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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사람들
이유리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2월
평점 :
더는 올라갈 곳이 없는 난장이들의 절규
『구름 사람들』은 21세기에 다시 쓰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저) 같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구름 사람들'은 구름 위에 사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무언가 동화나 신화의 이야기 같고, <원피스>와 같이 만화에 나오는 신비로운 무리를 지칭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구름 사람들』에서의 구름 사람들은 땅에 집이 없어서 구름으로 올라가 삶을 꾸리는 인물들이다. 그 구름 역시 정상적인 구름이 아니라, (당연하게도 자연적인 구름은 수분 결정체여서 그 위에 올라설 수 없다. 예수님이 아니라면.) 환경 오염으로 인해 만들어진 인공적인 구름이다. 땅도 집도 없고, 겁마저 없는 사람들이 이 구름 위에 모여 주거구역을 형성한다.
이는 곧 『난쏘공』의 인물들처럼 자본의 논리를 앞세운 개발의 물결에 떠밀린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개발의 열풍에 희생된 영세민들은 수평적으로는 서울의 다른 변두리로, 그도 아니라면 근교로 자꾸만 밀려난다. 수직적으로는 고지대에, 즉 달동네에 몰린다. 여전히 서울 한복판에는 빼곡하게 집들이 자리잡은 달동네가 존재한다.
돈이야 먹고 죽을래도 없었지.
『구름 사람들』, 35쪽
달이 닿을 만큼 높은 곳이라서 달동네랬는데, 『구름 사람들』은 한발 더 나아간다. 아예 구름 위로 올라가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특징은 이 소설이 가지는 특이지점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비슷한 계급 우화를 그리는 영화 <기생충>에서 가난한 이들은 결국 지하실로 향한다. 이는 계급이 지니는 상하관계를 그대로 차용한 장면이다. 하지만 『구름 사람들』은 이들을 하늘 위로 올려버린다. 부유한 이들의 머리 위로. 이는 경제적 계급의 기묘한 반전을 그리며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여긴 땅보다 높잖아. 땅 사람들보다 더 빨리 천국에 도착할 수 있어.
『구름 사람들』, 121쪽
구름 사람들 중 하나인 춘 여사의 대사는 이들의 처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구름까지 쫓기어 온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천국", 그러니까 죽음 뿐이라는 사실을 잔인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남의 후원이나 바라고. 좆 같은 일해서 돈 벌 생각이나 하고. 글러 먹었다.
『구름 사람들』, 51쪽
『구름 사람들』의 주인공인 '오하늘'은 나중에 커서 BJ가 되겠다는 동생이 벌써부터 남의 후원이나 바란다고 짜증을 낸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잠시 멈춰야 했다. 우리가 흔히 인터넷 방송에서 사용하는 '후원'이라는 개념은 일종의 서비스 비용이라고 생각해왔는데, '후원'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자 이 대목과 이런 하늘의 인식이 왜 필요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왜 좌절했을 때 미소 지을까. 그런다고 기분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면서.
『구름 사람들』, 85쪽
『구름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 균열을 일으키면서 진행된다. 우선, 외부적 요인. 구름이 존재하는 시에서는 인공강우제를 살포해서 구름을 없애려고 한다. 이는 곧 구름 사람들의 거주지를 송두리째 파괴하는 행위다. 물론 불법 점거에 가까운 상태이기 때문에, 보호받거나 구제 받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하늘의 아빠는 구름 사람들을 규합해 시위에 나선다. 이 시위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뭘 하라는 거야."
(…)
"넌 보이지도 않냐."
"뭘 보라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그래, 아무것도 안 보이지.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구름 사람들』, 180~181쪽
공권력은 그들의 시위를 철저히 비가시화시킨다. 마치 '상자 안에 잡아 가둬놓은 쥐'처럼 무력화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목적을 관철시키려 한다.
두 번째 균열은 가족에 있다. 엄마가 땅 사람들의 집에 취직하면서 이 균열은 본격화된다. 세 번째 균열은 '오하늘'의 안에 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다. 이렇게 세 가지 균열은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면서 소설 전체를 구성한다.
인공강우 살포가 다가올수록, 이 균열들은 본격화된다. 오하늘의 거의 유일한 친구이자, 애인의 역할을 담당한 원과도 말다툼을 하게 되면서 이 균열이 결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임을 보여준다.
야, 우리가 무슨 세균이냐.
땅 사람들이 보기엔 세균이나 다름없지. 얼마나 눈엣가시곘어. 인공강우제를 뿌려서 없애고 싶은 게 당연해.
『구름 사람들』이 유독 읽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지점은 이 소설에는 절대적인 악인이 없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 사실이 이 소설 자체를 더 지독한 "악인"처럼 만든다. 소설의 인물들은 제각각 처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나마 악인에 가장 가까운 사람을 꼽는다면, 오하늘의 아빠인 것 같지만, 그는 어쩐지 소설 내내 처연하게만 그려진다.) 선 곳이 다르면, 보이는 풍경이 다를 뿐이다. 애당초 입장(立場)이라는 말도 그런 뜻이질 않는가.
주인공 오하늘은 동생에게 폭력을 가하기도 하지만 이를 반성하고 후회한다. 나아가 오하늘 역시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고군분투할 뿐이다. 하지만 균열들은 오하늘을 결코 가만히 두지 않는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니가 제일 열심히 사는데…… 제일 착한 것도 넌데…… 왜 너한테만 이런 씨발 개같은 일만 생기는 거냐고.
『구름 사람들』, 255쪽
또한 『구름 사람들』은 언뜻 '원숭이손 괴담'의 변형 같게도 느껴진다. 오하늘이 문득 내뱉었던 어떤 말이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 결과를 맺게 되는데, 이 결과가 참 아이러니하기 때문이다. 이런 지점에서 지난 세기의 『난쏘공』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이야기가 된다는 구분점이 생긴다.
『구름 사람들』은 결국 '더는 올라갈/도망칠 곳이 없는 난장이들의 절규'처럼 읽혔다. 그리고 어쩌면 소설의 시작부터 이 이야기의 결말이나 전개가 정해져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구름이란 어쩌면 흩어지는 게 당연한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 씁쓸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