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 451 환상문학전집 12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박상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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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다시 타오르는 불씨







레이 브레드버리의 『화씨 451』을 알게 된 경위는 조은영 작가의 웹툰 <저궤도인간>을 통해서다. 작중 여주인공인 편집자 장예주는 남주인공 재열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편집자로 진로를 결정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한다. 그때 그녀는 『화씨 451』을 읽고 나서 진로를 결정했다고 말한다.



"내가 바로 플라톤의 「국가」라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시몬스가 바로 마르쿠스라오!"


<저궤도인간> 41화 / 『화씨 451』, 261쪽



<저궤도인간>에서 장예주의 대사에는 '!'이 달려 있는데, 내가 읽어본 판문에는 없었다. 아마도 장예주가 어렸을 적에 도취되었던 문장을 읊다가 첨가된 억양인 것 같다. 사실 '!'과 '책이 금지가 된 시대'라는 『화씨 451』의 설정 때문에 이 장면이 대단한 클라이맥스일 것이라 기대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 대사가 나오는 장면이 너무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끝내 마주한 장면은 격정적인 느낌은 아니었지만, 충분한 울림을 주었다.




* * *




『화씨 451』의 주인공은 '가이 몬태그'다.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유닛 중 하나인 파이어뱃 영웅 캐릭터의 이름은 '구이 몬태그'인데, 『화씨 451』의 주인공에게서 따왔다고 한다.) 직업은 방화수(fireman)로 금지된 물건인 책을 읽는 사람들이 발견되면 책과 집을 태우는 일을 맡고 있다.



불태우는 일은 즐겁다.


『화씨 451』, 15쪽


『화씨 451』은 가이 몬태그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책을 태우는 것에 희열까지 느끼는 몬태그는 어린 소녀 클라레스를 만나면서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된다.



『화씨 451』 속 사회는 불쾌함이나 슬픔을 유발하는 모든 요소를 통제한다. 갈등을 피하고 대중의 평안함을 유지한다는 명목하에, 깊은 사색과 의문을 제기하게 만드는 책은 유해 물질로 규정되어 제거 대상이 된다. 책의 자리를 채운 것은 벽면 전체를 가득 채운 대형 텔레비전 화면과 귀에 꽂는 소형 라디오다. 몬태그의 아내, 밀드레드는 완전히 중독되어 소통 능력을 사실상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브래드버리가 묘사한 이 풍경은 스마트폰과 숏폼에 온 시선을 빼앗긴 현대 사회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생각하지 않는 사회, 즉 질문이 사라진 사회는 통제하기 가장 쉬운 사회가 된다.


아는 것은 힘이지만, 동시에 모르는 것이 약이 될 때도 있다. 너무 많이 아는 것은 때론 독이 되기 때문이다. 『화씨 451』에서는 지적 능력에 대한 평등성을 위하여 책을 읽는 것을 금지했다는데, 실상은 우민들이 통제하기가 쉽다는 권력자들의 의도 때문일 것이다. 중국의 분서갱유나, 한국 군사정권이 실시했던 3S 정책이 이를 뒷받침하는 실증적인 근거다.


반면에 몬태그가 만난 클라레스는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명제를 부정하고, '아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 같다. 벽걸이 TV 대신 자연을 만끽하고, 무슨 일이든 "왜"를 궁금해 하며, 타인에게 "시간"을 할애한다. 몬태그에게 삶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던 클라레스는 어느날 갑자기 실종되고, 이로 인해 몬태그는 자신의 삶이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몬태그가 정신적 멘토로 의지하게 되는 '파버' 교수는 책이 이 디스토피아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렇게 정리한다.




1. 정보의 질


2. 이 정보들을 소화할 시간


3. 위의 두 조건의 상호작용으로 얻어지는 배움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권리


『화씨 451』, 156쪽





책이 가진 질 좋은 정보들, 그리고 이를 독자가 소화할 충분한 여가 시간, 이 두 가지를 통해 깨달은 바를 자유롭게 실천할 권리가 주어진다면, 책은 이 사회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그런 시기는 요원해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끝내 희망을 잃지 않는다. 언젠가 올 그 날을 고대하며, 그들은 스스로가 '결코 태울 수 없는 책'이 되자고 결심하게 된다.




* * *




『화씨 451』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언제쯤이면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화씨 451』을 범박하게 정리하자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인간이 우연히 하나의 사건을 경험하게 되면서 이전의 삶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게 되는 이야기'라고 말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에 매혹당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형태의 플롯이기에, 이 플롯은 오랜 시간동안 변형, 발전되어 왔다.


이러한 플롯 하에서 나는 『화씨 451』을 읽으며,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소설,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작품은 이러한 공통점을 공유한다.


1. 주인공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 이 진실은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협이 된다.


2. 기존 질서의 권력자들이 필사적으로 감추려는 진실을 추적하게 된다.


3. 이전까지 그려온 삶의 궤적과는 전연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가이 몬태그가 스스로 책이 되기로 결심한 방랑자들을 찾아서 떠나듯이, 『비명을 찾아서』의 '기노시다' 역시 '상해 임시 정부'를 찾아서 떠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두 소설에 내가 왜 이토록 매력을 느끼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대체로 용기없이 사는 편이고, 그리하여 나의 용기없음을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소설은 한 인물의 변화를 따라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씨 451』에서 몬태그는 처음에는 불로 만악의 근원인 책을 태우는 일에 희열을 느꼈지만, 결말 부근에 이르러서는 불이 사람의 몸을 추위로부터 녹여줄 수 있으며, 음식을 조리하는 데 쓰일 수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이는 그가 소설의 시작 부근과 얼마나 다른 사람이 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그리하여, 몬태그는 마침내, 한 권의 책이 되기로 결심하면서 다시 불씨를 지핀다. 그 불씨는 책을 불태우는 불씨가 아니라, 인류의 희망을 지피는 불씨다. 권력자들이 그토록 다 태워버리려고 했지만, 불씨는 끝내 다시 타오르는 것이다.





* * *






『화씨 451』의 후기가 생각보다 재밌었다. 『화씨 451』의 작중 내내, 몬태그가 윤리관, 당국의 추적 따위에 쫓기는 심리 묘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실제로 레이 브레드버리가 『화씨 451』을 작성하던 당시, 동전을 넣고 쓸 수 있는 UCLA 도서관의 타자기를 빌려서 썼다고 한다. 30분의 시간 제한이 있어서 쫓기는 심정으로 썼는데, 이게 작품에도 은연중에 반영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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