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꼭 해야 할 42가지
이택호 지음 / 미래북(MiraeBook)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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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꼭 해야 할 42가지> | 한두 정거장 먼저 내리고 싶어지는 책


표지부터 얘기하고 싶어요. 초록과 노랑으로 몽글몽글 부풀어 오른 숲 사이로 강이 한 줄기 흐르고, 그 위에 밀짚모자를 쓴 사람이 탄 쪽배가 하나 떠 있습니다. 그런데 제목은 꽤 세게 들어오더라고요.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꼭 해야 할 42가지>. 풍경은 이렇게 느긋한데 제목은 등을 툭 치는 것 같아서, 그 간격이 궁금해 첫 장을 열게 되는 책 같아요.


부제는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영혼의 버킷리스트'예요. 버킷리스트라길래 처음엔 양동이를 몇 개 챙기라는 얘긴가 했습니다. 네, 아재라서 그렇습니다.

책을 펼치면 꼭지마다 'Bucket List 03', 'Bucket List 05' 하는 식으로 번호가 붙어 있고, 작은 캐릭터 그림이 꼭지 첫머리를 지키고 서 있어요. 마흔두 가지 할 일이 다섯 갈래로 나뉘어 있는데, 마음가짐에서 시작해 지켜야 할 가치, 노후, 가정, 성공의 원칙 순으로 걸어가는 구성이라 차례만 훑어봐도 인생을 한 바퀴 도는 기분이 듭니다. 경영학을 가르치는 이택호 교수가 쓴 책이라 그런지, 막연한 위로보다 "그래서 오늘 뭘 하면 되는데?"에 대한 대답이 먼저 나오는 편인 것 같아요. 올해 8월에 새 단장을 하고 나온 판이기도 하고요.


앞쪽 꼭지 중 '조급해 하지 말고 여유를 갖는다'는 "우리는 바쁘다"라는 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쉴 틈 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새 1년이 지나가 있다는 얘기인데, 그냥 제 얘기 같더라고요. 빠른 걸음으로 길을 재촉하는 사람, 걸으면서 휴대전화에 고함을 지르는 사람, 흡연 장소에서 초조한 얼굴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 저자가 그려 놓은 이 거리 풍경 어딘가에 저도 한 자리쯤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여기 소개된 우화 하나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에게 용한 의사가 이런 처방을 내려요.

"당신의 병은 특이하여 3년 동안 말린 쑥을 달여 먹어야 나을 수 있소."

이 사람은 이미 3년 동안 말린 쑥을 구하려고 전국을 헤매다가, 쑥을 찾아다닌 지 6년째 되던 해에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아요. 쑥을 사다가 3년 말리면 됐을 텐데 조급한 마음에 그 생각을 못 한 거죠. 짧은 옛이야기인데 웃음이 쉽게 나오지는 않더군요. 조급함이 사람을 얼마나 엉뚱한 길로 끌고 가는지, 이보다 짧게 설명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유를 갖는 방법도 손에 잡히게 나와 있어요. 퇴근 후 가까운 서점에 들러 마음에 드는 책을 잠깐 집어 보거나 백화점 잡화 매장을 둘러보라는 것, 노자의 '무위'에서 빌려 온 한눈파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 매일 15분씩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정해 두라는 것. 그중에 제일 솔깃했던 건 내려야 할 정거장보다 한두 정거장 먼저 내려서 걸어 보라는 제안이었습니다.


"어라? 여기에도 서점이 있네. 잠깐 들어가 볼까?"

매일 지나치던 길에서 이런 혼잣말이 나온다는 건데, 읽기만 해도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에요. 다만 저는 회사 두 정거장 전에 내리면 그대로 반대편 버스를 타고 집에 가고 싶어질까 봐 그게 걱정입니다.


Part 3의 '직장은 당신의 인생이다'는 직장인이라면 제목부터 그냥 넘기기 어려운 꼭지예요. 하루의 3분의 2를 직장에서 보내면서 그 시간을 늘 불만 속에 지옥처럼 보내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데, 반박할 말이 잘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첫 번째 처방은 '여유를 두고 출근하라'입니다. 러시아워 만원 전철에 시달리다가 9시가 될까 말까 할 때 사무실에 들어서면 이미 녹초라는 거죠. 30분만 일찍 나서서 차 한 잔 마시며 하루를 준비하라는 말, 5분만 더 자고 싶어도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라는 말은 40대 후반의 몸으로 듣기엔 살짝 얄밉기도 해요. 틀린 말이 하나도 없어서 더 얄밉고요.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거의 다 잡무에서 온다는 대목에서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그러니 잡무도 본업처럼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하라는 건데, 연차가 쌓일수록 더 와닿는 얘기 같아요. 인생 2막을 준비하라는 대목에서는 이해진 회장의 직장인 시절 이야기가 나와요. 삼성SDS연구소 말단 사원이던 시절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의 25%는 순수하게 자기계발을 위해 쓰자'는 원칙을 세우고, 여덟 시간 걸리는 업무를 여섯 시간에 끝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준비가 끝났으니 당장 사표를 내라는 얘기는 아니어서 오히려 현실적으로 들렸어요. 1~2년 임시직이든 아르바이트든 하고 싶은 일을 먼저 몸으로 겪어 보라는 거죠. 혼다 소이치로의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하는 사람이다"라는 말도 같이 실려 있는데, 실수 하나에 며칠씩 끙끙 앓는 사람이라면 조금 숨통이 트일 만한 문장 같습니다.


솔직히 마음에 걸렸던 대목도 있어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노후대책이다'에 나오는 계산이요. 금융 컨설턴트들이 말하는 노후 자금이 대체로 10억 원인데, 월수입 350만 원인 직장인이 매달 100만 원씩 모아도 10억을 채우려면 77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77년.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아도 제 통장 사정에 대 보면 바로 답이 나오는 숫자라, 읽는 내내 마음 한쪽이 따끔거렸어요. 그래도 저자가 내놓는 방향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노후 대책의 핵심은 결국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느냐'로 귀결된다는 거예요. 장거리 선수가 100미터 달리기에 나가면 우승할 수 없듯이, 짧게 반짝이고 마는 단거리 직업보다 경험과 지식이 쌓일수록 빛나는 마라톤 직업을 고르라고 해요. 인생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는 기준이 지금은 마흔이지만 곧 쉰으로 바뀔 거라는 문장도 있었는데, 40대 후반인 저한테는 아직 반환점을 안 돌았다는 소리로 들려서 조금 반가웠습니다.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꼭 해야 할 42가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기만 한 책은 아니에요. '삶이 치열할수록 그 흔적도 깊고 넓다'는 시작이 재미있습니다. 누구든 앉았다 일어나면 흔적이 남는다면서, 폭신한 소파에는 그 사람의 몸무게와 엉덩이 크기만큼, 딱딱한 지하철 금속 의자에는 체위와 온도만큼 흔적이 남는다고 하거든요. 이렇게 생활감 있는 예시로 문을 열어 놓고 브루클린 다리 이야기로 넘어가요.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이 바로 이 다리 이야기예요. 다리를 놓자고 나선 존 뢰블링은 공사 중 발가락에 입은 작은 상처로 파상풍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뒤를 이은 아들 워싱턴 뢰블링마저 잠수병으로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이 됩니다. 아들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대요. 다리 한쪽 끝에 집을 얻어 망원경으로 공사 현장을 지켜보면서, 정해 둔 규칙대로 손가락으로 아내에게 신호를 보냈다고 해요. 아내가 그 뜻을 기술자들에게 말로 옮겼고, 그렇게 해서 1883년에 다리가 완성됐다고 합니다.


손가락 하나로 13년.

그 문장 앞에서 회의 때마다 "이건 좀 어렵겠는데요" 하고 쉽게 꺼냈던 제 말들이 떠오르더라고요. 꼭지 끝에는 소중한 흔적을 남기려면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할 것,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것, 이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붙어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과연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

Part 4의 '더 늦기 전에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첫 문단부터 조용히 마음을 누르는 꼭지예요. 효도는 할 수 있는 시기가 정해져 있어서 더 후회하게 된다는 말로 시작하고, 곧이어 어머니에 관한 짧은 일화가 하나 나와요. 이건 직접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몇 줄로 옮기면 그 맛이 덜할 것 같아서요.

뒤에 이어지는 효도하는 여섯 가지 방법은 거창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고민이 생기면 부모님께 상의드리기, 가까운 곳부터 함께 여행 다니기, 부모님이 아끼던 물건 간직하기, 건강 자주 챙겨 드리기, 한 번쯤 발 씻겨 드리기, 그리고 지금 바로 전화나 문자 드리기. 상의를 드리라는 대목에는 아직 부모님의 지혜가 필요한 자식이라는 걸 느끼게 해 드리는 것도 효도라는 말이 나와요. 다 컸다고 혼자 끙끙 앓던 시간들이 조금 미안해지더라고요. 부모님은 자식에게 짐이 될까 봐 아파도 내색하지 않으신다는 대목도 그랬고요.


용돈이 든 두툼한 봉투, 바쁘다는 핑계로 어쩌다 거는 전화, 명절에 보내 드리는 선물 보따리가 효도의 전부는 아니라는 말 다음에 딱 한 줄이 붙어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꼭 해야 할 42가지>라는 제목의 뒷부분이 여기서 이렇게 돌아오니, 표지에서 등을 툭 치던 제목이 이번엔 어깨를 붙잡는 것 같았어요.


Part 5의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라'에서는 토끼와 거북이가 둘 다 자기 페이스를 알고 있었다는 해석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토끼는 낮잠 잘 시간까지 만들 수 있었고, 거북이는 쉬지 않고 걸어갔다는 거죠. 그 뒤에 나오는 해거리 이야기는 특히 오래 붙들고 있게 되더라고요. 과일나무가 한 해는 열매를 많이 맺고 다음 해는 적게 맺기를 되풀이하는데, 쉬는 해에 모은 기운을 다음 해 탐스러운 열매로 쏟아내기 위해서라고 해요. 쉬는 해가 있어야 열리는 해도 있다는 얘기. 앞에서 읽은 여유 이야기와 마라톤 직업 이야기가 여기서 한 줄로 꿰어지는 것 같아 흐뭇했어요. 최고 학부를 나온 신입이 학력 없는 동기와 똑같은 견습공 일을 맡은 게 억울하다고 항의했을 때 포드가 들려준 대답도 시원했고요.


맛보기로 하나만 옮겨 볼게요. 마지막 꼭지 '인생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에 나오는 하버드 대학 교수 이야기입니다. 교수가 걷어 간 과제물을 돌려주는데, 거기엔 붉은 글씨로 '이것이 최선을 다한 결과인가?' 한 줄만 적혀 있었대요. 학생들은 다시 쓰고, 또 돌려받고, 도서관으로 몰려가 또 고치고. 그렇게 열 번 넘게 새로 쓴 끝에 학생들이 자신 있게 "그렇습니다. 저희가 최선을 다한 결과물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교수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이제 읽어보도록 하지요."

여기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지금껏 안 읽고 있었다니요. 보고서에 빨간 펜 수정을 몇 번씩 받아 본 직장인이라면 이 학생들 심정이 남 일 같지 않을 거예요. 같은 꼭지에 나오는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 이야기도 좋았어요. 거대한 청새치를 잡고도 상어 떼를 만나 흔적만 끌고 돌아온 노인을 두고, 누가 봐도 패배한 사람이었지만 그걸로 끝난 건 아니었다고 읽어 내는 시선이 따뜻하더라고요.


꼭지 하나하나가 짧게 끊어져 있어서 아무 데나 펼쳐 읽어도 되는 책이라, 책상 가까이 두고 생각날 때마다 한 꼭지씩 꺼내 보기 좋을 것 같아요. 두께도 부담스러운 편이 아니고 판형도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라 가방에 넣어 다니기에도 괜찮습니다. 무엇보다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는 꼭지는 마음이 무뎌질 때마다 다시 펼쳐 보고 싶어서, 저는 이 책을 오래 옆에 둘 것 같아요.


10월도 중순을 넘기면서 아침저녁 공기가 제법 차가워졌어요. 한 주를 버틴 금요일이라 몸은 무거운데, 이번 주말엔 부모님께 전화 한 통 드리는 것부터 시작해 볼까 합니다.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꼭 해야 할 42가지> 덕분에 올가을 할 일 목록이 조금 따뜻해진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바쁘게 달려온 중년 직장인에게 오늘 당장 해볼 수 있는 일 마흔두 가지를 건네는, 다정하고 현실적인 인생 버킷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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