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분은 이 책의 단편 《훼손》과는 반대의 맥락이다. 《훼손》이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변화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보여준다면, 이부분은 잘 변하지 않는 사람의 생각을 보여준다.

작가들은 자기가 전에 쓴 글을 늘 불만스러워하고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꾸 손을 대지만, 아무리 손을 대도 만족스러울 수 없고 그 작업이 반드시 더 좋은 쪽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닌데, 그것은 처음 편집할 때 그가 쓸 수 있는 최선의 문장을 찾아 쓰기 때문이라는, 대부분의 편집자가 아는 사실을 아는 작가들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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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일하면 정말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

출판사는 신작 소설로 소개하기로 하고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작가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그 소설이 자신이15년 전에 펴낸 장편소설의 개정판이지 새 소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문장이 바뀌고 내용이 달라졌어도, 달라지기만 했을뿐 다른 소설은 아니라고 우겼다. 문장이 바뀌고 내용이 달라진 것은 교정을 봤기 때문이라고 우겼다. 자기가 이번에 한 일은 새로운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교정을 본 것에 지나지 않다고 우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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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점점 덜해지지만 과거에는 전문성에 의존하는 현상이 절정을 찍었을 때가 있었다. 전문성이 없다면 발언할 권리조차 없는 것처럼... 그래서 정말 말도 안돼는 영역에까지 자격증이 있다.
작가라는 부분은 전문적인 글쟁이만을 위한 영역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본인 스스로를 작가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글, 그러니까 타인도 이정도의 글 수준이면 작가라고 인정할 수 있는 정도, 나와 타인 모두가 인정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것 자체가 이미 걸작의 수준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걸작은 아니더라도 작가로서 소임을 다 하는 글이라면 작가라고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작가의 소임은 무엇인가?

작품을 쓰는 것이 작가라는 걸 누가 모를까. 그렇지만 걸작을 쓰는 것은 작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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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인 것이 부정적인 것으로 자연스러운 것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은 인위적인 것에서 나오고 있다.

쏟아지려는 것을 쏟아지지 않게 막거나 나오지 않으 려는 것을 나오도록 만드는 것은, 인간이 흔히 하고 인간만이할 수 있는 짓인데, 그것은 인간이 비자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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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에서 종종 거짓 웃음이어도 감정에 영향을 준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생각이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행동이 생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자연에 반하여 연기하려고 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 연기에 제대로 속고 있는 사람이 누구보다 자신이라는 사실은 아마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케이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자기도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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