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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하는 법 - 고치고 다듬지 않은 글은 아직 글이 아니다 ㅣ 땅콩문고
김은경 지음 / 유유 / 2026년 7월
평점 :
킬링 유어 달링!
퇴고는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는 이들에겐 그 중요성이 간과되기 쉬운 과정 중 하나다. 글을 쓰는 것부터가 어려우니까 말이다. 그냥 다 쓰고 나면 끝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기 쉽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하지만 사실상 모든 작가들이 초고를 쓴 이후에야 진정한 글쓰기가 시작된다고들 말한다. 어떤 작가는 완성된 글에서 초고는 10%밖에 살아남지 않아야 제대로 된 글이라고까지 말한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퇴고하는 법』에서도 자주 인용되지만, 사실 글쓰기 작법서에서 헤밍웨이는 특히나 "퇴고" 파트에서 자주 등장한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는 저 선언이 공리처럼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퇴고는 중요하며, 과정을 조금 보태면 사실상 글쓰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퇴고의 중요성에 대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고 해도 막상 퇴고를 하려고 하면 막막한 것도 사실이다. 편집자로 오랜 세월 다른 이들의 글을 다듬어왔고, 스스로 에세이를 쓰기도 하는 김은경 작가의 『퇴고하는 법』은 친절하고도 유용한 조언들을 건넨다.
퇴고를 시작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 덕목이 필요하다. 우선 초고를 완성할 인내심. 글을 쓰기 시작하는 건 쉽지만 완성하긴 생각보다 어렵다. 그 다음으로는 엉망인 초고를 들여다 볼 용기가 필요하다. 퇴고가 버거운 실질적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고칠 곳이 너무 많아 보여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쓰느라 너무 고생해서 원고를 보는 것만으로도 토할 것 같기 떄문이다. 이 모두를 극복하고 초고를 대면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초고가 엉망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들여다 볼 마음이 없어지긴 한다. 왜냐하면 어쨌든 그 순간에 최선이자 최고라고 생각한 문장들을 써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순간에 더 나은 문장이 있다고 생각했다면 도대체 그 문장을 적지 않고 왜 그보다 별로인 문장을 적는단 말인가?) 하지만 대부분 이 경우는 그저 글쓴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더 극히 드물게 초고지만 완벽한 작품이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정말로 희박한 확률이다. 오죽하면, 헤밍웨이도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고 했을까!
우리는 극소수의 천재가 아닐 확률이 높으니, 엉망인 초고를 손에 쥐었을 것이다. 『퇴고하는 법』에서 작가가 강조하는 것은 살릴 부분과 버릴 부분을 가르는 안목이다. 다른 사람의 영화나 소설을 볼 때면, 우리는 손쉽게 "아, 이 장면은 너무 튀는데? 버렸으면 더 좋았을 텐데?"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자신의 글을 다시 볼 때면, 정작 어디를 버려야 할지 모른다. 글이 엉망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이 부분은 이래서 이 글에 어울리고, 저 부분은 저래서 이 글에 꼭 필요한 것 같다. 결국 다 버릴 곳이 없다는 느낌만 강하게 든다. 하지만 여전히 글이 엉망이라는 생각만은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퇴고하는 법』에서도 초고를 쓰고 난 후에는 의도적으로 시간을 두고 다시 글을 살피라고 조언한다.
시간을 가지고 초고를 다시 살피자, 살릴 부분과 버릴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과감히, 읍참마속하는 결단력이다. 위에서 언급한 다른 사람 작품에서 우리가 사족 같다고 느낀 장면이 보이는 이유는, 그 작가가 끝내 결단을 내리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장면들이 그 작가의 '달링'이었을 수 있다. 『퇴고하는 법』에서 작가도 이에 대해 강력하게 조언한다.
킬링 유어 달링.
영국의 문학교수 아서 퀼러-코치 경은 "특히 잘 썼다고 느껴지는 문장을 썼다는 생각이 일면 주저하지 말고 전심전력을 다해 써라. 그리고 원고를 출판하기 전에 그 문장을 지워라. 당신의 소준한 문장을 과감히 죽여라"라고 조언했습니다.
『퇴고하는 법』, 22-23쪽
영화 <킬 유어 달링>에는 아서 퀼러-코치 경의 말(원문은 Murder your darling이라고 한다.)을 인용해 "너의 달링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문학 교수가 등장한다. 이때 달링은 우리가 쓴 글에서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부분이다. 그 문장 하나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수도 있고, 거기서부터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 완성된 글을 보니 그 부분이 혼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거나, 소설 전체의 리듬과 주제의식을 파괴하고 있다면, 과감히 그 부분을 삭제해야 한다. 그러나 말이 쉽지 이 부분을 삭제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니까 많은 작품에서 이 부분은 뺐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는 부분이 나오기 마련이다. 게다가 창작자 입장에선 그런 부분을 빼느니 이 모든 걸 버리는 게 낫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럴 때, 위대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미인대회 이론을 참고해보면 어떨까. 케인즈는 주식 시장의 가격 결정 방식을 1930년대 신문의 미인 선발 대회에 빗대어 설명한 적이 있다. 이 대회의 우승 조건은 '자신이 보기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참가자가 가장 아름답다고 투표할 사람'을 정확히 예측하여 고르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주관적인 기준은 배제하고 오직 타인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혹은 타인들이 다른 사람의 선택을 어떻게 예상할지만을 고려해 결정을 해야 한다. 케인즈는 주식 시장의 투자자들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를 평가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주식을 사서 오를 것이라고 생각할까'를 추측하는 심리적 눈치 게임에 빠져 투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사랑하는 장면을 끝내 버리지 못하고 안고 가는 것은 어쩌면, 하루 하루 가격이 하락하는 애착주식을 끝내 손절하지 못하고 수익률이 곤두박질치는 걸 그저 방관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퇴고의 처음과 끝은 사실상 '나의 달링을 죽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면, 서평을 쓸 때 나도 종종 이 원칙을 실천에 옮기기도 하는데, 책을 읽는 동안 이 부분이 너무 좋아서 꼭 서평에 써야겠다고 메모해놓고도 다 완성된 서평에서 사족 같이 느껴져 빼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 서평에도 있는데, 이런 부분이다.)
'내' 이야기인 듯하지만 '네' 이야기일 수도 있게 하는 글이 공감을 얻는 글입니다.
『퇴고하는 법』, 80쪽
『퇴고하는 법』에서 작가는 "다시 질문하기"라는 방법을 조언한다. 글을 앞에 두고 크게 4가지 질문을 던져보라는 것이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명료성), 이 질문은 곧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가와 맞닿는다. 또한 "독자가 따라올 수 있는가?" (범위), "글의 재료인 주장, 근거, 사례 등이 적절한가?"(조직), "독자들이 이해하기 적절하게 쓰여 있는가?"(어조) 등이다. 퇴고할 글을 앞에 두고 한 번쯤 되새겨보면 좋을 듯한 질문들이다.
접속사에 대한 부분도 흥미롭다. 사실 나는 접속사와 부사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는데, 고치려고 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얼마 전에 영화 리뷰 쓰기 수업에서도 들었던 말이 있는데, "그러나", "하지만"과 같은 부정 접속사가 아니라면 모든 접속사는 부수적인 것이라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맞는 말인 듯하다. 접속사는 일종의 못 같은 것이어서 못 없이 목재끼리 아귀를 잘 맞춰서 맞물리게 하는 게 더 단단하고 정교한 글을 쓰는 기술이라고. 접속사가 없어도 되게끔 문장을 이어나가는 것이 좋은 글이라는 말인데, 그 비유가 적확하게 머리에 그려져 오래 남았다. 『퇴고하는 법』에서도 접속사를 비롯한 부사의 남발을 경고하며 이를 다듬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퇴고는 언제 끝이 나는 걸까? 아무리 고치고 고쳐도 완벽한 글이라는 건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처럼 멀게만 느껴질 뿐인데 말이다. 앞서 읽었던 김보영 작가의 『SF작가의 사유와 글쓰기』에서 빌려와 볼까.
말하자면 지금 쓰는 소설이 지겹고 지긋지긋해서 다시는 쳐다보기도 싫을 때는 아직 다 쓴 것이 아니다. 반대로 종일 그 소설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고칠 것이 하염없이 새로 떠오르고, 이러다가는 이 소설을 영원히 붙잡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을 때는 끝난 것이다.
김보영, 『SF작가의 사유와 글쓰기』, 172쪽
『퇴고하는 법』에서도 비슷한 일화가 등장한다.
이러다가 죽을 때까지 투고를 못 하겠다 싶어서요
(…)
"투고는 To-go다!" 쓴 글이 "나를 떠나는 것", "내 집을 떠나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는 말을 들으며 글을 쓴다는 것과 글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퇴고하는 법』, 19쪽
퇴고가 하기 싫어서 거들떠보는 마음 상태는 "퇴고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상태"이고, 이대로는 영영 퇴고를 끝내지 못할 것 같다는 마음 상태는 "퇴고를 이제 그만 해야만 하는 상태"라는 조언이 서로 맞닿는 듯하다. 이것 역시 일종의 "킬링 유어 달링"과 비슷한 게 아닐까. 더 붙잡고 싶어도 과감하게 놓아주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무딘 칼은 팔면 안 돼요."
세상에 내놓는 글이라면, 그 안에 담긴 생각은 어느 정도 벼려져 있어야겠지요. 그것이 완벽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실하게 쓴 흔적, 끝까지 의심해 본 흔적, 쉽게 넘어가지 않으려 한 흔적…… 어쩌면 글의 완성도는 이런 흔적에서 드러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퇴고하는 법』, 131-132쪽
책의 끝부분에 나오는 문장인데, 킬링 유어 달링과 함께 가장 이 책에서 인상깊은 부분이었다. 나도 이제 막 원고 수정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냥 대충해서 넘길까, 하는 생각도 들었던 탓이다. 하지만 이 문장을 읽고 나자 조금 더 정신을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누군가는 돈을 주고 살 테니까, (그게 그저 도서관이라고 할 지라도) 무딘 칼은 팔면 안 된다. 세상 사람들은 다 모른다고 해도, 적어도 나만큼은 그게 무딘 칼이라는 걸 알테니까. 지금 시기에 이 책을 읽은 게 다행이란 생각과 함께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