, 정희가

만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인주는 자살일까. 자살이 아닐까. 

정석원과 정희는 나약하지만 끈질기게 인주에게 집착한다.  

 

정희는 인주의 사망 1년전으로 돌아가 인주의 삶을 추적해 나간다.  인주와는 중학생 시절부터 만나 가장 친한 친구였음에도 3년간의 단절이 만든 공백은 서로에게 숭숭 뚫린 구멍을 만들어 버렸다.    정희가 인주에 대해 파헤치고 다니는 얘기들은 어떻게 보면 추리 소설 기법으로 상당한 궁금증과 긴장감을 조성한다.    

 

정희는 정석원의 평전과는 다른, 평전을 써보려고 한다.  죽음의 대물림을 막기 위해 자살로 결론을 내고 싶지는 않았다.  인주의 자식을 위한 것이라지만, 정희 본인야말로 진실을 알고 싶었던 게 아닐까. 

 

정희는 진실을 탐문해 갈수록 자신도 모르고 있던 인주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전까지 자신이 믿어온 인주와의 관계에서 미처 몰랐던 점이 드러난다.    인주는 자신의 어머니와 삼촌의 죽음으로 인한 삶의 무게를 제대로 견뎌낸 것인지 부터 회의가 들고, 인주의 어머니가 왜 알콜 중독으로 살다가 죽어갔는지 알게 되면서 인주에 대한 진실은 더 희미해져 갔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을 진실로 받아들이려는 성향이 있다.   그게 아닌 것 같아도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에 꿰어맞춰가면서 믿고 싶어한다.  이 소설 속 정석원과 정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각자에게 결정적인 진실은 털어놓지 않았기에 알고 있는 정보라고 해도 잘못된 것일 수도 있기에, 진실은 허망하기만 하다.  인생을 한없이 가볍게만 살아가는 나로서는 그들의 삶에서 이해할 수 없는 무거움이 느껴져서 힘들었다.  

 

"내가 찾을 수 있는 모든 퍼즐 조각을 합한다 해도, 결코 알아낼 수 없는 것들이 고스란히 남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몰랐다.

네가 나를 몰랐던 것보다 더.

하지만, 어쩌면 너도 나를 모른다고 느낄 때가 있었을까.

내가 너를 몰랐던 것보다 더."

 

"난 말이지, 정희야.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이상한 기분이 들어.

....  나를 사랑한다는 그 어떤 남자의 말은,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말일 수도 있고,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고, 내가 그를 위해 많은 걸 버려주길 바란다는 말일 수도 있지.  단순히 나를 소유하고 싶거나, 심지어 나를 자기 몸에 맞게 구부려서, 그 변형된 형태를 갖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고, 자신의 무서운 공허나 외로움을 틀어막아달라는 말일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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