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햇살'만이 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장편소설, 『오직 그녀의 것』, 문학동네



소설가 김혜진의 10번째 소설 『오직 그녀의 것』을 읽었다. 『오직 그녀의 것』은 주인공 '홍석주'의 삶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다. 소설 말미에도 석주가 스스로 복기하듯이, "극적인 사건도, 놀라운 반전도 없는 서사. 개성도 매력도 없는 주인공이 완성해 나가고 있는 그 스토리"(263쪽)에 가깝다. 소설 전반을 훑어봐도, 그나마 드라마틱하고 극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은 "결혼을 포기하는 지점" 정도만 꼽을 수 있다. (이것도 그저 물 흐르듯이 흘러가다보니 사실 그렇게 인상적인 사건이라는 느낌은 주지 못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말해볼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은 세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스토너』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 『스토너』를 읽었지만 좋아하지 않는 사람, 『스토너』를 읽고 인생책으로 꼽는 사람. 세상의 모든 책이 다 그렇겠지만, 『스토너』, 그리고 『오직 그녀의 것』과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책은 이런 호불호가 더 극명하게 갈리는 듯하다.


남들이 보기엔 의미도 없어보이고, 그다지 중요해보이지 않은 일에 두 소설의 주인공, 스토너와 석주는 강하게 매료된다. 그리고 끝내 한 번뿐인 삶을 그 일에 내던진다. 이들의 여정을 지켜보는 독자는 혼란에 빠진다. 이게 그럴 만한 일인가? 동의하는 사람은 주저없이 그 인물을 사랑하고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스토너』를 인생책으로 꼽는다. 하지만 끝끝내 동의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책을 그저 지루한 책으로 여기게 된다.



김혜진 작가의 소설 『오직 그녀의 것』은 추천사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응답하라 1988>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홍석주가 처음 편집일을 시작한 시기가 90년 대 어간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또한 동시에 한 인물의 20대부터 60대까지 장장 40 여년을 차분히 조망해간다는 점에서 <폭싹 속았수다>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석주는 소심하고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않는 인물이다. 삶을 통틀어, 그녀답지 않은 행동을 할 때가 있는데, 그 첫시작이 '소설 창작수업'을 청강한 일이었다. 인기 수업인지라 들을 수 없게 되었는데, 석주는 무작정 교수를 찾아가 청강을 부탁한다. 처음에 거절했던 교수도 이내 석주에게서 무언가를 느낀 듯이 청강을 허락한다. 석주는 교수(를 비롯한 다른 선배 편집자들)의 호의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를 소설 말미에 깨닫는다. 이 수업이 종강하고 석주는 교수에게서 책을 한 권 받는다. 그리고 이 때 느낀 감정은 석주의 인생 항로를 완전히 바꾸어버린다. 





창을 통과한 햇살이 푸르스름한 표지의 한 부분을 환하게 비추었다.



(중략)



추운 날씨였지만 한기를 느낄 수 없었다. 쌀쌀한 겨울의 정오 속에서 꺼지지 않는 어떤 강력한 온기를 손에 쥔 사람은 자신 하나뿐인 것 같았다.


25~27쪽




외부의 풍경을 묘사함으로써 인물의 내면을 은근히 드러내는 기법은 현대 소설이라는 형식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직접적인 감정 표현에서 벗어나 은유적으로 인물을 보여줄 수 있는 세련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전위가 시간이 흐르면 그 빛이 퇴색하듯이, 이제는 다양한 도구 중 하나로 여겨질 뿐이다. 하지만 김혜진 작가는 이 소설에서 그 도구를 가장 중요한 주인공의 대변자로 삼은 듯하다. '햇살'은 홍석주의 인생 전반에 걸쳐 등장하면서, 석주가 겪는 희로애락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구절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 오층짜리 건물이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빛났다. 건물이 스스로 빛을 뿜어내는 듯한 그 찰나의 모습은 석주가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출근길에 꽤 적응한 뒤에도, 회사생활에 제법 익숙해진 뒤에도 처음 보는 것처럼 놀라운 데가 있었다.


39쪽.




식사를 시작할 떄엔 오기서의 검은 구두를 환하게 덮고 있던 햇살이 미세하게 거리 쪽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56쪽.




날이 개는 모양인지 가느다란 햇살이 책상 끄트머리에 걸려 있었다.


66쪽.




창을 통과한 햇살이 그의 구부정한 뒷모습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97쪽.




두 사람은 애매한 말들을 주고받다 아무런 소득 없이 카페를 나왔다. 오후의 강한 햇살이 두 사람 발밑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127쪽.



화창했던 날씨는 흐려졌고 오후가 되자 급격히 어두워졌다.


247쪽.




그녀는 창을 통과한 햇살이 조금씩 책상 안쪽으로 밀려드는 것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이윽고 햇살이 그녀가 검토중인 원고 뭉치의 모서리를 환하게 만들었다.


264쪽.



소설은 애써 석주와 거리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저 그녀를 관찰하는 카메라 렌즈가 되겠다는 듯이. '그녀'라는 호칭이 주는 다소 딱딱한 뉘앙스와 작가가 서술하는 석주의 내면은 어느 정도 정제된 언어와 표현들이다. 직접적이거나 절절하게 와닿지 않는다. 이 거리감이 소설 전반의 고요하고 잔잔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거리감과 더불어 일견 평평해 보이는 서사는 때때로 독자로 하여금 몰입감을 느끼기 어렵게 만든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석주라는 주어를 지워버린다면, 편집자의 에세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김혜진 작가는 '햇살'에게 더 큰 역할을 부여한 것처럼 보인다. 석주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모든 걸 다 말해주는 것보다 햇살이 석주의 감정과 생각을 더 내밀하게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석주가 연애에서 삐걱거릴 때 그동안 자주 등장하던 햇살에 대한 묘사는 소거되어 있다. 그 연애의 결말을 암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사람이 있고, 그저 인생이 흘러 가는대로 사는 사람이 있다. 마음 가짐의 문제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인생은 너무 복잡하다. 인생을 긍정하는 정도의 차이쯤이라고 적어보고 싶다. 우리 앞에 놓은 삶은 석주처럼 오직 자신의 것을 획득해 내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대단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그 여정은 오직 석주에게 속한 것이었고 그녀만의 것이었다.


264쪽.




그렇다면, 무엇이 석주만의 것이었을까. 다 읽고나서 든 생각은 이렇다. 오직 햇살만이 그녀의 것이었다. 햇살이 석주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감정의 변화를 느낄 때마다 등장하는 점에서 유추해볼 수 있지만, 햇살이 가지는 속성 때문이기도 하다. 햇살은 손에 쥘 수 없다, 당연하게도. 그리고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다면 평소엔 잘 느끼기도 어렵다. 또한 누군가가 명확히 소유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같은 햇살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눈이 부셔서 짜증이 난다고 말할 것이고, 다른 이는 따뜻해서 사랑스럽다고 말할 것이다. 



주어를 한 번 바꿔볼까. 햇살에서 문학으로. 


문학은 누군가가 명확히 소유한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같은 작품을 읽고도 서로 상반되는 해석을 내놓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결국, 석주는 그 햇살 같은 문학을 사랑했던 게 아닐까. 석주가 아래와 같은 사랑을 준 대상은 그 누구도 아닌 문학이었다. 



세상보다 늦되고, 허무해보이기까지 하고, 자꾸 마음을 다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그 언저리에라도 있고 싶은 것. 그럼에도 그 곁에 머물고 싶어지는 것. 그게 사랑이 아니면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석주가 아는 사랑은 문학을 통해 배운 것이어서 비현실적이고 불완전했다. 그녀는 사랑이 한 사람의 삶을 전복시킬 수 있음을 알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지 못했다. 사랑은 그것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선택적으로 주어지는 특권 같았고, 허구의 형식 안에서만 존재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기도 했다.


144쪽.


그 무렵 석주는 자신의 취향을 조심스레 점검하기 시작했다. 규한과 비교하면 자신이 애정하는 글들은 어딘가 구태의연하고 무미건조해 보였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과는 무관하게 늘 같은 자리에 머무는 듯했고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런 고민이 조바심이 되고, 불안으로 번질 때도 있었다.


168쪽.


좋아하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해나가게 되거든요.예전에 제 사수가 그러더군요. 뭘 좋아한다는 게 원래 그런 거라고. 더 좋아하고 많이 좋아할수록 마음 다칠 일이 많다고.


253~254쪽.




출판과 관련된 소설이다 보니 몇몇 현상을 포착한 문장들이 재미있었다. 




어떤 독자들은 좀 늦게 오기도 해요.


132쪽.



저자의 손을 떠난 책은, 독자들의 내면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쓰이고 완성되어가는 듯했다.


187쪽




또한 작중 등장하는 에세이집 『내 마음의 지도를 따라』는 TV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언급하자 판매부수가 훌쩍 뛰는데, 인플루언서의 입김이 큰 영향력을 끼치는 작금의 출판 현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끔 한다.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문장들이 매끄럽고 정갈해서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 역시 큰 장점이다. 



다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출판계가 지나온 역사에 정통한 이들이라면, 그다지 개의치 않을 수 있겠으나 일반 독자들에게는 '시간대'에 대한 감을 잡기가 어려워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졌다. 작중 저자 안정묵은 故 마광수 작가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러한 일은 거진 20여 년 전의 일이었다. 물론, 한 편의 소설에서 한 사람의 40여 년의 여정을 담아내다보니 그랬을 거라 짐작은 하지만, 시간대가 너무 훅훅 넘어가 작중 인물이 속한 시간대가 어디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또한 종종 어느 대목은 너무 에세이 같기도 해서 소설을 읽는 것인지 에세이를 읽는 것인지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소설을 읽는 것과 에세이를 읽는 것은 독자가 바라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평소에 오타에 대해서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는데, 어쩐지 교정교열로 사회에 발을 디딘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에서 오타를 발견하게 되니 더 눈에 띄는 기분이었다.



골목 안쪽에 차리한 두번째 가게 (16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영도의 판타지 소설 『드래곤 라자』에서는 드래곤을 이렇게 묘사한다. 망각의 축복을 향유할 수 없는, 그래서 그 무엇도 절대로 잊을 수가 없는 불행한 종족. 전지전능한 드래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기억까지 생생히 간직해야 한다. 인간은 드래곤에 비해 훨씬 약하지만, 대신 신에게 망각이라는 축복을 선물 받았다. 생생한 고통도, 잠겨 죽을 것 같은 슬픔도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지고 결국은 잊을 수 있다. 그리하여 망각의 힘으로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도모할 수 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살면 살아진다’는 메세지 역시 우리 인간의 삶이 망각에 빚을 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김금희 작가의 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한 인간이 이러한 기억과 망각의 경계에서 자신을 수리해 나가는 여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소설은 영두가 창경궁의 대온실 수리 공사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맡으면서 시작된다. 표면적으로는 건축 보고서의 작성 과정이 주요 서사이지만, 점차 영두의 내면을 치유하는 작업으로 확장된다. 산아와 스미의 관계, 리사와의 과거, 대온실 설계자 후쿠다 노보루의 삶, 그리고 문자 할머니의 삶이 하나씩 얽히게 되면서 보고서 바깥의 진짜 이야기가 완성된다.




   그러나 영두는 끝내 수리 보고서를 완성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박유진과 이창충이 살아 있었다는 점이 밝혀지며 영두가 기획했던 초기 형태로는 결코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언뜻 영두의 목표는 좌절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완성하진 못했지만, 영두는 자신만의 수리 보고서를 완성할 수 있었다. ‘잊지 않으면 살 수가 없겠구나 싶어 망각을 결심’했던 낙원하숙에서의 기억과 대면하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했다. 대온실 수리보고서 작성을 맡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성과였다.



*



   읽는 내내 소설은 이런 질문을 품고 있는 듯했다. ‘망각된 기억은 반드시 복원되어야 하는가?’ 소설은 이 질문에 있어서 두 개의 상반된 답을 보여준다. 우선 영두를 통해 제시되는 답이 있다. 망각된 기억은 복원되어야 한다는 쪽이다. 낙원하숙 시절의 영두에겐 절박한 믿음이 있었다.




   “사람을 믿는 게 잘못은 아니야. 네 말대로 그렇게 혼자라면 믿어야 살 수 있으셨겠지.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누군가를 믿기도 해.” (102쪽) 



   이 발화에서 영두는 할머니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영두는 이를 통해 마치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는 것처럼 보인다. 상경한 영두는 춘당지의 얇은 얼음 위에 서 있듯 위험한 상태에 놓여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혼자였던 영두 역시 누군가를 믿고 싶었고, 그 대상은 불행하게도 리사였다. 리사가 간간이 보여주는 친절한 면모가 영두에게 기대감을 주었고, 영두는 리사와 친구 또는 자매처럼 지낼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리사는 이 믿음을 배신으로 되돌려준다. 이로 인해 어린 영두는 그 시절 자체를 도려내 버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남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망각을 택한다.


   모든 망각을 축복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축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망각은 좋은 기억들은 남겨둔 채, 고통스러운 기억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잊혀져 가는 것이다. 반면에 영두가 겪은 망각은 ‘좋은 부분을 오려내 남기지 못하고 어떤 시절을 통째로 버리’는 방식으로 수행된다. 일종의 ‘난폭한 망각’이다.


   당연하게도 인생에서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은 물과 기름처럼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결국 상처를 강제로 도려내기 위해서는 그 상처에 붙어있는 좋은 기억들도 함께 버려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종류의 망각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된다. 상처를 입은 초기에 올바른 대처를 하지 못해 겪는 망각의 후유증인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을 지난 시간 속 좋은 기억과 경험을 반추하며 극복해낸다. 난폭한 망각은 이런 가능성까지도 없애며, 나아가 새로운 고통 앞에서 또다시 난폭한 망각을 수행하게끔 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그렇게 된다면, 먼 훗날 돌이켜 보았을 때 인생에 숭덩숭덩 구멍이 나 있는 걸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작 기억할 만한 것은 거의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식으로 망각된 기억은 올바르게 복원되어야 하고 치유해야 한다. 




   하지만 이 후유증을 치유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억지로 묻어둔 과거를 현재로 가지고 와 고통을 다시 직면해야 한다. 그래서 소설의 후반부에 발굴 작업이 등장하는 건 의미심장하다. 발굴은 과거의 기억을 아주 조심스럽게 꺼내어 보고 원래의 의미를 되찾아 주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영두 개인의 차원에서도 일종의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처럼 다가온다.


   영두의 발굴은 산아와 스미의 관계를 통해 과거의 자신과 리사의 관계를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되어, 기억 속에 묻혀 있던 할머니의 진심까지 건져내게 된다. 자신을 돕기 위해 손을 건네주던 그 마음을 말이다. 나아가 낙원하숙에 얽힌 할머니의 진심과 과거에 올바른 의미를 되찾아 주면서 부채의식을 치유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할머니의 과거를 복원하며 영두의 발굴은 종료된다. 꼭 예비한 것처럼 이 직후에 영두는 첫사랑, 순신과 재회한다. 이 애틋하고 귀여운 재회는, 영두가 고통과 함께 망각해야만 했던 그 시절의 빛나는 조각을 성공적으로 복원해냈음을 증명한다.




   이 작품이 더욱 특별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는 망각된 기억에 관해 단 하나의 해결책만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을 보존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탐색하면서 상반된 결론도 제시한다.


   이를테면, 유진의 경우가 그렇다. 소설 내내 과거의 오해를 바로잡아 온 영두는 유진과의 조우에서는 전혀 다른 선택을 보여준다. 유진은 이창충을 은인으로 오해하고 있었고, 영두와 할머니의 관계를 오해하고 있다. 하지만 영두는 유진과의 대화 끝에 이 오해들을 바로 잡지 않기로 결정한다. 이는 누군가에겐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는 일이 더 큰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을 부드럽게 상기시켜 주기 때문에 놀랍다. 이런 경우에는 올바른 과거가 망각 속에 머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이 작품은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우아한 시도를 담고 있다.



*



   슬픈 사실은 살면서 억지로 망각하게 되는 것들 중 대부분은 우리가 ‘너무’ 좋아했던 것들이라는 점이다. 너무 싫어하는 것들은 오히려 어떤 기대도, 믿음도 주지 못하므로 상처를 주진 못한다. 우리에게 불쾌감만 안길 뿐이다. 영두가 낙원하숙을 망각해야만 했던 것도 역설적으로 그 시절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후쿠다 노보루가 포도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장티푸스에 걸려 죽을 뻔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영두가 산아에게 건넨 ‘너무를 조심하자.’는 조언은 분명 인상적이다. 이 문장은 경고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다정하다. 영두의 경험처럼 사랑, 믿음, 기대 같은 감정은 한없는 중력으로 우리를 끌어당기지만, 때로는 그 결과로 고통도 안겨준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감정들을 경계하고 회피하는 삶이 과연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소설 안에는 산아, 영두처럼 ‘너무 좋아하는 것들이 있는 사람’들과 리사처럼 ‘너무 좋아하는 것들이 없는 사람’들이 뒤섞여 등장한다. 산아, 영두는 각각 너무 좋아했던 스미와 리사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두 사람은 주어진 고통을 극복하면서 한층 성장한다. 


   반면에 친구를 곤경에 빠뜨릴 정도로 나름 고군분투했던 리사의 ‘다크’한 삶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아들과 할머니의 낙원하숙에 대해서도 크게 애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나아가 나이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기적이고 밉살맞은 모습을 보여주는 리사는 성장이 결여된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너무’ 좋아했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성숙해질 경험을 놓친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너무 좋아했던 기억은 종종 고통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상처를 굳은살로 바꾸며 성숙해진다. 영두에게 낙원하숙에서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산아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지점은 영두와 리사가 각각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대하는 방식을 통해 대비된다. 영두는 친구의 딸인 산아에게 따뜻한 태도를 보여주지만, 리사는 자식에게마저도 서툰 훈육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또한 우리를 매 순간 무한경쟁의 쳇바퀴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끊임없이 서로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만든다. 심지어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마저도 포기하라고 종용하기도 한다. 이 소설에는 이창충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악역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리사와 장 과장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리사와 장 과장도 선명한 악인이라기보다는 그저 세상의 규칙에 수긍한 사람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쿠다 노보루가 포도뿌리혹벌레와 장티푸스라는 복병 앞에서 포도에 대한 열망을 포기했다면, 창경궁 대온실을 세울 수 있었을까? (물론, 후쿠다 노보루는 가상 인물이지만 말이다.)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타인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그저 ‘다크’한 삶에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너무’를 조심하되, 너무 조심하고는 싶지 않다. 짓궂은 삶은 반복적으로 우리를 실망시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다시 누군가를 믿고 기대해야 한다. 남에게 건넨 기대가 다시 고통으로 돌아오더라도, 언젠가 그 순간들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스스로를 수리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여운이 쉬이 가시질 않았다. 영두는 낙원 하숙에서의 시간을 떠나보낸 것 같았지만, 정작 나는 책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난생처음으로 창경궁으로 향했다. 구름이 낮게 깔려 햇살이 비추지 않던 날이었다. 춘당지를 헤엄치는 잉어와 수면에 닿을 듯 흐드러진 버드나무 사이를 누비는 오리를 보았다. 좀 더 걷자, 철조와 목조가 혼합된 흰색 대온실이 보였다. 외국인 부부가 한복을 입은 채, 프랑스 양식의 정원과 대온실을 배경으로 삼아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국의 의복, 일본인이 지은 서양식 건물과 정원 속 외국인들은 이질적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나무들은 고궁을 세속과 격하려는 듯 소음을 빨아들였고, 간간이 울리는 경적만이 고요를 범했다. 서울에, 그것도 도심의 한복판이나 다름없는 종로에 이런 은밀한 고요를 간직한 곳이 남아 있다니, 그 기묘한 간극의 공존이 새삼스러웠다. 별세계 같았다. 그 별세계에서 산아와 스미가 뛰어노는 모습을 보았고, 아버지를 기다리는 마리코와 유마를 지나쳤으며, 얼어붙은 춘당지 위에서 스케이트 타는 영두와 리사를 본 듯했다. 


   번잡한 도심으로 돌아가기 전, 홍화문 문턱 앞에서 생각했다. ‘너무’를 조심하되, 그것을 피하지는 말자고, 그래서 믿음과 기대에게 기꺼이 또 속아보자고. 낮게 깔린 구름을 헤집고 햇살이 한 줄기 내리쬐었다. 창경궁을 빠져나오자, 이제야 정말로 책을 덮은 것 같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2가지 인생의 법칙 (40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 - 혼돈의 해독제
조던 B. 피터슨 지음, 강주헌 옮김 / 메이븐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혼돈을 건너는 단순한 지혜










조던 B. 피터슨 (Jordan B. Peterson)은 전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현재 토론토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임상 심리학자입니다. 그는 '정치적 올바름(PC주의)'에 대한 비판과 보수주의적 가치관 옹호로 유튜브와 강연 무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음과 동시에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입니다. ‘인터넷 아버지(Internet Father)’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길 잃은 현대 젊은이들에게 강력한 멘토링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은 단순한 명제에서 출발합니다.




"인생은 고통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임에도 피터슨은 다소 불교적이고 비관적이기까지 한 이 명제에서 모든 논의를 시작합니다. 피터슨은 삶의 본질이 혼돈(Chaos,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혼돈의 해독제-An antidote to Chaos'입니다.)임을 인정하되, 그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질서를 세우기 위해 개인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강조합니다. 진화생물학, 신화, 종교, 심리학을 넘나들며, 단순히 위로를 건네는 힐링 에세이가 아니라 "어깨를 펴고 짐을 짊어지라"는 엄격하고 현실적인 12가지 조언을 담고 있습니다.



전세계는 물론, 한국어판은 무려 40만 부 기념 에디션이 나올 정도였으니, 이제는 50만 부 정도의 판매고를 올리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로 많은 젊은이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법칙 1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


법칙 2 당신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하라


법칙 3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나라


법칙 4 당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당신하고만 비교하라


법칙 5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처벌을 망설이거나 피하지 말라


법칙 6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


법칙 7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


법칙 8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라,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


법칙 9 다른 사람이 말할 때는 당신이 꼭 알아야 할 것을 들려줄 사람이라고 생각하라


법칙 10 분명하고 정확하게 말하라


법칙 11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


법칙 12 길에서 고양이와 마주치면 쓰다듬어 주어라











이 책을 권하는 이유









값싼 위로가 아닌 '현실적인 책임감'




대부분의 자기계발서가 "너는 그대로도 충분해"라고 말하며 독자를 위로하려 할 때, 피터슨은 정반대의 길을 택합니다. "네 인생이 비참한 것은 네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이러한 '뼈 때리는' 조언은 나태해진 정신을 번쩍 들게 하며,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 주체적인 힘을 길러줍니다.




다양한 학문을 융합한 깊이 있는 통찰



단순한 뇌피셜이나 경험담이 아니라, 성경의 창세기부터 바닷가재의 신경계, 고대 신화, 칼 융의 심리학까지 방대한 지식을 연결합니다. 예를 들어, '어깨를 펴라'는 조언을 바닷가재의 서열 싸움과 생물학적 기전으로 설명하는 방식은 독자에게 지적 쾌감과 함께 주장에 대한 강력한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행동 지침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 "거짓말하지 말라"와 같은 법칙들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거창한 사회 변혁을 꿈꾸기 전에 내 주변의 작은 무질서부터 바로잡으라는 그의 조언은, 무기력증에 빠진 현대인들이 당장 오늘부터 실행할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변화의 시작점을 제공합니다.







그럼에도 이 책에 남는 아쉬운 점들








지나치게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가치관





피터슨은 위계질서를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현상으로 옹호하고, 전통적인 성 역할이나 엄격한 훈육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시각은 현대의 평등주의적 가치관이나 다양성을 중시하는 독자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으며, 사회적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만 돌린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빠가 많은 만큼 까도 많다고 정리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나 전세계 어디에서나 첨예한 갈등을 이루는 '남녀갈등'에서 어느 한 성별을 지지한다면, 다른 성별들은 자연히 등을 돌리게 되기 마련이니까요.






장황한 서술, 난해한 종교적 메타포





핵심 메시지는 단순할 정도로 명확하지만, 그 근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성경 구절이나 신화 해석이 지나치게 길게 이어지기도 합니다. 기독교적 배경지식이 없거나 서구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저자의 의식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다소 지루하거나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특히나, 이 책의 분류를 심리학으로 해야할 지, 에세이로 해야할 지, 자기계발로 해야할 지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서술의 방식이 내가 그동안 접해왔던 국내 도서와는 크게 달라서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어쩐지 한두 문장이면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중언부언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질서'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주는 피로감





저자는 혼돈을 막기 위한 질서를 강조하지만, 때로는 그 기준이 너무 엄격하여 독자를 숨 막히게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은 이미 삶의 무게에 지친 사람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스트레스가 될 수 있으며, 때로는 유연함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경직된 태도를 유발할 위험이 있습니다.








총평 및 감상






https://www.youtube.com/watch?v=tHc1L4FCdm0





이 책을 읽기 전에 이 영상을 먼저 보았다. 같은 프로그램의 편집본이었던 건 확실한데, 정확히 같은 '쇼츠'는 아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내가 본 영상에선 모든 사람들이 일부의 젊은 남성들을 '인셀'이라고 경멸한다면, 자신만이라도 기꺼이 그들의 편을 들어주고 싶다는 말을 하는 영상이었다.




영상에서도 나오듯이 '인셀'이라는 멸칭이 대두되던 시절이었고, 남성들 역시 여성들을 향해 '한녀', '꼴페미' 등의 멸칭을 남발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런 싸움을 뒤로 제쳐두고서라도, 나는 약자들의 편에 서겠다는 조던 피터슨에게 어떤 울림을 받았던 것 같다.




『12가지 인생의 법칙』의 주요 요지처럼, 세상은 늘 어지럽고 복잡하다. 그리고 이런 세상을 헤쳐나가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다만 그 단순함을 실천하기까지가 지극히 어려울 뿐이다. 피터슨 역시 세상의 문제가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면, 일단 네 방부터 치우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나씩 작은 일부터 해나가보면, 언젠간 더 어려운 문제들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 책은 무기력하고 방향을 잃은 사람에게 "일어서서 싸우라"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비록 저자의 보수적인 시각과 다소 권위적인 태도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더라도, "의미 있는 삶은 책임을 짐으로써 만들어진다"는 핵심 메시지는 생명력이 있다.




자신의 삶이 혼란스럽다고 느끼거나, 멘탈을 단단하게 무장하고 싶은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단, 저자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나의 상황에 맞춰 비판적으로 걸러 읽는 지혜가 필요하다, 모든 책이 그렇듯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영도 작가를 사랑하고 열렬한 팬을 자처하기를 주저하진 않지만, 이번 작품엔 다소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 특유의 아이러니와 언어유희는 더 긴 호흡의 장편 소설 가운데에서 툭툭 튀어나와야 그 매력이 더 극대화된다. 


장편 한 권을 채워서는 다소 지루하고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영도 작가를 사랑하고 열렬한 팬을 자처하기를 주저하진 않지만, 이번 작품엔 다소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 특유의 아이러니와 언어유희는 더 긴 호흡의 장편 소설 가운데에서 툭툭 튀어나와야 그 매력이 더 극대화된다. 장편 한 권을 채워서는 다소 지루하고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