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소녀
델핀 드 비강 지음, 이세진 옮김 / 김영사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IMF 당시 대출이자와 물가는 하늘을 치솟을 듯 오르고
한 순간 직장이란 삶의 버팀목을 잃어버린 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잃고 노숙자가 되어 도시의 곳곳을 떠돌았었다.
서울역도, 잠실역도, 마로니에공원도 도시의 그 어디를 보아도
하늘을 가릴 천장과 찬 바람을 가릴 벽이 있는 곳에 웅크리고 있는
그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요즘도 지하철의 입구에서 한 두 사람을 만나지만 그때만큼은 아니다. 그 때는 정말 뉴스에서도 교회에서도 이런 저런 자선 단체에서도 그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를 멈추지 않았었다.

길 위의 소녀를 읽으니 그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러면 그 때 평범한 삶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나 길거리에 주저 앉은 그들은 그후 다시 일어서서 테두리 안으로 들어 올 수 있었을까?

세상이 점점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그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도 더불어 발전하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IMF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기회의 시간이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들이닥친 불행처럼 속수무책의 시간들이었다. 도시의 문명과 산업의 발전이 어떤 이들에게는 탄탄한 삶의 발판을 마련하는 기회의 시간이 되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어두운 골짜기로 추락하는 비극의 시간이 되기도 한 것이다.

델핀 드 비강은 2001년 필명으로 <배고픔 없는 나날들>이란 사회적 이슈가 깃든 제목의 소설을 발표했다.
<길 위의 소녀> 역시 성장하는 두 소녀를 주인공으로 숨은듯 거리에서 살아가는노숙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평범한 듯 보이는 중산층의 가정에서 아버지의 자상하고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는 13살의 소녀 루, 아이큐가 뛰어나게 높아서 영재학교를 거치고 거듭 월반을 한 결과 자신보다 2~3살 많은 아이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한다. 그러나 무엇하나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루의 내면은 그렇지 않았다. 어린 동생의 죽음으로 루는 엄마의 삶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평범한 아이들처럼 다른 아이들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세상이란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울타리 밖에서 홀로 서성거리는 기분을 아는가? 몸은 함께 있지만 마음은 어딘가 저 멀리에 가 있는 사람과 함께 있는 그 기분을 느껴 보았는가?
아이들만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는 말이 내 귀에도 뭔가 어설프게 들리고 대화중에 쭈뼜대고, 내가 하는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고 그들의 대화에 끼이지 못하고 있다는 그런 느낌을 나는 잘 안다.

어쩌다 과제물 발표 주제로 '거리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조사하게 되어서 루는 거리의 소녀 노를 만난다.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아이인데 자신과는 너무나 다르게 살아가는 아이, 인터뷰가 끝난 후 자신은 집으로 돌아가지만 노는 오늘 밤 잘 곳을 찾아 밤 거리를 헤메야 한다. 추위에 얼어죽지 않기 위해서 종일 걷기를 멈출 수 없고 한 장의 식권을 위해서 두시간 전부터 길게 줄을 서야 한다. 노와의 여러번의 인터뷰를 마치고 발표를 끝내고도 루는 노를 찾아 다시 거리로 나선다. 그리고 전에는 보이지 않던 그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수 많은 사회복지시설이 있지만 그 곳에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일, 하룻밤 재워주고 한끼의 밥을 해결할 식권을 나눠주고 성년이 될 때까지 임시로 맡았다가 성년이 되면 거리로 내보내는 것으로는 노를 이 세상으로 데리고 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사람이 한 명씩의 노숙자들을 돌본다면 거리에 넘쳐나는 그들의 삶이 변화되지 않을까?
그래서 감히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결단한다. 그것은 노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다. 노가 루의 우정으로 변화되어 세상에 맞설 힘을 얻고 행복해지기를, 그래서 저쪽 세상에 속한 그들의 고된 삶에 희망의 불씨를 던져주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은 가보다. 자신과 함께 하기위해서 짐을 싸 거리로 나섰던 루를 역에 남겨둔 채 노는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그런데 이렇게 끝나기에는 나는 아직 듣고 싶은 이야기가 남았다.
길위의 소녀 세상에 맞서다. 이런 속편이 나와서 루를 터미널에 두고 홀로 세상으로 떠난 노가 조금씩 회복되고 강해지고 행복해져서 루에게, 아니 독자인 우리들에게 잘 있다는 안부를 전해오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노숙자, 우정, 상처, 가족, 이해, 받아들임, 부조리한 세상에 맞섬, 성장, 상실의 아픔, 조건없이 주는 행복 등 작가가 세상에 보내는 던지는 작지만 분명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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