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뭣 좀 아는 뚱냥이의 발칙한 미술 특강
스베틀라나 페트로바.고양이 자라투스트라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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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와 관계된 책들을 보다 보면,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든다.


[모나리자]의 모나리자는 누구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는지,

[우유 따르는 하녀]에서 하녀는 누구를 위해 우유를 따랐는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주인공은 누구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시녀들]에 나오는, 잔뜩 심통이 난 여자아이는 왜 그렇게 심통이 나 있는지,

[가셰 박사의 초상]에서의 가셰 박사는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지,

[게으름뱅이들을 위한 천국] 속 빈자리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살로메의 화장]에서 살로메는 누구를 상상하며 미소 짓고 있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고양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지은 표정들은 모두 고양이를 대상으로 짓는 표정이며,

현재 대중들에게 공개된 그림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여러 명화의 원화 속에는 자신 역시

그 명화들 속 주인공 중 하나로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노라고 말이다.


[고양이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에서 나온 고양이는 참으로 당돌하다.

[비너스의 탄생]에서는 자신이 비너스의 모델이었다며 조개 위에 서 있지를 않나,

[게으름뱅이들을 위한 천국]에서는 술꾼들과 함께 편안하게 배를 까고 누워있지를 않나,

[시스티나의 성모]에서는 꼬마천사와 함께 아기 예수를 바라보다 성인의 미소를 받지를 않나,

[기억의 고집에서]시계가 늘어져 있는 것은, 자신들의 모습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지 않나.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예술인들은 고양이를 사랑하던 자들이었고, 그렇기에

미술협회의 반발로 그 존재가 숨겨지거나 / 대체되어야 하기는 하였으나 대부분의

그림 원본에서는 고양이가 ‘미의 기준으로’전면에 드러나 있었다는 것이 고양이 차라투스트라의 주장이다.


문화의 날 행사라거나 교보문고 같은 대형 온라인 서점에서 행한, 명화가 그려진 보조배터리를 사은품으로 주는 행사 등으로 인해 미술관 같이 예술작품과 관계된 곳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졌고, 이는 고흐나 모네 같은 유명한 자들의 그림뿐만 아니라 기존에는

묻혀있던 다른 화가들의 그림까지 수면 위로 올려 보내주는 원동력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고양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미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거나

혹은 관람 같은 건 지루할 뿐이다!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미술에 대한 재미를 일깨워 줄 수 있는 입문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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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의 예수
고수유 지음 / 일송북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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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심은 전혀 없지만, 천주교였던 어머니를 따라 성당에 나가고 -> 유아세례를 받고 -> 중학교 졸업 무렵까지 성당을 다니는 루트를 밟으면서

항상 궁금했던 것이 있다.

미사가 끝나면 초등학생들은 교실 같은 곳에 모여 (미사 후 받은 간식이랑은 별도의)간식을 먹으면서 성경공부 같은 것을 했는데,

다른 것들은 자세하게도 나와 있으면서

‘예수의 일생’만큼은 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는 것인지가 그 의문점이었다.

 

실제로 성서에서뿐만 아니라 예수의 일생을 다루었다고 호언장담하던,

학생들을 상대로 한 만화책에서조차 7살 - 29세 사이의 이야기는 ‘예수는 (신전에서

랍비들과 이야기를 나눈 이후부터 성인이 되어 보통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선보이기 전까지의 기간 동안에는)

아버지의 일을 도왔었다‘ 식으로만 얼버무리고 넘어갔고, 신부님이나 다른 선생님들 역시 그 질문만큼은 대답을 하지 못했었다.

 

그렇기에 [다빈치 코드] 등 여러 소설에서 예수의 사라져 버린 기간(?),

즉 7세부터 29세 까지의 기간에 대한 여러 가설들

(예를 들면 예수는 아버지를 따라 목수 일을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을 하였다, 같은)을 자유로이 내보이는 것이리라.

 

[헤르메스의 예수]에서는 개중 가장 특이한 가설을 내어 놓았다.

예수가 수행자들에게 헤르메스학을 전수받은 선각자, 라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한 교인이 성흔현상(=이전에 아무런 상처가 없었음에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생긴 상처와 동일한 부분에서 피가 나는 현상)을 일으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당시 흘린 피 속에 섞여있던 금색 가루가 삼각형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삼각형 모양이 십자가나 성당의 건축물, 성화 등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모양이었고,

이 모양은 미국 달러에도 그려져 있던 ‘피라미드 전시안’, 즉 지금은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송과체(=제 3의 눈)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예수는 7 - 29세 사이에 헤르메스학을 전공하는

수행자들에게 가서 헤르메스학을 전수받았고, 그 과정에서 송과체를 깨워

남들에게 교리를 전파한다거나 기적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으나 그 과정이 너무나도

비기독교적이었기에 성서에는 기록되지 않았다는 가설이었다.

 

내용 자체는 흥미로웠다.

그동안 보아왔던 가설들 중 가장 파격적인 가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용 전개가 약간 작위적이었고,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가 약간

부자연스러웠기에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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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 인사이트 - 기술혁명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통찰의 시선
임일 지음 / 더메이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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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 이세돌 바둑 대결 이후, 4차 산업과 관계된 이야기들이 더 눈에 띄기 시작했고,

이런 상황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3D 프린터, 드론, 자율주행 자동차, 빅 데이터 산업, 증강현실 등의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


거기에 사물인터넷 기술 역시 초기에는 교통카드 서비스 정도에서 그쳐 있던 것에서

여러 대의 무선기기가 블루투스 등을 통해 동시에 데이터 통신을 할 수 있는 무선 네트워크 기술, 제타바이트 용량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빅 데이터 기술, 데이터를 저장하고 언제 어디서나 꺼내어 쓸 수 있는 클라우드 기술 등을 통해 현재는 LG, 삼성 등에서

폰으로 전화만 하면 난방이 되고, 불이 꺼지는 [스마트 홈]서비스를 내놓을 정도로 발전해 있다.


그렇기에 [백 투 더 퓨쳐]라거나 [마이너리티 리포트], [아이언 맨], [사이코패스]처럼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는 삶이나 [바이센테니얼 맨]이나 [아이, 로봇]처럼 로봇들이 모든 일이나 가사를 처리하는데 그 과정에서 어떠한 오류로 인해 로봇들이 단체로 통제에서 벗어나는, 혹은 [공각기동대]나 [에반게리온]같이 인간과 기계가 일치, 업무에 투입되는 이야기들이 가까운 미래에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걸 언제, 어떻게 활용을 해야만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식으로 대비를 해놓아야만 할까.


한국은 IT가 최대로 발전한 나라들 중에 하나이자

4차 산업과 관계된 IT기술들을 개발, 실험해볼 (잠재)능력도 높은 사람들이 많고,

SNS의 발달로 특정 기술이 접목된 제품에 대한 평가와 후기들의 파급력도 크고, 그렇기에 4차 산업에 있어서 선두주자로 나설 가능성이 높은 나라이다.

하지만 구시대적인 행정절차와 사고방식, 자가 기술에 대한 안전장치(ex. 특허)미흡,

제조업이나 게임 산업과 같이 증강현실이나 3D 프린터 등의 산업들과 연계를 지을 수 있는 산업에 대한 탄압 등이 이루어지고 있어 현재 대한민국의 산업은 아직 3차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용은 -나름 전문서적임에도 불구하고-쉬운 편이었다.

경영학과나 공대 같이 관련 수업을 듣는 학과가 아니더라도, 관련 뉴스를 조금이라도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대부분의 지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포켓몬 고’라는 게임과 무인 자동차 등을 통해 점차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이 시대에, 이 서적을 통해 조금이라도 빠르게 한국도 4차 산업의 선두주자로 나설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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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어처리스트
제시 버튼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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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CSI'에서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에피소드는 미니어처 살인범에 대한 에피소드였다.

살인범이 미리 자신이 저지를 살인 수법과, 그 살인을 행할 장소를 미니어처로 제작한 후 경찰에게 보낸다는 소재는 당시의 나에게는 엄청나게 신선한(?) 소재로 다가왔었기 때문이었다.

 

[미니어처리스트]에서의 넬라는 몰락한 명문가의 자제이고, 돈에 의해 부유한 상인에게 시집온 여인이다.

어머니에게 여자로서의 삶을 배우며

'여자는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남편을 모시며 사는 것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야'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어온 넬라는

앞으로 자신이 남편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을까, 같은 기대감을 품고 남편의 집 문을 두드리지만, 돌아오는 것은 고용인들과 가족들의 냉담한 반응뿐이다.

 

늘 바깥일로 바쁜 남편 요하네스는 넬라에게 별 관심이 없고, 어쩌다 집에 와도 서재에서만 머물 뿐이다.

시누이 마린은 늘 집에서 넬라를 지켜보며 시시콜콜 가르치려 들고,

하녀인 코르넬리아는 넬라에게 마음을 주기는커녕 눈치만 볼 뿐이다.

그 집의 유일한 흑인 하인이던 오토는 그녀를 피해 다니기에 바쁘다.

 

집 전체가 어떠한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한 음침한 기운을 띄고 있는데다

새로운 가족마저 자신을 관찰하듯이 바라보며 절대로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상황에

극한까지 움츠려든 이 때, 남편 요하네스가 저택을 그대로 빼다 닮은 미니어처 집을 사오고,

이 집을 꾸미기 위해 미니어처리스트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 집안에 이상한 사건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라는 탈을 쓴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인종차별, 동성애에 대한 극심한 반감 및 동성애 행위 발견 시 이루어지는 (도를 넘어서는)처벌,

여성들의 사회활동 억압 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시대 속에서

자신과 미니어처리스트가 보내오는 미니어처들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남편의 성적 지향성, 독신주의를 지향하며 항상 자신에게 딱딱하게 굴던 시누이 마린이 숨기고 있던 비밀 등-을 겪으며

점차 그 가문의 실질적인 가장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다보면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용은 재미있었고, 여러 가지 제약과 통제할 수 없는 상황 변화 속에서 주체성을 찾아가는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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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포기한 여자들이 사는 집
카린 랑베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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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워마드라거나 메갈리아 등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를 표방하는 커뮤니티의 영향인지

여성들이 독신을 당당하게 선언하는 분위기가 어느정도 조성되는 느낌이다.


이에 처음 [남자를 포기한 여자들이 사는 집]을 보았을 때

이 책 역시 여러 사정이 있는 등장인물들이 문제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고,

모든 갈등 상황이 끝난 후에는 남자 없이도 독신인생을 즐기게 되는 내용으로 전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전개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결혼 전에는 아버지와 오빠에게,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다 양육권까지 빼앗긴 주세피나

남편과는 도저히 남편이 원하는 가정을 꾸릴 수 없었던 로잘리

아이까지 낳을 정도로 좋아했던 남자에게 버림받은 경험이 있던 시몬

이 세 명이 한때는 모든 남자에게 찬사받았으나 지금은 은둔하고 있는 전직 발레리나, 속칭 '여왕'이라 불리는

여인의 집에 머물며 고양이 장 피에르 외의 모든 남자는 가까이 하지 않던 와중

자식을 인형쯤으로 여기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 단 한번도 사랑받지 못한, 그렇기에 지금도 사랑을 하고 싶어하는

여자 줄리엣이 (어떠한 규칙도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여왕의 집에 들어온 이후 갈등이 발생,

그러나 소설이 끝날 무렵에는 갑작스레 화해를 하더니 여왕의 사망 이후 태세를 전환하여 남자들을 기존에는 금남의 구역이었던

자신들의 주택에 들인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가지로 불편했었다.

하나는 소설에서의 교훈이 마치 '여자들은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남자라는 배터리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장난감 같은 존재'

인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이었고,

하나는 등장인물들의 관계 때문이었다.


줄리엣이 주는 자극에 너는 젊지만 곧 뚱뚱해질 거라는 등 폭언을 하는 주세피나라거나

행복에 대해 얘기하는 여인들에게 언젠가는 후회하게 될 거라고, 언니들이 더 늙고 나면 난로 앞에서 잡을 손 하나 없을 거다,

비꼬는 줄리엣 등 남자들이 그동안 여성들을 깎아내리기 위해 주로 사용하던 프레임 중 하나인 '여자의 적 = 여자' 공식이 거리낌없이 사용되는 것은 둘째치고, 소설 후반부에서 등장인물들은 서로 우정을 나누게 되지만 그 우정이 각자에게 영향을 미친다거나

우정을 통해서 과거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유, 앞으로 나아가려고 시도하는 모습이 소설 속에서는 조금도 보여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재 자체는 참신했다.

그러나 작가가 뭘 이야기 하고 싶은 건지는 잘 모르겠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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