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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절 - 42곳 사찰에 깃든 풍물과 역사에 관한 에세이
장영섭 글.사진 / 불광출판사 / 2009년 4월
평점 :
불교신자가 아닌 나에게도 절이 있는 풍경은 익숙하다.
일부러 찾아간 것도 아닌데 비 오듯 땀을 흘리며 까맣고 서늘한 기와 빛깔과 수수한 꽃밭에 끌려 가다보면 절 마당이 나왔다. ‘길 위의 절’이란 마치 시 같은 책 제목에서부터 내 마음이 오래 머물렀던 이런 저런 절의 풍경들이 떠오른다.
휴가차 고속버스를 타고 마을 버스를 갈아타며 도착한 한 여름 소나기 속의 변산 내소사의 찻집 풍경, 오대산 월정사의 금낭화, 하늘 매발톱, 쥐오줌풀의 어여쁜 추억, 연애 감정인지, 우정인지 헷갈리면서 나란히 앉아 들었던 도봉산 중턱의 절 마당의 풍경 소리 등..
<길 위의 절>은 1975년생인 서울대 철학과 출신의 불교신문 기자, 장영섭의 글과 사진을 모은 산문집이다. 불교신문에 2008년 한 해 동안 연재되었던 42편의 수필을 모아 엮었다. 후루룩 책장을 넘기며 아는 절이 몇 군데나 되나 한번 읽고, 읽고 싶은 절을 찾아가서 절에 깃든 깊은 사연을 또 한 번 읽고, 멋진 풍경도 한 참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그런데 일간지에 가끔 소개되는 유명한 절들이 나올 법도 한데, 이름이 낯선 절이 꽤 많다 싶어 다시 서문을 읽어보니, 전국의 조계종 42곳을 돌며 적은 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찰 중 조계종이 아닌 절도 많을 테니 절에 관한 조예가 깊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겐 낯설 것이다.
글들은 절 안의 깨달음, 절이 안은 생명, 절에 잠든 역사, 절 바깥의 풍경 등 큰 4개의 주제로 모았다. 절의 창립자이거나, 절을 거쳐 간 역사적 인물에 얽힌 이야기, 불교의 이런 저런 가르침, 절 안에 머무는 오래 되거나 해마다 피고 지는 꽃들, 절과 관계된 역사, 절 바깥을 에워싼 풍경이지만 절 바깥인지, 안인지 구분 되지 않을 정도로 절을 떠올릴 때 함께 떠오르는 풍경들, 참 많은 절들과 이야기를 담아 한 번에 읽어내기가 숨이 찼다.
자꾸 책을 읽으며 왜 이렇게 진도가 안 나가지 하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누가 심오한 이야기를 하는 데 심오한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준이 안 되거나, 관심이 다른데 있어서 ‘소귀에 경 읽기’하는 상황처럼 말이다. 책을 읽으며 나의 수준을 읽는다.
남양주 덕소의 묘적사, 강진의 백련사, 춘천 청평사 등 가 보았거나 들어본 반가운 절이 나오니 훨씬 수월하다. 처음 만나본 절들도 언젠가 여행길에 들린 다면 구면이니 조금 더 반갑겠다.
절에 깃든 오랜 세월의 흔적과 사람들의 이야기, 절 안팎의 생명들과 어우러져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이 되는 절의 모습은 <6시 내 고향>에 나오는 주름진 농부들의 모습과 닮았다.
산을 가든, 관광지를 가든, 자연스럽게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절들, 이 책 한 권 배낭에 넣어 가면 좋겠지만 책 무게가 조금 부담스럽다면 돌아와 꺼내 펼쳐보아도 여행의 여운이 이어지는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