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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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단의 과거, 현재, 미래





소설가 장강명도 좋고, 방송에 나오는 장강명도 좋지만, 에세이스트 장강명은 독특한 매력이 있다.


칼로 무를 자르듯이 명쾌하게 분류할 순 없지만, 개인적으로 느껴온 바 소설가의 에세이는 의외로 시를 닮는다. 반대로 시인의 에세이는 소설적인 경우가 많다. 나는 이러한 서로 상반된 경향성을 발견할 때마다, 서로가 평소에 쓰지 않는 장르에서 자연 발생하는 갈증이 아닌가 짐작한다.


그러나 장강명의 에세이는 그의 소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첫 르포인 『당선, 합격, 계급』에서도 밝혔듯이 기자로서의 글쓰기가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소설도 건조하고 냉정한 문체로 이루어져 있고, 그의 르포르타주 역시 직관적이고 사실을 전달하고 주장을 펼치는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장강명 작가를 딱 한 번 직접 본 적이 있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북토크에서였다. 아마도 2015년의 가을, 강남이었던 것 같다. 이때 나는 그 자리에서 구입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 사인을 받으며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때 당시 문단에서는 신경숙 표절 사태와 성비 사건으로 인하여 '문단 권력' 논쟁이 한참 진행 중이었다. 논란의 중심에 있던 출판사 문학동네에서는 계간 <문학동네>를 통해 <한국문단의 구조를 다시 생각한다>라는 제목으로 좌담을 열었다. 김도언, 손아람, 이기호, 장강명, 신형철(사회)이 참여한 좌담에서 장강명 작가는 그맘때쯤 황금가지에서 발간된 『이웃집 슈퍼히어로』라는 책에 대해서 언급했다. 이 엔솔로지에는 진산, dcdc, 좌백, 김수륜, 김이환, 이수현, 듀나, 김보영, 이서영 작가 등이 참여했다. 개중 좌백 작가가 쓴 「편복협 대 옥나찰」이 오래 기억에 남는데, 슈퍼맨과 배트맨을 음차하여 이름을 바꾸고 무협 세계관으로 쓴 작품이다.


계간 <문학동네>의 좌담도 읽었고, 『이웃집 슈퍼히어로』도 읽었던 나는 북토크 후 사인을 받는 자리에서 장강명 작가에게 질문을 했다. 대충 이런 질문이었다.


"<문학동네> 좌담에서 『이웃집 슈퍼히어로』 후속작이 나오면 참여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언제쯤 나올까요?"


장강명 작가는 신기하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제 주변에 계간지랑 『이웃집 슈퍼히어로』를 같이 읽는 사람은 못 봤는데 신기하네요."


계간지는 주로 문단 문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이 읽고, 『이웃집 슈퍼히어로』는 장르소설 애호가들이 읽을 법한 책이어서 그런 것이리라. 계간지의 경우에 학부 시절 교수님께서 계간지 하나는 구독해야 한다고 하셔서 구독했던 것이다. 『이웃집 슈퍼히어로』는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사서 읽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장강명 작가가 정작 내 질문에 해준 대답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 문답 외에도 이 북토크는 『당선, 합격, 계급』과도 관련이 있다. 북토크에서 장강명 작가는 "등단 제도에 관한 르포를 쓰고 있다"고 말하며 설문지를 돌렸다. 그렇다. 나도 『당선, 합격, 계급』에 나오는 몇 개의 항목에 응답을 제공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책을 샀다.


하지만 그즈음, 나는 문학 자체에 냉담한 편이었고 그래서였는지 등단 제도에 대한 관심도 많이 없었다. 산다 해도 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장강명 작가의 책이라는 이유로 구매했다. 왜냐하면, 그 북토크에서 사서 읽었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한동안 장강명 작가의 신작은 일단 다 구매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당선, 합격, 계급』에서 지적하는 간판효과다. 장강명이라는 이름만으로 일단 샀으니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장강명 작가가 쓴 모든 책을 구매하진 못했는데, 일단 문학에 흥미를 잃었기도 하거니와 장강명 작가는 게으른 나에겐 대단한 '하드워커'였다. 사둔 책을 읽기도 전에 신간 알림이 왔다.)


* * *


한국 소설만 놓고 보았을 때, 2015년은 "장강명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백』으로 2011년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한 후, 2015년에만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을, 『댓글부대』로 4·3평화문학상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다. "또 장강명이야?" 라는 반응과 "진짜 대단하다."라는 반응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나는 이중 『열광금지, 에바로드』를 제외하고는 다 읽어봤다. 『표백』은 그저 그랬고, 『댓글부대』는 재밌었다. 그래서 영화도 봤는데 영화는 실망스러웠다. (원작을 읽을 때, 흑막 회장이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는 장면이 가장 강렬해서 영화를 볼 때도 이 장면을 어떻게 연출했을까 기대했는데 안 나왔다. 애당초 각색이 많이 되기도 했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인생작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장강명 작가의 전체적인 작품 성향에서 가장 동떨어져있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한다.


장강명 작가는 『당선, 합격, 계급』에서 "간판"이 주는 효과, 그리고 간판이 만들어내는 "성"을 비판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당선, 합격, 계급』을 읽을 때도 일종의 간판 효과가 작용했다고 본다. 장강명 작가가 신문 기자 출신이라는 점에서 일차적인 신뢰가 있을 것이고, 나아가 유수의 문학상을 거머쥔 당사자이기에 독자들이나 취재원들이 더 신뢰를 가졌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선, 합격, 계급』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취재하여 문제의 원인을 추적해나갈 수 있었다고 보인다.


『당선, 합격, 계급』에서 장강명 작가는 90년대 이후 생겨난 "장편소설공모전"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등단 제도를 고찰한다. 이를 위해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있었던 과거 제도부터 시작하여 현재 대기업들의 공채 시스템, 그리고 로스쿨 문제 등을 취재한다. 모든 제도에는 명과 암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공채 제도는 제너럴리스트를 뽑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반대로 스페셜리스트를 뽑는 데는 제약이 생긴다. 문제는 "장편소설공모전"이 대상으로 하는 소설가, 넓은 의미의 예술가는 엘리트들이자 스페셜리스트 기질이 크다는 것이다.

장편소설공모전이 이렇게 우후죽순으로 생긴 이유는, 그게 여러 영역의 이해관계자들에게 모두 좋은 제도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초창기에는 말이다.


『당선, 합격, 계급』, 48쪽


장편소설공모전의 경우, 등단을 꿈꾸는 작가에는 당선과 동시에 상금과 함께 단행본 출간의 기회가 주어진다.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은 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하기에 단행본이 나오려면 청탁을 2~3년은 꾸준히 받아야 한다.) 출판사의 경우, 양질의 원고들을 확보할 수 있으며, 문학상이라는 타이틀을 바탕으로 마케팅 포인트를 잡을 수 있다. 독자의 경우, 수없이 많은 책들 중에서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간판이 주는 권위에 안심하고 책을 고를 수 있게 된다.


대표적인 문학상을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들의 신념도 인상적이었다. "오늘의 작가상"을 운영하는 민음사의 창업주 고 박맹호 회장은 "작가들이 돈을 벌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오늘의 작가상"을 제정한 70년대 당시에는 책의 판매가 외판원들을 통해 "전집"을 위주로 돌아갔기 때문에 작가들이 단행본을 낼 기회가 마땅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행본을 낼 수 있는 상을 제정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이문열 작가의 대표작인 『사람의 아들』이 세상에 나왔다.


문학동네의 창업주 강태형 전 대표는 "작가들이 장편을 써야한다"고 생각했고, 이에 장편소설 공모전을 열었다고 한다. 이 공모전에서 수상한 김영하, 은희경, 박민규, 천명관 작가는 한국 문학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장강명 작가는 한겨레문학상와 수림문학상 심사를 맡은 경험도 『당선, 합격, 계급』에 가감없이 적었다. 독자 입장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문학상 접수 마감일 취재 풍경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작가 스스로도 그날 풍경이 흥미롭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한겨레출판사 측에서 심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166쪽)


또한 본심 심사는 너무나도 치열하게 진행되었다고도 밝혔다. 심사위원들이 제각각의 문학적 취향과 문학관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합의에 이르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대목들은 지망생들이 우려하는 형평성, 공정성, 문단 카르텔 등에 대한 우려를 일정 부분 씻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대놓고 드러난 차별은 없더라도, 보이지 않는 차별은 존재하는 듯하다.


심지어 어느 매체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느냐, 거기에 대한 영향도 큰 것 같거든요. 똑같이 문예지 신인문학상 출신이라도 어떤 문예지냐를 따지는.


『당선, 합격, 계급』, 213쪽



창비장편소설상을 받기 전에 있었던 일인데, 등단 작가들하고 나란히 원고를 게재했는데 다른 사람은 다 '소설가'라고 쓰는데 저는 '작가'라고 적더라고요. 작가가 비하의 의미는 아닌데, 당하는 입장에서는 왜 나만 표기가 '작가'라고 돼 있나, 싶죠. '너는 정식 소설가가 아니다' 라는 말을 드는 기분? 2등 시민인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소설가 정세랑)


『당선, 합격, 계급』, 279쪽



지금은 넷플릭스에서 드라마화도 된 『보건교사 안은영』을 쓴 정세랑 작가 역시 "창비장편소설상"을 받기 전에는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인지 몰라도 여전히 대다수의 지망생들은 문학상이라는 문단이 주는 합격증을 받고 싶어한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문학에 대한 소신을 잠시 꺾어두고서라도 일단 합격하고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공모전용" 소설을 쓴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 중에도 이런 식으로 등단작과 그 이후에 쓰는 작품의 결이 확연히 다른 작가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심사평에는 만날 "신인다운 패기를 보고 뽑았다." 이렇게 적혀 있는데 저희는 그거 보고 비웃거든요. 이게 무슨 신인다운 패기야, 하면서. '젊고 새로운 감각' 그런 말들도요. 제가 젊어서 젊은 대로 쓰면 되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이걸 보면 젊다고 생각하겠지?' 그런 걸 써야 등단하게 되는 거 같아요.


『당선, 합격, 계급』, 223쪽


그렇다고 해서 등단제를 폐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어떤 지망생이나 독자들은 투고 제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데, 이는 <해리포터 시리즈>가 준 환상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의 원고가 수차례 반려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출간하게 된 계기에 대해선 『당선, 합격, 계급』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어린이용 소설로는 지나치게 길었다. 대사가 너무 적고 지문은 너무 많았다. 아이들은 점점 더 책을 안 읽는데 말이다. 게다가 그즈음 아동문학 트렌드는 따돌림 문제 등을 다루는 현실적인 책이었는데,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완전 딴판이었다. 그러면 블룸즈버리 출판사는 왜 조앤 롤링과 계약을 맺었을까? 신생출판사라 아동문학 출간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담당 편집자는 그냥 원고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당선, 합격, 계급』, 135쪽



이런 경우를 본다면, 투고 작품의 희망인 <해리포터 시리즈> 역시도 출간에 엄청난 운이 개입했음을 알 수 있다. 투고는 해당 작품을 읽은 편집자 한 명에게 전적으로 작품의 운명을 맡기는 셈이지만, 공모전은 같은 작품을 여러 명의 심사위원들이 논의할 여지가 있다는 점이 좀 더 나을 수도 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투고 작품으로 성공한 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운데, 『82년생 김지영』 말고는 잘 알려진 것이 없다.



* * *



한동안 독자, 출판사, 작가 모두에게 좋은 제도였던 "장편소설공모전"은 유일한 기회의 장이 되어버림으로써 부작용을 낳았다. 지망생은 물론이거니와 기성 작가들도 "장편소설공모전"에 도전한다. 근래 "장편소설 공모전"을 통해 등단한 신인 작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상금과 단행본이 주는 매력에 신인, 기성 작가들은 계속 지원하게 되고, 출판사는 관성적으로 문학상을 유지한다.


물론 이는 장편소설공모전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이를테면, 대표적인 단편소설 문학상인 <젊은작가상>의 경우, 근 몇 년동안 이게 정말 수상작이 맞느냐는 비판도 무수히 들어왔다. 한국 문학을 읽는 독자들과 한국 문학을 만드는 출판사의 온도 차가 있다는 뜻이다.


현재 남들이 선망하는 간판을 부여하는 기관은 몇몇 문학 출판사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취향 공동체로 간주한다. 비슷한 '문단문학적' 가치를 추구하는 문인들이 동인을 이루고, 자신들의 가치에 맞는 신인을 발굴하며 알리는 행위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비평 행위는 매우 치열하게, 공정하게 이뤄진다고 강조한다.

반명 상당수 작가 지망생과 독자들은 이들을 취향 공동체가 아니라 일종의 인증 기관으로 바라본다. 여기에서 괴리가 발생한다. '이 작품도 충분히 훌륭한데 너희는 왜 인정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내가 보기에는 별로 재미없는데……'라는 취향 공동체 구성원다운 변명은 종종 오만하다거나 시야가 좁다는 반발을 산다.


『당선, 합격, 계급』, 298쪽



이 대목을 읽으면서 "문학과지성사"가 생각났다. 문학과지성사는 김현, 김치수 등을 중심으로 시작된 문학 동인에서 출발한 출판사다. 그래서 그런지, 문학과지성사는 여전히 이런 스탠스를 강하게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게 잘못됐다고는 보지 않는다. 문학과 언어의 전위성, 실험 정신을 강조하는 출판사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꾸준히 기존의 문학 질서와 대립하고, 이를 갱신하여 새 지평을 여는 혁신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이 대목을 읽으며 내가 떠올린 건, 이런 경험이다. 신종원 작가와 김채원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나는 "아, 이건 문학과지성사 스타일인데?"하고 느꼈다. 그리고 출판사를 확인했더니 신종원 작가의 『전자시대의 아리아』와 김채원 작가의 『서울 오아시스』는 모두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책들이었다. 그래서 꼭 그와 마찬가지로 올해 출간될 예정이라는 김기태 작가의 신작 장편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어, 정말? 상상이 잘 안되는데." 싶기도 했다.


일정 부분 한국 소설을 읽어온 독자들에게는 각 출판사가 추구하는 문학적 지향성에 대한 얼개는 있을 것이다. 예외적인 작품들이 튀어나올 수 있다곤 해도, 그 얼개가 그다지 틀린 것 같지도 않다.


독자들의 문예운동은 공모전을 포함해 우리 문학계의 기존 시스템으로는 발견할 수 없거나 묻히기 쉬운 작가들을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서 찾아내고 응원하는 운동이다. 독자들은 늘 그런 일을 해 오긴 했지만, 그 힘을 더 키우고 좀 더 효과적으로 영향력이 발휘되게 활동을 조직하자는 게 나의 제안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모르겠다. 이 책이 나온 뒤 논의가 이어져, 시스템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장치들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오길 기대한다. 뼈대가 되는 것은 '독자의 언어'와 데이터베이스다. 독자들이 출판인이나 평론가와는 다른 주체적인 관점으로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고 의견을 나눠야 한다. 그런 토론 내용을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먼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야 한다.


『당선, 합격, 계급』, 374쪽



장강명 작가는 『당선, 합격, 계급』의 후반부를 통해, 독자들에게 희망을 거는 것처럼 보인다. 출판사, 혹은 문단이 만들어낸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선 독자들의 역할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쉽게 별점을 남기고 평가를 하는 영화처럼 독자들이 서로 책에 대한 평가를 활발히 남겨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책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는다면 명확한 평가를 내리기 어려운 "경험재"이기 때문이다.


문단도 명확한 형체가 없는 상상의 공동체에 가깝긴 하지만, 독자는 그보다 더 하다. 출판사 입장에선 1,000권도 안 팔릴 거라고 예측했던 책이 증쇄를 거듭하기도 하며, 호응을 얻을 줄 알았던 작품이 1쇄도 다 못 팔 수도 있다. 영화의 관람객들도 마찬가지다.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이 흥행할 것이라고 자신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강명 작가는 독자들이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활발하게 평을 남기고 그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독자들의 니즈를 생산자/공급자인 출판사 측에서 파악하기 용이해질 것이고, 다른 독자들 역시 자신이 미처 몰랐던, 또는 알았어도 쉽게 손이 나가지 않던 책을 무람없이 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에는 주로 트위터(X)의 독서계, 그리고 디시인사이드 독서 갤러리에서 주로 이런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읽을까 말까'라고 망설이는 사람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는가, 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서평 문화는 여러 가지로 아쉬운 점이 많다. 그 내용을 들여다봐도 그렇다.

우선 문학평론가들의 글은 일반 독자에게 대개 도움이 안 된다. 일단 너무 어렵고, 쉽게 찾을 수도 없다. 다루는 폭도 좁아서, 대체로 문단문학 작품으로 영역이 한정돼 있다. 그나마도 썩 솔직하지 않다.


(…)


또 나는 언론 서평 역시 별로 솔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새로 나온 한국 소설에 대한 악평을 신문에서 본 일이 있는지?


『당선, 합격, 계급』, 330-331쪽




장강명 작가는 "님들이 좀 알아서 해보셈"이라고 말하고 무책임하게 손을 털지 않았다. 이 책이 나온 뒤 장강명 작가는 아내와 함께 <그믐>이라는 커뮤니티를 직접 출범했다. 독자들이 모여서 함께 책을 읽고 평을 나누는 사이트다. 사이트가 생겼을 때부터 몇 번 들어가 보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책을 같이 읽는다는 행위가 어색해 잘 이용해보지는 못했다.


2017년에 이 책이 나온 이후로 햇수로 10년이 흘렀다. 슬프게도 이 책을 읽는 2026년의 상황도 이 책이 묘사하는 2016~2017년과 그다지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소설가 지망생들은 문예지나 신춘문예에 매달린다.


그 사이에 한국 문학의 변화 중 두드러지는 현상을 꼽아 보자면, 우선 독자와 쓰는 사람이 여성 비중이 커졌다는 점이다. 올해 이상문학상이나 젊은작가상만 해도 전원이 여성 작가다. 냉정하게 장강명 작가 이후로 대형 신인 작가 중에 남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김기태 작가가 분전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내가 모든 작가들이 발표하는 소설을 샅샅히 찾아 읽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죄송하다.)


그리고 쓰는 사람이 읽는 사람보다 많아졌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이는 어쩌면 AI의 발전으로 인한 착시 현상일 수도 있다. 또한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 같은 베스트셀러는 40만 부나 팔리는 걸 보면, 아직은 읽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소설을 쓰는 사람이 절대 40만 명이나 될 리는 없으니까.


현재 장강명 작가는 2023년에 출간했던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의 후속편을 작업하고 있다. 그 연재분을 알라딘이 운영하는 투비컨티뉴드에 올리고 있다. 생각날 때마다 챙겨보는데 흥미롭다. 역시 장강명 작가는 에세이를 잘 쓴다.


혹여나 장강명 작가가 여력이 된다면, 『당선, 합격, 계급』에도 후속편을 써주길 바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 사이에 꽤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전에 이미 사둔 『먼저 온 미래』를 읽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또 미루다 보면, 『당선, 합격, 계급』처럼 10년 뒤에 읽을지도 모른다…….

장편소설공모전이 이렇게 우후죽순으로 생긴 이유는, 그게 여러 영역의 이해관계자들에게 모두 좋은 제도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초창기에는 말이다. - P48

심사평에는 만날 "신인다운 패기를 보고 뽑았다." 이렇게 적혀 있는데 저희는 그거 보고 비웃거든요. 이게 무슨 신인다운 패기야, 하면서. ‘젊고 새로운 감각‘ 그런 말들도요. 제가 젊어서 젊은 대로 쓰면 되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이걸 보면 젊다고 생각하겠지?‘ 그런 걸 써야 등단하게 되는 거 같아요. - P223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어린이용 소설로는 지나치게 길었다. 대사가 너무 적고 지문은 너무 많았다. 아이들은 점점 더 책을 안 읽는데 말이다. 게다가 그즈음 아동문학 트렌드는 따돌림 문제 등을 다루는 현실적인 책이었는데,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완전 딴판이었다. 그러면 블룸즈버리 출판사는 왜 조앤 롤링과 계약을 맺었을까? 신생출판사라 아동문학 출간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담당 편집자는 그냥 원고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 P13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읽을까 말까‘라고 망설이는 사람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는가, 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서평 문화는 여러 가지로 아쉬운 점이 많다. 그 내용을 들여다봐도 그렇다.
우선 문학평론가들의 글은 일반 독자에게 대개 도움이 안 된다. 일단 너무 어렵고, 쉽게 찾을 수도 없다. 다루는 폭도 좁아서, 대체로 문단문학 작품으로 영역이 한정돼 있다. 그나마도 썩 솔직하지 않다.
(…)
또 나는 언론 서평 역시 별로 솔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새로 나온 한국 소설에 대한 악평을 신문에서 본 일이 있는지?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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