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의 소름 돋는 미래 예측 50가지
최경수 지음 / 메이트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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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요즘 일론 머스크나 젠슨 황 같은 이름은 뉴스에서든 유튜브에서든 하루가 멀다 하고 마주치게 됩니다. AI 시대의 맨 앞줄에 선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들의 머릿속을 한 번쯤 들여다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던 차에 이 책을 만났어요. <젠슨 황의 소름 돋는 미래 예측 50가지>(최경수 지음, 메이트북스)는 제목 그대로 엔비디아를 시가총액 5조 달러 기업으로 끌어올린 인물이 지난 10년간 내놓은 50개의 예측을 모은 책입니다. 다만 단순히 '이런 말을 했다'에 그치지 않고, 그 말이 지금 얼마나 현실이 되었는지를 이미 현실이 됐다, 현실이 되고 있다, 아직 아니다라는 기준으로 하나하나 따져본다는 점이 다릅니다.


책을 펼치자마자 직장인이라면 누구든 멈칫할 만한 대목이 나옵니다. 개발의 무게중심이 코드를 직접 짜는 일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결과를 검증하는 일로 옮겨가고 있다는 이야기예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의 목적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 코딩이 아니며 코드 한 줄 쓰지 않고 문제를 해결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궁극의 생산성이라는 젠슨 황의 발언이 그대로 실려 있는데, 처음엔 개발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읽다 보면 결국 모든 직무에 던지는 질문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도구를 다루는 손재주보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묻고 답을 설계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는 흐름은 어느 분야에 있든 비껴가기 어렵습니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힘은 추상적인 AI 담론을 손에 잡히는 비유로 바꿔놓는 데 있습니다. 데이터센터를 설명하는 대목이 특히 그랬어요. 예전의 데이터센터가 이메일과 사진을 쌓아두는 거대한 창고였다면, 지금은 원재료를 넣으면 지능이 나오는 공장이 되었다는 겁니다. 2022년 GTC 키노트에서 젠슨 황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원자재가 들어오고 지능이 나간다. 그것이 AI 공장이다." 창고에는 선반이 필요하지만 쉼 없이 돌아가는 공장에는 원료를 옮기는 통로와 막대한 열을 식히는 설비가 필요하다는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액체 냉각 시스템으로 가득 찬 오늘날의 데이터센터가 왜 중공업 공장을 닮아가는지 자연스럽게 그려집니다.


기업의 경쟁력을 보는 시각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흔히 더 빠른 칩, 더 높은 사양이 시장을 가른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저자는 젠슨 황이 일찌감치 다른 답을 봤다고 짚습니다. 칩 위에 쌓이는 소프트웨어 생태계, 그러니까 개발자들이 오랜 시간 익히고 축적한 도구와 코드가 결국 가장 높은 장벽이 된다는 거예요. 더 좋은 칩이 나와도 20년간 쌓인 개발 환경은 하루아침에 옮겨지지 않습니다. 빅테크들이 자체 반도체를 만들면서도 엔비디아의 환경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는 설명을 읽으면, 기술 경쟁이 단순한 성능 싸움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뒤로 갈수록 책의 시야는 한 기업을 넘어 국가 단위로 넓어집니다. AI를 원자폭탄과 견주는 대목이 그래요. 핵은 소수의 강대국만 가진 선택적 권력이었던 반면, AI는 교육과 의료, 제조, 행정까지 사회 전체의 효율을 좌우하는 보편적 기반이라는 겁니다. 원자폭탄이 필요한 나라는 없지만 AI는 모든 나라에 필요하다는 젠슨 황의 말이 그 차이를 분명히 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작은 AI 드론이 값비싼 중장비를 무력화한 사례까지 읽고 나면, 국가의 위상이 영토나 자원이 아니라 데이터를 얼마나 정교한 지능으로 바꾸느냐에 달리게 됐다는 주장도 과장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자원은 부족하지만 기술 역량을 갖춘 한국 같은 나라에는 한층 무게 있게 와닿는 이야기입니다.


기술서나 경제서를 어려워하는 분들도 부담 없이 펼칠 수 있도록, 책 끝에는 '문과 출신도 이해하는 컴퓨팅 및 AI 용어 50선'이라는 부록이 붙어 있습니다. CPU와 GPU의 차이부터 HBM, 블랙웰 같은 용어까지 짧고 쉬운 비유로 풀어둬서, 본문을 읽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돌아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책은 AI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막연한 불안을 느끼는 사람, 그리고 그 변화의 정체를 한번 제대로 들여다보고 자기 자리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가늠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서평단으로 받아 읽은 책이지만, 읽는 내내 의무감보다 호기심이 앞섰습니다. AI를 다룬 책은 많아도 그 변화의 구조 전체를 이렇게 차분히 짚어주는 책은 드물어서, 그동안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기술 뉴스들이 비로소 하나의 그림으로 이어졌습니다.


6월의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요즘, 바깥은 부쩍 무더워졌습니다. 한 사람의 예측이 어떻게 현실이 되어가는지를 천천히 짚어가다 보니, 매일 쏟아지는 기술 뉴스가 더 이상 막연하게만 들리지는 않게 되더군요.


젠슨 황의 10년 치 예측을 통해 AI 시대의 구조와 본질을 차분히 읽어내게 해주는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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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미 기적이다 - 결핍이 만든 삶을 내려 놓는 용기
북크북크(박수용) 지음 / 청년정신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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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회색빛 바탕 한가운데 달걀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껍데기를 따라 가느다란 금이 갔고, 그 틈으로 빛이 새어 나와요. 단단히 닫혀 있던 무언가가 비로소 열리는 장면 같았습니다. 표지에서 눈길이 떨어지지 않던 차에 제목 아래 작게 적힌 한 줄, "결핍이 만든 삶을 내려 놓는 용기"가 들어왔고, 그 문구 하나에 끌려 결국 책을 펼쳤습니다.


북크북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박수용 작가의 책입니다. 12만 명이 팔로우하는 인플루언서이자 여러 권의 책을 낸 작가이고, 그 전에는 14년을 직업군인으로 살았다고 해요. 화려해 보이는 이력이지만 정작 이 책에서 그는 그 화려함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느 날 밤 지하철 창에 비친 자기 얼굴에서, 성공한 사람의 미소가 아니라 숫자에 쫓기는 사람의 표정을 발견했다는 고백에서 이야기가 출발해요. 팔로워 수, 매출 그래프, 진급 점수 같은 외부의 숫자가 곧 자기 가치라고 믿어온 한 사람이 그 모든 갑옷을 내려놓기까지의 기록이죠.


"명함은 이름 뒤에 붙는 설명일 뿐"이라는 문장 앞에서 책장 넘기던 손이 멈췄습니다. 직함도 성과도 숫자도 나를 소개할 수는 있어도 나를 대신할 수는 없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설명들이 자기를 대신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작가는 이렇게 못을 박습니다.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지 않으면 설명은 정체성이 되고, 정체성은 감옥이 된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해온 사람이라면 이 대목에서 잠깐 멈칫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느 회사 무슨 직책이라는 한 줄로 나를 소개하는 일에 익숙해진 만큼, 그 한 줄을 떼어냈을 때 무엇이 남는가 하는 물음이 의외로 묵직하게 다가오거든요.


비교를 다루는 방식도 정직해서 좋았습니다. 작가는 SNS에서 끝없이 올라오는 타인의 하이라이트를 들여다보는 일이 사실은 자기 삶의 공허를 잠시 잊으려는 회피였다고 인정해요. "남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나를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는 거죠. 우상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회피의 장치이고, 나를 마주하지 않으려고 세운 거대한 벽이라는 표현이 따끔했습니다. 비교란 상대의 삶을 보는 일이 아니라 나를 깎아내리는 일이라는 말도요. 타인의 완성된 장면과 나의 진행 중인 삶을 나란히 세워두고 스스로를 패배자로 판정하던 습관, 누구나 한 번쯤 해본 적 있을 겁니다.


"봄은 제때 오고, 나무는 제 속도로 자라며 바다는 스스로를 재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남의 보폭을 빌려 자신을 재촉한다." 이 책에서 가장 오래 곱씹은 문장이에요. 작가는 자신이 뒤처진 게 아니라 그저 자기 호흡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고 적습니다. 누군가는 몇 달 만에 팔로워 1만을 만들고 누군가는 1년 만에 억대 매출을 올리는 광경 앞에서, 자기 달력이 아니라 남의 달력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재단하고 있었다는 고백이 이어져요. 경쟁의 보폭으로 살기 시작한 순간 불안이 자라고, 그 불안이 자신을 멈추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중반부의 '거절할 수 있어야 내 삶이 된다'는 자유를 다시 정의하는 챕터입니다. 작가는 자유란 무엇을 더 붙잡는 능력이 아니라 붙잡지 않아도 될 것을 내려놓는 용기에 가깝다고 봐요. 작가로 알려진 뒤 들어온 수많은 요청을 처음엔 인정의 신호로 여겨 대부분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들이 존중한 건 자신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기능이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나는 존재로서 초대받은 것이 아니라 사용 가능한 자원으로 호출되고 있었다"는 대목이 서늘해요. 그래서 그는 "거절은 무례가 아니다. 거절은 선택이다"라고 말합니다. 부탁을 받았을 때 잠깐 멈춰 이 일이 나를 세우는 일인지 소모하는 일인지 묻는, 그 0.1초의 자각이 삶의 방향을 바꾼다고요. 거절을 분별하기 시작하자 흙탕물이 가라앉듯 삶이 조금씩 맑아졌다는 비유가 인상 깊습니다. 나를 아는 길은 욕망을 더하는 데서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데서 시작된다는 말도요.


책의 끝자락, '죽음을 기억하면 삶이 선명해진다'에서 작가는 가장 깊은 곳을 열어 보입니다. 일곱 살에 눈앞에서 어머니를 떠나보낸 기억, 약하게 태어나 일찍부터 죽음을 가까이 느꼈던 유년, 군 생활 중 훈련에서 죽음을 여러 번 마주했던 시간을 담담하게 꺼내요. 그러면서 죽음의 문턱에 서 보면 통장 잔액도 명함의 직함도 떠오르지 않고 오직 지금 숨 쉴 수 있는가 하는 감각만 남는다고 적습니다. 우리는 모두 종착역이 정해진 기차에 타고 있는데, 더 큰 짐과 높은 자리를 나라고 착각한 채 짐을 싣지만 종착역에서는 그 어떤 짐도 함께 내릴 수 없다는 비유가 묵직하게 와닿았습니다. "인생은 성과의 합이 아니다. 하루하루 쌓인 태도의 기록이다"라는 문장 앞에서는 책장 넘기는 속도가 한결 느려졌어요.


그리고 책은 제목 그대로의 자리에서 닫힙니다. "당신은 이미 기적이다." 우리가 세상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그 자리에 있던 것은 기쁨의 눈물이었고, 우리는 무언가를 이뤄서 사랑받은 게 아니라 그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웃음과 행복을 주었다는 거예요. 태어난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기적이었는데 자라면서 그 사실을 잊고, 사랑받기 위해 증명해야 한다고 믿기 시작했다는 거죠. 표지에서 금이 간 껍데기 사이로 새어 나오던 빛이 무엇이었는지,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 비로소 알 것 같았습니다.


성과가 곧 사람의 값이 되어버린 시대, 숫자가 오르면 안심하고 멈추면 불안해지는 마음의 구조를 우리 대부분은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명함 한 줄로 자신을 설명하는 일에 익숙해진 중년의 직장인이 읽으면 특히 깊이 다가올 것 같아요. 인생의 후반부를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무엇을 더 쌓을지가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을지 고민하게 된 사람, 남의 보폭에 맞춰 달리느라 정작 자기 호흡을 잃은 것 같은 사람에게도 조용한 위로가 되리라 봅니다. 거창한 해법을 주는 책은 아니지만, 갑옷을 하나씩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등을 토닥여 주는 손길 같은 도서였습니다.


유월로 접어드니 한낮의 볕이 제법 두툼해졌습니다. 무성해진 초록 사이를 걷다 보면 자라는 것들은 누구에게도 제 걸음을 묻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이 새삼 떠오르네요. 이번 여름엔 무언가를 더 채우기보다, 들고 있던 것들 가운데 정말 제 것이 아닌 게 무엇인지 가만히 들여다보려 합니다.


명함과 숫자라는 껍데기를 걷어낸 자리에서, 존재만으로 충분한 나를 다시 만나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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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언니의 갱년기 수업 - 병원에서 말해주지 않는 갱년기 신호와 회복 기술
제시언니 지음 / 힘찬북스(HCbooks)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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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를 펼치기 전부터 시선이 잠시 머뭅니다. 분홍 덤벨을 머리 위로 가볍게 들어 올린 사람, 그 옆에서 한 발을 들고 균형을 잡는 사람. 무겁고 어둡게 다뤄지던 단어 위에 '리셋, 리핏, 리본'이라는 세 단어가 산뜻하게 얹혀 있어요. <제시언니의 갱년기 수업>은 그 분위기 그대로, 갱년기를 '끝'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시간'으로 풀어내는 안내서입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받아 든 책이고, 머릿속에 오래 남아 있던 질문 하나가 있어서 천천히 읽었습니다.



질문은 이런 것이었어요. 갱년기를 통과하는 사람과, 그 곁에서 같은 시기를 다른 결로 지나가는 사람은 서로에게 무엇을 건넬 수 있는가. 얼마 전 본 드라마의 한 장면에서, 중년 남성이 자신의 변화 앞에서 당황하던 모습을 보며 그 질문이 더 또렷해졌어요. 남성 갱년기를 다루는 이야기가 늘어나는 요즘, 동갑내기 배우자의 변화를 가까이서 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정보를 좀 얻고 싶었고, 막연한 감정을 정돈해줄 언어가 필요했어요. 책을 집어든 이유는 거기 닿아 있었습니다.


저자 제시언니는 생활체육 강사로 20년 넘게 2만 명이 넘는 갱년기 여성을 만나온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도 자신의 갱년기 앞에서는 똑같이 흔들렸다고 고백하는 자리에서 책이 출발해요. 그래서 이 한 권은 완성된 사람이 위에서 내려주는 정답이 아니라, 먼저 통과해본 사람이 옆자리에 앉아 건네는 생활의 언어로 읽힙니다.


오래 머문 자리는 책의 첫 장을 여는 글이었어요. 갱년기를 한자로 풀면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시기'라는 점을 짚고, 초경과 출산은 축하받는데 왜 갱년기만 비밀이 되느냐고 묻는 도입부예요. 저자는 "초경은 파티. 출산은 축제. 갱년기는 비밀."이라는 짧은 세 줄로 사회적 비대칭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받아요. "모르면 그냥 무섭지만, 알면 오히려 반갑다." 정보서가 되려는 이유와 회복서가 되려는 이유가 같은 자리에서 출발하는 한 줄입니다.


이 챕터에는 일상의 감각을 살리는 비유도 많아요. 갱년기는 택배도 보내주는 사전 알림 문자 하나 없이 그냥 쑥 들어오는 손님 같다는 비유, 회의 중에 마트 계산대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풍경, "그거 있잖아, 그거…" 하며 손만 허공을 휘젓는 장면. 의학적으로만 다뤄지던 단어가 생활의 표정으로 옮겨 옵니다. 그러고 나서 저자는 시선을 돌려요. 20대는 정신없었고 30대는 더 정신없었으며 40대는 전쟁이었다고, 그러나 이제는 온전히 '나'로 살 시간이라고. 갱년기를 '여자 인생의 세 번째 호르몬 대격변'으로 자리매김하고, 그 자리를 '진짜 나를 위한 출발선'으로 다시 적습니다.


이어지는 장은 호르몬과 운동을 한 묶음으로 풀어냅니다. 멜라토닌, 인슐린, 성장호르몬, 옥시토신이라는 네 호르몬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유산소·근력·밸런스·코어·스트레칭이라는 다섯 운동이 왜 필요한지를 차례로 설명해요. 정보의 밀도는 단단한데 표현은 무겁지 않습니다. 멜라토닌은 밤의 수리공, 인슐린은 뱃살 관리자, 성장호르몬은 젊음 유지 장치, 옥시토신은 마음 방역관. 이름표만 봐도 책의 결이 짐작됩니다.


이 가운데 가장 깊게 들어간 자리는 옥시토신 챕터였어요. 갱년기에는 에스트로겐이 급격히 줄면서 뇌 전체에 안정적으로 공급되던 '전기'가 끊긴 것처럼 감정 조절이 흔들리는데, 옥시토신은 그 자리에 흐르는 '사랑의 호르몬'으로 코르티솔이 곳곳에서 지른 불을 꺼주는 소방관 같은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폐경 후 여성 1,097명을 6년간 추적한 옥스퍼드 대학교의 2014년 연구에서 옥시토신 수치가 높은 사람일수록 골밀도가 높았고, 특히 고관절에서 강한 연관성이 나타났다는 결과도 함께 인용돼요. 마음을 안정시키고, 뼈를 지키고, 관계를 회복하는 한 호르몬이 갱년기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옥시토신을 늘리는 방법으로 책은 따뜻한 포옹, 반려동물과의 교감, 주기적인 마사지, 단체 운동과 사회적 상호작용, 좋아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 타인을 위한 배려와 베풂까지 여섯 가지를 제시합니다. 어느 하나도 약국에 있지 않다는 점이 핵심이에요. "옥시토신이라는 사랑의 호르몬은 약국에서 사는 게 아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따뜻한 마음에서 만들어진다." 이 문장이 책의 무게중심을 옮겨놓습니다. 갱년기를 통과하는 사람뿐 아니라 그 곁의 사람도 함께 읽어야 할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가족과 친구에게 따뜻한 포옹을 먼저 시작해보자. '잘 잤어?' 하며 살짝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짧은 안내가 의외로 구체적이라, 무겁지 않게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행동으로 다가옵니다.


이 대목에서 도입부의 질문이 한 번 더 떠올랐어요. "내 성격이 변한 게 아니다. 호르몬이 변한 것이다"라는 한 줄을, 곁에서 함께 시기를 통과하는 가족이 먼저 알아두면 그날의 표정 하나, 한숨 한 번을 다르게 읽게 됩니다. 남성 갱년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어나는 흐름도 같은 맥락에 있어요. 결국 같은 시기를 서로 다른 결로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시작하느냐 모르고 시작하느냐, 그 차이가 일상의 결을 바꿉니다.


마지막 장은 다시 시선을 안쪽으로 돌립니다. '거울 속 낯선 언니랑 베프 되는 법' 챕터는 갱년기 진단을 받은 뒤 오히려 마음 한 켠이 편안해졌다는 저자의 고백에서 출발해요. "원인을 모르면 공포고, 원인을 알면 과제다. 공포는 도망치게 만들지만 과제는 풀 수 있다." 정보를 얻는다는 것의 진짜 의미가 이 두 문장 안에 들어 있습니다. 두려움을 과제로 바꾸는 일.


이어지는 자리에서는 자기 인정으로 결이 옮겨갑니다. "예전의 나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슬픈 일이 아니다. 예전의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새롭게 만나면 된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한 문장, "너 정도면 정말 잘 살았다." 자기 인정을 유리컵과 스테인리스에 빗댄 비유도 인상적이에요. 남의 인정에 기댄 삶은 예쁘지만 깨지기 쉽고, 내가 나를 인정하는 삶은 투박하지만 깨지지 않는다는 대비. 챕터 후반에는 "고마워"로 닫히는 자기 인사 목록이 길게 이어지는데, 읽기보다는 쓰기에 가까운 자리라 손끝이 한 박자 느려집니다.


책 뒤쪽 워크북에는 '나에게 보내는 편지'와 '내 인생 10대 뉴스' 같은 양식이 실려 있어요. 갱년기 신호를 점검하는 표, 꿀잠 루틴, 인슐린 저항을 낮추는 방법, 운동별 실천 가이드까지 곁들여져 있어서, 이 한 권이 읽기로 끝나는 책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정보와 위로 사이에 작은 실천란이 놓여 있는 셈이에요.


아쉬운 점을 굳이 짚자면, 일러스트 만화 컷이 페이지마다 충실하게 들어가 있어서 진지한 독서를 기대한 독자에게는 톤이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정도입니다. 다만 이 책의 1차 독자가 갱년기를 막 통과하기 시작한 50대 여성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 친근한 결은 단점이라기보다 의도된 다정함에 가까워 보여요.


서평단으로 한 권을 받아 읽는 동안, 평소 같으면 지나쳤을 단어 앞에 자주 멈춰 섰습니다. 갱년기라는 단어가 누군가의 비밀이 아니라 식탁 위에 올려놓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단어가 되는 일, 책은 그 작은 변화에서 시작된다고 말하는 듯했어요. 갱년기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사람, 그 문턱에 막 닿은 사람, 같은 시기를 곁에서 함께 통과하고 있는 가족 모두에게 책장에 한 권쯤 두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정보가 필요한 페이지에서는 호르몬과 운동의 작동 원리가 또렷이 잡히고, 위로가 필요한 페이지에서는 먼저 통과한 사람의 손이 어깨에 닿아요.


초여름의 공기가 한결 가벼워졌어요. 창문을 열어두면 바람이 길게 들어오고, 해가 늦게까지 머무는 저녁이면 산책의 보폭이 자연스럽게 길어지는 시기예요. 이런 계절에 어울리는 책 한 권을 만난 것 같습니다. 책을 덮고 보니, 도입부에서 찾던 '막연한 감정을 정돈해줄 언어'가 어느새 손에 잡혀 있었어요. 갱년기라는 단어를 '비밀'에서 '축하받을 자리'로 옮겨놓는 시도, 그리고 그 자리를 함께 걸어가자고 건네는 손길. 그 두 가지가 오래 남습니다.


한 줄 요약. 갱년기를 '끝'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시간'으로 다시 적게 만드는, 정보와 위로가 균형 잡힌 한 권의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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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돈 걱정 없이 은퇴할 수 있습니다 - 예비 퇴직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 36가지
정도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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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를 처음 받아 들었을 때 솔직히 갸웃했어요. 〈당신도 돈 걱정 없이 은퇴할 수 있습니다〉라니. 해가 바뀔 때마다 가계 지출은 무거워지고, 환율이며 경기 이야기가 뉴스 첫머리를 채우는 요즘에, 돈 걱정 없이 은퇴가 가능하다고 단정하듯 말하는 책이라면 어딘가 비현실적이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 미심쩍은 마음이 도리어 책장을 펴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그게 가능한 일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머스터드 톤의 표지 한가운데에는 작게 그려진 한 사람이 빛이 새어 나오는 문 앞에 서 있습니다. 들어갈지 말지 망설이는 듯한 그 실루엣이 책 전체의 분위기를 미리 일러 주는 것 같았어요. 단호하게 답을 내려놓는 책이 아니라, 문 앞까지 함께 걸어가 주는 책이라는 느낌. 북유럽 카페에서 서평 도서로 받아 든 한 권을 펼치며, 일단 의심은 잠시 접어 두기로 했습니다.


저자 정도영 소장은 20년 동안 3,000여 명의 중장년 재직자와 퇴직자를 만나온 현장 컨설턴트입니다. 책은 그가 강의와 상담에서 가장 자주 받은 질문 서른여섯 가지를 추려 묶었어요. ‘퇴직 준비는 뭐부터 해야 하나요’, ‘노후 적정 생활비는 어느 정도인가요’ 같은 질문이 그대로 챕터 제목이 됩니다. 그래서 읽는 사람의 자세가 자연스럽게 바뀌어요. 누군가의 성공담을 멀찍이서 구경하는 게 아니라, 상담실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이 됩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1부의 ‘노후에는 사실 돈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라는 챕터였어요. 책 제목과 정면으로 맞붙는 질문을 일찌감치 던져 놓은 셈인데, 저자는 여기서 ‘돈만 준비되면 끝나냐’고 물으면 대부분 아니라고 답하면서도 정작 돈이 어느 정도 마련되면 느슨해진다고 짚습니다. 노후 준비가 잘 안 되는 진짜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돈 문제’라는 틀에만 묶어 두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자는 건강·관계·돈·활동, 그리고 이 모두를 관통하는 변화 관리라는 다섯 축으로 노후를 다시 설계해 보자고 권합니다.


이 챕터에서 한 문장이 오래 남았습니다. “나는 돈이 많아도 가족 사이가 멀어져 서로 아무 애정 없이 지내는 경우를 보았고, 건강이 무너져 자신이 가진 부를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한 채 삶을 마치는 이들도 보았다.” 컨설턴트의 권위적 진단이 아니라 3,000명을 만나 본 사람의 담담한 증언이라서, 이 한 줄이 어떤 통계보다 묵직하게 다가왔어요.


2부의 ‘노후 적정 생활비는 어느 정도인가요?’ 챕터는 결이 좀 다릅니다. 여기서는 저자가 숫자를 충분히 펼쳐 놓아요. 국민연금연구원 자료로 50대 기준 적정 노후생활비가 부부 월 318만 원 선이라는 통계, KB 골든라이프 보고서의 부부 366만 원이라는 더 높은 수치, 서울과 비수도권의 차이까지 차근차근 짚어 줍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다음이에요. 2024년 1인당 국민총소득이 월 365만 원 수준인데 중위소득은 2인 가구도 368만 원에 그치고, 소득 하위 40% 가구는 사실상 적정 생활비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같이 보여 줍니다. 노후 희망 소득만 자꾸 높아지면 오히려 준비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요.


그래서 결론이 이렇게 닫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노후에 필요한 비용은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댓글 두 갈래도 나란히 보여 주는데, 한쪽에는 월 185만 원으로도 부부가 세 끼 잘 챙겨 먹고 악기 연주를 하며 잘 산다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20억이 있어도 불안하다는 사람이 있어요.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노후 풍경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책장을 만지작거리게 되더라고요. 책이 말하는 ‘돈 걱정 없이’의 진짜 뜻이 무엇인지가 여기서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잣대의 문제라는 것.


저자는 자신도 50대 후반인 지금 65세 전후를 기준으로 월 350만 원 정도를 희망한다고 솔직히 적어 둡니다. 다만 물가상승률 2~3%만 적용해도 실제 은퇴 시점의 체감 금액은 월 400만 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함께요.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내가 찾고 싶은 것은 신기루 같은 환상이 아니라, 분명한 자기 기준과 그에 맞게 최적화된 삶의 방식일 뿐이다.” 컨설턴트가 자기 가계의 숫자를 그대로 내려놓는 책은 흔치 않은데, 이런 솔직함이 이 책의 신뢰감을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챕터 끝에 붙은 ‘인생 후반전 준비 체크포인트’ 표는 이 신뢰감을 한 번 더 받쳐 줍니다. 기초생계비부터 의료비, 경조사비, 예비비, 부채까지 항목을 열 가지로 나눠 자기 지출 구조를 직접 들여다보게 하거든요. 막연한 ‘월 얼마’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숫자로 노후를 그려 보게 만드는 장치예요.


4부 ‘은퇴 후 잘 살아간다는 건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요?’ 챕터에서 책의 결은 한층 깊어집니다. 컨설팅 현장에서 “퇴직하면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무탈하게 살면 되는 것 아닐까요”라고 답한대요. 저자는 이 흔한 대답을 두고 가만히 고개를 젓습니다. 그러고는 두 가지 권유를 내놓아요. 하나는 은퇴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자는 것. “60세 정년은 시합이 끝난 게 아니라 인생에서 반환점을 돌아 완전히 새로운 경로로 들어서는 것과 같다.” 더 이상 남보다 먼저 가야 하거나 더 높이 올라가야 하는 경쟁이 아니라, 호기심을 갖고 새 코스를 탐험하는 시합이라는 비유가 마음에 들었어요.


다른 하나는 무게 추를 이제는 ‘나’에게 맞춰 보자는 권유입니다. 가족과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은 여전하지만, 그동안 매번 미뤄 두었던 자기 욕구의 자리를 한 번쯤 회복해 보자는 이야기였어요. 이 대목에서 마주친 한 문장은 책장을 잠시 손에서 내려놓게 했습니다. “정년 시점에 이른 이들에게 물어보면 ‘내 마음속에 열망’이 하나쯤 있었던 것도 같은데,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는 이가 많다.” 가장의 자리를 오래 지킨 사람이라면 이 문장 앞에서 한 번쯤 멈출 거예요. 그리고 저자는 자신 역시 60이 되기 전에 어릴 적 꿈이던 픽션 작가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적어 둡니다. 강의대 너머의 권위가 아니라 같이 길을 걷는 사람의 목소리라, 책장을 덮을 즈음에는 처음의 의심이 꽤 누그러져 있었어요.


표지의 제목을 다시 보니 처음 같지가 않더라고요. ‘돈 걱정 없이’라는 말이, 통장에 어느 정도 숫자가 찍혀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척도가 있는 사람의 평온함을 가리키는 말로 읽혔습니다. 평균 뒤에 숨지 않고, 남의 성공담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삶의 조건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일. 그 일을 시작한 사람만이 결국 ‘걱정 없이’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메시지였어요.


서평단으로 받은 책이지만, 이 한 권은 책장에 꽂아 두기보다 가까이 두고 한 챕터씩 다시 읽게 될 것 같아요. 서른여섯 개의 질문 중에 지금 당장 답이 필요한 한두 개부터 천천히 펴 보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은퇴라는 단어가 아직 멀게 느껴지는 40대 직장인에게도, 정년이 코앞으로 다가와 마음이 분주한 분에게도 각자의 자리에서 시작점을 찾게 해 주는 책이에요. 막연한 불안에 끌려 다니기 싫은 사람이라면 어느 페이지를 펴도 자기 질문을 만나게 될 겁니다.


여름의 초입, 한낮의 공기가 제법 무거워지는 계절입니다.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자기 노후의 윤곽을 한 번 그려 보기에 나쁘지 않은 때 같아요. 이 책이 그 첫 페이지의 자리를 잘 받쳐 줄 겁니다.


한 줄 요약 | 돈의 액수가 아니라 자기 척도를 묻는 책. ‘돈 걱정 없이’라는 말의 진짜 뜻을 다시 새기게 하는 36개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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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글쓰기 - 서울대 나민애 교수의 몹시 친절한 서평 가이드
나민애 지음 / 서울문화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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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북유럽 카페에서 서평을 한 편씩 올리다 보면, 어느 날 글이 아니라 저 자신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지금 쓴 게 독후감인지 서평인지, 누군가에게는 너무 지루하게 읽히지는 않는지, 책 내용을 잘 정리했다고 생각해도 그 안에 ‘제 판단’이라 부를 만한 한 줄이 들어 있는지. 그 의문을 들고 펼친 책이 <책 읽고 글쓰기>였습니다.


저자 나민애 교수님은 서울대학교 학부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며 13년간 3,000편 가까운 학생 글을 직접 첨삭해 온 분입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갓민애’로 불린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책을 펼치고 의외였던 건 강의 노트의 정리본 같은 결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쓰고 싶은데 막막한 사람 옆에 앉아 같이 펜을 쥐어주는 듯한 태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집니다. 표지에 놓인 노란 톤과 책에 코를 박은 고양이 일러스트가 그 태도의 예고편처럼 보였습니다.


책의 출발점은 단호합니다. “서평이라고 다 같은 서평이 아니다.” 5,000자 넘는 긴 글도, 100자 안쪽의 짧은 글도 다 서평이라는 사실부터 인정한 뒤에야, 그 많은 서평 중에 무엇이 ‘제 서평’인지를 정할 수 있다는 거지요. 이 책은 멋진 문장을 쓰는 법보다 ‘지금 쓰려는 글의 체급’부터 정하라고 권합니다. 한 줄 리뷰·100자 리뷰 같은 단형, A4 1~2장의 중형(블로그 서평이 여기 들어갑니다), A4 3장 이상의 장형(학술 서평). 분량으로 갈라놓고 보니, 그동안 흐릿하게 뭉뚱그려 쓰던 서평의 자리가 단번에 또렷해졌습니다.


체급을 정한 다음에 따라오는 권유는 더 따끔합니다. 자기 수준을 솔직하게 체크하라는 것. 모멸감을 주는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저자가 덧붙이는 설명은 정반대 방향을 가리킵니다.


“이 자가 수준 체크는 모멸감 확인하기가 절대 아니다. (…) 자기 수준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발전이 있다.”


같은 페이지에 띠지 카피와 닿는 문장이 따라옵니다.


“‘나같이 못 쓰는 사람’이라거나 반대로 ‘글쓰기의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연습하면 나아지는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 딱 한 줄 나아지고, 오늘보다 내일 딱 한 줄 나아지면 된다.”


서평 앞에서 본인을 패배자라 단정하고 글러브도 끼기 전에 포기하는 사람을 ‘몹시 많이 보았다’는 저자의 진술이 이 단호한 비유 옆에 놓여 있어, 책의 어조가 채찍이 아니라 응원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이 책에서 가장 오래 곱씹게 된 곳은 2부의 ‘블로그 서평 쓰기의 세계’ 부분이었습니다. 저자는 블로그 서평을 ‘나를 위한 나의 기록’으로 다시 자리매김합니다.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이 지식을 전파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는 단서가 따라붙는데, 그다음에 등장하는 비유가 따뜻해서 한 번 더 읽게 됩니다.


“블로그 서평은 독서 여행이고, 나만이 구축할 수 있는 책들의 실록이다.”


집에서 숲까지 가는 길에 길을 잃지 않으려고 떨어뜨려 둔 흰 조약돌. <헨젤과 그레텔>의 이미지를 끌어와 블로그 서평 페이지들의 의미를 다시 보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이 비유 뒤로 저자는 블로그 서평이 ‘소통의 글’이라는 점을 곧장 짚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 ‘꿀잼, 시간 순삭, 노잼’ 같은 한 줄에도 흔들리는 우리를 예로 들면서, 서평을 검색하는 행위는 이미 지식 찾기를 넘어 일종의 교감이라고 정리하지요.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를 책을 매개로 주고받는 일. 블로그 서평이 왜 ‘대중적 소통의 글’이 되는지를 이만큼 명료하게 풀어준 글은 처음 만났습니다.


블로그 서평의 목적을 다섯 갈래로 나눠 짚는 페이지에서는 펜을 든 자세가 한 번 바뀌었습니다. 그냥 좋아서 쓰는 사람, 개인적 독서 기록을 누적하려는 사람, 남들과 공유하려는 사람, 분석적인 의견을 피력하려는 사람, 자기 분야의 필력을 발휘하려는 사람. 저자는 앞의 둘에 해당한다면 굳이 서평 쓰기를 따로 배울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뒤의 셋에 발을 걸치고 있다면 배우는 편이 좋다는 이유가 단순합니다. ‘타인과 독자를 잘 배려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카페 안에서 다른 독자들과 글을 나누는 자리에 서평을 올리는 입장에서, 이 한 줄이 그동안 막연하게 굴러다니던 글의 방향을 한 번에 정돈해 주었습니다.


블로그 서평의 기본 조건 역시 현실 감각이 살아 있습니다. 너무 길면 안 읽히고, 너무 어려워도 안 읽힌다는 두 가지 명제 위에, 저자는 ‘핵심적 한 방’을 강조합니다. 인터넷 유저들의 인내심을 바라지 말고, 줄거리와 서지를 소개한 뒤 위에서 20~30% 내려온 자리에 강조 포인트를 ‘짠’ 하고 등장시키라는 조언이지요. 그 옆에 “잘난 척의 욕망은 자기 집에서 혼자서만 하자”는 농담 같은 한 줄이 같이 놓여 있어, 톤이 풀어지면서도 핵심은 단단하게 박힙니다.


부록은 이 책이 끝까지 ‘쓰는 사람 옆에 머무는’ 안내서임을 보여줍니다. 책 분야에 따라 강조 포인트가 달라진다는 점을 짚으며, 문학 서평에서는 작가의 세계관을 드러내려고 애쓸 것, 학술 서평에서는 학풍과 시대적 의의에 주목해 보다 드라이한 문체로 갈 것을 권합니다. 공통 주의 사항 네 줄 가운데 마지막 한 줄이 오래 남았어요.


“단 한 줄이라도 나의 판단이 있는지 확인하라.”


띠지에 적힌 ‘어제보다 딱 한 줄 나아지면 됩니다’라는 카피가, 결국 ‘한 줄의 내 판단’을 챙기는 일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이 부록의 이 한 문장으로 단단히 연결됩니다.


물론 모든 페이지에 고개가 끄덕여졌던 건 아닙니다. 단형·중형·장형으로 갈라 설명하는 구성 덕분에 자기 자리는 빠르게 찾을 수 있지만, 그만큼 ‘예시 서평’의 분량은 조금 더 풍부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완성된 서평’을 보여주는 책이 아니라 ‘서평을 쓰러 들어가는 입구’를 안내하는 책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그 빈자리는 결국 독자가 한 편씩 채워 가야 할 몫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북유럽 카페를 통해 이 책을 만난 점도 기록해 두고 싶습니다. 서평단으로 받은 책이지만, 이번에는 한 편을 더 쌓아 올리고 끝나는 책이 아니라 앞으로 올릴 모든 서평의 결을 점검해 주는 손잡이로 자리 잡았습니다. 책을 좋아하지만 ‘지금 쓰는 게 독후감인지 서평인지’ 헷갈리는 독자, 블로그에 책 이야기를 꾸준히 쌓으면서도 자기 글의 방향이 모호하게 느껴지는 독자에게 이 책은 분명한 출발점 하나씩을 챙겨 줄 거라 봅니다. 막 첫 서평을 올리려는 사람뿐 아니라, 여러 편을 써 본 사람이 자기 글을 한 번 점검하고 싶을 때 옆에 두기에도 알맞은 안내서입니다.


햇살의 농도가 진해지고 잎의 색이 한 톤 더 짙어지는 5월 끝자락입니다. 책상 위에 펼쳐 둔 한 권을 옆에 두고 다시 한 줄을 적어 보려 합니다. 어제보다 딱 한 줄. 그 한 줄에 ‘제 판단’이 들어 있는지만 확인하면 된다는 안내가, 지금 서평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현실적인 위로처럼 다가옵니다.


독후감과 서평 사이에서 헷갈리는 모든 ‘서평러’를 위한, 가장 친절하고 실전적인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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