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 알기 쉽게 풀어쓴 (한글판 + 영문판)
E. H. 카 지음, 이화승 옮김 / 베이직북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역사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역사의 개념과 정의를 논한 철학적이고 다소 딱딱한 이 책을 읽으며 새삼 '역사'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보통 우리는 사랑은 무엇이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한참 생각하고 정의를 내린 후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어는 순간 '사랑' 그 자체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볼 때도 있는데 곰곰히 생각해 본 그 사유의 시간 후의 '사랑'은 그 전의 '사랑'과는 분명 다른 의미로 각자에게 다가올 것이다.
'사랑'자체에 대해 그 의미와 깊이와 넓이를 곰곰히 생각해 본 후의 '사랑'은 무심코 그냥 사랑하며 살아가던 때보다는 삶에서 더 풍성하고 깊고 의미있게 여겨질 것이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커리큐럼에 짜여 있으니까, 교양으로 알아야 하니까 역사책을 읽고 역사 드라마를 본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삶에서 중요한 것 같아서 찾아서 공부하기도 하지만 '역사' 란 무엇인지 그 개념과 정의를 생각해 보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 아는 것과 '역사' 그 자체의 의미를 아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이 책은 1961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있었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에드워드 하렛 카의 강연을 보완해 펴낸 책이다.
이 강연은 영국의 BBC 라디오에서 방송된 후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전 세계적으로 약 25만부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카는 영국 출신의 외무부 공무원이었으며 더 타임스 논설위원을 지냈다. 그는 역사학 교수나 역사학자가 아닌 국제관계, 문화, 철학, 정치, 외교 등에 관한 여러 책을 편찬한 사상가였다. 현재는 그의 역사에 관한 새로운 정의를 다룬 이 책 뿐아니라 국제관계를 다룬 책들이 학계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역사학자가 아닌 카가 한 대학에서 했던 역사학 강연은 이 전과는 새로운 역사에 대한 정의를 내렸고, 역사를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과 방향을 제시하였다.

역사란 단순한 과거의 사건을 나열해 놓은 연대기와는 다르게, 과거의 사실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시도이며, 과거의 사건의 원인과 배경을 설명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역사학자는 고고학자나 연대기 기록자와는 다르게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그 원인과 배경을 설명하는 주관적인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카의 이 이론은 역사를 과거에 일어난 있었던 일 그 자체로 보는 사관, 역사의 중심이 과거에 있다는 이론에 반대하여 역사의 중심은 현재에 있다고 주장하는 파격적인 이론이다.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가와 과거인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이다. 그래서 현재와 과거의 사실은 둘 다 없어서는 안되는 요소이다. 사실을 소유하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생명도 없고 의미도 없다. 그래서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저자의 결론은 명쾌하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그는 역사를 연구할 때 역사를 기록한 역사가를 함께 연구하되 그 역사가는 그가 속한 사회, 그 환경의 영향을 받는 사람임을 염두에 두고 역사를 보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역사를 공부할 때는 현재의 '사회'와 과거의 '사회'가 고려되어야 한다.
또한 역사의 연구는 원인의 연구이다. 역사가는 어떤 사건을 해석하고 원인들을 분석하고 선택하고 정리한다.
여러 원인들 사이의 상하관계, 원인들의 원인, 가장 본질적인 원인을 찾는다. 역사가가 아닌 그냥 독자도 역사를 보는 감각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어떤 과거의 기록과 사건을 보며 이런 해석과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를 할 것이다.
역사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미래를 위해서이다. 카는 역사의 목표이자 방향은 미래라고 말한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과거의 여러사건과 점차 나타나는 미래의 여러 목적간의 대화'라고 정의한다.

'미래를 향한 진보 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상실해 버린 사회는 곧 과거에 스스로 이룩한 진보에 대해서도 무관심해질 것이다.
우리의 역사관은 우리의 사회관을 반영하는 것이다. '

'현대인은 자기가 지나온 어둠을 뒤돌아보고 열심히 응시한다. 그것은 거기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빛이 그가 나아가려고 하는 미래의 암흑을 밝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속한 유럽과 서양 사회의 현실적 상황이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지고 있고 세계는 전쟁, 기아, 핵, 식량문제, 기후문제 등 많은 문제들에 시달리고 있으나 그는 역사는 언제나 진보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고 본다. 그는 격동하는 세계, 갈등하는 세계를 바라보며 어느 위대한 과학자의 오래된 말을 빌려서 답한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 책은 여러 정치가, 사상가, 석학들의 견해가 많이 인용된 읽어내기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어떻게든 읽어낸 후에는 내게 역사를 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었다. 현재와 동떨어진 먼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인 역사가 현재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란 의문에 일말의 답을 들려준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대화는 말을 걸고 대답을 듣는 사람들의 것이다.
과거의 사실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며 끊임없는 말 걸기를 시도해보자. 대화와 사귐도 훈련이 필요한 법, 어느 순간, 역사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때 그 사건이 지금 현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어떻게 미래를 설계해야 할지 현명한 답을 얻을 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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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소녀
델핀 드 비강 지음, 이세진 옮김 / 김영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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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IMF 당시 대출이자와 물가는 하늘을 치솟을 듯 오르고
한 순간 직장이란 삶의 버팀목을 잃어버린 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잃고 노숙자가 되어 도시의 곳곳을 떠돌았었다.
서울역도, 잠실역도, 마로니에공원도 도시의 그 어디를 보아도
하늘을 가릴 천장과 찬 바람을 가릴 벽이 있는 곳에 웅크리고 있는
그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요즘도 지하철의 입구에서 한 두 사람을 만나지만 그때만큼은 아니다. 그 때는 정말 뉴스에서도 교회에서도 이런 저런 자선 단체에서도 그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를 멈추지 않았었다.

길 위의 소녀를 읽으니 그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러면 그 때 평범한 삶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나 길거리에 주저 앉은 그들은 그후 다시 일어서서 테두리 안으로 들어 올 수 있었을까?

세상이 점점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그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도 더불어 발전하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IMF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기회의 시간이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들이닥친 불행처럼 속수무책의 시간들이었다. 도시의 문명과 산업의 발전이 어떤 이들에게는 탄탄한 삶의 발판을 마련하는 기회의 시간이 되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어두운 골짜기로 추락하는 비극의 시간이 되기도 한 것이다.

델핀 드 비강은 2001년 필명으로 <배고픔 없는 나날들>이란 사회적 이슈가 깃든 제목의 소설을 발표했다.
<길 위의 소녀> 역시 성장하는 두 소녀를 주인공으로 숨은듯 거리에서 살아가는노숙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평범한 듯 보이는 중산층의 가정에서 아버지의 자상하고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는 13살의 소녀 루, 아이큐가 뛰어나게 높아서 영재학교를 거치고 거듭 월반을 한 결과 자신보다 2~3살 많은 아이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한다. 그러나 무엇하나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루의 내면은 그렇지 않았다. 어린 동생의 죽음으로 루는 엄마의 삶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평범한 아이들처럼 다른 아이들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세상이란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울타리 밖에서 홀로 서성거리는 기분을 아는가? 몸은 함께 있지만 마음은 어딘가 저 멀리에 가 있는 사람과 함께 있는 그 기분을 느껴 보았는가?
아이들만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는 말이 내 귀에도 뭔가 어설프게 들리고 대화중에 쭈뼜대고, 내가 하는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고 그들의 대화에 끼이지 못하고 있다는 그런 느낌을 나는 잘 안다.

어쩌다 과제물 발표 주제로 '거리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조사하게 되어서 루는 거리의 소녀 노를 만난다.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아이인데 자신과는 너무나 다르게 살아가는 아이, 인터뷰가 끝난 후 자신은 집으로 돌아가지만 노는 오늘 밤 잘 곳을 찾아 밤 거리를 헤메야 한다. 추위에 얼어죽지 않기 위해서 종일 걷기를 멈출 수 없고 한 장의 식권을 위해서 두시간 전부터 길게 줄을 서야 한다. 노와의 여러번의 인터뷰를 마치고 발표를 끝내고도 루는 노를 찾아 다시 거리로 나선다. 그리고 전에는 보이지 않던 그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수 많은 사회복지시설이 있지만 그 곳에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일, 하룻밤 재워주고 한끼의 밥을 해결할 식권을 나눠주고 성년이 될 때까지 임시로 맡았다가 성년이 되면 거리로 내보내는 것으로는 노를 이 세상으로 데리고 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사람이 한 명씩의 노숙자들을 돌본다면 거리에 넘쳐나는 그들의 삶이 변화되지 않을까?
그래서 감히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결단한다. 그것은 노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다. 노가 루의 우정으로 변화되어 세상에 맞설 힘을 얻고 행복해지기를, 그래서 저쪽 세상에 속한 그들의 고된 삶에 희망의 불씨를 던져주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은 가보다. 자신과 함께 하기위해서 짐을 싸 거리로 나섰던 루를 역에 남겨둔 채 노는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그런데 이렇게 끝나기에는 나는 아직 듣고 싶은 이야기가 남았다.
길위의 소녀 세상에 맞서다. 이런 속편이 나와서 루를 터미널에 두고 홀로 세상으로 떠난 노가 조금씩 회복되고 강해지고 행복해져서 루에게, 아니 독자인 우리들에게 잘 있다는 안부를 전해오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노숙자, 우정, 상처, 가족, 이해, 받아들임, 부조리한 세상에 맞섬, 성장, 상실의 아픔, 조건없이 주는 행복 등 작가가 세상에 보내는 던지는 작지만 분명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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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조용히! - 풋내기 사서의 좌충우돌 도서관 일기
스콧 더글러스 지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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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콧 더글러스 지음/부키

“설마, 농담이죠?”
“아니, 도서관에서 일하려면 학교를 나와야해? 사람들한테 제대로 ‘쉿!’하는 법을 가르쳐 주나봐?”
저자가 도서관 학교를 나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보통 보이는 반응이다.
근대 도서관학의 아버지, 멜빌 듀이를 배출한 나라, 미국에서도 사람들에게 ‘사서’란 직업은 역시 생소한가 보다. 멜빌 듀이는 세계 최초 십진분류법인 DDC의 창시자이며 최초의 도서관 학교의 창립자, 라이브러리 저널 창간, 미국 도서관 협의의 창립멤버이다.
저자 스콧 더글라스는 미국 켈리포니아주 디즈니랜드와 가까운 애너하임 공공도서관의 중견 사서이며 프리랜서 작가이다. 대학 재학시절 일자리가 필요해, 신문의 스트립퍼 구인 광고지에 혹해서 신문을 뒤지다가 사서보조 모집 광고지를 발견하고 우연히 도서관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던 그는 도서관 사무보조로 도서관에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무언가의 이끌림에 의해 문헌정보학 대학원에 입학, 석사학위를 마치고 정식 사서가 되었다.
영문학 전공의 책을 좋아하고 감수성 풍부하고 소심한 이십대 초반의 남자,
내가 보기에 그에게 도서관은 운명의 장소임이 분명한데 그가 이야기 하는 도서관 이야기는 킬킬거리게 웃기면서도 감동이 뭉실 대고 또 한편 ‘니들이 참 고생이 많다.’며 등 두드려 주고 싶게도 한다.
아무리 운명적인 사랑 끝에 한 결혼일지라도 결혼 생활이 이어지면 그 운명이 지긋지긋 해질 때도 많은 게 인생인데 사서란 직업도 역시 만만치 않다. 사서가 보는 사서는 외부에서 보는 사서의 이미지처럼 그렇게 고고하지도 지적이지도 우아하지도 않고 여느 직장처럼 별난 사람 한 둘 쯤 꼭 있고 게다가 그들은 저자와 마찬가지로 유치하기까지 하다.

이용자도 지역 내에 존재하는 지역의 공공기관이니 별별 사람들이 다 온다.
사서를 연예인처럼 신기하게 바라보는 초등학생들, 늘 욕을 입에 달고 있는 분노로 가득 찬 시한폭탄 같은 중고등학생들, 도서관이 노인정인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리고 노숙자들까지 별의별 사람들이 시시때때로 등장한다.
그들이 일으키는 온갖 소동을 다 보니,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교사와 사서란 직업을 가지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퍼뜩 든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 일인가? 고민하며 스콧은 책이 우선이냐, 이용자가 우선이냐, 정보와 지식, 그리고 세상에 대한 사서의 의무, 지역사회에서의 도서관의 의무와 역할 같은 진지한 고민을 쉬지 않는다.
그것은 사서 개인이 가지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숙제이면서 세상과 이용자에 대한 모든 도서관의 숙제이기도 하다.

사서의 직업윤리나 도서관의 사회적 사명 같은 근본적인 물음 외에도 현재 미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공공도서관의 독서 장려 프로그램들을 볼 수 있어 흥미로 왔다. 도서관 이용률을 높이고자 토요일마다 공짜 팝콘을 나누어 주는 파격적인(?) 도서관 행사, 우리나라 공공도서관들도 변하고 있지만 그래도 사서가 직접 팝콘을 튀겨 도서관내에서 나누어 주는 건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그 행사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도서관은 지식과 정보, 책만 공급해 주는 곳이 아니라는 그 행사 기획자들의 생각에 이용자도, 사서도 진보냐, 보수냐 하며 의견이 분분했다. ‘인앤아웃’이란 햄버거 회사와 연계한 독서 장려 프로그램도 성격은 비슷한데 햄버거 회사에서 공짜 햄버거 쿠폰을 찬조하고, 공공도서관은 아이들을 독서일지프로그램에 가입하게 해서 아이가 하루 30분 이상 씩 독서를 했다는 일지를 가져와 보여주면 공짜 햄버거 쿠폰을 나누어준다.
책을 읽는 대가로 햄버거 쿠폰을 준다는데 싫어할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요즘 내가 사는 지역의 교육청에서도 이런 비슷한 취지의 130독서가족운동을 운영하고 있다. 1일 30분 동안 온 가족이 책을 읽고 기록을 한 후 우수가족을 선발해 상장을 주는 프로그램인데 상장도 좋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즐거움을 주는 시상이라면 참여율이 엄청 늘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어디 이런 햄버거 회사 없나? 아니면 교육청에서 햄버거 회사나 놀이 공원 측과 협찬을 맺어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아이들이 더 좋아할 텐데 말이다.

저자 스콧이 신세대 사서들과 교류하며 친분을 유지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주고받는 질문에 답을 해 보겠다. 도서관을 배경으로 하는 가장 기억나는 영화가 있다면? 내게 가장 인상적인 ‘도서관’과 관련 된 영화는 ‘쇼생크 탈출’의 감옥도서관이다. 앤디 듀프레인이 오욕의 강물을 건너 새롭게 태어난 데에는 그의 육체적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 준 감옥 도서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브레터의 여자 주인공이 도서부원으로 활동하던 낡은 학교도서관은 비슷한 학창 시절의 아련한 추억으로 내 마음에 남아있다. 영화 투마로우의 뉴욕 공공도서관은 단순한 책의 보관창고가 아닌 엄청난 재난 속에서 대피할 수 있는 마지막 구원의 보루와 같다.

사람들은 사서를 도서관이란 책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사람들 쯤으로 인식하거나 잘난 척하며 불친절한 재수 없는 사람들 로 인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직업이든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한편에선 위와 같은 재수 없는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스콧처럼 끊임없이 진지한 자세로 일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기독교인이나 교사나, 사서가 욕을 먹는 이유는 어느 면에서는 성격이 비슷하다. 도서관과 이용자를 이어주는 봉사자, 책이란 고귀한 물건을 다루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요구하는 사회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 이용자가 분노를 내뿜는 것은 당연하다. 사서는 돈에 상관없이 그 자리에서 있을 때는 봉사다운 봉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책을 좋아해서 사서가 되었다. 하지만 이 일을 계속할수록 나는 책 때문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이 일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좋아서 이 일을 계속한다. 나는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한다.’
스콧이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처럼 저런 이유를 가지고 오늘도 묵묵히 도서관에서 일하는 모든 사서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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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1
생 텍쥐페리 지음, 김민지 그림 / 인디고(글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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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생텍쥐페리 지음/인디고


동심을 그리워하는 어른들의 로망인 <어린왕자>를 다시 읽었다.

내가 어린왕자를 몇 번쯤 읽었을까? 아주 어렸을 때 한 번, 청소년기에 한 번, 몇 달 전 퀴즈를 내야해서 또 한 번, 그리고 인디고에서 출판된 서정적인 그림과 앙증맞은 모양의 책으로 또 한 번, 이미 읽었고 숱하게 들어서 잘 안다고 생각했던 어린 왕자를 사실 그리 잘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안에서가 아닌 밖에서 들려오는 ‘어린 왕자’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내가 어린 왕자를 많이 읽었고, 잘 안다고 착각을 했던 것 같다.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 그림으로 시작되는 두 세장의 분량의 그림책, 동심을 상실한 어른들에 대한 비난을 담고 있는 책 정도로 머릿속에 남았던 어린왕자는 그렇게 짧고 단순한 동화도 아니고, 단순히 동심을 찬미하거나, 기성세대에 대한 비난만을 담고 있는 책도 아니었다. 담담하게 시작되는 앞부분을 다시 읽으며 생텍쥐페리에 대해 궁금해진다.

작가 자신도 이 책의 비행기조종사처럼 비행사였다는 것을 떠올리며 인터넷을 뒤졌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그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생텍쥐페리- 프랑스의 비행기 조종사, 작가 (1900. 6. 29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나서 1944. 7. 31 지중해 상공에서 사망하다)
1900년에 태어나 지중해 상공에서 44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작가, 마치 책 속 판타지에 뒤덮인 인물처럼 드라마틱한 작가의 삶과 죽음을 두고 사람들은 그는 지중해 상공에서 실종되었다, 언젠가는 살아 돌아올 수도 있다고 믿기도 했다.

1970년대까지 생존한 그의 미망인은 눈을 감을 때까지 그가 살아돌아온다고 믿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몰락한 프랑스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군복무 동안 조종사 면허를 딴 후 아프리카 북서부와 남대서양 및 남아메리카를 오가며 항공우편항로를 개설하는 일에 종사하였다. 심한 비행기 사고로 평생 불구로 살아가야 할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시 다시 육군 정찰기 조종사가 되었다. 1943년 북아프리카 공군으로 정찰임무를 하다가 추락사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의 한 가운데서 철새처럼 세상을 날아다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상공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작가의 생애를 생각하며 다시 읽는 어린왕자는 사랑과 우정, 삶의 참다운 가치를 찾아 세상을 방랑한 작가의 영혼이 그대로 반영된 작품으로 보인다.
1인칭 시점으로 대략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렇다.
'비행기조종사인 나는 어느 날 비행기 엔진 고장으로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하여 며칠을 사막에서 보내게 된다.
풀 한포기, 짐승 한 마리 지나다니지 않는 사막 한 가운데서
금빛 머리를 한 조그만 남자아이가 갑자기 양 한마리를 그려 달라며 나타난다.
처음엔 도무지 그 아이가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아이가 온 별, 그 아이가 키운 장미, 그 아이가 돌아다닌 행성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어린왕자에 대해서 알게 된다.
그렇게 나와 사귀던 어린 왕자는 어느 날 자신이 두고 온 꽃이 있는 별로 어느 날 돌아간다.
그 아이가 입고 있는 옷과 그 아이의 몸으로 그 별까지 가기는 너무 무거워, 무서웠지만 노란 뱀의 도움을 받아
어린 왕자는 나의 곁을 떠났다.'

어린 왕자가 별을 떠나 지구에 와서 들려주는 이야기의 모든 장면들은 읽는 독자들에게 저마다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삶과 죽음, 우정과 사랑, 관계 맺기, 세상을 보는 눈, 가치 등,
소박하고 단순하고 아름다운 그 가치는
세상의 탐욕과 타협하기 전, 아이들이 가졌던 사랑스러운 마음일 것이다.

작가는 세상을 향해 이야기 하고 싶은 대부분의 이야기를 어린 왕자에 남겼다.
어린왕자는 선생님, 엄마,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권하는 대표적인 책중 하나다. 보통 5-6학년 정도의 아이들 한 무리가 어느 날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 '<어린왕자>있어요?'하고 묻는다.교실에서 저희 선생님이 이야기 해준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그렇게 어린왕자를 만나는 아이들은 그 판타지와 낭만, 다소 슬픈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어린왕자는 아이들보다는 어른이 읽어야 더 잘 이해하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더 절실해지는 책이다.
사하라 사막 같은 삶의 쓸쓸함과 자기도 한때는 그런 모습이었을 부서질 듯 아름다운 모습의 해 맑은 웃음을 가진 소년,
자신들과 비슷한 각각의 별에 사는 왕, 술꾼, 사업가, 가로등을 켜는 사람의 모습, 그리고 쓸데없다고 치부해 버리지만 사실은 그리워하는 귀중한 가치들...
사실, 어떤 사람에게는 장미꽃을 물어 뜯지 못하도록 양에게 입마개를 그려주며 아이와 노닥거리는 어른 남자의 이야기는
코웃음 정도의 가치 밖에는 안 될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는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읽는 어른들도 있다.
그들은 남들이 사소하게 여기는 것, 가령 아이의 마음, 아내의 주름진 얼굴, 산자락에 수줍게 핀 들꽃 한 송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같은 것들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그 사람은 이미 어린왕자의 친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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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의 왕실사 - 베개 밑에서 발견한 뜻밖의 역사
이은식 지음 / 타오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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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 <사무엘하> 11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초대 왕 다윗의 불륜이야기가 나온다. 다윗왕이 저녁때에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한 여인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그 여인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만다. 그 여인이 전쟁에 나가 있는 자기 부하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라는 사실을 알고도 다윗왕은 그 여인을 데려오게 한 후 동침한다. 그런데 얼마 후 밧세바가 임신하였다고 알려오자 전쟁에 나가 있는 우리아를 불러들여 아내와 잠자리를 하게 함으로 자신과의 일을 가리려 한다. 그러나 우리아는 전쟁 중에 아내와 함께 잘 수 없다고 성문에서 군사들과 함께 잔 후 다시 전쟁터로 향한다. 할 수 없이 다윗은 우리아를 전투가 벌어질 때 맨 선두에 세우게 해 죽게 한다. 이스라엘 왕 중 가장 뛰어난 성군이요, 믿음의 왕으로 성경에 기록되고 있는 다윗왕, 성경은 그의 업적과 함께 불륜과 살인의 행위마저 이렇게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양심을 가려 보려 했지만 성경에 기록되어 후대에 깊은 교훈을 주는 다윗의 불륜보다 더 적나라한 우리 역사의 불륜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이은식의 <불륜의 왕실사>는 1부, ‘욕망에 휩쓸린 고려’, 2부, ‘본분을 망각한 조선’이란 제목으로 고려왕조와 조선왕조의 유명한 불륜 사건 세 가지씩을 다루고 있다. 외척과 불륜의 관계를 맺고 고려왕실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려 했던 여인 천추태후, 그녀는 자신의 아들인 목종을 폐하고 김치양과 낳은 어린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는 음모를 꾸미다 쫓겨나 결국 목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여인이다. 몽고의 지배하에 있던 고려 중기, 충선왕은 부왕의 후궁과의 불륜으로 신하에게 지탄을 받자 몽고로 도망치듯 떠나버린다. 왕이 자신의 나라가 아닌 몽고에 살고 있으니 결재를 맡을 신하들은 그 옛날 몽고까지 힘겨운 걸음을 해야 했고 왕이 먹고, 쓸 모든 물품을 고려에서 몽고까지 실어 날랐다고 한다. 나라의 주권을 잃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충선왕을 패하지도 못하는 고려 조정과 힘없는 백성들의 고통은 고려의 멸망을 앞 당겼을 것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더니, 그 아들 충혜왕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여인을 범하는 똑 같은 짓을 하다가 쫓겨나 살해된다. 밖으로는 몽고의 지배로 국가의 주권을 잃어버리고 안으로는 탐욕스런 권력 쟁취에 급급한 무신정권의 혼란기에 왕실과 국가의 체면과 윤리는 아예 사라져 버린 듯하다.

한편 개인의 불륜사건이 형제 간 가족 간 왕위 다툼에 이용된 조선왕조의 불륜사건도 만만치 않다. 세자 방석의 아내인 세자빈 유씨의 내시와의 불륜사건은 본인과 세자인 남편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태종 이방원의 왕위 등극에 큰 발판을 마련해 주는 사건이 되었다. 또 형제의 여자와 불륜을 저지른 화의군은 단종을 폐하고 세조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세조의 정적을 제거하는 구실을 마련해주었다. 조선왕조 500년사에서 극악무도한 패륜아로 알려진 연산군의 기록은 위의 사건들을 모두 합친 것 보다 더 충격적이다. 생모인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사실을 안 후 부왕의 첩들을 손수 죽이고, 할머니, 인수대비를 머리로 들이받아 죽음에 이르게 한다. 백성들이야 어찌 되었든 매일 잔치를 벌여 천여 명의 여자들에 둘러싸여 흥청거리며 지내는 것도 모자라 백모를 강간해 자결하게 하고, 이복누이동생을 강간하고 대신들의 아내를 범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르다가 폐위되고 만다.
왕조실록 같은 정사의 한 귀퉁이에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을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저자가 본격적으로 거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별로 들추고 싶지 않은 ‘불륜’이란 파격적인 주제로 과거를 샅샅이 파헤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사건을 들추어 정리하고 기술하는데 그치지 않고 해당 인물들의 역사적 흔적이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이 땅 곳곳의 문화유적지를 몸소 발로 찾아 일일이 사진에 담고 민망한 질문도 서슴지 않는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특권층, 가진 자, 귀족이 지켜야 하는 도덕적 의무이다. 왕실이 아닌 백성들이 저지른 사소한 불륜은 단순히 개인과 가족의 비극으로 끝나지만 지배자가 저지른 불륜은 그 비극적인 결과를 나라 전체가 감당해 내야 했다.
현재도 이 책의 역사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서민들은 벌벌 떨고 두려워하며 지켜나가는 법과 양심과 도덕과 의무를 가진 자들은 잘 지키고 있을까? 자신이 가진 것의 휘황찬란함에 눈이 멀어 법이니 하는 것들은 보이지도 않을지 모르겠다. 무슨 사건, 무슨 사건하고 연일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은 명확히 밝히지도 않고 시간만 끌 뿐이고, 개인이 파헤쳐 알자고 들면 스트레스만 치솟아 명만 단축시킬 것 같다. 지금 이 시대의 불륜의 역사도 누가 이렇게 낱낱이 파헤쳐 드러내 주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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