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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47
전효원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가시적인 것들의 가시화
전효원 작가의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을 읽었다. 마장동 축산시장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처음인지라 흥미로웠다. 전효원 작가의 소개 문구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잘 벼려낸 칼을 쓰는 직업을 갖고 있으며, 손에서 칼을 내려놓은 동안에는 글을 쓴다." 그래서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에 묻어 있는 마장동 축산 시장의 생생한 현장이나, 도축 과정의 면밀한 묘사를 통해 짐작하건대, 아마도 전효원 작가가 축산시장에서 일하리라 생각했다.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니 과연 그랬다. 현업자가 아니고서야 나오기 어려운 핍진성이었다. 또한 작품에서도 언급되듯이 같은 마장동 축산 시장 내에서 차별이 존재한다는 점(육류, 내장, 기름, 칼갈이 등의 일종의 계급 구조)은 내부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점이다.
"그랬다니깐용. 백인들 사이에서 차별당한 거야 말할 것도 없고요. 한국에서도 클래식 음악 쪽에 워낙 쟁쟁한 집안 애들이 많잖아요. 저야 옛날 말로 백정 딸내미고요. 게다가 사실 마장동 시장 내에서도 내장은 약간 그런 게 있거든요. 치란도 그렇지 않아요? 마장동이라고 하면 한우 등심, 갈비, 아니면 삼겹살 같은 고기류를 떠올리지 곱창이나 대창을 먼저 생각하진 않죠. 내장류는 공식 명칭이 부산물이에요."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 93쪽
상상의 나래를 좀 더 펼쳐보자면, 아마도 개인적으로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 내의 민수 삼촌이라는 인물이 작가 본인의 자캐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사실 처음에 이름을 들었을 때는 남성일거라고 생각 못했다. 그래서 내가 그린 이미지 속의 작가는 이두박근이 매력적인, 도축 칼을 잘 쓰는 여성이었다……. 또한 내 생각보다도 나이가 좀 있으셔서 놀라웠다.
* * *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은 재밌다. 처음부터 끝까지 막힘없이 읽어나갔다.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핵심 동력은 다름 아닌 주인공 "부응옥란"이다. 유약해 보이는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어 아이를 낳고, 김제에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시어머니와 맹랑한 딸을 키우는 베트남 여자. 뽀글머리와 꽃무늬 옷을 고수하지만, 한국어 실력과 발음만큼은 송혜교를 똑닮은 시골 여자. 평소에 범죄 드라마를 즐겨 보며, 자신은 이미 한국 국적을 취득했으나 다른 이주 노동자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무대포 성격까지 지녔다. 근래에 읽었던 작품에 등장한 인물들 중 이처럼 입체적인 인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은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내장을 취급하는 사장의 딸 "김유정"이 중국인 이주 노동자이자 자신의 애인인 "문소평"을 찾아달라고 "부응옥란"을 찾아오면서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다.
등장 인물이 한 명씩 차례대로 용의선상에 올랐다가 의혹이 벗겨지거나 강화되는 전형적인 추리극의 형식을 띤다. 제목인 "니자이나리"는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뜻이라고 한다. 제목과 표지, 작중 배경은 어쩐지 영화 <범죄도시>를 떠올리게끔 한다. 이에 대해 소설 내에서도 자조적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인물들의 강렬한 캐릭터성 때문에 이런 부분이 얼마간 중화된다. (다만, 이 점이 나에게는 다소 아쉬웠는데, 나는 제목이나 소재만 보고는 <범죄도시>처럼 좀 더 어둡고 딥한 범죄극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부응옥란은 평소엔 한국말에 능통하지만, 불리할 땐 한국말을 모르는 척 굴기도 할 정도로 능청맞고 유쾌하다. 김유정 역시 "넹"과 같은 애교 섞인 말투를 구사하며 분위기를 둥글게 만든다. 게다가 속담과 사자성어를 좋아하는 정재훈의 캐릭터성도 눈에 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남는다. 우선 부응옥란의 강렬한 캐릭터성이 사건 전개의 개연성에 집중도를 떨어뜨린다. 부응옥란은 작중 내내 결코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는다. 마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참전용사의 아우라를 지닌다. 억척스럽다는 전반부 묘사에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체를 발견하고 나서도 지극히 덤덤해서 의아하다. 그것도 연속으로 두 번이나 발견하게 되는데 말이다. 그런 반응은 직업적으로 시신을 자주 보게 되는 인물에게나 어울릴 법하다.
게다가 최종전 국면에 이르러 누군가에 의해 냉동창고로 나가게 되는데, 나는 이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응옥란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라면,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이 위험한 장소에서 단 둘이 보자는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나갈 리 없다. 아무리 억세고 똑똑하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여성이고, 그녀를 불러낸 인물 역시 산전수전 다 겪어본 전사가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정재훈의 캐릭터에 대해서도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정재훈이 용의선상에 오르게 되는 이유는, 그가 갑작스럽게 부응옥란과 김유정을 돕지 못하게 됐기 때문인데, 추후에라도 그때 왜 그랬는지는 밝혀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정재훈이 누명을 벗는 장면은 어딘지 모르게 얼렁뚱땅 지나가는 장면이다. 다소 클리셰적인 사연을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부응옥란이 그를 용의선상에서 제외하는 건 다소 논리적이지 못하다. (물론, 직후에 리본 아줌마가 증언을 해준 덕에 혐의를 벗기는 하지만 그 전에 이미 사연을 듣고 부응옥란은 정재훈을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용의 선상에서 배제해버렸다.)
또한 결말의 진범을 잡는 부분도 의문이다.
"진범을 진범으로 확정지을 수 있는 증거가 나왔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소설 안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부응옥란이 녹음하고 있는 줄 알고 있던 진범은 범행을 자백하지도 않았다. 부응옥란이나 김유정이 가지고 있는 증거라곤 다잉 메세지나 심증 뿐이다. 다잉 메세지는 그다지 위력을 발휘하지도 못한다. 이연화 사건이 다른 사람의 범행으로 마무리된 걸 보면, 진범이 DNA를 남길 정도로 어수룩한 것 같지도 않다. 이 결말은 충격적이긴 했지만, 꼭 그만큼 현실성이 없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마장동 축산시장에 대한 생생한 묘사만큼이나 작품의 중심축인 사건의 해결에 좀 더 심혈을 기울였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나아가 작품 전체에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큰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작가는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을 통해서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실태에 대해서 고발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서 소설을 쓴 것이다. 하지만 종종 그 욕구가 소설이라는 외형을 튀어나가려고 하는 지점들이 존재했다. 그때마다 내가 지금 소설을 읽는 것인지, 아니면 르포르타주를 읽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사실? 이주민들에게 사실이라는 단어만큼 큰 함정도 없답니다. 사실을 밝히는 것만으로 누명을 벗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특권인 줄 모르죠? 사실이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거야. 뭐, 아가씨는 해외 생활을 오래 해서 사회 분위기를 더 모를 것 같긴 하지만."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 41쪽
물론,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은 전효원 작가의 첫 장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런 아쉬운 점들이 보이는 것 같다. 아쉬운 점이 있지만 이게 이 작품 전체를 폄하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전부 충분히 개선될 수 있는 지점처럼 보여진다. (고백하건대, 나는 읽은 책에 대해선 전부 서평을 작성하진 않는다. 정말로 형편이 없거나 쓸 말이 없는 작품은 리뷰를 안 쓴다. 아니, 못 쓴다.)
어쨌든,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을 막 덮은 내 손엔 『경성 환상 극장』이 있다. 이건 경성이라는 소재에 끌려서 샀는데, 공교롭게도 이 작품집 안에도 전효원 작가의 글이 있다. 전효원 작가의 다음 글을 읽으러 가기 위해 이만 리뷰를 마친다.
도대체 왜인지 몰라도 진심이란 건 당사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들었을 때 더욱 강하게 마음을 뒤흔든다.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 1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