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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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를 아는 이들이여, 이리로 오라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었다.


김애란 작가는 기존의 『바깥은 여름』, 『비행운』 등의 작품집으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지금 활동하는 작가들 중에서 단편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로 꼽는 독자들도 많다. 


그런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인지, 교보문고가 매년 실시하는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에서 2025년에 1위를 차지했다. 또한 유튜브 채널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이동진 평론가 역시 2025년에 읽은 올해의 책 중 한 권으로 『안녕이라 그랬어』를 꼽기도 했다.



소설은 총 7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각 소설집들이 주로 코로나 시기 전후로 하는 시대상을 지니고 있다. 동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으레 그렇듯, 단절, 격리로 인해 사회나 관계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일에 초점을 두곤 하는데, 김애란의 시선은 조금 다른 곳을 향해 있다. 작품의 해설에도 적혀 있듯이 김애란 작가는 『안녕이라 그랬어』의 주제를 '돈과 이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안녕이라 그랬어』의 주제 의식은 '돈과 (돈이 많은) 이웃'에 초점이 맞춰진 듯하다.



그렇다면, 왜 코로나 시기여야 했는가, 하고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작품집에 수록된 「좋은 이웃」에서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홈파티」에서 보충하는 것처럼, 전염병은 건강에 대한 경각심뿐만 아니라 경제적 계급에 대한 간극이 부각된 시기다. 


코로나 시기는 '블랙 먼데이', '경제 대공황' 등을 떠올리게 할 만큼 역사적인 하락장이 발생했던 때다. 사람들이 격리를 하게 되면서 경제활동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부와 중앙은행이 대대적으로 구원투수로 나섰던 때이기도 하다. 돈을 "합법적으로 찍어낼 수 있는" 기관에서 주도하는 구제금융이 시작되자 시장에는 어마어마한 자금이 밀려들었다. 백신 접종과 더불어 코로나 확진세가 점차 안정이 되기 시작하자 경기는 안정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주식 시장은 역대급 호황을 보였다. 한국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으로 인하여 부동산 가격도 가파르게 상승하던 시기다.


주식 시장의 호황을 만드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코로나 시기를 주도했던 건 기업들의 눈부신 성장이라기보다는 밀려드는 "현금"에 기인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의 유명한 격언을 되새겨볼 만하다.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


(Inflation is always and everywhere a monetary phenomenon.)


밀턴 프리드먼





현금, 화폐 공급량이 증가하면 물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 물가가 상승한다면, 화폐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하락할 것이고 그렇다면 사람들은 현물, 즉 주식이나, 금, 부동산으로 몰리게 된다. 그래서 또다시 주식 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가 되었다. 거기에 더해 FOMO 역시 한몫을 했다. 2025~2026년, 미국-이란 전쟁 발발 전까지만 해도 역대급 호황을 자랑하던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주식 시장에 뛰어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지나간 이야기들을 복기한 것은 이러한 현상을 배경으로 『안녕이라 그랬어』의 작품들이 쓰여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믿기지 않는 일엔 "너무 소설 같다"고 말한다. 반대로 형편없는 소설을 읽을 때는, 이 소설은 "너무 현실성이 없다"고 말한다. 이 기묘한 평가 기준은 종종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자아낸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사실에 기반하지만, 결과물은 허구여야 한다. 핍진성을 갖추면 좋지만, 그게 꼭 전부인 것만은 아니다.



『안녕이라 그랬어』는 현실에서 주워든 재료로 만든 탁월한 가짜다. 진짜들을 조각해, 마침내 실제보다 더 실제 같아진 가짜들. 이런 인상을 구성하는 기본 골조는 대개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한 번쯤은 느껴봤을 만한 감정이다. 이를테면, 「숲속 작은 집」에서 벌어지는 팁을 주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얼마를 주어야 하는가, 나아가 어떤 방식으로 주어야 하는가, 와 같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바로 그 예다. 게다가 얼마간은 우리 모두가 느끼고 경험하지만 애써 무시하려고 하는 아픈 지점도 김애란은 송곳처럼 찝어낸다.



그러자 수명이 다한 행성처럼 천천히 멀어지던 둘의 관계가 눈앞에 떠올랐다. 둘 중 누구도 그걸 막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함께. 그렇다고 기태에게 아직 희주를 향한 미련이 남은 건 아니었다. 한때 가까웠으나 '이별의 형식' 없이 헤어진 친구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그 친구의 삶을 질시하지도 폄하하지도 않는 마음으로, 기태는 희주의 삶을 응원했다.


「이물감」, 155쪽



나는 정작 가장 중요한 이유인 '외국어 공부를 하다보면 아직 내게 어떤 가능성과 기회가 남은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안녕이라 그랬어」, 226쪽




또한 김애란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만 보이는 경제적 차이를 포착한다. 그리고 그 차이가 인간 내면에 끼치는 영향을 관찰하는 데 독보적이다. 이와 같은 미시적인 감정을 포착해 이를 적확한 문장으로 치환한다. 나아가 「좋은 이웃」의 화자는 이 간극 속에서 괴로워한다. 도덕적 우월감과 물질적 우위 속에서 갈등하며, 마침내 그 우월감이 자기 모멸감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담아낸다. 이러한 과정은 "정의는 힘없는 자들의 자기 합리화"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내가 연민하던 대상이 혼자 반짝이는 세계로 가버렸기 때문일까? 아니, 나는 시우를, 시우 어머니를, 그들이 사는 집을 내려다본 적 없는데. 그럼 마주보는 건 괜찮지만 올려다보는 건 싫은 걸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좋은 이웃」, 130쪽



얼마 전 남편이 내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잘살게 되면 남을 돕고 살자." 그런데 여보, 우리가 잘살게 되면 우리가 '더' 잘살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때도 이웃이 생각날까?


「좋은 이웃」, 141쪽




『안녕이라 그랬어』에 수록된 7편의 작품을 읽으며 얼마 전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염치를 아는 사람일 수록 세상을 사는 게 어렵다.'는 말이었다. 안면몰수하고, 적당히 모른 척도 하며 살아야 세상을 살기 쉽고 돈도 잘 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만 있다면 이 세상은 홉스가 말했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속일지, 어떻게 이득을 취할지만 생각하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상태. 그게 정말 좋은 세상일까.



어쩌면, 어수룩하고 멍청해보여도 염치를 아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이 돌아가는 게 아닐까. 무엇이 올바른 일인지, 무엇이 맞는 일인지,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당장 옳은 게 무엇인지를 따져보고 이를 감당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처를 김애란은 서슴없이 짚는다. 염치를 아는 이들은 자신들의 상처와 고뇌를 숨기려 한다. 이를테면, 「좋은 인물」의 화자처럼, 자신의 우월감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그게 혹여나 잘못된 것은 아닌지를 되새겨보면서 '부끄러워' 하기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했'듯이 말이다. 



그러니, 숱한 밤을 침대에서 뒤척이며 고뇌하는 염치를 아는 이들이여, 이리로 오라. 당신과 함께 앓아줄 소설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당신과 우리 모두가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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