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300선 & 화가와 화파 - 반드시 알아야 할
쉬리원과 예술기획팀 지음, 이정은 옮김 / 꾸벅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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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그림에 남다른 소질이 있어서 미대를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미술이 아닌 전혀 다른 분야로 길을 가고 있다. 그 때의 아쉬움은 나이가 들 수록 커져가는 듯싶다. 그래서일까? 오래 전 줄어들었던 그리는 취미는 어느 순간 감상하는 취미 쪽으로 옮겨갔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림을 바라보면서 그저 감상하고 느끼는 것을 즐기는 것이 좋았다. 때때로 그림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그 안에서 느껴지는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하고 개인적인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그렇게 틈틈이 책과 전시회를 통해서 다양한 미술작품과 명화를 감상하다보니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작가들의 사유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었고, 이후 같은 작품을 다시 감상했을 때 그 느낌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 때 그림에도 생명력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절제미와 담백함이 묻어나오는 동양화도 매력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화려한 색감과 빛, 웅장함, 섬세함 등이 담겨있는 서양화에 좀 더 매력을 느낀다. 특히 회화의 시작점이자 변화무쌍했던 유럽의 명화들에서 느껴지는 화려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다양한 화풍은 때때로 감상적인 재미를 넘어설 만큼 매력적이다.

한편으로 명화감상에 대한 선호도가 있더라도 직접적으로 접하기에는 거리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언제나 전시회에서라도 접해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역시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부족하지만, 이 간극을 조금이라도 좁혀주는 것이 책을 통한 간접적인 감상이다. 다만, 간접적인 감상이더라도 책의 내용과 더불어 시각적 품질이 좋아야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선택은 자연스러웠다.

서양 회화 작품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그 중에서도 영향력이 크고 화풍의 구체적 분석이 가능하며 독자들이 그 중요성을 인정할 수 있는 작품으로 힘겨운 과정을 거쳐 300선의 작품을 선별했다고 한다. 이렇게 선별된 300선의 수많은 명화와 함께 그 명화를 그린 화가와 화풍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 알차게 담겨 있다. 총 107명의 화가와 300선의 다양한 명화들이 소개되고, 구성 역시 시대적인 흐름을 바탕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다양한 명화를 통해서 유럽 회화사의 시작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고찰해볼 수 있다.

예술의 발전사는 당대의 생활상이 담겨 있는 회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초기에는 종교와 왕실 및 귀족의 권위를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 책에서도 시대적 흐름을 통해서 전개되다보니 초기 명화들은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편이다. 초기 작품들은 성경과 신화의 이야기들이 모티브가 되는 작품들이 많았다. 이후에도 왕실과 귀족의 모습을 주로 담았지만, 서서히 농민과 서민들의 생활상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국가의 흥망성쇠와 같이 시대적인 흥망에 따라 회화의 화파 역시 형성과 발달, 몰락을 반복했고 전통의 계승과 새로운 시도가 어우러져 다양한 양식으로 발전했다. 서유럽 문명사에서 발생했던 문화운동인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회화 역시 많은 발전을 했지만, 18세기에 이르러 사회, 문화, 과학 등 다양한 요소에 영향을 받아 큰 변화를 겪는다. 이를 통해서 다양한 화파와 철학이 등장했고 기법도 다양해지면서 짧은 기간 동안 다양한 사조와 화풍을 창조해냈다.

이 책에는 1300년 초 작품인 ‘지오토 디 본도네’의 ‘황금문에서의 만남’을 시작으로 1964년 작품인 ‘재퍼스 존스’의 ‘무엇 때문에’에 이르기까지 660년 이상의 긴 세월 동안 세상에 드러났던 다양한 화풍의 작품을 통해서 유럽회화의 아름다움과 변화를 소개한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산드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산치오’, ‘미켈란젤로 보나로티’, ‘페테르 파울 루벤스’, ‘클로드 모네’, ‘앙리 루소’,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구스타프 클림트’, ‘에드바르트 뭉크’, ‘파블로 피카소’, ‘마르크 샤갈’, ‘실바도르 달리’, ‘프랜시스 베이컨’, ‘안토니오 타피에스’, ‘앤디 워홀’ 등뿐만 아니라 회화사의 한 획을 그은 다양한 화가들과 작품들이 등장한다.

화가에 대한 소개를 위와 같이 보라색의 글상자에 간략하게 설명했고, 사이사이에 베이지색 글상자에 화파와 용어에 대한 설명을 첨부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대표적인 작품은 퀄리티 높은 컬러 그림으로 제공하여 간접적인 감상의 느낌을 높였고 그림 옆에 그림의 재료, 소장 지역과 장소, 그림크기에 대한 정보도 제공했다. 각 그림마다 전문적인 감상 포인트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때로는 그림에 대한 시대적 배경과 일화를 덧붙임으로써 작품에 대한 흥미와 이해를 높여주기도 한다.

1541년 미켈란젤로가 400명에 가까운 인물들을 그려 넣어 단독으로 완성한 벽화 ‘최후의 심판’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명화이다. 미켈란젤로는 위로 올려다보며 감상해야하는 벽화의 특성상 시선의 흐름에 따라 그림의 비례가 흐트러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쪽의 인물들은 약간 크게, 아래쪽의 인물들은 약간 작게 그렸다고 한다. 이 벽화가 공개되었을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감동을 주었지만, 동시에 그림 속 나체 인물들이 신성을 모독한다는 논쟁이 일었다. 결국 20여년이 흐른 뒤에 교황 피우스 4세가 그림 속 나체 인물들의 몸에 옷을 그려 넣으라는 명령을 내렸고, 미켈란젤로의 제자 볼테라가 ‘최후의 심판’ 속 인물들의 몸에 최소한의 옷을 그려 넣었다. 그 후 볼테라는 ‘속옷 장수’라는 의미의 ‘브라게토니’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이 책은 13세기 유럽의 르네상스 운동부터 바로크, 고전주의, 인상주의를 거쳐 초현실주의, 팝아트, 추상주의와 당대의 미술 화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화파의 다양한 작품들을 전문가들의 감상 포인트를 곁들여 풍부하게 감상해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인 책이다. 화가와 작품이 익숙한 경우 이외에 일부는 그림만 알고 화가를 모르는 경우도 꽤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서 제대로 연관 지을 수 있었다.

한편으로 명화의 진면목을 책이라는 작은 영역에 담아내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노력을 통해 구성된 길잡이와 같은 이 책은 명화를 감상하는 데 있어서 화가들의 삶의 희로애락과 창작의 과정을 이해하고 작품의 의미와 더불어 화가들의 스타일과 화풍을 분석할 수 있는 감상의 내공과 유희를 선사해줄 것이다.

비록 자신이 명화에 대한 지식과 감상에 대한 내공이 없다고 하더라도 가끔은 자신에게 명화 감상이라는 감성적인 여유를 선물해보자. 정신없이 바쁜 삶속에서 명화 감상을 통한 잠깐의 멈춤이 그동안 쌓여왔던 답답한 마음을 정화시키고 삶을 살아가는 새로운 활력소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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