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뎐
김점선 지음 / 시작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그저께 저녁 뉴스에서 서강대 영문학과 장영희 교수님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로 만난 그 분은 편안하고 따뜻하고 감동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뉴스에 비추어 주는 생전의 모습을 보니, 하얀 얼굴, 동그란 눈동자를 빛내며 , 환하게 웃고 있었다. 목발을 짚고 학생들과 눈을 교감하며 정다운 강의를 하던 그녀는 짧은 생이었지만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스스로는 병마와 싸우는 고통의 시간을 살았지만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사랑과 희망을 몸소 보여준 스승으로 말이다.

지난 3월, 63세로 타계한 김점선 화백도 난소암 투병 끝에 세상과 이별을 했다. 몇십조원을 벌어 도심 한 복판에 황무지를 만들겠다던 엉뚱하지만 시원한 그녀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정해진 틀에 저항하던 그녀의 예술혼은 그녀의 그림과 깔깔 웃게 만드는 남겨진 이야기를 통해 이제 다른 사람들이 꾸게 될 것이다.

<점선뎐>은 고 김점선 화백의 유작 수필집이다. 이 한 권의 책으로 만난 김점선은 명민함과 타고난 끼와 열정을 평생의 독서로 가다듬고 닦아, 글과 그림으로 탄생시킨 예술가이다. 그녀의 그림은 존 버닝햄의 그림처럼 그녀만의 아름답고, 단순한 동심이 듬뿍 드러나 있다. 말, 거위, 소녀, 꽃, 누군가는 그녀의 그림에서 샤갈을 본다고 하지만 난 세상의 어린이들을 행복하게 하고 감싸 안는 이름난 그림책 동화작가의 그림들을 보는 것 같다.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 항상 즐겁다. 아이들은 선이나 색, 형태나 크기 등 어떤 것도 절제하지 않고 마음껏 그린다. 형식이나, 규정, 점수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대부분 점점 자라면서 자유롭게 그리던 마음은 어느 새 위축되어 버린다.
다행히 점선의 아버지는 점선의 그림을 항상 칭찬하셨고 마음껏 그림 그리는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알게 해 주셨다. 점선은 어린 시절의 그 즐거움을 잊지 않았고, 주변에 위축되지 않았다. 조용하지만 냉정하고 뜨거운 사람이었던 어머니는 강한 성격의 그녀를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으로 길렀다. 총명했던 그녀는 청소년기에 가 보지 못한 세상의 다양한 길과 시간상, 거리상 만나 볼 수 없는 수많은 천재들을 책을 통해 만나고 탐색하게 된다.
예술가로서의 김점선도 훌륭하지만 독서가로서의 김점선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범죄자와 예술가는 남다른 열정을 지닌 사람이다. 범죄자는 내재된 열정을 잘못된 방향으로 분출해 사회에 해를 입히지만 예술가는 잠재된 열정을 타인에게 해를 주지 않고 발산 하는 사람이다'라고 한 그녀의 말처럼 그녀는 자유롭고 열정적인 영혼으로 살았다.
그녀가 선택한 남자, 결혼 그리고 아이와의 생활은 또 다른 처절한 진짜 삶이고 진짜 예술이다. 세상에서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 같은 그녀는 세상에서 자기가 낳은 자식을 대할 때 가장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그 아이를 정상적인 인격을 가진 한 사람으로 키울 수 있을지, 그 아이의 인격에 자신이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아이에 대한 그녀의 진지함을 보며 마음이 뭉클해졌다.
갑자기 나 어릴 때 우리 엄마가 생각이 난다. 우린 4남매인데, 유독 엄마는 큰 오빠를 어려워했다. 당신이 낳은 자식이지만 당신이 함부로 대하지 못할 존귀한 사람을 대하듯, 엄마는 지금도 큰 오빠를 어려워하신다.

가난도, 명예도, 세상도 두렵지 않았지만 작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존귀히 여기고 두려워했던 그녀, 그녀는 지금 이 세상과 이별 했지만 그 아름다운 마음으로 빚어낸 그림과 글로 이 세상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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