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 사용 설명서 - 나나와 찌돌이의 연애 일기
정오목 지음 / 모티브 / 2026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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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정오목 <우리 사이 사용 설명서>, 가장 가까운 사람을 다시 관찰해 보는 커플 다이어리


사용 설명서라는 이름이 붙은 물건 중에 끝까지 읽어 본 게 몇 개나 될까 싶어요. 전자레인지도 공기청정기도 일단 눌러 보고, 안 되면 그제야 서랍을 뒤지는 게 아재들 국룰이잖아요. 그런데 사람 사이에도 설명서가 있다면 얘기가 좀 달라지는 거 같아요. 이쪽은 고장 나기 전에 미리 펼쳐 봐야 하는 설명서더라고요.


<우리 사이 사용 설명서>는 커플 이모티콘 (나나와 찌돌이)를 만든 정오목 작가의 책이에요. 부제는 '나나와 찌돌이의 연애 일기'예요. 펼쳐 보면 귀여운 연애 만화와 두 사람이 직접 채워 넣는 커플 다이어리가 번갈아 나와요. 만화 한 꼭지를 웃으며 보고 나면 빈칸이 기다리고 있는 식이라, 읽는 책이면서 쓰는 책이기도 합니다.


노란 하트가 둥둥 떠 있는 표지부터 마음이 말랑해지는 느낌이에요. 손에 쥐기 좋은 크기에 두께도 부담 없는 편이라, 가방에 넣어 다녀도 어깨가 항의하지 않을 것 같고요.

첫 꼭지 '내 눈엔 너만 보여'는 벚꽃 날리는 사람 많은 곳에서 시작해요. 찌돌이가 휴대폰을 들고 "올 때가 됐는데.." 하고 두리번거리다가 "자기야!!" 하고 나나를 찾아내요. 주변 사람들은 회색 동그라미로 뭉개 놓고 둘만 색을 입혀 놨는데, 거기에 "그 많은 사람 중에 너만 보여"라는 문장이 얹혀요. 제목이 그림으로 그대로 보이는 기분이었어요. 늦어서 미안하다는 나나한테 "괜찮아~" 하는 찌돌이 얼굴이 어찌나 해맑던지요.


연애 세포가 동면에 들어간 지 한참 된 아재도 그 회색 동그라미 장면에서는 피식 웃게 되네요.

찌돌이라는 인물이 재밌는 게, 이 친구는 늘 메모 중이에요. 마음속으로요. '더 알아가고 싶어' 꼭지에서 나나가 파스타를 먹으며 "완전 내 취향!" 하면 찌돌이는 속으로 "나나는 꾸덕한 파스타를 좋아하는군" 하고 적어 둬요. 둘 다 배가 터질 것 같다고 해 놓고 나나가 후식 얘기를 꺼내자, "나나는 배불러도 후식은 꼭 먹어줘야 하는군.." 하고 또 한 줄 추가하고요. 큰 이벤트보다 이런 사소한 기억이 연애를 굴러가게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회사에서도 비슷하잖아요. 내 커피 취향 기억해 주는 동료가 괜히 고마운 그런 거.

<우리 사이 사용 설명서>라는 제목이 가장 잘 살아나는 대목은 관찰일지 두 편 같아요. '나나 관찰일지'에서는 탐험가 모자를 쓴 찌돌이가 쌍안경을 들고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을 깔아요.

"앗! 야생의 나나가 나타났다!"

평소엔 온순한 편이지만 가끔 폭주할 때가 있다는 설명과 함께 '아르르 으르릉' 하는 나나가 등장해요. 찌돌이는 침착하게 가방을 뒤적여 도넛을 꺼내고요. 탄수화물을 먹이면 금세 진정되고, 달거나 매울수록 효과적이니 꼭 알아두라는 친절한 안내까지 붙어요. 그러고는 "떡볶이도 먹을래?" "웅!!" 이 대목에서는 소리 내서 웃었습니다. 이건 진짜 실전용 매뉴얼이에요.


반대편 '찌돌이 관찰일지'에서는 나나가 안경에 흰 가운 차림의 연구원이 돼요. 관찰한 바에 따르면 찌돌이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득근'이고, 근손실에 매우 민감하며, 거울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해요. "#오운완", "오늘 팔 잘 먹었다"까지 하고는 "자기야 만져봐!!" 하는데, 나나 손끝에서 나는 소리가 '말랑..'이에요. 그래도 "아무튼 운동은 좋은 거니까 응원해줍시다..!" 하며 작게 화이팅을 붙여 주는 나나가 참 다정하더군요. 불꽃을 두르고 헬짱이 되겠다는 찌돌이를 보니 남 일 같지가 않았어요. 찌돌이 팔이 말랑이면 제 팔은 거의 찹쌀떡일 테니까요.


만화 뒤에는 '짝꿍 관찰일지'라는 기록 페이지가 붙어 있어요. 오늘 내 짝꿍의 기분 점수, 착장 포인트, 먹고 싶어 한 음식, 얼굴의 점 개수, 나에게 가장 많이 하는 잔소리 같은 항목이 쭉 이어지고, 마지막엔 하트 모양 칸에 '내 짝꿍 한 줄 정리'를 쓰게 돼 있어요. 재미있는 건 같은 질문지가 노란 판과 파란 판으로 두 벌 들어 있다는 점이에요. 노란 쪽엔 나나 사진이 붙어 있고 돋보기는 찌돌이가 들고 있어요. 파란 쪽엔 찌돌이 사진이 붙어 있고 돋보기는 나나 손에 있고요. 한 사람이 한 장씩 맡아 서로를 관찰하라는 구성인데, 이 책만의 재미는 아마 여기서 나오는 거 같아요.


점 개수 세는 칸은 좀 웃기긴 해요. 얼굴 들이밀고 세다 보면 다투던 것도 까먹을 듯.

물론 내내 깔깔거리기만 하는 건 아니에요. '삐졌음'은 같은 상황을 남자친구 편과 여자친구 편으로 나란히 붙여 놨어요. 찌돌이가 "미워 진짜!" 하고 삐지면, 나나가 반짝이는 눈으로 "진짜 미워..?" 한마디 하는 걸로 상황 끝이에요. "으휴!!" 하면서 금세 옆에 붙거든요. 반대로 나나가 삐졌을 때 찌돌이가 똑같이 반짝이는 눈으로 "화 풀어~" 해 보면, 나나 뒤로 불길이 확 치솟고 찌돌이는 식은땀을 흘리며 "아..?" 해요. 같은 애교, 다른 결과. 두 장을 나란히 보면서 많이 웃었는데, 한편으로는 좀 뜨끔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꼭지보다 한 컷 한 컷 오래 들여다본 건 '솔직하지 못한 이유'였어요. 나나가 베개에 엎드려 휴대폰을 보다가 "분명 서운하긴 서운한데.." 하고, 이어서 "말하자니 별거 아닌 것 같고 내 자신이 치사하게 느껴져" 하며 얼굴을 묻어요. 이 마음은 나이와 상관없이 다들 아는 거 같아요.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서운한 한마디가 마음에 남는 날이 있잖아요. 그런데 꺼내자니 쪼잔해 보일까 봐 그냥 삼키게 되고요.

그 뒤로 나나는 앞으로 솔직하게 말하려고 노력하겠다고 하고, 찌돌이는 더 잘 들어주고 서운한 점이 있으면 고치겠다고 해요. 두 손이 맞잡힌 컷에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맞춰가는 과정이니까"라는 문장이 놓여 있고요. 거창한 해법을 내놓는 쪽은 아닌 거 같아요. 마음에 걸리면 대화로 풀자는 누구나 아는 말인데, 귀여운 그림 옆에 있으니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더라고요.


다툼 이야기 근처에는 '싸웠을 때 갈등 해결법' 페이지도 있어요. 생각할 시간을 갖고 대화할지 그 자리에서 바로 풀지 고르고, 화해할 때 꼭 할 행동을 악수, 포옹, 뽀뽀 중에서 하나 정해 두는 식이에요. '이것만은 하지 말아줘!' 페이지에는 남자친구가, 또 여자친구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말이나 행동을 적는 말풍선 칸이 있어요. 그 옆에서 캐릭터들이 옐로카드를 들고 서 있는 게 또 귀엽습니다. 싸우기 전에 규칙부터 정해 두는 셈이라 꽤 실용적이다 싶었어요.


'내 자존감 지킴이'도 좋았어요. 거울 앞에서 "나 요즘 못생겨진 거 같아", "살도 많이 쪘어.." 하며 울먹이는 나나한테 찌돌이가 "뭐가 살쪄!!!", "뭐가 못생겨!!!" 하고 버럭해요. 그러더니 귀엽고, 섹시하고, 예쁘고, 깜찍하고, 사랑스럽다는 말을 폭포처럼 쏟아내요. "아~! 그만해~~ ㅎㅎㅎ" 하는 나나 얼굴이 금세 풀리고요. 이어서 거울 앞에서 "진짜 예쁜가?" 하는 나나 옆에 "오늘도 잘생겼군" 하는 찌돌이가 나오는데, 이 둘의 온도 차가 또 웃음 포인트예요.

'네 꿈을 응원해!'에서는 나나가 머뭇거리며 "자기야 나 사실 이거 해볼까 하는데.." 하고 말을 꺼내요. 찌돌이는 "응!!" 하고 바로 받아요. 자기라면 분명 잘할 거라고, 옆에서 열심히 돕겠다고 펄쩍 뛰는데, 그 응원 뒤에 찌돌이 속마음이 살짝 숨어 있어요. 어떤 속마음인지는 직접 보셔야 더 재밌을 거예요.


<우리 사이 사용 설명서>는 둘이 펼쳐야 제맛인 책이라, 혼자 빈칸을 보고 있으면 살짝 머쓱한 기분이 들긴 해요. 그래서인지 선물로 건넸을 때 더 빛날 책 같습니다. 연애를 막 시작한 커플이 같이 채우면 서로 알아가는 교재가 되겠어요. 오래 함께한 사이라도 점 개수부터 다시 세 보는 재미가 쏠쏠할 거 같고요.


책 안에는 '무조건 잘 되는 부적'도 한 장 들어 있어요. 네잎클로버를 같이 든 나나와 찌돌이 그림이라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져요. 만화만 보고 끝나는 책이 아니라 두 사람의 글씨가 채워지면서 세상에 한 권뿐인 기록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 사이 사용 설명서>는 책장에 오래 꽂아 두고 가끔 꺼내 보고 싶은 쪽이에요.


단풍 소식이 하나둘 들려오는 10월 중순의 금요일이에요. 바람이 제법 차가워져서 그런지 이렇게 몽글몽글한 책이 더 반갑더라고요. <우리 사이 사용 설명서> 덕분에 한 주 피로가 사르르 녹은 기분입니다. 이번 주말엔 옆 사람한테 떡볶이 먹을래 한마디 건네 보시고요, 점 개수 세다가 등짝 맞지 않게 조심하세요. 따뜻한 가을 주말 보내세요.


서로를 관찰하고 기록하며 둘만의 매뉴얼을 함께 써 내려가는, 귀엽고 다정한 커플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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