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살 때와 팔 때 - 세계 최정상 펀드매니저 12인의 압도적 매매 전략
리 프리먼 쇼어 외 지음, 이주영 옮김 / 토네이도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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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주식 살 때와 팔 때> 승률 45퍼센트로도 이기는 거장들, 문제는 사고 난 다음이었어요


승률 45퍼센트.


세계적인 펀드매니저 73명을 최종 후보로 추려서 매매 내역을 분석했더니 승률 중간값이 이 정도였다고 하더라고요. 운에만 맡겨도 50퍼센트는 나온다는데 그보다 낮은 숫자라서 처음엔 눈을 한 번 더 비볐어요. 그런데 이 중에서 다시 걸러낸 거장들은 시장을 웃도는 성과를 냅니다. 리 프리먼 쇼어와 클레어 플린 레비가 함께 쓰고 이주영 님이 옮긴 <주식 살 때와 팔 때>는 이 이상한 계산서를 한 장씩 펼쳐 보이는 책 같아요.


10월 중순에 맞는 금요일이라 그런지 이 책 얘기를 꺼내는 마음이 한결 가볍네요. 사실 제 계좌에는 그동안 살 때와 팔 때보다 '물릴 때'가 더 자주 찾아왔던 거 같은데요. 그래서인지 제목부터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더군요.

표지는 파란색과 분홍색으로 반을 딱 갈라놓고, 화살표 하나는 위로 하나는 아래로 꽂아둔 모양이에요. 사고파는 두 순간을 그대로 그림으로 옮긴 느낌이 듭니다. 원제는 Stock Market Maestros이고, 두께는 보통 경제서보다 제법 두툼한 편이에요.


<주식 살 때와 팔 때>를 펼치면 인터뷰가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 숫자가 앞장서서 마중을 나옵니다. 펀드매니저의 의사결정을 데이터로 분석하는 에센시아 애널리틱스가 73개 펀드의 최대 15년치 일별 포트폴리오를 들여다봤대요. 종목 선정, 투자 규모, 진입 시점, 분할 매수, 보유 비중 조정, 분할 매도, 최종 매도 시점까지 7가지 결정을 하나하나 따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남은 사람이 열두 명입니다. 명단을 뽑는 과정부터 꼼꼼해서 우선 믿음이 가더라고요.


솔직히 이 선정 기준 대목은 저한테 언덕 하나 넘는 구간이었어요. 샤프 지수, 소티노 지수, 상승·하락 포착 비율 같은 말이 연달아 나오니까 한 줄씩 천천히 따라가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모닝스타나 리퍼 같은 이름 옆에 각주로 설명이 붙어 있어서 길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피식 웃음이 난 문장이 있었어요.

"결국, 투자자의 의사결정이 가져온 결과가 우연에 의한 결과보다 더 나을 게 없다면 차라리 그 돈을 수수료가 낮은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펀드매니저도 자신의 지적 능력과 에너지를 보다 생산적인 곳에 쓰는 편이 나을 것이다."

세계 최고 펀드매니저들 앞에 이렇게 써도 되나 싶을 만큼 시원한 말이에요.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만큼 정직한 잣대도 드문 거 같아요.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행동 알파 점수를 왜 지난 3년치로만 매기느냐는 설명이었어요. 10년 전에 좋은(또는 나쁜)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왕년의 성과 하나로 버티는 사람도, 예전 실수 하나 때문에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사람도 보게 되잖아요. 숫자로 사람을 평가하는 책인데, 그 숫자가 사람을 지금 모습 그대로 봐주려는 거 같아서 좋았습니다.


거장들도 절반쯤은 틀린다는 얘기, 몇 번을 들어도 이상하게 위로가 돼요.

앞쪽에서 만나는 조시 골드버그는 뉴욕의 헤지펀드 매니저예요. 저자는 조시를 떠올리면 머릿속에서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배경음악이 재생된다고 해요. 다만 주인공이 톰 크루즈 대신 검은 수염을 기르고 야물커와 안경을 쓴 남자라는 거죠. 시작부터 장난기가 있어서 술술 넘어갔습니다.

첫 번째 불가능한 임무는 2009년에 세운 회사 G2였어요. 운용 자산이 1천만 달러도 안 됐고, 1억 달러 이상으로 클 확률은 500분의 1도 안 된다는 말을 들었대요. 첫 고객은 첫해에 20퍼센트를 못 내면 돈을 빼겠다고 했는데, 결국 기준치를 넘겼는데도 자금을 회수해 갔다고 합니다. 그 일이 고객에게 손해가 됐다는 문장이 담담하게 따라붙어요.


두 번째 임무는 훨씬 무거웠어요. 2016년 대장암 4기 진단을 받고 생존 확률이 2퍼센트라는 말을 들었고, 3년 동안 수십 차례 항암 치료와 수술을 견뎌 5년 뒤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사정을 알고도 1억 달러를 맡긴 가족이 있었고, 사실대로 말해줘서 고맙다며 절대 돈을 빼지 않겠다고 약속한 고객도 있었대요. 사무실 벽에는 NFL 선수 레이 루이스가 선물한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그 글귀 끝에 "조시, 아이들에게 입을 맞춰주고 이긴 싸움을 끝까지 해낼 거라고 말해주세요."라는 문장이 있더군요. 투자 이야기를 들으러 들어간 장에서 사람 이야기를 먼저 듣게 되니, 뒤에 나오는 원칙들도 조금 다르게 읽혔어요.


조시의 투자 방식에서 저를 뜨끔하게 한 건 멘토 필 헴플먼의 한마디였어요. 70달러짜리 주식이 25달러까지 떨어졌으니 싸게 사자는 조시에게 필이 이렇게 말했대요.

"조시, 기업이 실적 전망을 하향 조정하면, 아무리 주가가 싸더라도 보유해서는 안 돼."

조시는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했다고 하던데, 저는 망치까진 아니어도 꿀밤 한 대쯤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싸 보인다는 이유 하나로 마음이 기울던 순간들이 줄줄이 생각나더라고요. 장 첫머리에 걸린 "패자만이 손실 중인 종목에 물타기를 한다."라는 문장도 같은 결로 읽혀요.


조시가 기업을 방문하면 꼭 구내식당에 들른다는 대목도 재미있었어요. 직원들한테 회사와 경영진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라는데, 한번은 어떤 직원이 CEO를 석 달 동안 못 봤다고 하더래요. 소형주에서 CEO가 눈에 안 띈다면 좋은 신호로 보기 어렵다고요. 직장인으로서 이 대목은 웃으면서 읽었습니다. 회사 분위기는 회의실보다 점심 줄에서 더 솔직하게 드러나는 법이니까요.

애널리스트가 5명도 안 붙는 기업을 좋아하고, 어느 회사에서는 10년 만에 처음 찾아온 투자자라는 말까지 들었다니 정말 발로 뛰는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그렇게 고른 종목도 첫 어닝 서프라이즈가 나온 때부터 시간을 재서 보고서 첫 페이지에 기재해 두고, 15개월을 넘기면 매도 타이밍을 놓칠 위험이 커진다는 '15개월 규칙'을 지킨다고 합니다.

유럽 쪽 고름 토마센 장은 시작부터 공기가 확 바뀌어요. 독자를 어느 방에 앉혀두고, 노르웨이 정보기관 출신에 러시아어를 하고 고도의 심문 기술을 아는 거구의 남자가 내려다보며 묻는 장면을 그려놓거든요.


"애송이 녀석, 운이 좋다고 생각하나?"

책 속의 '당신'은 식은땀을 흘리는데, 저자가 곧이어 이 시나리오는 부분적으로 지어낸 거라고 털어놔요. 실제 고름은 친근한 사람이고, 저 말은 AKO 캐피털 애널리스트 모니터에 뜨는 알림이래요. 속뜻은 "잘했어요. 우리가 수익을 좀 냈는데 이익을 실현해야 할까요?"라고 하네요.

고름이라는 사람 자체에도 정이 갔어요. 오슬로에서 자라 북극권 북쪽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제빵사이자 철학자였던 할아버지에게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웠대요. 210억 달러를 총괄하는 최고투자책임자인데 대중교통을 타거나 걸어서 출근하고, 아이들과 테니스를 치고, 삼림욕을 하고 정원을 가꾼다고 하더라고요. 롤렉스 차고 고급차 모으는 문화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니, 출근길 지하철에서 마주쳐도 못 알아볼 것 같습니다.


AKO에는 '미완성 아이디어' 회의라는 게 있다고 해요. 누가 아이디어를 내면 다른 사람들이 마음껏 비평하는데, 고름은 이 단계에서는 아이디어에 자존심이 거의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기획안마다 자존심이 잔뜩 묻어 있는 회의를 숱하게 겪어본 입장에서는 부럽기까지 하더군요. 비중 얘기도 단단합니다.


"비중 20퍼센트짜리 포지션이 실패하면 살아남기 힘들겠지만, 비중 10퍼센트짜리 포지션은 실패해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확신이 생겨도 25bp, 50bp씩 조금씩 늘려간다는 걸 보면, 이 사람한테 투자는 무엇보다 살아남는 기술인 거 같아요.

조시가 발로 뛰는 사냥꾼이라면, 고름은 문단속 꼼꼼한 집주인쯤.

<주식 살 때와 팔 때> 끝자락의 '주식 거장들의 성공 비결'로 가면 앞에서 만난 사람들이 한 줄로 꿰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거장들은 잘 나가는 종목 앞에서 스스로에게 "너 지금 단지 운이 좋아서 기분에 취해있는 거 아니야?"라고 묻는대요. 고름의 모니터에 뜨던 '애송이' 알림을 여기서 다시 만나는 것 같아서 반가웠습니다. 손실 중인 종목 앞에서는 질문이 바뀌어요.


"만약 이 주식을 지금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오늘 새롭게 매수하겠는가?"

이 질문 하나는 증권 앱 첫 화면에 붙여두고 싶을 정도였어요. 본전 생각에 붙들고 있는 종목이 하나라도 있다면, 누구든 대답하기 전에 잠깐 머뭇거리게 될 거 같거든요.


저자들은 리스크를 가격 변동성이 아니라 틀릴 확률로 본다고 하고, 결국 투자의 기술이란 의사결정의 기술이라고 마무리합니다. 언제 사고, 얼마나 담고, 언제 팔고,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대처할지, 수백 번의 소소한 순간마다 조금 더 현명하게 고르는 일이라고요. 그 능력은 측정할 수 있고 개선할 수 있다고 하니, 타고난 감이 없는 사람한테도 문이 열려 있는 셈이에요.


<주식 살 때와 팔 때>는 한 번 읽고 꽂아두기보다 계좌가 흔들릴 때마다 다시 꺼내 볼 책에 가까운 거 같아요. 열두 명의 방식이 저마다 달라서, 그때그때 내 상황에 맞는 거장 한 명을 골라 그 장만 다시 펼쳐도 충분하겠더라고요. 거장들 모두 투자 방식을 자기 성격에 맞춰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데, 그 말대로라면 이 책은 내 성격에 맞는 선생님을 찾아가는 명단이기도 합니다. 매수 버튼보다 매도 버튼 앞에서 더 오래 망설여 본 사람이라면 읽는 내내 재미있게 넘길 수 있을 거예요.


은행잎이 하나둘 노랗게 물드는 10월 중순이네요. 단풍처럼 제 계좌도 빨갛게 물들면 좋겠다는 욕심은 잠깐 접어두고, 이번 주말엔 손실 종목에 그 질문부터 던져볼 생각입니다. 금요일에 좋은 책 만나서 한 주 마무리가 든든해요. 다들 포근한 주말 보내세요.


절반을 틀리고도 크게 버는 거장 12인의 비밀은 종목을 고른 다음의 행동에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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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꼭 해야 할 42가지
이택호 지음 / 미래북(MiraeBook)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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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꼭 해야 할 42가지> | 한두 정거장 먼저 내리고 싶어지는 책


표지부터 얘기하고 싶어요. 초록과 노랑으로 몽글몽글 부풀어 오른 숲 사이로 강이 한 줄기 흐르고, 그 위에 밀짚모자를 쓴 사람이 탄 쪽배가 하나 떠 있습니다. 그런데 제목은 꽤 세게 들어오더라고요.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꼭 해야 할 42가지>. 풍경은 이렇게 느긋한데 제목은 등을 툭 치는 것 같아서, 그 간격이 궁금해 첫 장을 열게 되는 책 같아요.


부제는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영혼의 버킷리스트'예요. 버킷리스트라길래 처음엔 양동이를 몇 개 챙기라는 얘긴가 했습니다. 네, 아재라서 그렇습니다.

책을 펼치면 꼭지마다 'Bucket List 03', 'Bucket List 05' 하는 식으로 번호가 붙어 있고, 작은 캐릭터 그림이 꼭지 첫머리를 지키고 서 있어요. 마흔두 가지 할 일이 다섯 갈래로 나뉘어 있는데, 마음가짐에서 시작해 지켜야 할 가치, 노후, 가정, 성공의 원칙 순으로 걸어가는 구성이라 차례만 훑어봐도 인생을 한 바퀴 도는 기분이 듭니다. 경영학을 가르치는 이택호 교수가 쓴 책이라 그런지, 막연한 위로보다 "그래서 오늘 뭘 하면 되는데?"에 대한 대답이 먼저 나오는 편인 것 같아요. 올해 8월에 새 단장을 하고 나온 판이기도 하고요.


앞쪽 꼭지 중 '조급해 하지 말고 여유를 갖는다'는 "우리는 바쁘다"라는 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쉴 틈 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새 1년이 지나가 있다는 얘기인데, 그냥 제 얘기 같더라고요. 빠른 걸음으로 길을 재촉하는 사람, 걸으면서 휴대전화에 고함을 지르는 사람, 흡연 장소에서 초조한 얼굴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 저자가 그려 놓은 이 거리 풍경 어딘가에 저도 한 자리쯤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여기 소개된 우화 하나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에게 용한 의사가 이런 처방을 내려요.

"당신의 병은 특이하여 3년 동안 말린 쑥을 달여 먹어야 나을 수 있소."

이 사람은 이미 3년 동안 말린 쑥을 구하려고 전국을 헤매다가, 쑥을 찾아다닌 지 6년째 되던 해에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아요. 쑥을 사다가 3년 말리면 됐을 텐데 조급한 마음에 그 생각을 못 한 거죠. 짧은 옛이야기인데 웃음이 쉽게 나오지는 않더군요. 조급함이 사람을 얼마나 엉뚱한 길로 끌고 가는지, 이보다 짧게 설명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유를 갖는 방법도 손에 잡히게 나와 있어요. 퇴근 후 가까운 서점에 들러 마음에 드는 책을 잠깐 집어 보거나 백화점 잡화 매장을 둘러보라는 것, 노자의 '무위'에서 빌려 온 한눈파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 매일 15분씩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정해 두라는 것. 그중에 제일 솔깃했던 건 내려야 할 정거장보다 한두 정거장 먼저 내려서 걸어 보라는 제안이었습니다.


"어라? 여기에도 서점이 있네. 잠깐 들어가 볼까?"

매일 지나치던 길에서 이런 혼잣말이 나온다는 건데, 읽기만 해도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에요. 다만 저는 회사 두 정거장 전에 내리면 그대로 반대편 버스를 타고 집에 가고 싶어질까 봐 그게 걱정입니다.


Part 3의 '직장은 당신의 인생이다'는 직장인이라면 제목부터 그냥 넘기기 어려운 꼭지예요. 하루의 3분의 2를 직장에서 보내면서 그 시간을 늘 불만 속에 지옥처럼 보내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데, 반박할 말이 잘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첫 번째 처방은 '여유를 두고 출근하라'입니다. 러시아워 만원 전철에 시달리다가 9시가 될까 말까 할 때 사무실에 들어서면 이미 녹초라는 거죠. 30분만 일찍 나서서 차 한 잔 마시며 하루를 준비하라는 말, 5분만 더 자고 싶어도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라는 말은 40대 후반의 몸으로 듣기엔 살짝 얄밉기도 해요. 틀린 말이 하나도 없어서 더 얄밉고요.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거의 다 잡무에서 온다는 대목에서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그러니 잡무도 본업처럼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하라는 건데, 연차가 쌓일수록 더 와닿는 얘기 같아요. 인생 2막을 준비하라는 대목에서는 이해진 회장의 직장인 시절 이야기가 나와요. 삼성SDS연구소 말단 사원이던 시절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의 25%는 순수하게 자기계발을 위해 쓰자'는 원칙을 세우고, 여덟 시간 걸리는 업무를 여섯 시간에 끝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준비가 끝났으니 당장 사표를 내라는 얘기는 아니어서 오히려 현실적으로 들렸어요. 1~2년 임시직이든 아르바이트든 하고 싶은 일을 먼저 몸으로 겪어 보라는 거죠. 혼다 소이치로의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하는 사람이다"라는 말도 같이 실려 있는데, 실수 하나에 며칠씩 끙끙 앓는 사람이라면 조금 숨통이 트일 만한 문장 같습니다.


솔직히 마음에 걸렸던 대목도 있어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노후대책이다'에 나오는 계산이요. 금융 컨설턴트들이 말하는 노후 자금이 대체로 10억 원인데, 월수입 350만 원인 직장인이 매달 100만 원씩 모아도 10억을 채우려면 77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77년.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아도 제 통장 사정에 대 보면 바로 답이 나오는 숫자라, 읽는 내내 마음 한쪽이 따끔거렸어요. 그래도 저자가 내놓는 방향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노후 대책의 핵심은 결국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느냐'로 귀결된다는 거예요. 장거리 선수가 100미터 달리기에 나가면 우승할 수 없듯이, 짧게 반짝이고 마는 단거리 직업보다 경험과 지식이 쌓일수록 빛나는 마라톤 직업을 고르라고 해요. 인생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는 기준이 지금은 마흔이지만 곧 쉰으로 바뀔 거라는 문장도 있었는데, 40대 후반인 저한테는 아직 반환점을 안 돌았다는 소리로 들려서 조금 반가웠습니다.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꼭 해야 할 42가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기만 한 책은 아니에요. '삶이 치열할수록 그 흔적도 깊고 넓다'는 시작이 재미있습니다. 누구든 앉았다 일어나면 흔적이 남는다면서, 폭신한 소파에는 그 사람의 몸무게와 엉덩이 크기만큼, 딱딱한 지하철 금속 의자에는 체위와 온도만큼 흔적이 남는다고 하거든요. 이렇게 생활감 있는 예시로 문을 열어 놓고 브루클린 다리 이야기로 넘어가요.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이 바로 이 다리 이야기예요. 다리를 놓자고 나선 존 뢰블링은 공사 중 발가락에 입은 작은 상처로 파상풍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뒤를 이은 아들 워싱턴 뢰블링마저 잠수병으로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이 됩니다. 아들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대요. 다리 한쪽 끝에 집을 얻어 망원경으로 공사 현장을 지켜보면서, 정해 둔 규칙대로 손가락으로 아내에게 신호를 보냈다고 해요. 아내가 그 뜻을 기술자들에게 말로 옮겼고, 그렇게 해서 1883년에 다리가 완성됐다고 합니다.


손가락 하나로 13년.

그 문장 앞에서 회의 때마다 "이건 좀 어렵겠는데요" 하고 쉽게 꺼냈던 제 말들이 떠오르더라고요. 꼭지 끝에는 소중한 흔적을 남기려면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할 것,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것, 이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붙어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과연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

Part 4의 '더 늦기 전에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첫 문단부터 조용히 마음을 누르는 꼭지예요. 효도는 할 수 있는 시기가 정해져 있어서 더 후회하게 된다는 말로 시작하고, 곧이어 어머니에 관한 짧은 일화가 하나 나와요. 이건 직접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몇 줄로 옮기면 그 맛이 덜할 것 같아서요.

뒤에 이어지는 효도하는 여섯 가지 방법은 거창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고민이 생기면 부모님께 상의드리기, 가까운 곳부터 함께 여행 다니기, 부모님이 아끼던 물건 간직하기, 건강 자주 챙겨 드리기, 한 번쯤 발 씻겨 드리기, 그리고 지금 바로 전화나 문자 드리기. 상의를 드리라는 대목에는 아직 부모님의 지혜가 필요한 자식이라는 걸 느끼게 해 드리는 것도 효도라는 말이 나와요. 다 컸다고 혼자 끙끙 앓던 시간들이 조금 미안해지더라고요. 부모님은 자식에게 짐이 될까 봐 아파도 내색하지 않으신다는 대목도 그랬고요.


용돈이 든 두툼한 봉투, 바쁘다는 핑계로 어쩌다 거는 전화, 명절에 보내 드리는 선물 보따리가 효도의 전부는 아니라는 말 다음에 딱 한 줄이 붙어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꼭 해야 할 42가지>라는 제목의 뒷부분이 여기서 이렇게 돌아오니, 표지에서 등을 툭 치던 제목이 이번엔 어깨를 붙잡는 것 같았어요.


Part 5의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라'에서는 토끼와 거북이가 둘 다 자기 페이스를 알고 있었다는 해석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토끼는 낮잠 잘 시간까지 만들 수 있었고, 거북이는 쉬지 않고 걸어갔다는 거죠. 그 뒤에 나오는 해거리 이야기는 특히 오래 붙들고 있게 되더라고요. 과일나무가 한 해는 열매를 많이 맺고 다음 해는 적게 맺기를 되풀이하는데, 쉬는 해에 모은 기운을 다음 해 탐스러운 열매로 쏟아내기 위해서라고 해요. 쉬는 해가 있어야 열리는 해도 있다는 얘기. 앞에서 읽은 여유 이야기와 마라톤 직업 이야기가 여기서 한 줄로 꿰어지는 것 같아 흐뭇했어요. 최고 학부를 나온 신입이 학력 없는 동기와 똑같은 견습공 일을 맡은 게 억울하다고 항의했을 때 포드가 들려준 대답도 시원했고요.


맛보기로 하나만 옮겨 볼게요. 마지막 꼭지 '인생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에 나오는 하버드 대학 교수 이야기입니다. 교수가 걷어 간 과제물을 돌려주는데, 거기엔 붉은 글씨로 '이것이 최선을 다한 결과인가?' 한 줄만 적혀 있었대요. 학생들은 다시 쓰고, 또 돌려받고, 도서관으로 몰려가 또 고치고. 그렇게 열 번 넘게 새로 쓴 끝에 학생들이 자신 있게 "그렇습니다. 저희가 최선을 다한 결과물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교수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이제 읽어보도록 하지요."

여기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지금껏 안 읽고 있었다니요. 보고서에 빨간 펜 수정을 몇 번씩 받아 본 직장인이라면 이 학생들 심정이 남 일 같지 않을 거예요. 같은 꼭지에 나오는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 이야기도 좋았어요. 거대한 청새치를 잡고도 상어 떼를 만나 흔적만 끌고 돌아온 노인을 두고, 누가 봐도 패배한 사람이었지만 그걸로 끝난 건 아니었다고 읽어 내는 시선이 따뜻하더라고요.


꼭지 하나하나가 짧게 끊어져 있어서 아무 데나 펼쳐 읽어도 되는 책이라, 책상 가까이 두고 생각날 때마다 한 꼭지씩 꺼내 보기 좋을 것 같아요. 두께도 부담스러운 편이 아니고 판형도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라 가방에 넣어 다니기에도 괜찮습니다. 무엇보다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는 꼭지는 마음이 무뎌질 때마다 다시 펼쳐 보고 싶어서, 저는 이 책을 오래 옆에 둘 것 같아요.


10월도 중순을 넘기면서 아침저녁 공기가 제법 차가워졌어요. 한 주를 버틴 금요일이라 몸은 무거운데, 이번 주말엔 부모님께 전화 한 통 드리는 것부터 시작해 볼까 합니다.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꼭 해야 할 42가지> 덕분에 올가을 할 일 목록이 조금 따뜻해진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바쁘게 달려온 중년 직장인에게 오늘 당장 해볼 수 있는 일 마흔두 가지를 건네는, 다정하고 현실적인 인생 버킷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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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 사용 설명서 - 나나와 찌돌이의 연애 일기
정오목 지음 / 모티브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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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목 <우리 사이 사용 설명서>, 가장 가까운 사람을 다시 관찰해 보는 커플 다이어리


사용 설명서라는 이름이 붙은 물건 중에 끝까지 읽어 본 게 몇 개나 될까 싶어요. 전자레인지도 공기청정기도 일단 눌러 보고, 안 되면 그제야 서랍을 뒤지는 게 아재들 국룰이잖아요. 그런데 사람 사이에도 설명서가 있다면 얘기가 좀 달라지는 거 같아요. 이쪽은 고장 나기 전에 미리 펼쳐 봐야 하는 설명서더라고요.


<우리 사이 사용 설명서>는 커플 이모티콘 (나나와 찌돌이)를 만든 정오목 작가의 책이에요. 부제는 '나나와 찌돌이의 연애 일기'예요. 펼쳐 보면 귀여운 연애 만화와 두 사람이 직접 채워 넣는 커플 다이어리가 번갈아 나와요. 만화 한 꼭지를 웃으며 보고 나면 빈칸이 기다리고 있는 식이라, 읽는 책이면서 쓰는 책이기도 합니다.


노란 하트가 둥둥 떠 있는 표지부터 마음이 말랑해지는 느낌이에요. 손에 쥐기 좋은 크기에 두께도 부담 없는 편이라, 가방에 넣어 다녀도 어깨가 항의하지 않을 것 같고요.

첫 꼭지 '내 눈엔 너만 보여'는 벚꽃 날리는 사람 많은 곳에서 시작해요. 찌돌이가 휴대폰을 들고 "올 때가 됐는데.." 하고 두리번거리다가 "자기야!!" 하고 나나를 찾아내요. 주변 사람들은 회색 동그라미로 뭉개 놓고 둘만 색을 입혀 놨는데, 거기에 "그 많은 사람 중에 너만 보여"라는 문장이 얹혀요. 제목이 그림으로 그대로 보이는 기분이었어요. 늦어서 미안하다는 나나한테 "괜찮아~" 하는 찌돌이 얼굴이 어찌나 해맑던지요.


연애 세포가 동면에 들어간 지 한참 된 아재도 그 회색 동그라미 장면에서는 피식 웃게 되네요.

찌돌이라는 인물이 재밌는 게, 이 친구는 늘 메모 중이에요. 마음속으로요. '더 알아가고 싶어' 꼭지에서 나나가 파스타를 먹으며 "완전 내 취향!" 하면 찌돌이는 속으로 "나나는 꾸덕한 파스타를 좋아하는군" 하고 적어 둬요. 둘 다 배가 터질 것 같다고 해 놓고 나나가 후식 얘기를 꺼내자, "나나는 배불러도 후식은 꼭 먹어줘야 하는군.." 하고 또 한 줄 추가하고요. 큰 이벤트보다 이런 사소한 기억이 연애를 굴러가게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회사에서도 비슷하잖아요. 내 커피 취향 기억해 주는 동료가 괜히 고마운 그런 거.

<우리 사이 사용 설명서>라는 제목이 가장 잘 살아나는 대목은 관찰일지 두 편 같아요. '나나 관찰일지'에서는 탐험가 모자를 쓴 찌돌이가 쌍안경을 들고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을 깔아요.

"앗! 야생의 나나가 나타났다!"

평소엔 온순한 편이지만 가끔 폭주할 때가 있다는 설명과 함께 '아르르 으르릉' 하는 나나가 등장해요. 찌돌이는 침착하게 가방을 뒤적여 도넛을 꺼내고요. 탄수화물을 먹이면 금세 진정되고, 달거나 매울수록 효과적이니 꼭 알아두라는 친절한 안내까지 붙어요. 그러고는 "떡볶이도 먹을래?" "웅!!" 이 대목에서는 소리 내서 웃었습니다. 이건 진짜 실전용 매뉴얼이에요.


반대편 '찌돌이 관찰일지'에서는 나나가 안경에 흰 가운 차림의 연구원이 돼요. 관찰한 바에 따르면 찌돌이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득근'이고, 근손실에 매우 민감하며, 거울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해요. "#오운완", "오늘 팔 잘 먹었다"까지 하고는 "자기야 만져봐!!" 하는데, 나나 손끝에서 나는 소리가 '말랑..'이에요. 그래도 "아무튼 운동은 좋은 거니까 응원해줍시다..!" 하며 작게 화이팅을 붙여 주는 나나가 참 다정하더군요. 불꽃을 두르고 헬짱이 되겠다는 찌돌이를 보니 남 일 같지가 않았어요. 찌돌이 팔이 말랑이면 제 팔은 거의 찹쌀떡일 테니까요.


만화 뒤에는 '짝꿍 관찰일지'라는 기록 페이지가 붙어 있어요. 오늘 내 짝꿍의 기분 점수, 착장 포인트, 먹고 싶어 한 음식, 얼굴의 점 개수, 나에게 가장 많이 하는 잔소리 같은 항목이 쭉 이어지고, 마지막엔 하트 모양 칸에 '내 짝꿍 한 줄 정리'를 쓰게 돼 있어요. 재미있는 건 같은 질문지가 노란 판과 파란 판으로 두 벌 들어 있다는 점이에요. 노란 쪽엔 나나 사진이 붙어 있고 돋보기는 찌돌이가 들고 있어요. 파란 쪽엔 찌돌이 사진이 붙어 있고 돋보기는 나나 손에 있고요. 한 사람이 한 장씩 맡아 서로를 관찰하라는 구성인데, 이 책만의 재미는 아마 여기서 나오는 거 같아요.


점 개수 세는 칸은 좀 웃기긴 해요. 얼굴 들이밀고 세다 보면 다투던 것도 까먹을 듯.

물론 내내 깔깔거리기만 하는 건 아니에요. '삐졌음'은 같은 상황을 남자친구 편과 여자친구 편으로 나란히 붙여 놨어요. 찌돌이가 "미워 진짜!" 하고 삐지면, 나나가 반짝이는 눈으로 "진짜 미워..?" 한마디 하는 걸로 상황 끝이에요. "으휴!!" 하면서 금세 옆에 붙거든요. 반대로 나나가 삐졌을 때 찌돌이가 똑같이 반짝이는 눈으로 "화 풀어~" 해 보면, 나나 뒤로 불길이 확 치솟고 찌돌이는 식은땀을 흘리며 "아..?" 해요. 같은 애교, 다른 결과. 두 장을 나란히 보면서 많이 웃었는데, 한편으로는 좀 뜨끔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꼭지보다 한 컷 한 컷 오래 들여다본 건 '솔직하지 못한 이유'였어요. 나나가 베개에 엎드려 휴대폰을 보다가 "분명 서운하긴 서운한데.." 하고, 이어서 "말하자니 별거 아닌 것 같고 내 자신이 치사하게 느껴져" 하며 얼굴을 묻어요. 이 마음은 나이와 상관없이 다들 아는 거 같아요.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서운한 한마디가 마음에 남는 날이 있잖아요. 그런데 꺼내자니 쪼잔해 보일까 봐 그냥 삼키게 되고요.

그 뒤로 나나는 앞으로 솔직하게 말하려고 노력하겠다고 하고, 찌돌이는 더 잘 들어주고 서운한 점이 있으면 고치겠다고 해요. 두 손이 맞잡힌 컷에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맞춰가는 과정이니까"라는 문장이 놓여 있고요. 거창한 해법을 내놓는 쪽은 아닌 거 같아요. 마음에 걸리면 대화로 풀자는 누구나 아는 말인데, 귀여운 그림 옆에 있으니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더라고요.


다툼 이야기 근처에는 '싸웠을 때 갈등 해결법' 페이지도 있어요. 생각할 시간을 갖고 대화할지 그 자리에서 바로 풀지 고르고, 화해할 때 꼭 할 행동을 악수, 포옹, 뽀뽀 중에서 하나 정해 두는 식이에요. '이것만은 하지 말아줘!' 페이지에는 남자친구가, 또 여자친구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말이나 행동을 적는 말풍선 칸이 있어요. 그 옆에서 캐릭터들이 옐로카드를 들고 서 있는 게 또 귀엽습니다. 싸우기 전에 규칙부터 정해 두는 셈이라 꽤 실용적이다 싶었어요.


'내 자존감 지킴이'도 좋았어요. 거울 앞에서 "나 요즘 못생겨진 거 같아", "살도 많이 쪘어.." 하며 울먹이는 나나한테 찌돌이가 "뭐가 살쪄!!!", "뭐가 못생겨!!!" 하고 버럭해요. 그러더니 귀엽고, 섹시하고, 예쁘고, 깜찍하고, 사랑스럽다는 말을 폭포처럼 쏟아내요. "아~! 그만해~~ ㅎㅎㅎ" 하는 나나 얼굴이 금세 풀리고요. 이어서 거울 앞에서 "진짜 예쁜가?" 하는 나나 옆에 "오늘도 잘생겼군" 하는 찌돌이가 나오는데, 이 둘의 온도 차가 또 웃음 포인트예요.

'네 꿈을 응원해!'에서는 나나가 머뭇거리며 "자기야 나 사실 이거 해볼까 하는데.." 하고 말을 꺼내요. 찌돌이는 "응!!" 하고 바로 받아요. 자기라면 분명 잘할 거라고, 옆에서 열심히 돕겠다고 펄쩍 뛰는데, 그 응원 뒤에 찌돌이 속마음이 살짝 숨어 있어요. 어떤 속마음인지는 직접 보셔야 더 재밌을 거예요.


<우리 사이 사용 설명서>는 둘이 펼쳐야 제맛인 책이라, 혼자 빈칸을 보고 있으면 살짝 머쓱한 기분이 들긴 해요. 그래서인지 선물로 건넸을 때 더 빛날 책 같습니다. 연애를 막 시작한 커플이 같이 채우면 서로 알아가는 교재가 되겠어요. 오래 함께한 사이라도 점 개수부터 다시 세 보는 재미가 쏠쏠할 거 같고요.


책 안에는 '무조건 잘 되는 부적'도 한 장 들어 있어요. 네잎클로버를 같이 든 나나와 찌돌이 그림이라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져요. 만화만 보고 끝나는 책이 아니라 두 사람의 글씨가 채워지면서 세상에 한 권뿐인 기록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 사이 사용 설명서>는 책장에 오래 꽂아 두고 가끔 꺼내 보고 싶은 쪽이에요.


단풍 소식이 하나둘 들려오는 10월 중순의 금요일이에요. 바람이 제법 차가워져서 그런지 이렇게 몽글몽글한 책이 더 반갑더라고요. <우리 사이 사용 설명서> 덕분에 한 주 피로가 사르르 녹은 기분입니다. 이번 주말엔 옆 사람한테 떡볶이 먹을래 한마디 건네 보시고요, 점 개수 세다가 등짝 맞지 않게 조심하세요. 따뜻한 가을 주말 보내세요.


서로를 관찰하고 기록하며 둘만의 매뉴얼을 함께 써 내려가는, 귀엽고 다정한 커플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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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은 짧게 수익은 길게 - 자기만의 손익비를 찾아라!
깡토 지음 / 이레미디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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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직장인 개미의 손익비 공부, 깡토 <손실은 짧게 수익은 길게> 서평


"아, 그때 팔걸!"

"아, 그때 살걸!"

주식 계좌를 한 번이라도 열어 본 분이라면 이 두 줄 앞에서 조금 뜨끔하실 거 같아요. 깡토의 <손실은 짧게 수익은 길게> 프롤로그에는 투자자들이 흔히 내뱉는 혼잣말이 몇 줄 모여 있습니다. "종목은 잘 봤는데 시장 때문에 하락했네." 이런 말까지 이어지니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남 얘기처럼 읽히지가 않아서요.


저자는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를 스스로 정한 '한계의 뚜껑'이 꽉 닫혀 있어서라고 설명합니다. 그 뚜껑을 여는 데는 작은 계기 하나면 된다고 하고요. 기업 분석 직접 해 보기, 투자 복기 일지 써 보기, 감정적인 매매 줄여 보기, 1일 1리포트 읽어 보기. 거창하지 않아서 오히려 따라 해 볼 마음이 생기는 목록이었어요.


책은 보통 경제서보다 제법 두툼한 편이에요. 제목은 손실은 짧게인데, 분량은 수익 쪽을 따라 길게 가신 모양입니다.

저자는 14년째 시장에 몸담아 온 전업투자자라고 해요. 스스로를 '테크노펀더멘털리스트'라고 부르는데, 처음 들었을 땐 무슨 로봇 이름인가 싶었습니다. 풀어 보면 이런 뜻이에요. 펀더멘털 분석으로 관심 종목을 미리 꾸려 두고, 그 종목이 추세추종 관점에서 돌파를 하면 사는 거죠. 가치투자를 배울지 차트를 배울지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늘 망설여졌는데, 둘을 같이 쓰는 사람이 있다니 반가웠어요.


그런데 이 고수의 출발점이 좀 귀엽습니다.

여자 친구가 재테크 책에 밑줄까지 그어서 권하는데도 게임에 빠져 있던 청년은 "나는 절대 주식을 하지 않을 거야!" 하고 버팁니다. 그러다 여자 친구의 150만 원짜리 계좌가 5000만 원을 향해 불어나는 걸 보게 되죠. 게임을 오토로 돌리고 아이템을 팔고 아르바이트를 해서는 만질 수 없는 돈이었다며 "솔직히 부러웠다"고 털어놓습니다. 몰래 계좌를 열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300만 원을 넣고, 쫄보 그 자체라서 상상 속으로만 매수를 해요. 큰맘 먹고 주문을 넣었는데 체결이 안 됩니다. 검색해 보니 주식시장은 9시에 열어서 3시에 끝난다더라는 대목에서는 결국 소리 내서 웃었어요.


지금 텔레그램 채널을 운영하는 투자자한테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싶어서 친근하게 느껴졌어요. 1주씩 사 보고, "내 기필코 멋지게 주식으로 수익을 내겠다!" 하고 복수를 다짐하고, 게시판 말만 믿고 100만 원어치를 덥석 사는 데까지 가거든요. 그 꼭지 제목이 '나의 첫 주식이자 작전주'라는 것만 말씀드릴게요. 그다음은 직접 확인하시는 편이 훨씬 재미있을 거예요.


중간에 여자 친구가 크게 벌고도 "4000만 원 넘게 잃었다"며 속상해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숫자로는 분명히 이득인데 마음은 최고점에 가 있는 거죠. 직장 생활 이십 년 넘게 하다 보니 그 마음이 뭔지 대충 알 것 같더군요. 연봉이 올라도 동기보다 덜 올랐으면 서운한, 그런 계산법이요.

프롤로그 끝에서 저자는 주식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안내해 준 아내를 '나의 뮤즈'라고 부르며 이 책을 바칩니다. 집필에만 3년이 걸렸다고 해요. 주변에서 "너무 많은 노하우를 푸는 거 아니냐"고 말렸는데도 아낌없이 다 담았다고 하고요. 1장에서 밑줄을 그어 주던 그 여자 친구 얼굴이 자꾸 겹쳐 보였어요.


<손실은 짧게 수익은 길게>에서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은 부분은 4장의 승률과 손익비 이야기입니다. 저자 스스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라고 운을 떼는 대목이에요. 예시가 아주 단순합니다. 원금 1억 원으로 종목당 1000만 원씩 투자하고, 손절은 –8%에서 하고 손익비는 1:3으로 잡아요. 승률은 30%. 열 번 중 일곱 번을 틀리는 셈이죠. 그러면 실패 일곱 번에 560만 원을 잃고, 성공 세 번에 720만 원을 벌어서 160만 원이 남습니다.


일곱 번 틀리고도 돈이 남는다니, 이 계산이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반대 경우도 나옵니다. 물타기를 할수록 승률은 올라가지만 손익비가 내려가서, 열 번 중 아홉 번을 벌고도 한 번의 실패로 본전이 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승률 50%에 –5%에서 손절하고 +5%에서 익절하는 매매라면 "아무리 열심히 매매해도 남는 게 없다"고도 합니다. 열심히 하는데 남는 게 없다는 말, 회사 다니는 사람한테는 그냥 넘어가지지가 않더라고요.


TPI라는 매매성능지수도 처음 알았어요. 승률에 (1+평균손익비)를 곱해서 1이 나오면 본전이라는 식인데, 숫자에 약한 저는 표를 보면서 한 줄씩 짚어 가야 감이 왔습니다. 그래도 저자가 권하는 복기 방법은 쉽게 와닿았어요. 같은 전략으로 매매한 내역만 엑셀에 따로 정리해 보면서, "혹시 TPI 1 이하의 매매를 내가 반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가계부를 쓰다가 커피값에 깜짝 놀라는 거랑 비슷한 기분일 것 같아요.


맛보기로 한 대목 옮겨 볼게요.

"상식적으로 21% 상승하는 것이 쉬울까, 15% 상승하는 것이 쉬울까? 당연히 후자가 더 쉽다."

저자는 보통 손절 –7%, 이익 +21%의 1:3으로 매매한다고 해요. 그런데 손절을 –5%로 당기면 목표 수익률도 15%로 내려와서 도달하기가 쉬워진다는 얘기입니다. 대신 손절가가 가까워지니 변동성에 흔들려서 원치 않게 팔리는 일도 감내해야 한다고 덧붙이고요. 시장이 애매할 땐 이렇게 손절 폭을 줄이고, 지수가 60일 이동평균선 위에서 잘 갈 땐 4R, 5R로 늘리기도 한다는군요. "3R은 최소 기준일 뿐이다"라는 말까지 읽고 나니 숫자 하나를 외우라는 책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졌어요. 자기 기준을 세우는 방법을 보여 주는 책이었습니다.


40대 후반 직장인으로서 제일 반가웠던 건 5장의 '직장인도 추세추종 하이브리드 매매를 할 수 있다!' 꼭지예요. 답은 예약 매매라고 합니다. 저자도 장중에 컴퓨터 앞에 앉아 HTS를 계속 들여다보는 걸 싫어한다고 해요. 장 시작 전이나 자기 전에 엑셀을 열어 Max 2% Rule로 포지션 크기를 확인하고, 증권사 HTS의 자동감시주문을 걸어 둔대요. 돌파 가격 1~2% 전에 알림이 울리게 해 두고 손절도 예약으로 걸어 놓고요. 실제 차트와 HTS 화면을 놓고 하나하나 짚어 주는데, 요즘은 챗GPT 같은 인공지능 덕분에 누구나 파이썬으로 시스템 트레이딩을 시작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시세를 자주 확인할수록 불필요한 뇌동 매매도 같이 늘어난다. 뇌동 매매가 줄수록 계좌수익률은 상승한다."

회의 들어가기 전에 한 번, 점심 먹고 한 번, 자꾸 MTS를 열어 보는 게 직장인 개미들의 습관이잖아요. 그 습관을 정면으로 짚는 문장이라 뜨끔하면서도 시원했어요.

솔직히 걸렸던 부분이라면 HTS 메뉴 번호나 주문 화면 캡처가 이어지는 구간이에요. 주식 앱만 써 본 저한테는 조금 낯설었습니다. 화면을 보면서 따라 해 보면 금방 익숙해질 종류의 낯섦이긴 해요. 손익비 숫자도 예시는 –8%/+24%, 저자의 평소 기준은 –7%/+21%로 나와서 처음엔 살짝 헷갈렸어요. 그런데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기준이라는 걸 알고 나니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더라고요.


부록 '전업 투자자의 하루'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아침 6시에 눈을 뜨자마자 미국시장 흐름과 주도 섹터를 확인하고, 리포트와 뉴스 헤드라인을 훑고, 그날 매매할 종목을 계획한다고 해요. 가능하면 11시 안에 매매를 마무리하려 하고, 비중 큰 종목을 정리하지 못한 날에는 점심을 사무실에서 간단히 때우거나 장이 끝난 뒤에 먹는다고 합니다. 전업 투자라고 하면 여유롭게 커피 마시며 차트 보는 장면을 떠올렸는데, 점심시간도 시장 눈치를 보는군요. 같은 시간에 출근 걱정부터 하는 저랑은 출발선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싶었어요.


저자는 이 책을 먼저 가볍게 한 번 읽고, 두 번째 읽을 때는 공감 가는 대목에서 생각할 시간을 가져 보라고 권합니다. 그 말대로 <손실은 짧게 수익은 길게>는 책장에 꽂아 두고 장이 출렁일 때마다 다시 꺼내 보기 좋은 책 같아요. 프롤로그의 "투자는 감정의 게임이 아니라, 확률과 원칙의 게임입니다"라는 문장은 메모장에 옮겨 두고 싶을 정도였고요. 주식이 처음인 분은 저자의 첫 실패담부터 편하게 따라가면 되고, 한두 번 데어 본 분이라면 4장의 손익비 표 앞에서 오래 생각이 머물 것 같습니다. 정답을 건네주기보다 자기만의 손익비를 찾으라고 등을 떠밀어 주는 책이라 읽는 내내 즐거웠어요.


10월도 중순, 아침저녁 바람이 제법 쌀쌀해진 금요일이네요. 좋은 투자 선생님 한 분을 만난 거 같아서 마음이 든든합니다. 다들 단풍 구경은 길게, 환절기 감기는 짧게 지나가는 가을 보내세요.


승률 30%로도 웃을 수 있다는 계산 하나가, 조급했던 투자 습관을 다시 돌아보게 해 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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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를 위한 여백 육아 - 다 해주고 싶은 부모를 향한 가장 다정한 경고 ㅣ 바른 교육 시리즈 50
최현주(주주쌤) 지음 / 서사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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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서평] 요즘 아이를 위한 여백 육아 | "그랬구나" 세 문장이 통하지 않는 이유


그랬구나. 많이 속상했겠네.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 감정이 터질 때마다 이 세 문장을 조건반사처럼 꺼내놓아야 마음이 놓이는 부모들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배운 그대로 정확하게 말해줘도 아이 얼굴은 오히려 더 굳어버린대요. 대체 뭐가 어긋난 걸까 싶어서 첫 꼭지부터 궁금해지는 책이었습니다.


10월도 중순에 접어든 목요일이에요. 목요일은 이름부터 주말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날이라 몸이 축 처지는데요. 예전 같으면 유튜브 틀어놓고 졸았을 저도 요즘은 책부터 손이 가네요. 이번에 만난 책은 <요즘 아이를 위한 여백 육아>입니다. 22년 차 초등교사이면서 아동심리상담사, 부모교육상담사로 활동하는 최현주(주주쌤) 선생님이 썼고, 서사원에서 9월 말에 나왔어요.

판형은 손에 쏙 들어오는 아담한 크기인데 두께는 제법 도톰한 편이에요. 제목에 여백이 들어가 있길래 여백 많은 책인가 했어요. 웬걸요, 할 말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더라고요.


빨간색 금지어, 초록색 권장어.

1장을 열면 요즘 부모들 모습이 꽤 생생하게 나옵니다. 30초 남짓한 영상에 지나가는 금지어와 권장어를 캡처해서 휴대폰에 담아둔대요. 그걸 냉장고 문에, 심지어 매일 아침 세수하는 욕실 거울에까지 붙여둔다고 해요. 저자는 이런 모습을 두고 공감이 어느새 하나의 '기술'이자 '정답'이 되어버렸다고 말합니다. <요즘 아이를 위한 여백 육아>는 육아서이면서 육아서들이 퍼뜨린 공식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는데, 그게 이 책만의 특이한 맛인 거 같아요.


부모 세대 이야기도 꺼내놓습니다. 억울해서 울면 "울긴 왜 울어, 별일도 아닌데", 넘어져 무릎이 깨지면 "칠칠맞지 못하게 정신을 어디 두고 다니니?" 하는 소리를 듣고 자란 세대라는 거예요. 저희 또래라면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말들이라 피식하다가도 좀 짠해지더라고요. 내가 받지 못한 걸 아이에게만큼은 주고 싶은 마음이 결국 공식을 외우게 만든 거라니, 누구를 탓할 이야기는 아닌 거 같습니다.

저녁 식탁 장면이 하나 나와요. 윤서가 한숨을 쉬며 "오늘 민준이가 또 놀렸어!" 하자 엄마는 하던 일을 멈추고 숨을 고릅니다. 그리고 배운 대로 말해주죠. "어머, 놀리는 건 나쁜 행동이지. 우리 윤서, 정말 속상했겠다." 한 번 더 "윤서가 많이 힘들었구나"까지 건넸는데, 돌아온 대답이 이거예요.


"후, 됐어."

이 대목은 남 얘기 같지가 않더군요. 회사에서도 면담할 때 매뉴얼 문장을 그대로 읊으면 상대가 금세 알아채고 입을 닫잖아요. 말은 맞는데 마음이 안 실린 게 티가 나서 그런 거겠죠.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걸까 싶었는데, 저자가 내놓는 방법은 생각보다 소박하더라고요. "속상했겠구나" 대신 "민준이가 왜 너를 놀렸다고 생각해?" 하고 물어보래요. 놀려서 속상한 건지, 사과를 못 받아 서운한 건지, 아니면 사과하라고 말하지 못한 자기 자신이 원망스러운 건지 아이가 스스로 돌아볼 때까지 기다려주라는 거예요. 부모의 공감은 "엄마라도 그런 말을 들었다면 화가 났을 것 같아" 정도면 충분하고, 그다음 판단과 결론은 아이 몫이라고요.


다만 선을 넘는 행동 앞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부모를 때리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가족에게 욕설을 내뱉을 때는 공감하려 애쓸 필요가 없대요. "지금 그 행동은 멈춰야 해." 이 한마디로 단호하게 멈춰 세우라고 해요. 다정하게 곁에 있어 주는 시간과 분명하게 멈춰 세우는 한마디가 두 울타리이고, 그 사이의 여백에서 아이가 제 감정을 다룰 줄 알게 된다는 설명이 참 좋았어요. 1장 끝에는 빨간 밑줄로 이런 문장이 붙어 있습니다.


"공감이 서툰 부모는 없다. 진심을 공식 안에 가두어 두었을 뿐이다."

유독 천천히 읽게 된 건 3장의 감정에 죄책감을 느끼는 부모 꼭지였어요. 아이를 혼내고 돌아선 밤, 곤히 잠든 얼굴을 보며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갖고 화 좀 참을 걸' 하고 후회하는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저자는 화도 짜증도 부모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느끼는 감정이라고 말해요. 부모가 늘 웃는 얼굴로 차분하기만 하면, 아이는 자기 행동이 누군가를 속상하게 할 수 있다는 것조차 깨닫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덧붙이고요. 중요한 건 그 화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화를 건강하게 표현하는 기준이 두 가지 나오는데, 두 번째에서 좀 뜨끔했습니다. 상황에 비해 화가 지나치게 자주, 과도하게 터져 나오지는 않는지 살펴보라면서 이런 말을 하거든요.


"온종일 밖에서 쌓인 피로나 풀리지 않은 다른 일이, 아이를 핑계 삼아 함께 터져 나온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 다니는 중년이라면 이 문장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아요. 회사에서 삼킨 말이 엉뚱한 데서 튀어나오는 일, 다들 한 번쯤은 겪어봤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자가 권하는 방법이 더 반갑게 읽혔어요. 지친 날에는 내 마음 상태를 아이에게 미리 솔직하게 알려주라는 거예요. "오늘 엄마가 일하면서 힘든 일이 있어서 마음의 여유가 조금 없어. 그래서 평소보다 작은 일에도 더 속상하거나 화가 날지도 몰라." 화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땐 "엄마가 지금 화가 너무 나서 마음을 잠시 추스르고 다시 이야기해야겠어" 하고 잠시 자리를 비워도 괜찮대요. 단서도 붙어요. 기분이 안 좋다고 잘못을 유야무야 넘겨서도 안 되고, 스트레스를 핑계 삼아 더 가혹하게 몰아붙여서도 안 된다고요. 회의 들어가기 전에 "제가 오늘 컨디션이 좀 별로예요" 하고 미리 말해두면 서로 덜 다치잖아요. 그걸 떠올려보면 집에서만 통하는 이야기는 아닌 거 같더라고요.


부모 역할에는 원래 자기 모습보다 훨씬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게 된대요. 그러다 보면 좋은 부모를 연기하게 되고, 속마음과 행동이 따로 놀면서 훈육도 길을 잃는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 뒤에 붙은 밑줄 두 줄이 꽤 든든했어요.

"'좋은 부모'가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사람 사이의 선을 지킬 줄 아는 '좋은 사람'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솔직하게 걸렸던 건 5장이에요. 아이가 잠든 밤, 거실 소파에 몸을 묻었는데 마음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는 부모가 나옵니다. 저녁 차릴 때 아이가 흘린 "오늘 연우가 나한테 또 시비 걸었어"를 "그래? 왜?" 하고 건성으로 넘긴 게 자꾸 마음에 걸리고, 숙제 봐줄 때 너무 몰아세운 일까지 떠올라요. 텔레비전을 봐도 화면이 눈에 안 들어오고, 책을 펴도 같은 줄을 몇 번씩 다시 읽는다고요.


몸은 쉬어도 마음이 쉬지 못한다면, 그것은 쉬는 것이 아니니까.

육아 얘기인데도 직장인 귀에 너무 정확하게 들어와서 좀 불편할 정도였습니다. 저자는 부모이기 전에 한 사람의 어른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이 있다면서 직장에서의 일, 부모님의 건강, 부부 사이의 문제, 돈과 미래를 향한 걱정을 하나하나 꼽아요. 40대 후반 아재한테는 그 목록이 제 하루를 그대로 읽어주는 것 같았어요.

더 불편했던 건 그다음이에요. 쉼 없이 돌아가는 부모 마음이 지친 표정, 한숨 섞인 말투, 끊임없이 무언가를 염려하는 눈빛이 되어 아이에게 흘러든다고 해요. 그런 부모 곁에서 아이는 "엄마가 또 힘들어 보이네", "아빠 표정이 안 좋은 걸 보니 내가 뭘 잘못했나" 하며 안색부터 살핀대요. 정말 속상하고 힘든 일일수록 더 깊이 감추고요. 읽기 편한 대목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이 책에서 가장 필요한 이야기가 여기 있는 것도 같고요.


5장의 밑줄 문장은 이랬습니다.

"부모가 마음을 놓아야, 아이도 마음을 놓는다. 부모의 쉼은 게으름이 아니라 아이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한 선물이다."

돌아보면 <요즘 아이를 위한 여백 육아>가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은 건 저자가 처음부터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아서인 것 같아요. 교실에서는 어떤 아이 앞에서도 의젓한 교사인데, 집에 돌아가 제 아이 앞에 서면 똑같이 흔들렸다고 프롤로그에서 털어놓거든요. 더 잘해주지 못한 날에는 잠든 아이 얼굴을 보며 미안해했다고요. 그러면서 이 책을 "같은 길에서 나란히 헤매본 사람이 건네는 편지라고 여겨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소개합니다. 가르치는 선생님 목소리보다 옆자리 선배 목소리에 가깝게 들리는 건 그래서인가 봐요.


에필로그에는 "짐을 덜어낸 자리에 남는 것이 여백입니다"라는 문장이 있어요. 제목의 여백이 무슨 뜻이었는지 여기서 한 번 더 또렷해지더라고요. 아이가 스스로 자랄 여백, 부모가 자기 삶을 살아갈 여백.


초등학생을 키우는 집이라면 윤서네 식탁 장면부터 고개가 끄덕여질 것 같아요. 꼭 부모가 아니어도 사람 마음을 대하는 법으로 읽혀서, 읽는 내내 재미있었습니다. 꼭지 끝마다 빨간 밑줄 문장이 붙어 있어서, 마음이 바빠질 때 그 문장들만 골라 훑어봐도 충분할 것 같고요. 초록 표지 속 둥근 식탁에 둘러앉은 세 식구 그림도 정겹고, 프롤로그 첫머리의 작은 창문 그림 같은 소소한 삽화도 좋았어요. <요즘 아이를 위한 여백 육아>는 책장에서 손 닿기 쉬운 칸에 오래 꽂혀 있을 것 같습니다.


아침저녁 바람이 제법 쌀쌀해지고 단풍이 슬슬 물드는 10월 중순이에요. 주말을 하루 앞둔 목요일인데, 이번 주말엔 몸만 말고 마음도 좀 쉬게 해주고 싶어지네요. 좋은 책 만나서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기분입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따끈한 차 한 잔 곁에 두고 편안한 가을 보내세요.


외운 공감 공식을 내려놓고,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숨 쉴 자리를 내어주자는 다정하고 단단한 육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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