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귀신 세종대왕 책귀신 2
이상배 지음, 백명식 그림 / 처음주니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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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이들이 어렸을 때 겪어 봐야 할 가장 소중한 경험은 무엇일까?
엄마의 사랑,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아본 경험, 자전거 타기나 수영하기처럼 너무 어려워서 절대 못할 것 같았던 일을 해낸 것 등, 아이들마다 각각 틀리겠지만 나는 책읽기의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새와 노는 것을 즐거워했던 임금님의 셋째 아들 ‘도’는 세자인 큰 형님이 건네 준 책 한권을 통해 책읽기의 즐거움에 눈뜨게 된다.
평소 책읽기도 좋아했지만 심부름이나 마음껏 뛰어노는 일에 더 신이 나 있던 막둥이는 ‘세상에 한 권 밖에 없는 책’이라는 형님의 말에 침을 꼴깍 삼키며 <평강일기>의 책장을 펼친다.
소학, 논어처럼 옛 사람들의 가르침을 적은 글과는 달리 그 책 속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훗날 세종대왕이 된 ‘도’가 찾은 그 특별한 것이란 무엇일까? 책을 펼치면 그 답이 보인다.

<평강일기>는 도가 살았던 조선시대 보다 800여 년 전 고구려 평원왕 때의 인물인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의 일기이다. 막둥이 도는 <평강일기>에서 보름달, 둥근 달이란 이름을 가진 ‘온달’ 과 매일 아바마마에게 꼬꼬지(아주 오랜 옛날의 뜻)를 해달라고 조르던 평강공주를 만난다. 양반이든, 백성이든, 천민이든 누구나 와서 즐겁게 공부하던 고구려 마을의 경당에도 가 본다. 양반들만 글자를 배울 수 있었던 조선과는 달리 미천한 석수 돌쇠도 심부름꾼 말불이도 농사꾼 오쟁이도 모두 모여 경당에서 글을 배우는 모습에 감동한다. 공주와 결혼한 온달이 글을 깨우치는 것을 보며 무릎을 치며 감탄한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 사람들이 모두 친구 같다.

처음엔 모르는 글자가 많았으나, 사전을 찾아서 그 뜻을 찾아 익히며 그 내용을
익혔다. 책 속 인물이나 사건과 관련된 새로운 책을 찾아 읽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하면서 새롭게 안 것과 생각을 적은 자신만의 ‘독서 서책’이 쌓여 갔다.

<책 귀신 세종대왕>은 <책 먹는 도깨비>에 이은 책 귀신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책 먹는 도깨비의 털털하고 시원스런 옛 이야기 속에 녹아있는 책 읽기의 즐거움과는 또 다른 가슴 뭉클한 즐거움을 전해준다. 참 귀한 책이란 느낌이 들어 아껴 읽다가 끝장까지 다 읽으니 횡재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가 다른 두 위인의 이야기를 한 권의 동화책으로 만날 뿐 아니라,
고상한 한자 고사성어가 이야기 속에 적절하고 쉽게 풀이되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또 이래라 저래라 하며 가르치지 않는 유익한 독서법이 수도 없이 많다. 모름지기 가장 훌륭한 교육은 말이 아닌 몸으로 행하는 것을 직접 보는 것이듯, 역사 이래 가장 훌륭한 왕으로 칭송받는 세종대왕께서 즐겁게 행하신 독서법은 당장 따라 하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다.

이제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책 한권 가슴에 안고
만권의 서책이 가득 쌓인 세종대왕의 방으로, 고구려 자신의 집에 경당을 차리고 아이들 사이에서 글자를 배우던 온달장군의 집으로 찾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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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뎐
김점선 지음 / 시작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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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저녁 뉴스에서 서강대 영문학과 장영희 교수님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로 만난 그 분은 편안하고 따뜻하고 감동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뉴스에 비추어 주는 생전의 모습을 보니, 하얀 얼굴, 동그란 눈동자를 빛내며 , 환하게 웃고 있었다. 목발을 짚고 학생들과 눈을 교감하며 정다운 강의를 하던 그녀는 짧은 생이었지만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스스로는 병마와 싸우는 고통의 시간을 살았지만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사랑과 희망을 몸소 보여준 스승으로 말이다.

지난 3월, 63세로 타계한 김점선 화백도 난소암 투병 끝에 세상과 이별을 했다. 몇십조원을 벌어 도심 한 복판에 황무지를 만들겠다던 엉뚱하지만 시원한 그녀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정해진 틀에 저항하던 그녀의 예술혼은 그녀의 그림과 깔깔 웃게 만드는 남겨진 이야기를 통해 이제 다른 사람들이 꾸게 될 것이다.

<점선뎐>은 고 김점선 화백의 유작 수필집이다. 이 한 권의 책으로 만난 김점선은 명민함과 타고난 끼와 열정을 평생의 독서로 가다듬고 닦아, 글과 그림으로 탄생시킨 예술가이다. 그녀의 그림은 존 버닝햄의 그림처럼 그녀만의 아름답고, 단순한 동심이 듬뿍 드러나 있다. 말, 거위, 소녀, 꽃, 누군가는 그녀의 그림에서 샤갈을 본다고 하지만 난 세상의 어린이들을 행복하게 하고 감싸 안는 이름난 그림책 동화작가의 그림들을 보는 것 같다.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 항상 즐겁다. 아이들은 선이나 색, 형태나 크기 등 어떤 것도 절제하지 않고 마음껏 그린다. 형식이나, 규정, 점수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대부분 점점 자라면서 자유롭게 그리던 마음은 어느 새 위축되어 버린다.
다행히 점선의 아버지는 점선의 그림을 항상 칭찬하셨고 마음껏 그림 그리는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알게 해 주셨다. 점선은 어린 시절의 그 즐거움을 잊지 않았고, 주변에 위축되지 않았다. 조용하지만 냉정하고 뜨거운 사람이었던 어머니는 강한 성격의 그녀를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으로 길렀다. 총명했던 그녀는 청소년기에 가 보지 못한 세상의 다양한 길과 시간상, 거리상 만나 볼 수 없는 수많은 천재들을 책을 통해 만나고 탐색하게 된다.
예술가로서의 김점선도 훌륭하지만 독서가로서의 김점선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범죄자와 예술가는 남다른 열정을 지닌 사람이다. 범죄자는 내재된 열정을 잘못된 방향으로 분출해 사회에 해를 입히지만 예술가는 잠재된 열정을 타인에게 해를 주지 않고 발산 하는 사람이다'라고 한 그녀의 말처럼 그녀는 자유롭고 열정적인 영혼으로 살았다.
그녀가 선택한 남자, 결혼 그리고 아이와의 생활은 또 다른 처절한 진짜 삶이고 진짜 예술이다. 세상에서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 같은 그녀는 세상에서 자기가 낳은 자식을 대할 때 가장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그 아이를 정상적인 인격을 가진 한 사람으로 키울 수 있을지, 그 아이의 인격에 자신이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아이에 대한 그녀의 진지함을 보며 마음이 뭉클해졌다.
갑자기 나 어릴 때 우리 엄마가 생각이 난다. 우린 4남매인데, 유독 엄마는 큰 오빠를 어려워했다. 당신이 낳은 자식이지만 당신이 함부로 대하지 못할 존귀한 사람을 대하듯, 엄마는 지금도 큰 오빠를 어려워하신다.

가난도, 명예도, 세상도 두렵지 않았지만 작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존귀히 여기고 두려워했던 그녀, 그녀는 지금 이 세상과 이별 했지만 그 아름다운 마음으로 빚어낸 그림과 글로 이 세상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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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고대사 유적답사기 - 영산강에서 교토까지, 역사의 질문을 찾는 여행
홍성화 지음 / 삼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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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집권적인 통치 체제를 완성하고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며, 새로운 정책을 펼침으로써 근대로 가는 기틀을 다진 일본의 메이지 유신, 그 메이지 유신의 초기에 일본 통치자들이 내세운 정책은 한국을 정벌한다는 ‘정한론’이다.
정한론은 일본이 대륙으로 나가는 발판을 마련하고 대륙을 식민지 삼으려는 침략의 정책일 뿐 아니라 일본 국내의 정치적 문제를 안정시키려는 사정도 있었다고 한다. 서양의 개방 압력을 받아들인 일본은 서양 여러 나라들의 식민지 정책을 참고하여 조선을 침공하여 자신들의 구미열강과 맺고 있는 불평등조약을 개정하는 수단으로 삼고자 했다고 한다. 그리고 반대 세력을 국외 전쟁으로 보내어 불만을 무마하고, 국민의 관심을 밖으로 쏠리게 하며, 조선의 자원을 일본으로 반출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목적도 있었다.
저자는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근대의 일제 침략과 정한론을 공부하다가 정한론의 뿌리가 고대사까지 올라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대 한일 정치외교사’를 연구하게 되었다. 기존의 한국과 일본 고대사의 틀, 전혀 상반되는 두 나라 역사학자들의 틀을 비판하고 철저한 현장 답사에 의해서 진실을 밝히고자 이 책을 집필하였다고 말한다.
기록이나, 유물도 거의 없고, 시간으로도 너무나 오래전의 일, 흔적조차 뚜렷하지 않은 고대사와 관련된 유물을 찾아 저자는 영산강 유역으로 시작한 한반도 와 일본열도의 관련 유적을 두루 답사한 노력 끝에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빼곡한 글자와 사진의 엄청난 자료를 남겼다.

연오랑 세오녀 설화, 왕인 이야기, 고대에 백제가 일본을 점령 했다는 설, 일본의 천황족은 백제나 가야의 왕족과 같다는 우리의 일본에 대한 역사 인식이나
또 그와 반대로 일본이 고대 삼한을 정복했고, 백제가 일본에 조공을 바쳤으며, 고대 한반도 남쪽 지역을 일본의 임나일본부가 지배했다는 설 등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역사인식은 극과 극을 이루고 있다. 고대사를 뒷받침하는 양국의 기록물인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서도 그 내용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

일본과 한국의 고대사는 주로 일본이 독도에 대해서, 과거 한반도의 영토에 대해서 그들이 어떤 주장을 내세우며 시비를 걸면 우리는 거기에 맞서 항변하는 듯한 인상이다. 그런데 왜 자꾸 일본이 고대사를 들추며 한국에 시비를 거는 것일까? 지속적인 한국에 대한 일본의 역사적 우위권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외교적인 제스츄어일까? 한국 식민지 지배와 2차 세계대전을 이끈 주도국으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일까? 또 다른 정복 전쟁을 위한 명분을 마련하기 위해서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무튼 그들의 의도를 알기 위해서 노력하기보다는 우리나라의 역사 교육과 역사 인식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학생들이 성적과 관련해서 할 수 없이 교과서를 읽어보는 정도로는 절대로 역사의 중요성을 알 수 없다. 그때 있었던 그런 일이 지금 살아가는 우리에게 왜 중요한가를 배우는 역사 교육이 되어야 하겠다.
이 책은 철저한 유적지와 유물 답사로 한일 고대사를 상세히 파헤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겠지만 역사를 상세하게 공부한 적이 없는 일반인이 읽기에는 다소 딱딱하고 힘겨운 책인 것 같다. 사람이든 책이든, 딱딱하고 어려우면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게 마련이다. 아주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역사책이 더 많이 출판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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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적은 말한다 - 글씨로 본 항일과 친일
구본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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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가 곧 사람이다.
글씨는 뇌의 흔적이다.
글씨쓰기에 영 자신이 없는 나는 무시무시한 이 말에 많이 주눅이 든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의 글씨를 보면 멋지고 그럭저럭 괜찮게 보이는데 왜 내가 쓴 글씨는 하나 같이 마음에 들지 않을까? 지나치게 휘갈겨 지고 단정하지 못하고, 반듯하지 않다. 휘갈겨 쓴 글씨라도 일정한 규칙이 있어 미관상 멋진 모양을 이루는 글씨가 있는 반면 내 글씨는 어떤 일정한 규칙도 없이 밋밋하다가 어떤 것은 심하게 모양이 일그러져 혼자 보면서도 참 민망하다. 어떨 때는 내가 쓴 글씨를 내가 못 알아볼 때도 있어 쓰면서도 후일을 걱정할 때도 있으니 아무리 자필이 서명할 때 외엔 별 필요 없는 세상이긴 해도 이건 좀 심각하다.

이 책은 20년 경력의 강력범죄 현직 전문 검사의 10여년의 글씨 수집과 노하우가 녹아있는 필적에 관한 책이다. 그는 ‘누구나 살면서 가슴에 꽂히는 일이 있다면, 나에겐 그것이 글씨였다.’ 고 한다. 살인, 마약, 강도 등 강력 범죄 사건과 범죄자와 관련된 그의 직업 특성 상 품게 된, 사람의 성격과 본성에 대한 의문은 글씨를 탐색하는 일로 나타났다. 여러 범죄자를 만나면서 그들의 글씨에서 그들의 성정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놀랐고, 글씨를 보면서 그 사람이 세상에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인지, 자신과 사회에 정직한 사람인지 어느 정도 파악이 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글씨 수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수집은 그냥 어느 특정 물건을 모으는 것, 또는 모아 놓으면 일정 시간이 흐른 다음 꽤 값비싼 것이 된다는 정도로 생각하던 내게 작가의 수집에 대한 철학은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수집도 그 매력을 아는 사람이 할 수 있겠구나 싶다. 그는 수집은 단순히 물건을 모으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가치를 밝히는 일종의 ‘창작 행위’, 즉 수집품에 생명을 불어 넣는 행위라고 한다. 작품을 평가할 식견, 예술을 보는 눈, 작품에 대한 감식안이 있지 않고는 수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수집을 좋아했던 그는 이미 고 미술 작품과 글씨에 대한 상당한 관심과 식견, 경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글씨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로 그는 지난 10여 년간 구한말 항일 운동가와 친일파들의 글씨 천여 점을 수집하였다. 일반적으로 보통 김구선생님이나, 안중근 의사, 위대한 항일 운동가들의 글씨에 비해 친일파의 글씨는 별 가치가 없게 취급되며, 값도 별로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필적을 비교해서 분석하는 그의 컬렉션으로 볼 때는 둘 다 상당히 중요한 작품들이다.
글씨로 사람의 인품을 도식화하는 것이 여러 가지 요인이 연관 되어 있어 쉽지는 않지만 항일운동가와 친일파의 글씨는 뚜렷한 차이점이 몇 가지 있다고 한다. 항일운동가의 전형적인 글씨는 작고, 정사각형 형태로 반듯하며, 유연하지 못하고, 각지고 힘찬 것이 많고, 규칙성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친일파의 글씨는 크고, 좁고, 길며, 유연하고, 아래로 길게 뻗치는 경우가 많고 불안정하다고 한다.
항일운동가의 글씨는 바름의 글씨이며, 친일파의 글씨는 기이함의 글씨라고 요약한다. 항일운동가로 자결한 분들의 글씨는 더 반듯하고 더 규칙적이며 상당히 정돈되어 있고 속도가 항일운동가 보다 더 빠르다.
글씨에 나타나는 이런 전체적인 몇 가지 특징으로 보아 현실에 더 쉽게 순응하고 대처하며 살았느냐, 자신의 신념과 옳고 그름의 가치를 지키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느냐, 또 절대로 자신의 소신을 굽힐 의사가 전혀 없으며 현실이 변할 기미도 보이지 않자 그 울분을 세상에 항거하는 방법으로 자결을 택하지 않았을까란 추측도 해본다.
한 일 년 전부터 우연히 기회가 되어 한글 서예를 배우고 있다. 펜글씨와 붓글씨는 또 다르다는 말에 힘입어 나름대로 많은 시간을 들여 노력을 해 보니, 마음을 담아 정성을 기울인 만큼 글씨도 나름의 맛과 형태를 갖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문 서예는 한문도 잘 모를뿐더러 볼 줄 도 모르지만 작가가 이야기하는 글씨의 특징을 따라 찬찬히 살펴보니 글씨가 그냥 글씨로 보이지 않는다. 종이와 먹, 붓만으로 그 자체로 작품이 되는 서예 작품도 아름답지만 그 글을 쓴 사람의 삶과 그 글씨의 역사와 의미를 생각하니 더 귀하다.
글씨에 담긴 중요한 의미와 수집의 철학을 배울 수 있는 멋진 책을 썼을 뿐 아니라, 자신의 본업만큼 중요한 일을 지금도 병행하고 있는 작가의 활동에 진심어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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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절 - 42곳 사찰에 깃든 풍물과 역사에 관한 에세이
장영섭 글.사진 / 불광출판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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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자가 아닌 나에게도 절이 있는 풍경은 익숙하다.
일부러 찾아간 것도 아닌데 비 오듯 땀을 흘리며 까맣고 서늘한 기와 빛깔과 수수한 꽃밭에 끌려 가다보면 절 마당이 나왔다. ‘길 위의 절’이란 마치 시 같은 책 제목에서부터 내 마음이 오래 머물렀던 이런 저런 절의 풍경들이 떠오른다.
휴가차 고속버스를 타고 마을 버스를 갈아타며 도착한 한 여름 소나기 속의 변산 내소사의 찻집 풍경, 오대산 월정사의 금낭화, 하늘 매발톱, 쥐오줌풀의 어여쁜 추억, 연애 감정인지, 우정인지 헷갈리면서 나란히 앉아 들었던 도봉산 중턱의 절 마당의 풍경 소리 등..

<길 위의 절>은 1975년생인 서울대 철학과 출신의 불교신문 기자, 장영섭의 글과 사진을 모은 산문집이다. 불교신문에 2008년 한 해 동안 연재되었던 42편의 수필을 모아 엮었다. 후루룩 책장을 넘기며 아는 절이 몇 군데나 되나 한번 읽고, 읽고 싶은 절을 찾아가서 절에 깃든 깊은 사연을 또 한 번 읽고, 멋진 풍경도 한 참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그런데 일간지에 가끔 소개되는 유명한 절들이 나올 법도 한데, 이름이 낯선 절이 꽤 많다 싶어 다시 서문을 읽어보니, 전국의 조계종 42곳을 돌며 적은 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찰 중 조계종이 아닌 절도 많을 테니 절에 관한 조예가 깊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겐 낯설 것이다.

글들은 절 안의 깨달음, 절이 안은 생명, 절에 잠든 역사, 절 바깥의 풍경 등 큰 4개의 주제로 모았다. 절의 창립자이거나, 절을 거쳐 간 역사적 인물에 얽힌 이야기, 불교의 이런 저런 가르침, 절 안에 머무는 오래 되거나 해마다 피고 지는 꽃들, 절과 관계된 역사, 절 바깥을 에워싼 풍경이지만 절 바깥인지, 안인지 구분 되지 않을 정도로 절을 떠올릴 때 함께 떠오르는 풍경들, 참 많은 절들과 이야기를 담아 한 번에 읽어내기가 숨이 찼다.

자꾸 책을 읽으며 왜 이렇게 진도가 안 나가지 하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누가 심오한 이야기를 하는 데 심오한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준이 안 되거나, 관심이 다른데 있어서 ‘소귀에 경 읽기’하는 상황처럼 말이다. 책을 읽으며 나의 수준을 읽는다.

남양주 덕소의 묘적사, 강진의 백련사, 춘천 청평사 등 가 보았거나 들어본 반가운 절이 나오니 훨씬 수월하다. 처음 만나본 절들도 언젠가 여행길에 들린 다면 구면이니 조금 더 반갑겠다.
절에 깃든 오랜 세월의 흔적과 사람들의 이야기, 절 안팎의 생명들과 어우러져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이 되는 절의 모습은 <6시 내 고향>에 나오는 주름진 농부들의 모습과 닮았다.

산을 가든, 관광지를 가든, 자연스럽게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절들, 이 책 한 권 배낭에 넣어 가면 좋겠지만 책 무게가 조금 부담스럽다면 돌아와 꺼내 펼쳐보아도 여행의 여운이 이어지는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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