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세대
백온유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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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청산하는 7가지 방법









백온유의 이름을 지난 <젊은작가상> 대상으로 처음 마주했다면, 내 독서 범위가 너무 얄팍하다는 걸 자백하는 걸까. 이번에 젊은작가상 대상작인 「반의반의 반」이 포함된 단편집 『약속의 세대』를 읽었다. 『약속의 세대』는 다음의 7편으로 구성된 작품집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광일」

「의탁과 위탁 사이」

「반의반의 반」

「회생」

「사망 권세 이기셨네」

「내가 있어야 할 곳」



다 읽고 나서 이 이야기가 범박하게 말하자면,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될 수도 있는 것 같았다. 바로 '과거를 청산하는 7가지 방법'이라고.


우선 「나의 살던 고향은」은 '한서'라는 시골 마을 출신의 영지가 돌아가기 싫은 고향에 돌아가게 되고,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면서 결국 마을의 산에 불을 질러버리는 이야기다. 자신을 늘 속박했던 과거를 청산하는 방법으로 영지는 불을 질러버린다.


가장 좋았던 작품은 「광일」과 「내가 있어야 할 곳」 두 편이다. 이 두 작품은 내가 좋은 단편 소설이라고 여기는 미덕을 갖춘 작품이었다. 좋은 단편 소설은 적은 분량 안에서 한 인물이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고, 그로인해 "현재"에 이르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독자에게 짐작케 한다. 이러한 기준에서 「광일」과 「내가 있어야 할 곳」은 훌륭한 단편처럼 읽혔다.


특히나 「광일」의 주인공 '박광일'의 캐릭터가 흥미로웠다. 노인네와 흥정을 해서 이득을 취하려는 인물인 것 같지만, 노인이 잘못 건넨 5만원은 돌려주고, 노인을 봉변에서 구해준다.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기 힘겨워하지만, 실상은 아내만을 생각한다. 사실 나는 일정구간까지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같은 엔딩을 기대했다. 물론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운수 좋은 날」의 다른 버전인 것 같기도 할 만큼 다소 의외의 엔딩을 갖고 있긴 하다.


잠은 죽음에 대한 예습이자 복습 같았다.

「광일」, 119쪽


「광일」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불행은 왜 마음 약한 이들에게만 찾아오는가? 그런 이들에게 불행은 꼭 산사태의 형태로, 감당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으로 다가온다. 광일은 구태여, 산장으로 갈 필요가 없었음에도 마음이 약하고, 과거에 손님을 길에서 내려준 기억 때문에 결국 스스로를 다독이며 산장으로 향한다. 이런 마음 약한 인물에, 도덕적인 선들과 자신의 이익 앞에서 깊게 갈등하는 인물들에게 나는 깊은 애착을 느끼곤 한다. 광일은 스스로 과거에 길에 내려준 손님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산장에 갔다가 결말을 맞이한다.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 뜻대로 되진 않은 인물일 것이다.




그들은 그때 나를 찾아가지 않았듯 이번에도 나에게서 할머니를 찾아가지 않으리라.

「의탁과 위탁 사이」, 152쪽.



「의탁과 위탁 사이」는 「반의반의 반」의 짝패처럼 읽히기도 한다. 할머니-손녀의 관계가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 할머니가 병든 환자인 것도 그렇다. (이 지점에서 백온유의 또다른 관심사가 드러나는데, 작가는 (병든) 노인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두 작품도 그러하거니와, 「광일」, 「나의 살던 고향은」에서도 이러한 인물이 주요 등장인물로 등장한다.) 두 작품 역시 할머니, 엄마, 나 사이의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현재를 억압하고, 결말 부근에 이르러서 각자 이 과거를 어떻게 청산할지를 결정하게 된다. 「의탁과 위탁 사이」와 「반의반의 반」은 그런 청산 과정에 있어서도 유사성을 띠는데, 나름대로 명확한 선을 가지는 다른 수록작들과 다르게, 「의탁과 위탁 사이」는 틀니를 통해 할머니의 과거를 보존하고자 하는 것 같기도 하며, 「반의반의 반」은 상당히 모호한 결말로 끝난다. 두 작품은 어떤 일을 해결한다기보다는 그 일이 벌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하는 데 깊은 관심을 할애한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젠 내가 안 만나주지. 세 시간을 기다렸잖아. 내가. 세 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인데, 노인한테."

「의탁과 위탁 사이」, 148-149쪽.



「회생」은 읽는 동안 좀 재밌었다. 제목과 다르게 연지 - 수영은 회생이 불가하다. 애초에 없던 아이를 뱃속에 만들어낼 수 없는 것처럼 바닥에 떨어져 (아마도) 깨진 그릇도 결코 회생시킬 수 없다. 마치 어설픈 솜씨로 '킨츠키'를 한 듯한 두 사람의 관계는 시종일관 긴장감을 형성하다가 그런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가볍고 경쾌한 느낌마저 주는 결말 부근에서 산산히 박살난다. 이는 과거의 실수는 결코 청산될 수 없으며, 유일한 방법은 억지로 붙여놓거나, 산산히 깨지거나, 라는 걸 암시하는 듯 하다.


「사망권세 이기셨네」는 「회생」처럼 두 친구가 등장하는데, 이는 또 다르게 읽힌다. 사이비 종교 2세들의 이야기다. 사이비 종교 간부의 딸이었던 '나'와 그런 간부의 비서 같은 역할을 했던 신도의 딸 세주는 엄마들의 권력 관계에 전염된 듯 이를 모방한다. 그러나 사이비 종교의 거짓말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나'와 세주는 냉정한 세상 앞에 서게 된다. 이 둘의 관계는 기이하게 역전되는데, 과거 부모들의 권력 관계나, 자신이 간부의 딸로써 가졌던 일종의 우월감 때문에 '나'는 세주에게 꼼짝을 못한다. '나'의 보살핌은 어쩐지 채무자가 채권자를 대하는 듯이 변한다. 과거가 현재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이 둘은 결말에서 (「회생」의 연지와 수영과 달리) '회생'에 이르며, 처음으로 대등한 관계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떤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담담한 화자의 서술과 다르게 극도로 잔인한 소설이다. '나'는 한국의 학창시절, 친구를 컨테이너에 가두고, 학폭위에 회부된다. 또한 '나'가 화재 소동을 겪으면서 먼저 간 딸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킨다. 나는 이 단편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사건을 배치할 수 있는지 놀랐다. 이모의 딸이자 '나'의 사촌은 컨테이너에 갇힌 채 화마에 희생되었다는 점을 분할해 사건을 배치했지만, 참 잔인한 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국 집에서 사촌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고, 엄마가 그애를 안고 있는 사진이 내 사진첩에 있어서 한동안은 당연히 그 아이가 나라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아니더라고 고백했다. 사촌과 내가 어렸을 떄 부모가 바뀐 것은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는 말은 다행히 하지 않았다.

「내가 있어야 할 곳」, 309쪽.


'나'는 이모의 딸이 되는 것을 이모에게 거절당했다고 진술하지만, 이 부분은 외려 이모가 '나'를 정말 딸로 받아들인 것처럼 읽힌다. 자식이 품에서 어리광만 부리는 게 아리나 자립하기를, 더는 '갇힌' 게 아니라 스스로 세상과 대면하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 그 자신이 먼저 앞세운 딸에 대한 미련 때문에 조카인 '나'에게 집착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지만 말이다.


그리하여, 이모부도 죽고 한국에 돌아온 이모와 '나'가 나눈 문답은 일종의 뒤늦은 대답 같이 느껴진다. (이 부분은 이 소설집 전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모. 봄이 오면 우리 마당에 꽃 심는 게 어때요?"

"좋지. 나도 너랑 같은 생각."

"무슨 꽃 심을까요?"

"너랑 같은 생각."


「내가 있어야 할 곳」, 317쪽.


'나도 너랑 같은 생각'이라는 말은 곧 '너는 내 딸이야.', '나도 보내고 싶지 않았어.', 처럼 읽히지 않는가. 이모의 귀국은 결국 하나 남은 가족에게로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나 남은 가족, 조카이자 딸인 '나'에게로. 또한 이 진술은 무척 흥미롭다.


그리고 라디오를 틀자 거짓말처럼 마이클 볼턴의 <Lean on Me>가 나왔다. 이모부가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 중 하나였다. 그 사람이 좋아하던 노래네, 이모가 중얼거렸다. 이모가 좋아하는 가수여서 이모부가 자주 불렀던 건데 그건 모르는 모양이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 321쪽.



가족 구성원 간에 한 쪽이 모르는 다른 한쪽의 행동 이유를 알고 있는 이는 가족이라는 말 외에 표현할 방도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약속의 세대』는 거칠게 축약하자면, 과거와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모아볼 수 있을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내 과거를 살펴보면서 괴로워하고, 때로는 깨닫기도 하고, (마음 속으로나마) 불을 질러보기도 했다. 뒤늦게 알았지만, 백온유 작가를 알게 되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뎌지지 않겠다'는 내지 첫 페이지의 글처럼,

나는 이 작가가 무뎌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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