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황에서 누군가는 꽃을 피우고 누군가는 줄기가 단단해지고 누군가는 뿌리를 깊게 내린다. 상황을 탓하고 비관하기보다 나다운 방법으로 어제보다 나은 내일의 나를 맞이할 수 있기를

내가 자랐던 기숙사는 체계상으로 외부와 격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금지와 거절을 통해 나는 바깥세계, 즉 평범한 환경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것보다 외려 훨씬 많은 경험 가능성들을 획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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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때문에 지껄이든 지금 하는 말이 사실있 있었던 사실이지만 그 상황에 굳이 뱉지 않아도 되는 말들을 중얼거리는 그런 상황

아이의 말은 모두 논리에 맞고 정확했다. 하지만 아이가 그토록 이성적인 어법으로 말한다는 바로 그 이유로 역설적이게도 외려 횡설수설하는 듯 보였고 외로움 때문에 끊임없이 지껄이는 것처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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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는 것과 자연스러운 상징성을 넘어 집단주의, 국가주의가 만들어낸 애국심 아닐까?

그런 맥락에 서 볼 때 자연 경관을 단순한 자연으로 보지 않고 미국을 위해 그 경관에 대한 소유권을 쟁취했던 자들의 업적으로 보게 됩니다. 그와 더 불어 모든 자연 경관은 그러한 업적들에 어울리는 하나의 성명(聲明) 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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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우리동네 놀이터는 나에게 꾀나 넓은 곳이었다 . 다시 가본 그곳은 기억 속의 그곳보다 훨씬 작은 놀이터였다는 걸 알게된 순간, 나의 생각회로가 나를 중심에 두고 사물을 바라보는 것에서 타인의 시선이 들어왔다는 걸 알게된 순간 나는 내가 성장했더고 확실히 느꼈다.

이러한 인지 형태들은 나의 다른 경험 영역에도 총체적으로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이 순간 그 모든 것이 효력을 잃었다는 인식은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의 삶이 매번 새로운 단계를 거쳐왔는지도 모른다는 충격이었다. 아이가 지금 이곳에서 즉각적으로 모든 모사물과 기호를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다시 질투심에 가까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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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기르다보면 나의 부족한 부분, 미성숙한 부분을 자주 마주하게된다. 이때가 기회인 것 같다. 성숙한 어른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회. 부족한 것을 알고 인정하고 필요하다면 채우려는 태도.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사물들의 이름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나는이제껏 내가 얼마나 나 자신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져왔는지를 깨닫게되었다. 나는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에 관해서는 눈곱만치도 알지 못했다. 그제야 비로소 내 주변의 일상적인 움직임에 대해 알고 있는 어 회가 너무도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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