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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돈 걱정 없이 은퇴할 수 있습니다 - 예비 퇴직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 36가지
정도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6년 5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를 처음 받아 들었을 때 솔직히 갸웃했어요. 〈당신도 돈 걱정 없이 은퇴할 수 있습니다〉라니. 해가 바뀔 때마다 가계 지출은 무거워지고, 환율이며 경기 이야기가 뉴스 첫머리를 채우는 요즘에, 돈 걱정 없이 은퇴가 가능하다고 단정하듯 말하는 책이라면 어딘가 비현실적이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 미심쩍은 마음이 도리어 책장을 펴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그게 가능한 일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머스터드 톤의 표지 한가운데에는 작게 그려진 한 사람이 빛이 새어 나오는 문 앞에 서 있습니다. 들어갈지 말지 망설이는 듯한 그 실루엣이 책 전체의 분위기를 미리 일러 주는 것 같았어요. 단호하게 답을 내려놓는 책이 아니라, 문 앞까지 함께 걸어가 주는 책이라는 느낌. 북유럽 카페에서 서평 도서로 받아 든 한 권을 펼치며, 일단 의심은 잠시 접어 두기로 했습니다.

저자 정도영 소장은 20년 동안 3,000여 명의 중장년 재직자와 퇴직자를 만나온 현장 컨설턴트입니다. 책은 그가 강의와 상담에서 가장 자주 받은 질문 서른여섯 가지를 추려 묶었어요. ‘퇴직 준비는 뭐부터 해야 하나요’, ‘노후 적정 생활비는 어느 정도인가요’ 같은 질문이 그대로 챕터 제목이 됩니다. 그래서 읽는 사람의 자세가 자연스럽게 바뀌어요. 누군가의 성공담을 멀찍이서 구경하는 게 아니라, 상담실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이 됩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1부의 ‘노후에는 사실 돈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라는 챕터였어요. 책 제목과 정면으로 맞붙는 질문을 일찌감치 던져 놓은 셈인데, 저자는 여기서 ‘돈만 준비되면 끝나냐’고 물으면 대부분 아니라고 답하면서도 정작 돈이 어느 정도 마련되면 느슨해진다고 짚습니다. 노후 준비가 잘 안 되는 진짜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돈 문제’라는 틀에만 묶어 두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자는 건강·관계·돈·활동, 그리고 이 모두를 관통하는 변화 관리라는 다섯 축으로 노후를 다시 설계해 보자고 권합니다.

이 챕터에서 한 문장이 오래 남았습니다. “나는 돈이 많아도 가족 사이가 멀어져 서로 아무 애정 없이 지내는 경우를 보았고, 건강이 무너져 자신이 가진 부를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한 채 삶을 마치는 이들도 보았다.” 컨설턴트의 권위적 진단이 아니라 3,000명을 만나 본 사람의 담담한 증언이라서, 이 한 줄이 어떤 통계보다 묵직하게 다가왔어요.
2부의 ‘노후 적정 생활비는 어느 정도인가요?’ 챕터는 결이 좀 다릅니다. 여기서는 저자가 숫자를 충분히 펼쳐 놓아요. 국민연금연구원 자료로 50대 기준 적정 노후생활비가 부부 월 318만 원 선이라는 통계, KB 골든라이프 보고서의 부부 366만 원이라는 더 높은 수치, 서울과 비수도권의 차이까지 차근차근 짚어 줍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다음이에요. 2024년 1인당 국민총소득이 월 365만 원 수준인데 중위소득은 2인 가구도 368만 원에 그치고, 소득 하위 40% 가구는 사실상 적정 생활비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같이 보여 줍니다. 노후 희망 소득만 자꾸 높아지면 오히려 준비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요.

그래서 결론이 이렇게 닫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노후에 필요한 비용은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댓글 두 갈래도 나란히 보여 주는데, 한쪽에는 월 185만 원으로도 부부가 세 끼 잘 챙겨 먹고 악기 연주를 하며 잘 산다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20억이 있어도 불안하다는 사람이 있어요.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노후 풍경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책장을 만지작거리게 되더라고요. 책이 말하는 ‘돈 걱정 없이’의 진짜 뜻이 무엇인지가 여기서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잣대의 문제라는 것.
저자는 자신도 50대 후반인 지금 65세 전후를 기준으로 월 350만 원 정도를 희망한다고 솔직히 적어 둡니다. 다만 물가상승률 2~3%만 적용해도 실제 은퇴 시점의 체감 금액은 월 400만 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함께요.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내가 찾고 싶은 것은 신기루 같은 환상이 아니라, 분명한 자기 기준과 그에 맞게 최적화된 삶의 방식일 뿐이다.” 컨설턴트가 자기 가계의 숫자를 그대로 내려놓는 책은 흔치 않은데, 이런 솔직함이 이 책의 신뢰감을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챕터 끝에 붙은 ‘인생 후반전 준비 체크포인트’ 표는 이 신뢰감을 한 번 더 받쳐 줍니다. 기초생계비부터 의료비, 경조사비, 예비비, 부채까지 항목을 열 가지로 나눠 자기 지출 구조를 직접 들여다보게 하거든요. 막연한 ‘월 얼마’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숫자로 노후를 그려 보게 만드는 장치예요.
4부 ‘은퇴 후 잘 살아간다는 건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요?’ 챕터에서 책의 결은 한층 깊어집니다. 컨설팅 현장에서 “퇴직하면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무탈하게 살면 되는 것 아닐까요”라고 답한대요. 저자는 이 흔한 대답을 두고 가만히 고개를 젓습니다. 그러고는 두 가지 권유를 내놓아요. 하나는 은퇴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자는 것. “60세 정년은 시합이 끝난 게 아니라 인생에서 반환점을 돌아 완전히 새로운 경로로 들어서는 것과 같다.” 더 이상 남보다 먼저 가야 하거나 더 높이 올라가야 하는 경쟁이 아니라, 호기심을 갖고 새 코스를 탐험하는 시합이라는 비유가 마음에 들었어요.

다른 하나는 무게 추를 이제는 ‘나’에게 맞춰 보자는 권유입니다. 가족과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은 여전하지만, 그동안 매번 미뤄 두었던 자기 욕구의 자리를 한 번쯤 회복해 보자는 이야기였어요. 이 대목에서 마주친 한 문장은 책장을 잠시 손에서 내려놓게 했습니다. “정년 시점에 이른 이들에게 물어보면 ‘내 마음속에 열망’이 하나쯤 있었던 것도 같은데,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는 이가 많다.” 가장의 자리를 오래 지킨 사람이라면 이 문장 앞에서 한 번쯤 멈출 거예요. 그리고 저자는 자신 역시 60이 되기 전에 어릴 적 꿈이던 픽션 작가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적어 둡니다. 강의대 너머의 권위가 아니라 같이 길을 걷는 사람의 목소리라, 책장을 덮을 즈음에는 처음의 의심이 꽤 누그러져 있었어요.
표지의 제목을 다시 보니 처음 같지가 않더라고요. ‘돈 걱정 없이’라는 말이, 통장에 어느 정도 숫자가 찍혀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척도가 있는 사람의 평온함을 가리키는 말로 읽혔습니다. 평균 뒤에 숨지 않고, 남의 성공담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삶의 조건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일. 그 일을 시작한 사람만이 결국 ‘걱정 없이’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메시지였어요.
서평단으로 받은 책이지만, 이 한 권은 책장에 꽂아 두기보다 가까이 두고 한 챕터씩 다시 읽게 될 것 같아요. 서른여섯 개의 질문 중에 지금 당장 답이 필요한 한두 개부터 천천히 펴 보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은퇴라는 단어가 아직 멀게 느껴지는 40대 직장인에게도, 정년이 코앞으로 다가와 마음이 분주한 분에게도 각자의 자리에서 시작점을 찾게 해 주는 책이에요. 막연한 불안에 끌려 다니기 싫은 사람이라면 어느 페이지를 펴도 자기 질문을 만나게 될 겁니다.
여름의 초입, 한낮의 공기가 제법 무거워지는 계절입니다.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자기 노후의 윤곽을 한 번 그려 보기에 나쁘지 않은 때 같아요. 이 책이 그 첫 페이지의 자리를 잘 받쳐 줄 겁니다.
한 줄 요약 | 돈의 액수가 아니라 자기 척도를 묻는 책. ‘돈 걱정 없이’라는 말의 진짜 뜻을 다시 새기게 하는 36개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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