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 안전가옥 오리지널 47
전효원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가시적인 것들의 가시화





전효원 작가의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을 읽었다. 마장동 축산시장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처음인지라 흥미로웠다. 전효원 작가의 소개 문구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잘 벼려낸 칼을 쓰는 직업을 갖고 있으며, 손에서 칼을 내려놓은 동안에는 글을 쓴다." 그래서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에 묻어 있는 마장동 축산 시장의 생생한 현장이나, 도축 과정의 면밀한 묘사를 통해 짐작하건대, 아마도 전효원 작가가 축산시장에서 일하리라 생각했다.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니 과연 그랬다. 현업자가 아니고서야 나오기 어려운 핍진성이었다. 또한 작품에서도 언급되듯이 같은 마장동 축산 시장 내에서 차별이 존재한다는 점(육류, 내장, 기름, 칼갈이 등의 일종의 계급 구조)은 내부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점이다.



"그랬다니깐용. 백인들 사이에서 차별당한 거야 말할 것도 없고요. 한국에서도 클래식 음악 쪽에 워낙 쟁쟁한 집안 애들이 많잖아요. 저야 옛날 말로 백정 딸내미고요. 게다가 사실 마장동 시장 내에서도 내장은 약간 그런 게 있거든요. 치란도 그렇지 않아요? 마장동이라고 하면 한우 등심, 갈비, 아니면 삼겹살 같은 고기류를 떠올리지 곱창이나 대창을 먼저 생각하진 않죠. 내장류는 공식 명칭이 부산물이에요."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 93쪽



상상의 나래를 좀 더 펼쳐보자면, 아마도 개인적으로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 내의 민수 삼촌이라는 인물이 작가 본인의 자캐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사실 처음에 이름을 들었을 때는 남성일거라고 생각 못했다. 그래서 내가 그린 이미지 속의 작가는 이두박근이 매력적인, 도축 칼을 잘 쓰는 여성이었다……. 또한 내 생각보다도 나이가 좀 있으셔서 놀라웠다. 



* * *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은 재밌다. 처음부터 끝까지 막힘없이 읽어나갔다.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핵심 동력은 다름 아닌 주인공 "부응옥란"이다. 유약해 보이는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어 아이를 낳고, 김제에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시어머니와 맹랑한 딸을 키우는 베트남 여자. 뽀글머리와 꽃무늬 옷을 고수하지만, 한국어 실력과 발음만큼은 송혜교를 똑닮은 시골 여자. 평소에 범죄 드라마를 즐겨 보며, 자신은 이미 한국 국적을 취득했으나 다른 이주 노동자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무대포 성격까지 지녔다. 근래에 읽었던 작품에 등장한 인물들 중 이처럼 입체적인 인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은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내장을 취급하는 사장의 딸 "김유정"이 중국인 이주 노동자이자 자신의 애인인 "문소평"을 찾아달라고 "부응옥란"을 찾아오면서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다.



등장 인물이 한 명씩 차례대로 용의선상에 올랐다가 의혹이 벗겨지거나 강화되는 전형적인 추리극의 형식을 띤다. 제목인 "니자이나리"는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뜻이라고 한다. 제목과 표지, 작중 배경은 어쩐지 영화 <범죄도시>를 떠올리게끔 한다. 이에 대해 소설 내에서도 자조적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인물들의 강렬한 캐릭터성 때문에 이런 부분이 얼마간 중화된다. (다만, 이 점이 나에게는 다소 아쉬웠는데, 나는 제목이나 소재만 보고는 <범죄도시>처럼 좀 더 어둡고 딥한 범죄극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부응옥란은 평소엔 한국말에 능통하지만, 불리할 땐 한국말을 모르는 척 굴기도 할 정도로 능청맞고 유쾌하다. 김유정 역시 "넹"과 같은 애교 섞인 말투를 구사하며 분위기를 둥글게 만든다. 게다가 속담과 사자성어를 좋아하는 정재훈의 캐릭터성도 눈에 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남는다. 우선 부응옥란의 강렬한 캐릭터성이 사건 전개의 개연성에 집중도를 떨어뜨린다. 부응옥란은 작중 내내 결코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는다. 마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참전용사의 아우라를 지닌다. 억척스럽다는 전반부 묘사에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체를 발견하고 나서도 지극히 덤덤해서 의아하다. 그것도 연속으로 두 번이나 발견하게 되는데 말이다. 그런 반응은 직업적으로 시신을 자주 보게 되는 인물에게나 어울릴 법하다.



게다가 최종전 국면에 이르러 누군가에 의해 냉동창고로 나가게 되는데, 나는 이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응옥란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라면,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이 위험한 장소에서 단 둘이 보자는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나갈 리 없다. 아무리 억세고 똑똑하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여성이고, 그녀를 불러낸 인물 역시 산전수전 다 겪어본 전사가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정재훈의 캐릭터에 대해서도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정재훈이 용의선상에 오르게 되는 이유는, 그가 갑작스럽게 부응옥란과 김유정을 돕지 못하게 됐기 때문인데, 추후에라도 그때 왜 그랬는지는 밝혀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정재훈이 누명을 벗는 장면은 어딘지 모르게 얼렁뚱땅 지나가는 장면이다. 다소 클리셰적인 사연을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부응옥란이 그를 용의선상에서 제외하는 건 다소 논리적이지 못하다. (물론, 직후에 리본 아줌마가 증언을 해준 덕에 혐의를 벗기는 하지만 그 전에 이미 사연을 듣고 부응옥란은 정재훈을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용의 선상에서 배제해버렸다.)



또한 결말의 진범을 잡는 부분도 의문이다. 


"진범을 진범으로 확정지을 수 있는 증거가 나왔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소설 안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부응옥란이 녹음하고 있는 줄 알고 있던 진범은 범행을 자백하지도 않았다. 부응옥란이나 김유정이 가지고 있는 증거라곤 다잉 메세지나 심증 뿐이다. 다잉 메세지는 그다지 위력을 발휘하지도 못한다. 이연화 사건이 다른 사람의 범행으로 마무리된 걸 보면, 진범이 DNA를 남길 정도로 어수룩한 것 같지도 않다. 이 결말은 충격적이긴 했지만, 꼭 그만큼 현실성이 없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마장동 축산시장에 대한 생생한 묘사만큼이나 작품의 중심축인 사건의 해결에 좀 더 심혈을 기울였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나아가 작품 전체에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큰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작가는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을 통해서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실태에 대해서 고발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서 소설을 쓴 것이다. 하지만 종종 그 욕구가 소설이라는 외형을 튀어나가려고 하는 지점들이 존재했다. 그때마다 내가 지금 소설을 읽는 것인지, 아니면 르포르타주를 읽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사실? 이주민들에게 사실이라는 단어만큼 큰 함정도 없답니다. 사실을 밝히는 것만으로 누명을 벗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특권인 줄 모르죠? 사실이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거야. 뭐, 아가씨는 해외 생활을 오래 해서 사회 분위기를 더 모를 것 같긴 하지만."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 41쪽


물론,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은 전효원 작가의 첫 장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런 아쉬운 점들이 보이는 것 같다. 아쉬운 점이 있지만 이게 이 작품 전체를 폄하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전부 충분히 개선될 수 있는 지점처럼 보여진다. (고백하건대, 나는 읽은 책에 대해선 전부 서평을 작성하진 않는다. 정말로 형편이 없거나 쓸 말이 없는 작품은 리뷰를 안 쓴다. 아니, 못 쓴다.) 



어쨌든,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을 막 덮은 내 손엔 『경성 환상 극장』이 있다. 이건 경성이라는 소재에 끌려서 샀는데, 공교롭게도 이 작품집 안에도 전효원 작가의 글이 있다. 전효원 작가의 다음 글을 읽으러 가기 위해 이만 리뷰를 마친다.



도대체 왜인지 몰라도 진심이란 건 당사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들었을 때 더욱 강하게 마음을 뒤흔든다.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 13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과 돌멩이 - 2026년 제4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상문학상 작품집
위수정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로 제49회를 맞이한 <이상문학상>의 대상은 위수정 작가에게 돌아갔다. 역대 최초로 수상자 전원이 여성이라고 한다. 이번 작품집을 살펴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예심 심사위원에 해방촌 독립서점 <고요서사>의 주인인 차경희 씨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문학사상사에서 다산책방으로 상의 운영권이 넘어온 이후로 여러가지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는 듯하다. 개인적으론 수상작들과 일반 독자 사이의 괴리감을 줄이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 위수정, 「눈과 돌멩이」


대상을 수상한 위수정 작가의 「눈과 돌멩이」는 여러모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귀신이 없는 집」과 닮아있다. <젊은작가상> 수상 소감에도 적었듯이 하나의 일본 설화에서 뻗어나온 두 소설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코요"라는 이름을 쓰는 등장인물이 두 소설에 모두 등장하고, 두 사람은 모두 크로스드레서(CD)이다. 그 설화에 기반한 작품을 한 편 더 쓰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귀신이 없는 집」과의 이런 교차점을 제외하고도 「눈과 돌멩이」는 김지연 작가의 등단작인 「작정기」를 떠올리기 한다. 「작정기」 역시 여행을 함께 준비했던 친구가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해서 혼자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 이야기다. 「눈과 돌멩이」 역시 수진이 주도했지만 차마 이루어지지 못했던 여행이 재한과 유미가 수진의 뼛가루를 뿌려주는 일종의 애도 여행으로 전환된다.


또한 작년에 <김승옥 문학상>을 수상한 최은미 작가의 「김춘영」을 얼마간 떠올리게도 한다. 눈으로 인하여 산에서 고립이 되어, 재한과 유미는 결국 CD인 코요의 집에 하룻밤 머물게 되는 설정에서 그러하다. 눈으로 온통 둘러싸인 산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웃음을 동반하지만 쓸쓸하다. 


난 곱게 늙고 싶다.


유미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꼭 늙어라, 곱게.


- 「눈과 돌멩이」, 46쪽


"꼭 늙으라"는 당부는 "죽지 말고 오래 살라"는 의미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귀신이 없는 집」을 읽을 때도 위수정 작가가 쓰는 대사가 기억에 남았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런 점이 눈에 들어온다. 


​근데 나, 열나는 거 같아. 수형이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내 이마를 짚었다. 그러네. 추운데 땀 흘려서 그런가 보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은 왜 먹냐. 약 먹자. 수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이 없어.

사 오면 되지.

아니야, 그냥 앉아 있어. 기분이 좋거든. 몽롱한 게. 


- 위수정, 「아무도」


개인적으로 위수정 작가의 「아무도」를 인상적으로 읽었는데, 「눈과 돌멩이」에서도 이와 유사한 감각이 소설에서 드러난다. 「눈과 돌멩이」 속 재한은 비행기를 타고와 폭설 속 산행이 주는 피로, 전날밤 잠을 자지 못한 노곤함, 거기에 맥주가 주는 노곤함이 더해진 상태로 하루를 마감한다. 이렇듯 신체의 감각이 중력을 잃어 현실 감각이 떠다니는 듯한 상태는 「아무도」의 화자에게서도 발견된다. 



세계가 나뉘는 데 한 발짝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재한은 이해했다. 


(…)


재한은 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단 한 번의 결단으로 모든 것을 망가뜨릴 수 있다. 끝낼 수 있다. 수진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눈과 돌멩이」, 45~46쪽


소설을 읽는 동안, 그리고 다 읽고 나서도 도대체 "수진"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독자는 알기 어렵다. 이 점은 소설 속 인물인 재한과 유미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이 여정은 먼저 떠난 이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남겨진 자들의 여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애도를 하기 위하여서는 그 애도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부터 전제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 김혜진, 「관종들」



김혜진 작가의 미덕은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순간들에서 소설적인 순간을 건져 올려내는 거라고 말해도 될까? <김승옥문학상>을 수상했던 「빈티지 엽서」나 장편소설 『오직 그녀의 것』, 그리고 「관종들」은 우리 주변의 흔히 있을 법한 이야기다. 


게다가 김혜진 작가의 소설들은 술술 읽힌다. 사람들은 종종 "가독성"에 대하여 한 가지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다. 너무 쉽고 뻔하게 쓰여진 거 아니냐는. 기실 그건 문장이 담고 있는 서사에 달려 있는 문제다. 문장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 술술 읽히게 쓴다는 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쉬운 문장 같은데도 문장의 호흡이나 구성, 단어선택 등에 있어서 독자의 "읽기"를 방해하는 작품들이 더 많다. (물론, 실험적이거나 전위적인 작품에 대해서는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만 한다.)



그러나 자신만만함은 잦아들고 다시금 미심쩍은 마음이 올라오고 있었다.

자신이 유별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문제는 바로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


「관종들」, 141쪽



「관종들」의 주인공들은 아이러니하다. 그들이 "관종"이라는 멸칭을 얻게 된 이유가 그렇다. 그저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좋은 "정해"와 고치는 것이 좋은 "영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실한 사회구성원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들이 타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길 원해서, 주목 받는 걸 즐겨서 이웃을 불편하게 만드는 걸까? 오히려 정반대의 이유 아닐까. 타인에게, 사회에 너무 많은 "관심"을 가져서. 그들에게도 나름대로 항변의 이유는 마련되어 있다. 자신들의 소홀함으로 인하여 영구적인 장애를 얻은 딸에 대한 죄책감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죄의식이 그들이 자꾸만 눈에 보이는 사소한 불의에 대해 눈감지 못하게 만든다. 이는 일견 어린 자식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던 자신들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애꿎은 주변 사람들에게 전가시키고, 사소한 공동체 윤리를 지키지 않는 이웃들에게 투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잘못된 곳을 향하는 원망은 결국 주변인들 입에서 "관종"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하며, 친언니인 정미마저도 정해를 나무라게 만든다.


정해야, 다른 사람들 심기를 건드리면 좋아? 다른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나아?


「관종들」, 152쪽


 이에 대하여 정해도 항변을 하지만, 그 항변은 어쩐지 자신을 향해 되돌아오는 것처럼 들린다.



원래 손가락질하는 건 쉬워. 언니처럼 말하는 건 쉬운 일이라고. 무슨 일이든 터지고 나서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야! 안 그래?


「관종들」, 153쪽


이 대목에서 정해와 영기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딸 호정에 대한 무거운 죄책감이고, 그들이 여전히 후회라는 지옥 속에 살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그리하여 그들은 "관종들"이라는 모멸적인 호칭 속에서도 타인에 대한 관심을 거두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그것이 그들이 비가역적인 장애를 얻은 딸에게 할 수 있는 "사과"이므로.



- 성혜령, 「대부호」



성혜령 작가의 「대부호」는 수상작품집 중에서 제일 좋았던 작품이다. 이전의 작품집 『버섯농장』을 읽을 때에는 그저 하드보일드적이거나, 불길하고 서늘한 분위기를 즐겨 쓰는 작가로 기억했다. 「대부호」는 이전 작품들과는 조금 결이 다르게 읽혔다.



12·3 비상계엄은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역사상 두 번째로 대통령의 탄핵이 이루어졌으며, 이로 인하여 정권이 바뀌었고, 사회는 여전히 극단적인 사상을 지지하는 집단으로 나누어 싸우기를 멈추지 않는다.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승옥 문학상>을 수상한 최진영 작가의 「돌아오는 밤」이나, 이희주 작가의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길란 작가의 「법의 아름다움」은 그 당시의 혼란상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넓게 보면 성해나 작가의 「스무드」 역시 이 안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대부호」 역시 이른 바 '반탄 진영'에 열려한 지지를 보내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다. 오빠도 나어린 채로 죽고, 아빠도 돌연 사망했을 때, 세상에는 엄마와 '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엄마는 광화문 집회에 나갔다가 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온다.


나는 내심 엄마가 깨닫기를 바랐다. 몸이 아플 때 의지할 사람이 이제 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도.

(…)

나는 아주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오빠가 죽은 뒤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나라를, 우리 가족만 조용히, 아니, 요란히 무너지고 있는 이 폐허를, 나도 한 번쯤은 버리고 싶었다.


「대부호」, 183쪽



요양이 필요한 엄마를 보살피면서 '나'는 격조했던 시간이 빚어낸 엄마의 변화가 낯설다. '나'는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 외국 기업에 취직하는 걸 목표로 삼아왔다. 하지만 그게 성사된다면 엄마를 홀로 한국에 둬야 한다는 사실이 부채의식처럼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나 엄마와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그 부채의식마저 털어버린다. 오빠의 죽음을 덮는 데 일조한 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지지할 수 있느냐고 묻는 '나'에게 엄마는 반문한다.



떠나고 싶은 게 이 나라야, 나야? 아니면 너야?


-「대부호」, 190쪽


번번이 최종 합격에 실패하던 본사 관리직 자리에 마침내 합격한 나는 이제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결심을 세웠지만,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또다시 '나'의 결정을 흔들어놓는다. 자신의 자취방으로 돌아가려는 '나'의 캐리어는 도무지 닫히지 않는다. 



나는 캐리어를 주먹으로, 발로 내리쳤다. 왜, 안 닫히냐고, 왜. 엄마가 인기척도 없이 내 방에 들어와서 캐리어 위에 앉았다. 엄마의 무게로 캐리어가 겨우 맞물렸다. 나는 재빠르게 지퍼를 채웠다.


-「대부호」, 195쪽


말없이 들어와서 앉는 장면도,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지퍼를 채우는 것도, 가족이 겪는 갈등과 해소의 구조를 경제적으로 그려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는 왜 '반탄 세력'을 옹호하는지 고백한다.



뭔가 바꾼다고 말하는 사람들, 엄마는 꼴보기 싫더라. 노동자, 인권, 그런 말 하는 사람들, 진짜 싫어. 바꿀 수 있었으면, 우리 현식이가 안 죽어도 됐잖아. 그런 생각 하면 엄마는 살 수가 없어.


-「대부호」, 196쪽


작품 뒤에 달려 있는 대담에서 성혜령 작가는 '엄마'의 입을 빌려 너무 쉽게 이야기해주는 장면이 아닌가 고민했다는데, 나 같이 미욱한 독자에게는 이 장면이 더 크게 와닿았다. 사실 나 역시 '반탄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이 장면을 읽고는 저 수많은 이들 중에는 이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소설이 지금 시대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사실상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왜소해졌다. 앞으로도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소설이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불가해한 타인을 이해하는 일"이다. 나에게 「대부호」는 그런 이해의 지평에 가닿은 소설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 이민진, 「겨울의 윤리」/ 정이현, 「실패담 크루」/ 함윤이「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



이민진 작가는 이번에 처음 이름을 들어보았다. 심사평에 의하면, 「겨울의 윤리」가 「눈과 돌멩이」와 막판까지 대상의 자리를 놓고 겨뤘던 작품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주인공 '해진'이 "과거"를 버리는 이야기다. 그 과거에는 자기 자신도 있으며, 자신을 버린 어른들도 포함된다. 이런 과거를 "해진"이라 이름 붙여주고 타인처럼 대하는 서술 구조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정이현 작가의 「실패담 크루」는 계간지에 실렸을 때 읽었는데, 그때도 재밌게 읽혔다. 김혜진 작가의 경우처럼 정이현 작가도 작품 활동을 오래한 연륜이 있는 작가인데, 이들을 보면서 소설은 이렇게 써야하는 구나, 배우게 된다. 실패담을 풀어내는 데 완벽하게 실패하여 오히려 성공하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윤이 작가의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는 <젊은작가상> 수상집에서 읽었기 때문에 따로 읽지 않았다. 



모든 작품들 역시 수상할 이유가 있는 좋은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부분은 남성 작가가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지금 남성 작가를 위한 쿼터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문학을 읽는 "남성" 독자가 극히 드물다는 점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읽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한국 문학을 읽는 독자의 대부분이 "여성"이기에 쓰는 사람도 여성이 더 많은 건 당연하게도 보인다. 다만, 한국 문학이 남성의 이야기까지 포괄할 수 있으려면, 좋은 남성 작가들도 더 많이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 수상 작품집에선 남성 작가들의 이름을 볼 수 있기를 고대하며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덮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 문단의 과거, 현재, 미래





소설가 장강명도 좋고, 방송에 나오는 장강명도 좋지만, 에세이스트 장강명은 독특한 매력이 있다.


칼로 무를 자르듯이 명쾌하게 분류할 순 없지만, 개인적으로 느껴온 바 소설가의 에세이는 의외로 시를 닮는다. 반대로 시인의 에세이는 소설적인 경우가 많다. 나는 이러한 서로 상반된 경향성을 발견할 때마다, 서로가 평소에 쓰지 않는 장르에서 자연 발생하는 갈증이 아닌가 짐작한다.


그러나 장강명의 에세이는 그의 소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첫 르포인 『당선, 합격, 계급』에서도 밝혔듯이 기자로서의 글쓰기가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소설도 건조하고 냉정한 문체로 이루어져 있고, 그의 르포르타주 역시 직관적이고 사실을 전달하고 주장을 펼치는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장강명 작가를 딱 한 번 직접 본 적이 있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북토크에서였다. 아마도 2015년의 가을, 강남이었던 것 같다. 이때 나는 그 자리에서 구입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 사인을 받으며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때 당시 문단에서는 신경숙 표절 사태와 성비 사건으로 인하여 '문단 권력' 논쟁이 한참 진행 중이었다. 논란의 중심에 있던 출판사 문학동네에서는 계간 <문학동네>를 통해 <한국문단의 구조를 다시 생각한다>라는 제목으로 좌담을 열었다. 김도언, 손아람, 이기호, 장강명, 신형철(사회)이 참여한 좌담에서 장강명 작가는 그맘때쯤 황금가지에서 발간된 『이웃집 슈퍼히어로』라는 책에 대해서 언급했다. 이 엔솔로지에는 진산, dcdc, 좌백, 김수륜, 김이환, 이수현, 듀나, 김보영, 이서영 작가 등이 참여했다. 개중 좌백 작가가 쓴 「편복협 대 옥나찰」이 오래 기억에 남는데, 슈퍼맨과 배트맨을 음차하여 이름을 바꾸고 무협 세계관으로 쓴 작품이다.


계간 <문학동네>의 좌담도 읽었고, 『이웃집 슈퍼히어로』도 읽었던 나는 북토크 후 사인을 받는 자리에서 장강명 작가에게 질문을 했다. 대충 이런 질문이었다.


"<문학동네> 좌담에서 『이웃집 슈퍼히어로』 후속작이 나오면 참여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언제쯤 나올까요?"


장강명 작가는 신기하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제 주변에 계간지랑 『이웃집 슈퍼히어로』를 같이 읽는 사람은 못 봤는데 신기하네요."


계간지는 주로 문단 문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이 읽고, 『이웃집 슈퍼히어로』는 장르소설 애호가들이 읽을 법한 책이어서 그런 것이리라. 계간지의 경우에 학부 시절 교수님께서 계간지 하나는 구독해야 한다고 하셔서 구독했던 것이다. 『이웃집 슈퍼히어로』는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사서 읽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장강명 작가가 정작 내 질문에 해준 대답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 문답 외에도 이 북토크는 『당선, 합격, 계급』과도 관련이 있다. 북토크에서 장강명 작가는 "등단 제도에 관한 르포를 쓰고 있다"고 말하며 설문지를 돌렸다. 그렇다. 나도 『당선, 합격, 계급』에 나오는 몇 개의 항목에 응답을 제공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책을 샀다.


하지만 그즈음, 나는 문학 자체에 냉담한 편이었고 그래서였는지 등단 제도에 대한 관심도 많이 없었다. 산다 해도 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장강명 작가의 책이라는 이유로 구매했다. 왜냐하면, 그 북토크에서 사서 읽었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한동안 장강명 작가의 신작은 일단 다 구매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당선, 합격, 계급』에서 지적하는 간판효과다. 장강명이라는 이름만으로 일단 샀으니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장강명 작가가 쓴 모든 책을 구매하진 못했는데, 일단 문학에 흥미를 잃었기도 하거니와 장강명 작가는 게으른 나에겐 대단한 '하드워커'였다. 사둔 책을 읽기도 전에 신간 알림이 왔다.)


* * *


한국 소설만 놓고 보았을 때, 2015년은 "장강명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백』으로 2011년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한 후, 2015년에만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을, 『댓글부대』로 4·3평화문학상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다. "또 장강명이야?" 라는 반응과 "진짜 대단하다."라는 반응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나는 이중 『열광금지, 에바로드』를 제외하고는 다 읽어봤다. 『표백』은 그저 그랬고, 『댓글부대』는 재밌었다. 그래서 영화도 봤는데 영화는 실망스러웠다. (원작을 읽을 때, 흑막 회장이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는 장면이 가장 강렬해서 영화를 볼 때도 이 장면을 어떻게 연출했을까 기대했는데 안 나왔다. 애당초 각색이 많이 되기도 했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인생작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장강명 작가의 전체적인 작품 성향에서 가장 동떨어져있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한다.


장강명 작가는 『당선, 합격, 계급』에서 "간판"이 주는 효과, 그리고 간판이 만들어내는 "성"을 비판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당선, 합격, 계급』을 읽을 때도 일종의 간판 효과가 작용했다고 본다. 장강명 작가가 신문 기자 출신이라는 점에서 일차적인 신뢰가 있을 것이고, 나아가 유수의 문학상을 거머쥔 당사자이기에 독자들이나 취재원들이 더 신뢰를 가졌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선, 합격, 계급』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취재하여 문제의 원인을 추적해나갈 수 있었다고 보인다.


『당선, 합격, 계급』에서 장강명 작가는 90년대 이후 생겨난 "장편소설공모전"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등단 제도를 고찰한다. 이를 위해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있었던 과거 제도부터 시작하여 현재 대기업들의 공채 시스템, 그리고 로스쿨 문제 등을 취재한다. 모든 제도에는 명과 암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공채 제도는 제너럴리스트를 뽑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반대로 스페셜리스트를 뽑는 데는 제약이 생긴다. 문제는 "장편소설공모전"이 대상으로 하는 소설가, 넓은 의미의 예술가는 엘리트들이자 스페셜리스트 기질이 크다는 것이다.

장편소설공모전이 이렇게 우후죽순으로 생긴 이유는, 그게 여러 영역의 이해관계자들에게 모두 좋은 제도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초창기에는 말이다.


『당선, 합격, 계급』, 48쪽


장편소설공모전의 경우, 등단을 꿈꾸는 작가에는 당선과 동시에 상금과 함께 단행본 출간의 기회가 주어진다.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은 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하기에 단행본이 나오려면 청탁을 2~3년은 꾸준히 받아야 한다.) 출판사의 경우, 양질의 원고들을 확보할 수 있으며, 문학상이라는 타이틀을 바탕으로 마케팅 포인트를 잡을 수 있다. 독자의 경우, 수없이 많은 책들 중에서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간판이 주는 권위에 안심하고 책을 고를 수 있게 된다.


대표적인 문학상을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들의 신념도 인상적이었다. "오늘의 작가상"을 운영하는 민음사의 창업주 고 박맹호 회장은 "작가들이 돈을 벌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오늘의 작가상"을 제정한 70년대 당시에는 책의 판매가 외판원들을 통해 "전집"을 위주로 돌아갔기 때문에 작가들이 단행본을 낼 기회가 마땅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행본을 낼 수 있는 상을 제정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이문열 작가의 대표작인 『사람의 아들』이 세상에 나왔다.


문학동네의 창업주 강태형 전 대표는 "작가들이 장편을 써야한다"고 생각했고, 이에 장편소설 공모전을 열었다고 한다. 이 공모전에서 수상한 김영하, 은희경, 박민규, 천명관 작가는 한국 문학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장강명 작가는 한겨레문학상와 수림문학상 심사를 맡은 경험도 『당선, 합격, 계급』에 가감없이 적었다. 독자 입장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문학상 접수 마감일 취재 풍경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작가 스스로도 그날 풍경이 흥미롭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한겨레출판사 측에서 심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166쪽)


또한 본심 심사는 너무나도 치열하게 진행되었다고도 밝혔다. 심사위원들이 제각각의 문학적 취향과 문학관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합의에 이르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대목들은 지망생들이 우려하는 형평성, 공정성, 문단 카르텔 등에 대한 우려를 일정 부분 씻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대놓고 드러난 차별은 없더라도, 보이지 않는 차별은 존재하는 듯하다.


심지어 어느 매체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느냐, 거기에 대한 영향도 큰 것 같거든요. 똑같이 문예지 신인문학상 출신이라도 어떤 문예지냐를 따지는.


『당선, 합격, 계급』, 213쪽



창비장편소설상을 받기 전에 있었던 일인데, 등단 작가들하고 나란히 원고를 게재했는데 다른 사람은 다 '소설가'라고 쓰는데 저는 '작가'라고 적더라고요. 작가가 비하의 의미는 아닌데, 당하는 입장에서는 왜 나만 표기가 '작가'라고 돼 있나, 싶죠. '너는 정식 소설가가 아니다' 라는 말을 드는 기분? 2등 시민인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소설가 정세랑)


『당선, 합격, 계급』, 279쪽



지금은 넷플릭스에서 드라마화도 된 『보건교사 안은영』을 쓴 정세랑 작가 역시 "창비장편소설상"을 받기 전에는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인지 몰라도 여전히 대다수의 지망생들은 문학상이라는 문단이 주는 합격증을 받고 싶어한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문학에 대한 소신을 잠시 꺾어두고서라도 일단 합격하고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공모전용" 소설을 쓴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 중에도 이런 식으로 등단작과 그 이후에 쓰는 작품의 결이 확연히 다른 작가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심사평에는 만날 "신인다운 패기를 보고 뽑았다." 이렇게 적혀 있는데 저희는 그거 보고 비웃거든요. 이게 무슨 신인다운 패기야, 하면서. '젊고 새로운 감각' 그런 말들도요. 제가 젊어서 젊은 대로 쓰면 되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이걸 보면 젊다고 생각하겠지?' 그런 걸 써야 등단하게 되는 거 같아요.


『당선, 합격, 계급』, 223쪽


그렇다고 해서 등단제를 폐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어떤 지망생이나 독자들은 투고 제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데, 이는 <해리포터 시리즈>가 준 환상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의 원고가 수차례 반려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출간하게 된 계기에 대해선 『당선, 합격, 계급』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어린이용 소설로는 지나치게 길었다. 대사가 너무 적고 지문은 너무 많았다. 아이들은 점점 더 책을 안 읽는데 말이다. 게다가 그즈음 아동문학 트렌드는 따돌림 문제 등을 다루는 현실적인 책이었는데,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완전 딴판이었다. 그러면 블룸즈버리 출판사는 왜 조앤 롤링과 계약을 맺었을까? 신생출판사라 아동문학 출간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담당 편집자는 그냥 원고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당선, 합격, 계급』, 135쪽



이런 경우를 본다면, 투고 작품의 희망인 <해리포터 시리즈> 역시도 출간에 엄청난 운이 개입했음을 알 수 있다. 투고는 해당 작품을 읽은 편집자 한 명에게 전적으로 작품의 운명을 맡기는 셈이지만, 공모전은 같은 작품을 여러 명의 심사위원들이 논의할 여지가 있다는 점이 좀 더 나을 수도 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투고 작품으로 성공한 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운데, 『82년생 김지영』 말고는 잘 알려진 것이 없다.



* * *



한동안 독자, 출판사, 작가 모두에게 좋은 제도였던 "장편소설공모전"은 유일한 기회의 장이 되어버림으로써 부작용을 낳았다. 지망생은 물론이거니와 기성 작가들도 "장편소설공모전"에 도전한다. 근래 "장편소설 공모전"을 통해 등단한 신인 작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상금과 단행본이 주는 매력에 신인, 기성 작가들은 계속 지원하게 되고, 출판사는 관성적으로 문학상을 유지한다.


물론 이는 장편소설공모전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이를테면, 대표적인 단편소설 문학상인 <젊은작가상>의 경우, 근 몇 년동안 이게 정말 수상작이 맞느냐는 비판도 무수히 들어왔다. 한국 문학을 읽는 독자들과 한국 문학을 만드는 출판사의 온도 차가 있다는 뜻이다.


현재 남들이 선망하는 간판을 부여하는 기관은 몇몇 문학 출판사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취향 공동체로 간주한다. 비슷한 '문단문학적' 가치를 추구하는 문인들이 동인을 이루고, 자신들의 가치에 맞는 신인을 발굴하며 알리는 행위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비평 행위는 매우 치열하게, 공정하게 이뤄진다고 강조한다.

반명 상당수 작가 지망생과 독자들은 이들을 취향 공동체가 아니라 일종의 인증 기관으로 바라본다. 여기에서 괴리가 발생한다. '이 작품도 충분히 훌륭한데 너희는 왜 인정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내가 보기에는 별로 재미없는데……'라는 취향 공동체 구성원다운 변명은 종종 오만하다거나 시야가 좁다는 반발을 산다.


『당선, 합격, 계급』, 298쪽



이 대목을 읽으면서 "문학과지성사"가 생각났다. 문학과지성사는 김현, 김치수 등을 중심으로 시작된 문학 동인에서 출발한 출판사다. 그래서 그런지, 문학과지성사는 여전히 이런 스탠스를 강하게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게 잘못됐다고는 보지 않는다. 문학과 언어의 전위성, 실험 정신을 강조하는 출판사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꾸준히 기존의 문학 질서와 대립하고, 이를 갱신하여 새 지평을 여는 혁신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이 대목을 읽으며 내가 떠올린 건, 이런 경험이다. 신종원 작가와 김채원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나는 "아, 이건 문학과지성사 스타일인데?"하고 느꼈다. 그리고 출판사를 확인했더니 신종원 작가의 『전자시대의 아리아』와 김채원 작가의 『서울 오아시스』는 모두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책들이었다. 그래서 꼭 그와 마찬가지로 올해 출간될 예정이라는 김기태 작가의 신작 장편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어, 정말? 상상이 잘 안되는데." 싶기도 했다.


일정 부분 한국 소설을 읽어온 독자들에게는 각 출판사가 추구하는 문학적 지향성에 대한 얼개는 있을 것이다. 예외적인 작품들이 튀어나올 수 있다곤 해도, 그 얼개가 그다지 틀린 것 같지도 않다.


독자들의 문예운동은 공모전을 포함해 우리 문학계의 기존 시스템으로는 발견할 수 없거나 묻히기 쉬운 작가들을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서 찾아내고 응원하는 운동이다. 독자들은 늘 그런 일을 해 오긴 했지만, 그 힘을 더 키우고 좀 더 효과적으로 영향력이 발휘되게 활동을 조직하자는 게 나의 제안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모르겠다. 이 책이 나온 뒤 논의가 이어져, 시스템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장치들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오길 기대한다. 뼈대가 되는 것은 '독자의 언어'와 데이터베이스다. 독자들이 출판인이나 평론가와는 다른 주체적인 관점으로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고 의견을 나눠야 한다. 그런 토론 내용을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먼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야 한다.


『당선, 합격, 계급』, 374쪽



장강명 작가는 『당선, 합격, 계급』의 후반부를 통해, 독자들에게 희망을 거는 것처럼 보인다. 출판사, 혹은 문단이 만들어낸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선 독자들의 역할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쉽게 별점을 남기고 평가를 하는 영화처럼 독자들이 서로 책에 대한 평가를 활발히 남겨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책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는다면 명확한 평가를 내리기 어려운 "경험재"이기 때문이다.


문단도 명확한 형체가 없는 상상의 공동체에 가깝긴 하지만, 독자는 그보다 더 하다. 출판사 입장에선 1,000권도 안 팔릴 거라고 예측했던 책이 증쇄를 거듭하기도 하며, 호응을 얻을 줄 알았던 작품이 1쇄도 다 못 팔 수도 있다. 영화의 관람객들도 마찬가지다.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이 흥행할 것이라고 자신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강명 작가는 독자들이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활발하게 평을 남기고 그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독자들의 니즈를 생산자/공급자인 출판사 측에서 파악하기 용이해질 것이고, 다른 독자들 역시 자신이 미처 몰랐던, 또는 알았어도 쉽게 손이 나가지 않던 책을 무람없이 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에는 주로 트위터(X)의 독서계, 그리고 디시인사이드 독서 갤러리에서 주로 이런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읽을까 말까'라고 망설이는 사람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는가, 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서평 문화는 여러 가지로 아쉬운 점이 많다. 그 내용을 들여다봐도 그렇다.

우선 문학평론가들의 글은 일반 독자에게 대개 도움이 안 된다. 일단 너무 어렵고, 쉽게 찾을 수도 없다. 다루는 폭도 좁아서, 대체로 문단문학 작품으로 영역이 한정돼 있다. 그나마도 썩 솔직하지 않다.


(…)


또 나는 언론 서평 역시 별로 솔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새로 나온 한국 소설에 대한 악평을 신문에서 본 일이 있는지?


『당선, 합격, 계급』, 330-331쪽




장강명 작가는 "님들이 좀 알아서 해보셈"이라고 말하고 무책임하게 손을 털지 않았다. 이 책이 나온 뒤 장강명 작가는 아내와 함께 <그믐>이라는 커뮤니티를 직접 출범했다. 독자들이 모여서 함께 책을 읽고 평을 나누는 사이트다. 사이트가 생겼을 때부터 몇 번 들어가 보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책을 같이 읽는다는 행위가 어색해 잘 이용해보지는 못했다.


2017년에 이 책이 나온 이후로 햇수로 10년이 흘렀다. 슬프게도 이 책을 읽는 2026년의 상황도 이 책이 묘사하는 2016~2017년과 그다지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소설가 지망생들은 문예지나 신춘문예에 매달린다.


그 사이에 한국 문학의 변화 중 두드러지는 현상을 꼽아 보자면, 우선 독자와 쓰는 사람이 여성 비중이 커졌다는 점이다. 올해 이상문학상이나 젊은작가상만 해도 전원이 여성 작가다. 냉정하게 장강명 작가 이후로 대형 신인 작가 중에 남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김기태 작가가 분전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내가 모든 작가들이 발표하는 소설을 샅샅히 찾아 읽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죄송하다.)


그리고 쓰는 사람이 읽는 사람보다 많아졌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이는 어쩌면 AI의 발전으로 인한 착시 현상일 수도 있다. 또한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 같은 베스트셀러는 40만 부나 팔리는 걸 보면, 아직은 읽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소설을 쓰는 사람이 절대 40만 명이나 될 리는 없으니까.


현재 장강명 작가는 2023년에 출간했던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의 후속편을 작업하고 있다. 그 연재분을 알라딘이 운영하는 투비컨티뉴드에 올리고 있다. 생각날 때마다 챙겨보는데 흥미롭다. 역시 장강명 작가는 에세이를 잘 쓴다.


혹여나 장강명 작가가 여력이 된다면, 『당선, 합격, 계급』에도 후속편을 써주길 바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 사이에 꽤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전에 이미 사둔 『먼저 온 미래』를 읽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또 미루다 보면, 『당선, 합격, 계급』처럼 10년 뒤에 읽을지도 모른다…….

장편소설공모전이 이렇게 우후죽순으로 생긴 이유는, 그게 여러 영역의 이해관계자들에게 모두 좋은 제도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초창기에는 말이다. - P48

심사평에는 만날 "신인다운 패기를 보고 뽑았다." 이렇게 적혀 있는데 저희는 그거 보고 비웃거든요. 이게 무슨 신인다운 패기야, 하면서. ‘젊고 새로운 감각‘ 그런 말들도요. 제가 젊어서 젊은 대로 쓰면 되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이걸 보면 젊다고 생각하겠지?‘ 그런 걸 써야 등단하게 되는 거 같아요. - P223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어린이용 소설로는 지나치게 길었다. 대사가 너무 적고 지문은 너무 많았다. 아이들은 점점 더 책을 안 읽는데 말이다. 게다가 그즈음 아동문학 트렌드는 따돌림 문제 등을 다루는 현실적인 책이었는데,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완전 딴판이었다. 그러면 블룸즈버리 출판사는 왜 조앤 롤링과 계약을 맺었을까? 신생출판사라 아동문학 출간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담당 편집자는 그냥 원고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 P13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읽을까 말까‘라고 망설이는 사람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는가, 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서평 문화는 여러 가지로 아쉬운 점이 많다. 그 내용을 들여다봐도 그렇다.
우선 문학평론가들의 글은 일반 독자에게 대개 도움이 안 된다. 일단 너무 어렵고, 쉽게 찾을 수도 없다. 다루는 폭도 좁아서, 대체로 문단문학 작품으로 영역이 한정돼 있다. 그나마도 썩 솔직하지 않다.
(…)
또 나는 언론 서평 역시 별로 솔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새로 나온 한국 소설에 대한 악평을 신문에서 본 일이 있는지? - P3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멜론은 어쩌다
아밀(김지현) 지음 / 비채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밀'이라는 작가명은 '김지현' 번역가의 필명이다. 평소에는 주로 영미 문학을 번역하고, '아밀'이라는 이름으로 소설과 에세이 등을 작업한다고 한다. 2018년, 2020년 SF어워드에서 수상하기도 했으며, 웹진 <거울>의 필진이기도 하다.



『멜론은 어쩌다』는 총 8편의 소설이 묶여 있다.



「나의 레즈비언 뱀파이어 친구」


「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


「아이돌 하려고 태어난 애」


「노 어덜트 헤븐」


「성별을 뛰어넘은 사랑」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인형 눈알 붙이기」


「야간 산책」




처음에 목차를 훑었을 때는 SF 퀴어소설집이라 섣불리 생각했다. 처음 두 편을 읽을 때도 기존의 퀴어 소설들과는 다르게 "유쾌하고 웃긴 SF 퀴어소설집"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세 번째 소설부터 이 책에 대한 견해를 수정해야 했다. 『멜론은 어쩌다』는 단순히 웃긴 퀴어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 발을 붙인 채 상상력으로 내달리는 소설"이다. 이를 3차원(현실)과 4차원(상상)의 사이에 있는 "3.5차원의 소설"이라고 이름붙여 보고 싶다.


8편의 소설을 모두 읽고 찬찬히 되짚어보면, 「나의 레즈비언 뱀파이어 친구」, 「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 이 두 편에도 3.5차원의 흔적이 있다. 「나의 레즈비언 뱀파이어 친구」는 주인공의 오랜 친구가 주인공을 좋아하는 레즈비언이자 뱀파이어다. 그리고 아밀 작가는 뱀파이어가 인간과 무리 없이 공존을 하고 있는 세계관을 그리고 있다. 뱀파이어는 인간의 혈액을 얻기 위해서 "중고 거래 사이트"를 이용하기도 한다.


「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는 생성형 AI의 대화 기능이 탑재된 성인용 로봇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이 소설은 AI에 대한 이야기로 읽힌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고, 오히려 로봇에게서 위안과 자신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주인공을 통해 다가온 AI 시대에 사람은 무엇이며, 관계는 정말로 어떻게 맺어져야 하는가를 고민하게끔 만든다.


마찬가지로 퀴어적인 요소가 담긴 「성별을 뛰어넘은 사랑」은 『멜론은 어쩌다』에서 가장 재밌게 읽혔다. 현실의 관념을 정반대로 뒤집은 게 인상적이다. 이 세계관에서는 "동성애"가 주류이고, "이성애"가 성소수자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그대로 존재해서, 이성애자들은 자신들의 취향을 숨기고 남몰래 연애를 한다.



이런 게 바로 성별을 뛰어넘은 사랑이구나. 은아는 처음 맛보는 신세계에 경탄했다. 어떻게 사람이 자신과 다른 성별과 사랑을 한다는 비틀린 욕망을 품을 수 있는가. 그건 뭔가 남다른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 아닌가 생각했는데, 자신처럼 평범한 여자도 이성애에 빠질 수 있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구나 싶었다. 아니면 자신이 사실은 평범한 여자가 아니었거나.


「성별을 뛰어넘은 사랑」, 166쪽



「아이돌 하려고 태어난 애」는 퀴어적인 요소는 없지만 「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나 「성별을 뛰어넘은 사랑」와 함께 묶어볼 수 있을 듯하다. 세 소설 모두 지금 이 상태로 기술이 발전해나간다면 얼마든지 도래할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는 특이점이 와 일상적인 대화나 감정의 교류가 가능한 AI가 등장한 소설이고, 「성별을 뛰어넘은 사랑」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인공 수정을 통해서 출산이 가능해져서 성애의 주류가 동성애로 변했기 때문이다.


「아이돌 하려고 태어난 애」에서는 유전자를 편집해 탄생한 최고의 아이돌 "강모아"가 등장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그 최고의 아이돌과 같은 그룹의 멤버다.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강모아에게 애증을 느낀다. 그러나 강모아에게 빛만 내리쬐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내세워 유전자 편집에 반대하는 운동가들이 있고, 그들과 강모아는 다투게 된다. 주인공은 그 날, 문득 이상한 메세지를 보게 된다. 그 작은 사실을 접한 주인공은 충격에 빠진다. "아이돌"로서 겪어야 했던 모든 어려움을 강모아는 유전자가 편집됐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잘 극복해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마태복음, 18장 3~5절



「노 어덜트 헤븐」은 "천국은 어린아이들과 같은 자들의 것"이라는 성경 말씀에서 시작한다. 사람은 죽어 천국이나 지옥에 가게 되는데 이를 위해 재판을 받게 된다. 이 소설에서 작품집의 제목인 "멜론은 어쩌다"가 나온 것 같다. 주인공 "멜론"이 엄마의 재판에 증인으로 불려나가게 되는 게 소설의 전체적인 골자다. 천사와 악마가 신 앞에서 치르는 법정 다툼이 생생하다. 하지만 이 소설에 있어서 나는 문득 결말에 조금 의문을 품었다. 작가의 의도를 짐작해보건대 따뜻한 결말을 쓴 것 같지만 어쩐지 나는 의심을 거두기 어려웠다.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과 「인형 눈알 붙이기」에는 "마녀"가 등장한다.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은 손가락이 짧아서, 혹은 재능이 부족해서 고통받는 피아니스트가 주인공이다. 자신의 라이벌이 마치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어느 날 만난 마녀가 이 사차원의 벽을 넘게 만들어준다고 한다. 남들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손의 좌우를 반전시켜서 연주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이 제안을 수락하면서, "3차원의 세계에 머물렀을 때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성공을 거머쥐면서, 주인공은 자신이 치른 댓가가 무엇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인형 눈알 붙이기」는 "3.5차원"의 소설이라는 말이 적합한 소설이다. 마녀는 마녀인데, 사업자등록증도 내고 세금도 내고 법적인 규제도 받는 마녀다. 주인공 마녀는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일생의 목표다. 그래서 흑마법과도 거리를 두고 살면서 축복 인형에 눈알을 붙이며 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던 어느날, 신비주의 컨셉 아이돌의 축복 인형을 만들어 달라는 오타쿠를 만나게 되고 자신의 목표가 흔들리게 된다. 현실에 붙어 있기는 한데, 반쯤 몸이 떠 있는 것만 같은 세계관이 이 소설집의 미덕이란 점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야간 산책」은 이 작품집에서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한 작품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묘하게 현실적이면서도 기발한 상상력으로 직조해낸 세계관이 이 작품집의 강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야간 산책」은 전반적으로 상상의 세계에 많이 치우쳐 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편지 형식으로 된 고백체 문학을 잘 읽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 * *



『멜론은 어쩌다』는 3.5차원의 소설이다. 이런 소설들이 재밌는 이유는 현실과 상상력의 절묘한 결합에 있다. 현실은 일종의 제약이 되어주는데, 상상력이 제멋대로 튀어나가는 걸 얼마간 제지해준다. 게다가 현실적인 조건들이 주인공에게 보다 쉽게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겁이 많아 인형에 눈알만 붙이게 된 마녀처럼.


게다가 "아이돌 하려고 태어난 애",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노 어덜트 존", "성별을 뛰어넘은 사랑"과 같은 제목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평소에 작가에게 대중이 쓰는 유행어를 재조립하고 싶어하는 "언어유희적 욕망"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대중은 흔히 재능이 넘치는 아이돌(또는 가수든 배우든)을 보고는 "저 친구는 아이돌을 하려고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걸 가지고 정말로 아이돌을 하기 위해 태어난 아이를 소설에 등장시킨다.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역시 "넘사벽"이란 줄임말로 자주 쓰였던 유행어였는데, 작가는 정말로 차원을 넘나드는 피아니스트를 등장시킨다. "노 어덜트 존" 역시 "노키즈 존"을 뒤집고 성경 말씀을 가져와 천국이 노 어덜트 존이라는 설정으로 재탄생시킨다. "성별을 뛰어넘은 사랑" 역시 "어떻게 사람이 성별을 뛰어넘은 사랑을 할 수가 있어, 사랑은 당연히 같은 성끼리 하는 거지."와 같은 농담을 가져와 만들어낸 세계관이다.


하지만 이 상상력에서만 끝나지 않고 작가는 작품마다 좀 더 깊게 고민해보아야 할 것들을 남겨놓는다. "아이 같다는 것은 진정 무슨 의미인가?", "성별을 뛰어넘거나 뛰어넘지 않거나 사랑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과 교감할 수 없는 음악적 재능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로봇과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지 못하는 인간 중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 관계인가?" 등등. 그리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책을 덮고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현실적인 상상력이 풍부한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염치를 아는 이들이여, 이리로 오라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었다.


김애란 작가는 기존의 『바깥은 여름』, 『비행운』 등의 작품집으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지금 활동하는 작가들 중에서 단편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로 꼽는 독자들도 많다. 


그런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인지, 교보문고가 매년 실시하는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에서 2025년에 1위를 차지했다. 또한 유튜브 채널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이동진 평론가 역시 2025년에 읽은 올해의 책 중 한 권으로 『안녕이라 그랬어』를 꼽기도 했다.



소설은 총 7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각 소설집들이 주로 코로나 시기 전후로 하는 시대상을 지니고 있다. 동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으레 그렇듯, 단절, 격리로 인해 사회나 관계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일에 초점을 두곤 하는데, 김애란의 시선은 조금 다른 곳을 향해 있다. 작품의 해설에도 적혀 있듯이 김애란 작가는 『안녕이라 그랬어』의 주제를 '돈과 이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안녕이라 그랬어』의 주제 의식은 '돈과 (돈이 많은) 이웃'에 초점이 맞춰진 듯하다.



그렇다면, 왜 코로나 시기여야 했는가, 하고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작품집에 수록된 「좋은 이웃」에서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홈파티」에서 보충하는 것처럼, 전염병은 건강에 대한 경각심뿐만 아니라 경제적 계급에 대한 간극이 부각된 시기다. 


코로나 시기는 '블랙 먼데이', '경제 대공황' 등을 떠올리게 할 만큼 역사적인 하락장이 발생했던 때다. 사람들이 격리를 하게 되면서 경제활동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부와 중앙은행이 대대적으로 구원투수로 나섰던 때이기도 하다. 돈을 "합법적으로 찍어낼 수 있는" 기관에서 주도하는 구제금융이 시작되자 시장에는 어마어마한 자금이 밀려들었다. 백신 접종과 더불어 코로나 확진세가 점차 안정이 되기 시작하자 경기는 안정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주식 시장은 역대급 호황을 보였다. 한국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으로 인하여 부동산 가격도 가파르게 상승하던 시기다.


주식 시장의 호황을 만드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코로나 시기를 주도했던 건 기업들의 눈부신 성장이라기보다는 밀려드는 "현금"에 기인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의 유명한 격언을 되새겨볼 만하다.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


(Inflation is always and everywhere a monetary phenomenon.)


밀턴 프리드먼





현금, 화폐 공급량이 증가하면 물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 물가가 상승한다면, 화폐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하락할 것이고 그렇다면 사람들은 현물, 즉 주식이나, 금, 부동산으로 몰리게 된다. 그래서 또다시 주식 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가 되었다. 거기에 더해 FOMO 역시 한몫을 했다. 2025~2026년, 미국-이란 전쟁 발발 전까지만 해도 역대급 호황을 자랑하던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주식 시장에 뛰어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지나간 이야기들을 복기한 것은 이러한 현상을 배경으로 『안녕이라 그랬어』의 작품들이 쓰여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믿기지 않는 일엔 "너무 소설 같다"고 말한다. 반대로 형편없는 소설을 읽을 때는, 이 소설은 "너무 현실성이 없다"고 말한다. 이 기묘한 평가 기준은 종종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자아낸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사실에 기반하지만, 결과물은 허구여야 한다. 핍진성을 갖추면 좋지만, 그게 꼭 전부인 것만은 아니다.



『안녕이라 그랬어』는 현실에서 주워든 재료로 만든 탁월한 가짜다. 진짜들을 조각해, 마침내 실제보다 더 실제 같아진 가짜들. 이런 인상을 구성하는 기본 골조는 대개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한 번쯤은 느껴봤을 만한 감정이다. 이를테면, 「숲속 작은 집」에서 벌어지는 팁을 주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얼마를 주어야 하는가, 나아가 어떤 방식으로 주어야 하는가, 와 같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바로 그 예다. 게다가 얼마간은 우리 모두가 느끼고 경험하지만 애써 무시하려고 하는 아픈 지점도 김애란은 송곳처럼 찝어낸다.



그러자 수명이 다한 행성처럼 천천히 멀어지던 둘의 관계가 눈앞에 떠올랐다. 둘 중 누구도 그걸 막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함께. 그렇다고 기태에게 아직 희주를 향한 미련이 남은 건 아니었다. 한때 가까웠으나 '이별의 형식' 없이 헤어진 친구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그 친구의 삶을 질시하지도 폄하하지도 않는 마음으로, 기태는 희주의 삶을 응원했다.


「이물감」, 155쪽



나는 정작 가장 중요한 이유인 '외국어 공부를 하다보면 아직 내게 어떤 가능성과 기회가 남은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안녕이라 그랬어」, 226쪽




또한 김애란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만 보이는 경제적 차이를 포착한다. 그리고 그 차이가 인간 내면에 끼치는 영향을 관찰하는 데 독보적이다. 이와 같은 미시적인 감정을 포착해 이를 적확한 문장으로 치환한다. 나아가 「좋은 이웃」의 화자는 이 간극 속에서 괴로워한다. 도덕적 우월감과 물질적 우위 속에서 갈등하며, 마침내 그 우월감이 자기 모멸감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담아낸다. 이러한 과정은 "정의는 힘없는 자들의 자기 합리화"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내가 연민하던 대상이 혼자 반짝이는 세계로 가버렸기 때문일까? 아니, 나는 시우를, 시우 어머니를, 그들이 사는 집을 내려다본 적 없는데. 그럼 마주보는 건 괜찮지만 올려다보는 건 싫은 걸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좋은 이웃」, 130쪽



얼마 전 남편이 내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잘살게 되면 남을 돕고 살자." 그런데 여보, 우리가 잘살게 되면 우리가 '더' 잘살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때도 이웃이 생각날까?


「좋은 이웃」, 141쪽




『안녕이라 그랬어』에 수록된 7편의 작품을 읽으며 얼마 전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염치를 아는 사람일 수록 세상을 사는 게 어렵다.'는 말이었다. 안면몰수하고, 적당히 모른 척도 하며 살아야 세상을 살기 쉽고 돈도 잘 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만 있다면 이 세상은 홉스가 말했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속일지, 어떻게 이득을 취할지만 생각하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상태. 그게 정말 좋은 세상일까.



어쩌면, 어수룩하고 멍청해보여도 염치를 아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이 돌아가는 게 아닐까. 무엇이 올바른 일인지, 무엇이 맞는 일인지,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당장 옳은 게 무엇인지를 따져보고 이를 감당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처를 김애란은 서슴없이 짚는다. 염치를 아는 이들은 자신들의 상처와 고뇌를 숨기려 한다. 이를테면, 「좋은 인물」의 화자처럼, 자신의 우월감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그게 혹여나 잘못된 것은 아닌지를 되새겨보면서 '부끄러워' 하기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했'듯이 말이다. 



그러니, 숱한 밤을 침대에서 뒤척이며 고뇌하는 염치를 아는 이들이여, 이리로 오라. 당신과 함께 앓아줄 소설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당신과 우리 모두가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어야 할 이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