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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불안을 이기는가 - 고요한 행복에 이르는 에피쿠로스의 지혜
박은미 지음 / 서사원 / 2026년 8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붉은 배경 한가운데, 무릎을 끌어안고 얼굴을 손에 묻은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붉은 옷과 청록의 배경이 서로를 밀어내는데 정작 제목 글씨는 차분한 회청색으로 눌려 있어요. 불안을 감추지 않고 화면 정면에 세워둔 다음, 그것을 다루는 말은 낮은 목소리로 하겠다는 태도. 표지를 처음 봤을 때 받은 인상이 그랬고, 다 읽고 나서도 그 인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철학은 어떻게 불안을 이기는가>는 에피쿠로스가 남긴 백이십여 개의 구절 가운데 스물다섯 개쯤을 골라 오늘의 말로 풀어낸 책입니다. 손에 들면 한 손에 잡히는 판형에 두께도 적당해서, 진도에 부담이 없습니다. 저자 박은미는 철학박사이면서 '알아들을 수 있는 철학'을 모토로 활동해온 철학커뮤니케이터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문장에서 그 이력이 그대로 만져집니다. 개념어를 쌓아 올리는 대신 말을 걸듯 씁니다. 각 편 끝에는 질문 한 줄이 놓여 있어요.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없어진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잃기 싫은 것이 무엇인지 묻는 식입니다.

가장 먼저 발목이 잡힌 대목은 2장의 '부재'였습니다. 저자는 사람이 좋아지는 것에는 쉽게 적응하지만 나빠지는 것에는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인간이 불행해지기 쉬운 이유를 찾습니다. 좋아지는 쪽은 적응할 필요도 없이 저절로 익숙해지니 좋은 줄을 모르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있을 때는 있어서 좋은 점보다 있어서 불편한 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없을 때는 없어서 불편한 점만 크게 보인다는 관찰이 이어집니다. 결국 곁에 없어져야 그 가치를 알게 되고, 늘 뒷북을 치며 후회하게 된다는 말인데, 이 문장 앞에서는 변명할 여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이 챕터에서 저자가 꺼내는 사례가 하필 직장 이야기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취직했는데 이걸 위해 그렇게 애썼나 싶을 정도로 허망하다고 말한 사람의 이야기예요. 저자는 그런 마음이 드는 게 자연스럽다고 먼저 인정한 뒤에, 월급이 없어서 힘들었던 시간을 생각해보라고 권합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원했던 것이었는지 잊지 않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라는 말과 함께요. 챕터는 저자가 가장 좋아한다는 에피쿠로스의 구절로 닫힙니다.

"멀리 있는 것에 대한 욕심 때문에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무시하지 말라. 지금 누리고 있는 그것도 당신이 한 때 열망했던 것이었음을 잊지 말라."
이 책이 다독임에만 기울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건 바로 다음 챕터, '인식'에서였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하는 리더가 옆에 쓴소리하는 참모를 두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 역할을 자기 안에도 마련해두라고 권하는 대목이에요.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말한 악마의 변호인을 끌어와, 어떤 사람의 입장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 사람의 논리를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못을 박습니다. 그게 안 되면 아직 악마의 변호인을 두지 못한 것이라고요. 예측력을 높이는 방법으로는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에 일부러 가중치를 얹으라고 조언하는데, 나를 잘 아는 친구나 인공지능에게 내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을 말해달라고 부탁해보라는 제안까지 나옵니다. 고대 철학서를 읽다가 이 문장을 만나니 조금 웃음이 났고, 동시에 실제로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가 들수록 자기 판단을 검토받을 자리가 줄어드는데, 이 챕터는 그 빈자리를 정확히 가리킵니다. 논의에서 패한 사람이 새로 배운 바가 많으니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에피쿠로스의 말도 여기 함께 놓여 있습니다.
책의 무게가 확 실리는 곳은 3장입니다. 저자는 죽음을 다루면서 물리학자 김상욱의 이야기로 문을 엽니다. 동료의 죽음으로 충격에 빠져 있을 때 돌아가신 분이 원자로는 우리 곁에 있다는 생각이 위로가 되었다는 말을 옮기고, 그 표현이 에피쿠로스의 죽음관을 떠올리게 한다고 연결해요. 에피쿠로스에게 죽음은 원자 배열의 해체이고, 모든 좋고 나쁨은 감각에서 생기는데 죽음은 감각의 박탈이니 두려워할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우리가 존재할 때 죽음은 오지 않았고, 죽음이 왔을 때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구절이 그 자리에 인용되어 있습니다. 탄생 이전의 비존재가 문제되지 않는다면 죽음 이후의 비존재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루크레티우스의 물음도 따라붙고요.

솔직히 말하면 이 논변만으로는 마음이 다 놓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자가 그 지점을 먼저 짚어줍니다. 에피쿠로스의 말을 다 받아들여도 지금 누리는 모든 것과 맺고 있는 모든 관계가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은 슬픔을 준다고, 죽어서는 모르겠지만 지금 여기 있는 자신은 그 미래를 알고 있으니 삶의 허무가 슬픈 것이라고 적어요. 애써 모아둔 자산과 집착했던 관계와 청춘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라는 생각 앞에서 사람이 무력해진다는 서술도 함께 나옵니다. 읽는 사람의 반론을 저자가 대신 말해주는 구성이라, 오히려 그다음 문장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다음이 이 책의 승부처입니다. 저자는 '덧없다'는 말을 한 번 더 뒤집어요. 덧없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하나의 고정관념일 수 있다고, 덧없음을 허무해하는 마음조차 덧없을 수 있다고 씁니다. 지금 나를 짓누르는 허무함이며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흘리는 눈물이며 왜 나만 운이 없냐고 억울해하는 마음까지도 길어야 몇십 년 뒤면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대목에서,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슬퍼하는 일조차 덧없기에 비로소 오늘 눈앞의 평온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저자의 말이 그 가벼움의 정체였던 것 같아요. 불교의 방하착을 끌어와 손에 쥔 모래를 흘려보내듯 마음을 놓아버릴 때 편안해진다고 풀어내는 흐름도 자연스러웠습니다. 허무를 반박해서 이기는 방식이 아니라 끝까지 통과해서 지나가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제목의 '이기는가'가 어떤 뜻인지 여기서 분명해집니다.
에피쿠로스 본인의 임종 편지를 읽는 자리에서는 꽤 오래 시선이 멈췄습니다. 극심한 통증을 열거한 다음에 이렇게 이어지거든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건 우리가 함께 나눈 철학적 대화들을 떠올리며 내 영혼이 느끼는 기쁨 덕분이지."
아타락시아를 말한 철학자가 자기 주장에 어울리는 마무리를 했다는 저자의 한마디가 과장 없이 들렸습니다. 이론을 논증으로 증명하는 대신 마지막 태도로 증명한 셈이니까요. 죽음 이후는 분명하지 않지만 죽음을 두려워하느라 지금을 놓치는 것은 분명한 손해라는 문장도 이 장 어딘가에 있습니다. 손익을 따지는 말투인데, 그래서인지 오히려 실감이 컸어요.

아쉬운 대목도 있었습니다. '부재' 챕터에서 밀당을 소재로 끌어온 부분은 논지에 잘 붙지만, 철학책의 결 안에서는 살짝 겉도는 느낌이 있었어요. 저자도 밀당이 전략이 되는 것은 씁쓸한 일이라고 인정하며 방향을 돌리니 읽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습니다. 더 크게 남은 물음은 다른 쪽입니다. 덧없음을 끝까지 인정하면 해방감이 찾아온다는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그 해방감이 실제 상실 앞에서 얼마나 버텨주는지에 대해서는 책이 답을 아껴둡니다. 아마 답할 수 없는 영역이겠지요. 다만 책장을 덮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것도 그 미결의 자리였습니다. 저자의 글은 위로를 건네되 결론을 대신 내려주지는 않고, 각 편 끝의 질문으로 공을 다시 넘깁니다. 그 방식이 이 책의 성격에 맞다고 생각해요.
읽는 동안 떠오른 얼굴들이 있습니다. 성과와 평가를 기준으로 오래 판단해온 사람, 자기 결정을 검토해줄 누군가가 필요한 사람, 부모 세대의 노년을 지켜보며 죽음이라는 단어를 처음 실감으로 만난 사람. 퇴직금으로 무엇을 해볼까 궁리하며 유리한 가능성만 보고 있는 이에게는 '맑은 정신의 추론'을 다룬 대목이 특히 서늘하게 읽힐 겁니다. 고대 철학이 어렵게 느껴져 미뤄두었다면, 이 한 권이 입구로 삼기에 무리가 없다는 말도 덧붙이고 싶네요.
이 도서는 북유럽 카페를 통해 서평단으로 받았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읽고 정리하는 일이 순서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정리가 잘 되지 않아 며칠을 두고 다시 펼쳤습니다. 마감을 위해 읽는 책과 저를 향해 읽게 되는 책이 다르다는 걸 알려준 한 권이었어요.
9월 중순의 공기가 아침저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여름 내내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슬며시 물러나는 계절이라, 있음의 가치를 뒤늦게 알아차리는 인간의 습성을 이야기한 이 책과 시기가 잘 맞았습니다. 창을 열어두면 바람이 한 자락 들어오는 저녁, 그 정도로도 하루가 괜찮아진다는 말을 이제는 조금 믿게 되었습니다.
죽음과 덧없음을 끝까지 인정하고 지나갈 때 오늘의 평온이 손에 남는다는 것을, 에피쿠로스의 말과 저자의 담백한 문장으로 확인하게 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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