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당신은 이미 기적이다 - 결핍이 만든 삶을 내려 놓는 용기
북크북크(박수용) 지음 / 청년정신 / 2026년 5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회색빛 바탕 한가운데 달걀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껍데기를 따라 가느다란 금이 갔고, 그 틈으로 빛이 새어 나와요. 단단히 닫혀 있던 무언가가 비로소 열리는 장면 같았습니다. 표지에서 눈길이 떨어지지 않던 차에 제목 아래 작게 적힌 한 줄, "결핍이 만든 삶을 내려 놓는 용기"가 들어왔고, 그 문구 하나에 끌려 결국 책을 펼쳤습니다.
북크북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박수용 작가의 책입니다. 12만 명이 팔로우하는 인플루언서이자 여러 권의 책을 낸 작가이고, 그 전에는 14년을 직업군인으로 살았다고 해요. 화려해 보이는 이력이지만 정작 이 책에서 그는 그 화려함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느 날 밤 지하철 창에 비친 자기 얼굴에서, 성공한 사람의 미소가 아니라 숫자에 쫓기는 사람의 표정을 발견했다는 고백에서 이야기가 출발해요. 팔로워 수, 매출 그래프, 진급 점수 같은 외부의 숫자가 곧 자기 가치라고 믿어온 한 사람이 그 모든 갑옷을 내려놓기까지의 기록이죠.
"명함은 이름 뒤에 붙는 설명일 뿐"이라는 문장 앞에서 책장 넘기던 손이 멈췄습니다. 직함도 성과도 숫자도 나를 소개할 수는 있어도 나를 대신할 수는 없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설명들이 자기를 대신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작가는 이렇게 못을 박습니다.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지 않으면 설명은 정체성이 되고, 정체성은 감옥이 된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해온 사람이라면 이 대목에서 잠깐 멈칫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느 회사 무슨 직책이라는 한 줄로 나를 소개하는 일에 익숙해진 만큼, 그 한 줄을 떼어냈을 때 무엇이 남는가 하는 물음이 의외로 묵직하게 다가오거든요.

비교를 다루는 방식도 정직해서 좋았습니다. 작가는 SNS에서 끝없이 올라오는 타인의 하이라이트를 들여다보는 일이 사실은 자기 삶의 공허를 잠시 잊으려는 회피였다고 인정해요. "남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나를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는 거죠. 우상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회피의 장치이고, 나를 마주하지 않으려고 세운 거대한 벽이라는 표현이 따끔했습니다. 비교란 상대의 삶을 보는 일이 아니라 나를 깎아내리는 일이라는 말도요. 타인의 완성된 장면과 나의 진행 중인 삶을 나란히 세워두고 스스로를 패배자로 판정하던 습관, 누구나 한 번쯤 해본 적 있을 겁니다.
"봄은 제때 오고, 나무는 제 속도로 자라며 바다는 스스로를 재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남의 보폭을 빌려 자신을 재촉한다." 이 책에서 가장 오래 곱씹은 문장이에요. 작가는 자신이 뒤처진 게 아니라 그저 자기 호흡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고 적습니다. 누군가는 몇 달 만에 팔로워 1만을 만들고 누군가는 1년 만에 억대 매출을 올리는 광경 앞에서, 자기 달력이 아니라 남의 달력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재단하고 있었다는 고백이 이어져요. 경쟁의 보폭으로 살기 시작한 순간 불안이 자라고, 그 불안이 자신을 멈추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중반부의 '거절할 수 있어야 내 삶이 된다'는 자유를 다시 정의하는 챕터입니다. 작가는 자유란 무엇을 더 붙잡는 능력이 아니라 붙잡지 않아도 될 것을 내려놓는 용기에 가깝다고 봐요. 작가로 알려진 뒤 들어온 수많은 요청을 처음엔 인정의 신호로 여겨 대부분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들이 존중한 건 자신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기능이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나는 존재로서 초대받은 것이 아니라 사용 가능한 자원으로 호출되고 있었다"는 대목이 서늘해요. 그래서 그는 "거절은 무례가 아니다. 거절은 선택이다"라고 말합니다. 부탁을 받았을 때 잠깐 멈춰 이 일이 나를 세우는 일인지 소모하는 일인지 묻는, 그 0.1초의 자각이 삶의 방향을 바꾼다고요. 거절을 분별하기 시작하자 흙탕물이 가라앉듯 삶이 조금씩 맑아졌다는 비유가 인상 깊습니다. 나를 아는 길은 욕망을 더하는 데서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데서 시작된다는 말도요.

책의 끝자락, '죽음을 기억하면 삶이 선명해진다'에서 작가는 가장 깊은 곳을 열어 보입니다. 일곱 살에 눈앞에서 어머니를 떠나보낸 기억, 약하게 태어나 일찍부터 죽음을 가까이 느꼈던 유년, 군 생활 중 훈련에서 죽음을 여러 번 마주했던 시간을 담담하게 꺼내요. 그러면서 죽음의 문턱에 서 보면 통장 잔액도 명함의 직함도 떠오르지 않고 오직 지금 숨 쉴 수 있는가 하는 감각만 남는다고 적습니다. 우리는 모두 종착역이 정해진 기차에 타고 있는데, 더 큰 짐과 높은 자리를 나라고 착각한 채 짐을 싣지만 종착역에서는 그 어떤 짐도 함께 내릴 수 없다는 비유가 묵직하게 와닿았습니다. "인생은 성과의 합이 아니다. 하루하루 쌓인 태도의 기록이다"라는 문장 앞에서는 책장 넘기는 속도가 한결 느려졌어요.
그리고 책은 제목 그대로의 자리에서 닫힙니다. "당신은 이미 기적이다." 우리가 세상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그 자리에 있던 것은 기쁨의 눈물이었고, 우리는 무언가를 이뤄서 사랑받은 게 아니라 그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웃음과 행복을 주었다는 거예요. 태어난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기적이었는데 자라면서 그 사실을 잊고, 사랑받기 위해 증명해야 한다고 믿기 시작했다는 거죠. 표지에서 금이 간 껍데기 사이로 새어 나오던 빛이 무엇이었는지,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 비로소 알 것 같았습니다.

성과가 곧 사람의 값이 되어버린 시대, 숫자가 오르면 안심하고 멈추면 불안해지는 마음의 구조를 우리 대부분은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명함 한 줄로 자신을 설명하는 일에 익숙해진 중년의 직장인이 읽으면 특히 깊이 다가올 것 같아요. 인생의 후반부를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무엇을 더 쌓을지가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을지 고민하게 된 사람, 남의 보폭에 맞춰 달리느라 정작 자기 호흡을 잃은 것 같은 사람에게도 조용한 위로가 되리라 봅니다. 거창한 해법을 주는 책은 아니지만, 갑옷을 하나씩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등을 토닥여 주는 손길 같은 도서였습니다.

유월로 접어드니 한낮의 볕이 제법 두툼해졌습니다. 무성해진 초록 사이를 걷다 보면 자라는 것들은 누구에게도 제 걸음을 묻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이 새삼 떠오르네요. 이번 여름엔 무언가를 더 채우기보다, 들고 있던 것들 가운데 정말 제 것이 아닌 게 무엇인지 가만히 들여다보려 합니다.
명함과 숫자라는 껍데기를 걷어낸 자리에서, 존재만으로 충분한 나를 다시 만나게 하는 책.
#당신은이미기적이다 #북크북크 #박수용 #자기계발서 #에세이추천 #존재의삶 #소유와존재 #에리히프롬 #비교의감옥 #번아웃 #중년의독서 #직장인책추천 #내려놓음 #거절할용기 #나로살기 #자존감회복 #북유럽카페서평단 #책속으로 #서평 #오늘의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