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혐오도 복제가 되나요 ㅣ 안전가옥 쇼-트 34
윤혜성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3월
평점 :
복제품은 원본을 넘어설 수 있을까
윤혜성 작가는 이전에는 카피라이터로 일했으며, 작년에 큰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극본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혐오도 복제가 되나요』가 소설 데뷔작이라고 한다.
『혐오도 복제가 되나요』는 주인공 이수한은 사별한 아내와의 사이에 있는 아들 재이를 두고 장모와 양육권 다툼 중이다. 재이를 만나기 위해 아내의 고향인 '리벨리우스(아마도 우크라이나를 염두에 둔 가상의 국가인 것 같다.)'에 가려고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어 가지 못한다. 이에 리벨리우스랑 인접한 러시아 법인장이 되어 조금이라도 재이의 곁에 가까이 가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소설은 이수한이 죽은 아내가 보낸 정체불명의 택배 박스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택배 박스 안에서 죽은 아내의 글씨체로 '너도 너같은 새끼랑 살아봐'라고 적힌 쪽지가 나와 충격을 받은 이수한은 연이어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수한을 본뜬 불법 복제인간인 '리(re)수한'이 상자 안에서 나온 것이다.
복제인간인 리수한을 죽여야 할지, 신고해야 할지 망설이던 와중, 리수한에게서 그도 어쩔 수 없는 '생명'이라는 징표를 발견한 '수한'은 그와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러시아 법인장이 되기 위한 면접과 재이와의 만남이 겹쳤을 때, 수한은 리수한에게 도움을 청한다. 리수한은 면접을 성공적으로 치뤄내 수한은 러시아 법인장에 가까워지지만, 직접 나간 재이와의 만남에서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그렇게 수한은 '원본인 나'보다 뛰어난 '복제인 나'를 마주하면서 복잡한 심경을 갖게 된다.
이후 이야기는 아내의 죽음에 대한 진실, 그리고 복제 인간에 대한 질문을 파고들면서 전개된다.
'나와 똑같은 나'에 대한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 서양에서는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나면 죽게된다는 '도플갱어' 괴담이 있고, 한국에는 내 손톱을 먹은 쥐가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해 나를 대신하게 된다는 민담이 있다. 이는 인류의 무의식 속에 오랜 시간 잠재해 온 공포가 표면화된 것 같다.
이 드넓은 세상에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없을까?
이전의 복제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손톱-쥐'의 이야기처럼, 누가 진짜 '나'인지를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는가, 로 귀결된다. 하지만 근래에 나오는 복제인간 이야기는 주로 다음과 같은 의문을 파고드는 것 같다.
복제품은 원본을 넘어설 수 있는가?
이를테면,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조선의 왕 광해군을 대체한 가짜 광대의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광대 하선은 광해군의 부재 기간동안 요구된 현상 유지를 넘어서 '진짜 왕'이란 어때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는 인물들인 도승지와 도 부장에게 진정으로 충심을 이끌어내는 결말은 인상적이다.
소설의 예로 들어가보자면, 서유미 작가의 단편 소설인 「저건 사람도 아니다」는 '나'를 꼭 빼닮은 로봇이 나를 대신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보다 뛰어난 나, 가족과 동료들이 인정해주는 가짜 나가 겪는 심리적인 갈등은 결국 '복제품이 나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귀결된다.
또한 근래에 읽었던, 『혐오도 복제가 되나요』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테세우스 패러독스』 역시 비슷한 주제를 다룬다. 『테세우스 패러독스』에서는 세 갈래로 나뉜 '나'가 등장하고, 이들 중 무엇이 진짜인지를 증명하는 과정이 주를 이룬다. 이렇듯 오랜 역사를 지녀온 장르에서 시대에 따라 변주가 생기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혐오도 복제가 되나요』의 펀치라인인 '너도 너 같은 새끼랑 살아 봐'는 조금 아쉽다. 물론 한눈에 독자의 시선을 끌어들이기에는 강렬한 라인이다. 다만, 이로 인하여 독자는 이 작품에서 수한이 정말로 자신과 똑같은 성격을 가진 여자를 만나 고통을 겪고 거울 치료를 받는 과정이 전개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책을 펼친다. 하지만, 리수한과 수한은 너무 다르다. 이를테면, 리수한이 수한을 대신해 회사에 나갔을 때, 수한보다 일처리나 대인관계에서 능숙한 면모를 보인다. 또한 아이와의 갈등에서도 적재적소에 개입한다. 작품 말미에 드러나는 '너도 너 같은 새끼랑 살아 봐'라는 메모의 전말은 그 메모가 지니는 내적 정합성을 스스로 무너뜨린다. 또한 작품에 떡밥이 산발적으로 등장하는데, 이에 대한 정리가 더디고, 반복적인 구간들이 독서의 흐름을 방해하기도 했다. 이런 아쉬움들이 남긴 했지만, 첫 소설임에도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