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약초산나물 50
이상각 지음 / 아마존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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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오늘이 추석이네요. 금요일에 한가위가 딱 걸려 있으니 달력만 봐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거 같아요. 차례상에 나물 한 접시씩은 꼭 올라가는 날인데, 마침 산나물 책 이야기를 풀게 됐습니다.


<한국의 약초산나물 50>은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판형이에요. 두께도 보통 소설책보다 얇은 편이라 가방에 넣어도 표가 잘 안 납니다.


산나물 책이라 그런지 무게마저 나물나물해요.

표지부터가 봄이에요. 솜털을 뒤집어쓴 새순이 불쑥불쑥 올라와 있고, 아래쪽에는 노란 꽃대가 환하게 서 있고요. 가을 한복판에서 이 표지를 보고 있으니 내년 봄을 미리 당겨 받은 느낌이 들었어요.

책의 뼈대는 꽤 단단한 편입니다. 산나물 마흔두 가지와 나무나물 여덟 가지가 차례로 나오는데, 나물마다 식물별명, 생약명, 식물생태 및 나물특성, 효능, 채취 및 요리법이 같은 순서로 정리돼 있어요. 읽다 보면 도감을 넘기는 기분도 들고, 동네 어르신이 나물을 하나씩 들고 와서 "이건 이렇게 먹는 거여" 하고 알려주시는 기분도 들더라고요.


첫 장은 질문으로 시작해요. 우리는 왜 산나물을 먹어야 하는가. 그 아래로 "산나물은 몸을 건강하게 하고 정신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같은 문장이 줄지어 있는데, 저자가 산나물을 얼마나 믿고 아끼는지가 첫 장부터 전해지는 거 같았어요.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서문 쪽입니다. 저자는 산나물이 자라는 곳은 자연의 산이고, 도시는 콘크리트와 강철로 뒤덮인 인공의 산이라고 써요. 매일 빌딩 숲으로 출근하는 입장이라 이 대목에서 좀 찔렸습니다. 저도 그 인공의 산을 날마다 오르내리는 사람이니까요.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도 좋았어요. 봄의 산나물은 향기롭고 맛깔나고 부드러운데, 봄이 지나면 식물이 살아남으려고 억세지고 쓰게 되고 독성까지 갖게 된대요. 그런데 그 쓰고 독한 성분이 바로 약성을 가진 물질이라고 하더군요.


버티느라 단단해진 것이 결국 약이 된다는 얘기.

나이 들면서 여기저기 억세진 제 모습이 겹쳐 보여서 이 문단은 몇 번 다시 읽었어요.

나물들을 등장인물처럼 읽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산마늘은 별명 부자예요. 명이나물, 맹이풀, 명이, 명부추, 망부추, 행자마늘, 서수레까지 이름이 줄줄이 나와요. 울릉도에서는 낮은 낙엽수림부터 성인봉 정상까지 자라고, 내륙에서는 가리왕산, 오대산, 점봉산처럼 해발 1000m가 넘는 산의 정상 부근에서 자란다고 합니다. 오대산 산마늘은 잎이 좁고 가늘지만 향이 강하고, 울릉도 산마늘은 잎이 크고 넓어 수확량이 많은 대신 향은 약하다는 비교가 재밌었어요. 같은 집안인데 성격이 다른 형제 같달까요.


산마늘 대목에서 마음이 간 문장이 하나 더 있어요. 한번 잎을 따면 그해에는 잎이 다시 돋아나지 않으니 비늘줄기와 잎 하나는 남기고 채취하라는 당부예요. 전부 가져가지 말고 하나는 남겨두라는 말이 나물 얘기인데도 사람 사는 얘기처럼 들리더라고요.


삽주는 이름에 사연이 붙어 있어요. 한방에서는 수염이 많아서 늙은 뿌리라는 뜻으로 창출이라고 부른대요. 새싹은 온통 하얀 솜털로 덮여 있고, 줄기를 꺾으면 하얀 유액이 나온다고 하고요. 저자는 삽주싹을 가장 값진 산나물 중 하나로 꼽는데, 어린순에 특별한 향이 없어서 여러 요리에 두루 쓸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튀지 않고 어느 자리에나 잘 어울리는 사람, 회사마다 꼭 한 명씩 있잖아요. 삽주가 딱 그런 느낌이에요.

산부추는 정구지라는 별명이 정겨웠어요. 강원도와 경기도에 많이 자생하고, 이 지역 산부추를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먹는 법 가운데 생즙을 요구르트와 같이 갈아 먹는다는 대목이 있는데, 책에서는 그 맛을 매콤하고도 향긋하다고 해요. 부추 요구르트라니, 상상은 잘 안 되는데 한번 맛보고 싶은 조합이긴 합니다.


쇠고기 맛이 난다고 울릉도에서 고기나물이라 부른다는 눈개승마, 맛 좋은 보약나물이라고 소개된 밀나물처럼 이름만 들어도 궁금해지는 나물들도 줄줄이 나와요.


산마늘 먹는 법은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줄기를 잎째 따서 생으로 쌈을 싸서 먹는다. 보드라우면서 연한 마늘 향이 난다."

글자만 봐도 고기 한 점 올려서 싸 먹고 싶어지는 문장이에요.

요리 쪽 조언도 꼼꼼해요. 부드럽거나 향이 있는 산나물에는 강한 양념을 쓰지 않는 게 좋고, 향이 된장이나 고추장과 어울리지 않는 나물에는 장 양념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들기름을 넉넉히 둘러 살짝 볶고 간장으로 간을 맞추는 기본 방법도 친절하게 나와 있고요. 결국 산나물은 그 향을 지켜주는 게 핵심인가 싶더라고요.


읽으면서 조심스러워진 대목도 있었어요. 산마늘은 꽃이 피면 맛이 쓰고 독성이 생겨서 5월 말 이후에는 먹지 않는 게 좋다고 하고, 일월비비추는 너무 큰 잎에 독성이 있어 먹지 않는다고 해요. 독성 있는 나물은 데친 뒤 찬물을 갈아가며 몇 시간씩 우려내라는 설명도 있고요. 산에서 아무 잎이나 뜯어 먹을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효능 이야기도 꽤 넓게 펼쳐지는데, 저는 밥상을 좀 더 푸르게 채워보라는 응원으로 받아들였어요. 지병이 있거나 드시는 약이 있다면 의사 선생님과 먼저 상의해 보시는 게 마음 편할 거 같아요.


<한국의 약초산나물 50>은 한 번 읽고 꽂아두는 책이라기보다 봄마다 꺼내 보게 될 책에 가까운 거 같아요. 마트 산나물 코너에서 처음 보는 나물을 만났을 때, 주말 산행길에 낯익은 잎을 봤을 때 펼쳐 보기 좋은 구성이거든요. 사진도 큼직하게 들어가 있어서 눈으로 익히기도 편하고요. 산나물 좋아하시는 부모님께 명절 선물로 드려도 반가워하실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가위 보름달이 뜨는 날, <한국의 약초산나물 50> 덕분에 선선한 가을바람 속에서 봄을 한 입 미리 맛본 기분이라 좋았습니다.

명이나물 이름처럼 다들 명은 길게, 배는 송편으로 두둑하게 채우는 추석 보내세요.


빌딩 숲에서 사는 중년에게 봄 산의 향과 먹는 법을 한 권에 담아 건네는 산나물 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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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1시간, 블로그로 월 2천만원 벌기 - 워킹맘은 어떻게 단 6개월에 성공과 수익을 실현했을까?
이서이 지음 / 밥북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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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월 3,000원.

한 달 애드포스트 수익이 딱 그 정도였던 블로그가 6개월 만에 월 2천만 원을 찍었다고 하면, 솔직히 먼저 드는 건 의심이에요. 그런데 이 책은 잘나가던 순간부터 자랑하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더라고요. 안 되던 시절 이야기부터 차근차근 꺼내 놓는데, 그 첫 단추가 너무 소박해서 오히려 끝까지 따라가게 됩니다.


추석 당일 금요일, 연휴 한복판에 소개할 책은 <퇴근 후 1시간, 블로그로 월 2천만원 벌기>입니다. 초록 바탕에 큼직한 글씨만 꽉 채운 표지라 첫인상부터 "나 실용서요" 하고 말을 거는 느낌이에요. 두께는 여느 실용서 정도라 손에 쥐기 편한데, 담긴 숫자만큼은 꽤 무겁습니다. 2천만 원이 가벼울 리가 없잖아요.


저자 이서이 님은 공간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에요. 잦은 야근에 퇴근 시간은 들쭉날쭉하고,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는 처지. 부수입이 절실했다는 고백이 남 얘기 같지 않았어요. 월급날 하나 바라보고 사는 중년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다 해봤을 고민이니까요.


첫 장은 2014년 10월 14일에 올린 첫 게시글에서 시작합니다. 제목은 (사랑하는 우리 아들^^). 첫째가 어린이집에서 만든 작품을 찍어 올린 사진이었고, 그때 저자는 '나중에 우리 아들 보여줘야지' 하는 마음이 전부였다고 해요. 누가 봐주길 바라지도 않았고, 댓글이 안 달려도 괜찮았다고요. 그 시절 글들은 지금 모두 비공개로 돌려놨다는데, 그 대목이 짠하면서도 따뜻하게 읽혔어요.


그다음이 체험단 맛집 후기 이야기예요.


"무료로 밥을 먹으려면 후기를 써야 했으니까."


이 문장에서 살짝 뜨끔했습니다. 서평단으로 책을 받아 읽고 후기를 쓰는 입장에선 남 얘기가 아니거든요. 저자는 그때 반응이 없었던 이유를 꽤 냉정하게 짚어요. "역삼역 맛집" 같은 제목은 그날 하루에만 수십, 수백 명이 올렸을 테니 묻힐 수밖에 없었고, 가격대나 주차 여부, 데이트하기 좋은지 회식하기 적당한지 같은 정보는 빠져 있었다고요. 그러고는 이렇게 정리하더군요.


"내가 쓴 건 '내가 다녀온 후기'였지,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아니었다."


읽다 보니 제 서평들도 슬쩍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내가 하고 싶은 말과 누군가 검색해서 찾아와 알고 싶은 말 사이의 거리 같은 거요.


자전거 얘기도 반가웠어요. 2020년 무렵 사이클을 시작하면서 라파 저지, 휴대용 펌프, 헬멧 후기 같은 글을 올렸는데, 천호동 자전거 거리 후기는 누적 조회수가 13,367회까지 쌓였대요. 숫자만 보면 제법 궤도에 오른 거 같은데 함정이 있었습니다. 4년 넘게 천천히 쌓인 숫자였고, 자전거는 광고 단가가 낮은 분야라 애드포스트 수익이 거의 없었다고 해요.


조회수와 수익은 다른 문제다.


짧은데 뼈가 있는 한 줄이에요.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1부 5장 "AI는 직원처럼 대할 때 제대로 일했다"입니다. 7월에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면서 챗GPT를 썼는데, 처음엔 "다이어트 글 하나 써줘"라고만 했대요. 그랬더니 "안녕하세요 여러분~"으로 시작해서 "마치며"로 끝나는 매뉴얼 같은 글이 뚝딱 나왔고, 그걸 다듬는 시간이 직접 쓰는 시간보다 더 걸렸다고요. 여기서 저자가 떠올린 게 자기 본업이었다는 게 참 흥미로웠어요.


클라이언트가 "예쁘게 해주세요"라고만 하면 디자이너는 자기 방식대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회사에서는 하이주얼리 전시공간이고 컨셉은 클래식 모던, 가구는 젠 스타일로 가달라는 식으로 콕 집어 지시했고, AI도 똑같았다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피식 웃음이 났어요. 회사 다니면서 "알아서 잘 좀 해봐" 소리 한 번 안 들어본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지시가 흐릿하면 결과도 흐릿하다는 건 사무실이나 AI나 매한가지인 거 같습니다.


"AI는 직원이다. 명령을 잘하는 사람이 좋은 결과를 얻는다."


<퇴근 후 1시간, 블로그로 월 2천만원 벌기>에는 저자가 실제로 쓴 지시문도 그대로 나와요. 독자는 40대 워킹맘이고, 출퇴근길에 5분 안에 읽을 글이며, 다이어트를 여러 번 시도했다가 실패해 본 사람이라는 식으로 타깃을 구체적으로 정해 줍니다. 문단마다 할 일을 나눠 주고, 톤은 "친구한테 카톡으로 알려주는 것처럼 편하게" 하라는 주문까지 붙이고요. 그렇게 AI가 뼈대를 잡고 저자가 경험과 감정으로 살을 붙이자, 두세 시간 걸리던 글 한 편이 한 시간 안에 끝나기 시작했다고 해요.


제목에 붙은 '퇴근 후 1시간'이 이렇게 나온 거였구나 싶더라고요.


AI가 못하는 일을 분명히 짚어 주는 것도 좋았어요. 사이클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처음 10km를 달렸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같은 건 AI가 모른다는 거죠. 결국 내 이야기가 들어가야 내 글이 된다는 말이라, 글 쓰는 사람한테는 은근히 힘이 되는 대목이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2천만 원이라는 숫자가 조금 부담스러웠어요. 이런 책은 결국 잘된 얘기만 늘어놓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그런데 3부로 넘어가니 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2026년 1월, 일일 방문자 70만.


7월만 해도 8천 원이던 수익이 2,000만 원을 넘기고, 글만 올리면 홈피드에 뜨던 때였대요. 그러다 1월 6일에 올린 글 한 편 이후로 통계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어제는 만 명이 들어오던 글에 오늘은 천 명도 안 들어오고요.


"점심시간에 통계를 봤고, 퇴근길에 또 봤고, 자기 전에도 봤다."


직장인이라면 모른 척하기 어려운 풍경 같아요. 주식 창이든 실적표든, 숫자 하나에 하루 기분이 오르내리는 그 마음 말이에요.


맛보기로 한 줄만 옮겨 볼게요.


"'떡상'은 운일 수 있어도, '떡락'은 이유가 명확하다."


저자는 무너진 이유를 하나씩 뜯어봅니다. 의료 쪽에 걸리는 표현, 출처를 제대로 따지지 않고 쓴 이미지 한 장, 수명이 짧은 이슈 글에 너무 기댄 습관까지요. 감추고 싶었을 법한 장면을 이렇게 다 꺼내 놓은 덕분에 <퇴근 후 1시간, 블로그로 월 2천만원 벌기>가 흔한 성공담 책과 다르게 느껴졌어요. 바닥에서 어떻게 다시 움직이는지는 책에서 직접 따라가 보시면 훨씬 재미있을 거 같습니다.


잘될 때 너무 들뜨지 않고, 안 될 때 너무 무너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말도 나오는데, 블로그 얘기로만 읽히진 않더라고요.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좋은 해도 있고 영 안 풀리는 해도 있잖아요.



이 책은 한 번 읽고 꽂아 두기보다 책상 옆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펼쳐 볼 쪽에 가까워요. 뒤쪽에 6가지 AI 프롬프트, 12개 제목 공식, 8가지 심리 패턴, 위험 단어 대체 가이드, 7단계 본문 구조 같은 자료가 부록으로 따로 모여 있거든요. 블로그를 막 시작하려는 분이든, 꾸준히 쓰는데 숫자가 제자리라 답답한 분이든, 옆에 두면 든든한 선배 한 명 곁에 둔 기분일 거 같습니다.


바람이 제법 선선해진 초가을, 오늘 밤 뜨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제 블로그 통계 그래프도 둥글게 좀 차올랐으면 하는 욕심이 슬쩍 생기네요. 읽는 내내 재미있었고, 실력 좋은 선배한테 노하우를 한 보따리 얻어 온 것 같아 든든했습니다. 다들 넉넉하고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월 3,000원 블로그가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기까지, AI를 직원처럼 부리는 법과 숫자 앞에서 버티는 법을 같이 알려주는 블로그 실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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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를 위한 한입 일본어 초급 1 - 배운 문법으로 내 문장을 말하게 되는 일본어 ㅣ 왕초보를 위한 한입 일본어 1
오겡끼홈스쿨 지음 / 모티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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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와타시 와 가쿠세이 데스."


우리말로는 "나는 학생입니다"예요. <왕초보를 위한 한입 일본어 초급 1>을 펼치면 가장 먼저 만나는 문장이 이거예요. 명함에 직함 새기고 산 지 한참 된 아재가 학생이라고 말하려니 조금 쑥스러운 기분이 들더라고요. 다행히 같은 강의 단어 목록에 '카이샤인'(회사원, 직장인)이 들어 있어서, "와타시 와 카이샤인 데스"가 제 입에는 더 잘 붙을 거 같습니다.


추석 연휴 한가운데 토요일이네요. 한가위 인사부터 드립니다. 제목에 있는 '한입'을 보자마자 송편 한입부터 떠오른 건 명절 탓으로 돌릴게요. 이 책은 유튜브와 온라인 강의로 일본어를 가르쳐 온 오겡끼홈스쿨이 처음 낸 종이책이에요. 부제가 '배운 문법으로 내 문장을 말하게 되는 일본어'인데, 넘겨 보니 그 부제가 빈말은 아닌 거 같더라고요.


한 강은 이해하기, 외우기, 만들어 보기, 혼자 만들어 보기 순서로 흘러가고, 끝에 깨알지식이라는 작은 코너가 붙어요. 문법 하나를 배우면 그걸로 문장을 쉰 개쯤 만들어 보게 되는데, 이게 이 책에서 제일 두드러지는 점 같아요. 설명 몇 줄 읽고 다음 과로 넘어가던 교재들하고는 손이 가는 양부터 다르더군요.


첫 강의 '형태 파헤치기'가 특히 친절했어요. '나는 학생입니다' 한 문장을 '나', '는', '학생', '입니다'에 해당하는 색깔 블록으로 하나씩 잘라 놓고, 일본어와 우리말을 짝지어 붙여 두거든요. 두 말의 어순이 같다는 게 그림처럼 한눈에 들어오니까 시작부터 겁먹을 일이 줄어드는 느낌이 듭니다. 일본어는 물음표를 잘 쓰지 않으니 문장이 '카'로 끝나면 "질문일 가능성이 높겠구나~" 하고 생각하라는 설명도 있어요. 교과서 말투라기보다 옆자리 선배가 귀띔해 주는 말투라서 편하더라고요.



머리말에는 저자 코니 선생님이 열아홉 살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던 이야기가 나와요. 일본어를 한 문장씩 이해하고 한마디씩 말하게 되면서 자기 세상이 조금씩 넓어졌다고 하시더군요. 많은 사람이 일본어는 쉽다며 시작했다가 동사 활용이나 미묘한 뉘앙스에서 고비를 만난다는 대목에서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이 책이 여러분을 단번에 고수로 만들어 준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는 문장도 솔직해서 믿음이 가더라고요.


틀려도 괜찮습니다. 천천히 가도 괜찮습니다.


머리말 끝자락에 놓인 이 두 문장은 마흔 넘어 뭔가를 새로 배워 보려는 사람한테 유난히 반가운 말인 거 같아요. 오겡끼홈스쿨은 늘 "진심으로 당신을 응원합니다"라는 마음으로 학생들을 만나 왔다고 해요. 책 곳곳에서 머리에 새싹을 달고 "하이!" 하며 손을 번쩍 든 병아리도 그 응원단 한 자리를 맡은 것 같고요.


제일 천천히, 한 줄씩 따라가며 읽은 건 제15강이었어요. 주고받는 표현을 다루는데, 인물을 동그라미 안에 넣고 화살표로 방향을 보여 줍니다. '아게마스'는 내가 남에게, 혹은 남이 남에게 줄 때. '모라이마스'는 화살표가 거꾸로 돌아와 받을 때. 주는 쪽이 회사나 학교처럼 사람이 아니면 '~로부터 받는다'는 뜻의 '카라 모라이마스'만 쓸 수 있다는 설명까지 그림 옆에 차곡차곡 붙어 있어요.



재미있는 건 '쿠레마스'였습니다. 아게마스도 '줍니다', 쿠레마스도 '줍니다'인데 받는 사람이 다르다는 거예요. 그림 속 '나' 둘레에 노란 동그라미가 하나 더 그려져 있고, 그 안에 든 가족이나 친구 같은 '내 편'이 받을 때도 쿠레마스를 쓴다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여기서는 잠깐 머리를 긁었어요. 설명 끝에 "나와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에 기준은 주관적이에요…"라는 말이 붙어 있는데, 그럼 우리 팀 사람들은 노란 동그라미 안쪽인지 바깥쪽인지 잠깐 헤아려 보게 되더군요. 설명 몇 줄로 딱 떨어지는 문법은 아닌 거 같고, 예문을 여러 번 만나면서 감을 잡아 가야 할 부분이다 싶었습니다. 다행히 이 책이 바로 그 '여러 번'을 넉넉하게 준비해 둔 책이라 걱정은 덜하더라고요.


만들어 보기도 제1강과는 모양이 달라요. 이번에는 "카페에서 친구가 저에게 커피를 줬어요" 같은 상황을 하나 주고, 그걸 '받았다' 문장과 '줬다' 문장 두 가지로 바꿔 보게 합니다. 혼자 만들어 보기로 넘어가면 동사 이름이 적혀 있던 자리가 빈칸으로 바뀌어서, 어떤 동사를 쓸지부터 스스로 골라야 하고요. 강의 내용에 맞춰 연습 틀까지 바꿔 주는 게 세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형은 회사에서 차를 받았어요"라는 문장에서는 그 차가 자동차인지 녹차인지 괜히 궁금해지더라고요. 직장인 마음으로는 자동차였으면 좋겠지만요.


외우기에 나오는 가족 호칭도 흥미로웠습니다. '하하', '치치'는 남에게 내 가족을 이야기할 때 쓰고, '오카아상', '오토우상'은 가족을 직접 부르거나 남의 가족을 말할 때 쓴다고 나눠 놨어요. 우리말에서 "저희 어머니"와 "어머님"을 가려 쓰는 감각이랑 닮은 데가 있는 거 같아요. 호칭 앞에서 한 번씩 멈칫하게 되는 건 한국어나 일본어나 비슷한가 봅니다.


제15강 깨알지식에 나오는 '아나타' 이야기도 재미있어요. 교재에는 '당신'이라는 뜻으로 많이 나오지만 현지에서는 그만큼 자주 쓰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우리도 "당신은 학생이에요?" 대신 그냥 "학생이세요?"라고 묻듯이, 일본에서도 아나타를 빼고 "가쿠세이 데스카"라고 묻는 사람이 많대요. 상대는 보통 성으로 부르고 편한 사이면 이름이나 별명으로 부른다면서, '이시키 카즈야'라는 이름을 예로 들어 '카즈야'나 '이시키상'으로 부른다고 알려 줍니다. 이시키가 실제로 있는 성이라는 작은 각주까지 달려 있고요.



회사에서 누구를 "당신"이라고 부르는 일은 없고 다들 이름이나 직함으로 부르니까, 이 대목은 직장인한테 오히려 쉽게 들어오는 거 같습니다. 제1강 깨알지식에서 공적인 자리에서는 남녀 모두 '와타시'를 쓰는 편이 좋다고 한 것도 같은 결로 읽혔어요. 그러다 "한 가지 더!" 하면서, 한국에서 부부끼리 '여보', '당신' 하듯 일본에서도 아내가 남편을 부를 때 아나타를 쓰기도 한다고 덧붙이는데, 이게 또 드라마 한 장면처럼 그려지더군요.


제30강 전체 복습은 한국어 문장이 번호를 달고 쭉 이어지는 구성이에요. 처음엔 "선생님입니까?", "학생입니다."처럼 짧게 시작하는데, 뒤로 갈수록 "여기부터 거기까지는 내 겁니다. 친구 것은 저쪽에 있습니다."처럼 두 문장이 이어 붙기 시작합니다. 첫 강의 '데스' 한 단어에서 여기까지 왔구나 싶어서, 목록만 훑어봐도 한 칸씩 쌓아 올린 계단이 보이는 기분이었어요.


"그 의사는 금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쉬었습니다"라는 문장은 부러워서 한 번 더 보게 되더군요.


판형이 보통 소설책보다 시원하게 큰 편이라 펼쳐 놓고 쓰기 편해 보여요. 문장마다 아래 여백이 넉넉해서 바로 답을 써 넣으면 되고, 강의 중간중간 QR코드를 찍으면 한국어 문장을 듣고 일본어로 만들어 보면서 원어민 선생님 발음까지 들을 수 있어요. 뒤쪽에는 코니 메모 단어장과 형용사 활용표, 스티커 부록이 들어 있고, 구매자 전용 공부방과 연계 강의도 따로 마련돼 있습니다. <왕초보를 위한 한입 일본어 초급 1>은 한 번 풀고 꽂아 두는 책보다는 곁에 두고 여러 번 펼치는 쪽에 가까운 거 같아요.


일본어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몇 번 시작했다가 중간에 손을 놓았던 사람도 처음부터 다시 걸어 들어가기 좋게 짜여 있더라고요. 읽는 내내 재미있었고, 짧은 문장이 조금씩 길어지면서 '내 말'로 바뀌어 가는 흐름을 따라가는 게 즐거웠습니다.


어젯밤 보름달이 아직 눈에 선한 연휴 토요일, 선선한 가을바람 맞으며 일본어 교재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연휴 끝나고 출근하면 "와타시 와 카이샤인 데스" 한 줄부터 입에 붙여 보고 싶어집니다. <왕초보를 위한 한입 일본어 초급 1> 덕분에 좋은 선생님 한 분 새로 모신 거 같아 든든합니다. 남은 연휴도 넉넉하게 보내세요.


문법 하나로 문장 쉰 개를 만들다 보면, 외운 일본어가 어느새 '내 말'이 되는 초급 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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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이 왜 당신 마음에 들어야 합니까 - 남들 마음속에 살다 내 인생을 놓친 사람들에게
김경일 지음 / 퍼스트펭귄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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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비교하는 순간 오답이 생긴다, <내 인생이 왜 당신 마음에 들어야 합니까> 서평

제목만 보면 누가 누구한테 단단히 한 소리 하는 책 같아요.


<내 인생이 왜 당신 마음에 들어야 합니까>. 소리 내서 읽으면 괜히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가는 제목입니다. 그런데 막상 펼쳐보면 저자가 목소리를 높이는 대목은 거의 없더라고요. 오히려 조용히 되묻는 쪽이에요. "본인은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하고요.


추석 연휴 한가운데 금요일이라 그런지 이 제목이 유난히 입에 붙는 거 같아요. 명절이면 꼭 오가는 질문들 있잖아요. 요즘 회사는 어떠냐, 애들 성적은 어떠냐, 누구네는 이번에 집을 넓혔다더라. 그런 이야기 사이에 앉아 있다 보면 이 제목이 속으로 한 번쯤 튀어나올 거 같더군요. 물론 입 밖으로 냈다가는 명절이 길어질 테니 속으로만요.


저자는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이에요. 아주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사람의 판단과 의사결정을 연구해 온 분이고, 여러 방송에서 심리 멘토로 이름이 알려져 있죠. 그래서인지 글이 상담실 맞은편에 앉아 이야기 나누는 느낌에 가까워요. 어려운 이론을 늘어놓는 대신 사람들이 실제로 털어놓는 말을 먼저 꺼내 놓고 시작합니다.


책은 아담한 편이에요.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판형에 두께도 보통 소설책 정도라 가방에 넣어 다니기 부담이 없더라고요. 가벼운 게 참 반가웠어요. 요즘 제 주변에서 가벼운 건 지갑밖에 없었거든요.

다섯 개 장에 아흔 개 꼭지가 담겨 있고, 꼭지 하나하나가 짧아서 어디를 펼쳐도 거기서부터 읽으면 되는 구조입니다. 목차만 훑어봐도 궁금한 제목이 줄줄이 나와요. '나이 들수록 쓰지 말아야 하는 이 말', '수년 만에 연락 온 친구가 청첩장을 건네면' 같은 제목은 안 펼쳐볼 재간이 없겠더라고요.


프롤로그는 상담에서 자주 듣는다는 고민들로 문을 엽니다. 부모님이 실망하실까 봐 하고 싶은 일을 망설이는 사람, 남들이 실패한 사람으로 볼까 봐 직장을 못 그만두는 사람, 미움받을까 봐 하고 싶은 말을 삼키는 사람 이야기예요. 저자는 이분들이 자기 인생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자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고 말해요. 부모님의 기대, 동료의 평가, 친구들의 삶은 한참 나오는데 가장 중요한 한 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는 거죠.


가장 중요한 한 사람, 바로 자기 자신.

그래서 저자는 <내 인생이 왜 당신 마음에 들어야 합니까>라는 질문이 누군가에게 화를 내려는 말도, 남의 의견을 무시하겠다는 선언도 아니라고 해요. 너무 많은 목소리에 묻혀 있던 내 마음을 다시 확인하려는 질문이라고요. 제목의 날이 이 대목에서 조금 무뎌지면서 오히려 더 편하게 읽히기 시작하는 거 같았어요.


인지심리학 이야기도 위로가 됐습니다. 사람의 뇌는 다른 사람의 반응을 중요한 정보로 받아들이도록 발달해서, 거부당했다고 느끼면 몸이 아플 때와 비슷한 고통으로 인식하기도 한대요.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게 의지가 약하거나 자존감이 낮아서만은 아니라는 거죠. 눈치 보는 게 성격 탓만은 아니라니 괜히 어깨가 좀 펴지더라고요.

그 뒤에 이어지는 '상상 속 평가' 이야기도 좋았어요. 실제로 들은 말보다 머릿속에서 지어낸 평가에 더 시달린다는 건데, 예로 든 문장 중에 '이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하면 철없다고 생각할 거야'가 있습니다. 마흔 넘어 서평 블로그 하는 아재한테는 남 얘기 같지가 않더군요. 저자 말로는 실제로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대요. 결국 내가 만들어낸 '상상 속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살아가는 셈이라고요.


유독 속도를 늦춰서 읽게 된 건 연봉 이야기였어요. 연봉 5천만 원을 받으며 회사 생활에 꽤 만족하던 사람이 동창 모임에서 친구 연봉이 8천만 원이라는 말을 듣는 장면입니다. 그 순간부터 괜찮던 회사가 부족해 보이고, 재미있던 일에서도 의미를 찾기 어려워진대요. 그리고 저자가 묻습니다. 무엇이 달라졌나요? 연봉도 회사도 하는 일도 그대로인데 말이죠.


"달라진 것은 오직 비교의 기준뿐입니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한 사람치고 이 장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 같아요. SNS 이야기도 이어지는데, 남의 편집된 하이라이트와 내 일상의 비하인드 장면을 비교하는 거라서 "이 싸움에서 내 인생이 이기기는 어렵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피식 웃었다가 조금 씁쓸해지는 문장이었습니다.


비교는 과거의 선택까지 오답으로 만든다는 대목도 있어요. '그때 다른 회사를 선택했어야 했는데', '일찍 투자를 시작했어야 했는데'. 이 나이쯤 되면 이런 문장 몇 개는 다들 품고 살잖아요. 저자는 지금 알게 된 걸 그때의 내가 몰랐다고 해서 그 시절의 나를 어리석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요. 이 대목은 조금 오래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솔직히 읽는 내내 제 안에서 걸렸던 게 하나 있었어요. 비교하지 말라는 말, 머리로는 알겠는데 그게 되냐는 거죠. 그런데 책 안에 딱 그 질문이 먼저 나옵니다. "교수님,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대답은 "맞습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예요. 따지려고 준비했던 말이 쑥 들어가 버렸어요. 뇌는 원래 비교로 세상을 이해하니 비교 자체를 없앨 수는 없고, 다만 무엇을 누구와 어떤 목적으로 비교할지는 고를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그 현실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3장의 '감정에도 경계선이 필요하다'는 회사 다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필요한 꼭지 같아요. 홧김에 욕을 했어, 홧김에 싸워졌지, 홧김에 필요 없는 물건을 사버렸네. 저자는 이 말들의 공통점이 화를 느낀 직후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한 데 있다고 봐요. 강한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에는 이성을 맡는 전전두엽보다 감정을 맡는 편도체가 먼저 움직인다고 하고요.


해법이 의외로 간단해서 좋았어요. 그 장소를 벗어나라는 겁니다. 뇌가 장소와 감정을 함께 기억하기 때문에, 언성을 높이던 공간에서 몇 걸음만 떨어져도 감정의 강도가 낮아진대요. 회의 끝나고 홧김에 쓰던 답장 메일을 임시 저장만 해두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비슷한 원리겠구나 싶었고요.


"그 몇 걸음이 후회할 행동과 현명한 선택의 경계선이 되어 줄 것입니다."

4장의 '마흔 이후에도 삶이 흔들리는 이유'는 제목부터 제 얘기 같았어요. <논어>에서 공자가 마흔을 불혹이라 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저자보다 열 살쯤 어린 40대 후배들이 "선배님, 왜 이렇게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고 심지어 막막하기까지 하는 거죠?" 하고 묻는다는 대목으로 넘어갑니다. 불혹은커녕 매일 흔들리는 입장에서는 그 후배 자리에 제 이름을 넣어도 될 거 같더라고요.

저자는 그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말해요. 수명이 길어진 만큼 고민하고 방황하는 시기도 길어졌고, 여든이 되고 구십이 되어도 자기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정하고 방황해야 하는 시대라는 거죠. 흔들리는 게 당연한 나이라는 말로 들려서 한결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목차 맨 끝에 놓인 꼭지가 '끝까지 해내려 하지 마세요'라는 것도 재밌었어요. 마지막 꼭지 제목이 끝까지 하지 말라니. 퇴근 전에, 연말이 되기 전에 뭐든 깔끔하게 마무리하려고 애쓰는 게 직장인의 습성인데 저자는 여기서 자이가르닉 효과를 꺼내 옵니다. 사람은 끝난 일보다 끝나지 않은 일을 더 오래 기억한대요. 그래서 작가들도 다음 문단을 막 시작하려는 순간 펜을 놓고, 운동도 '조금 더 할 수 있는데' 싶을 때 멈추는 편이 내일 다시 시작하기 쉽다고 하더군요.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완벽하게 끝내는 사람보다 꾸준히 이어가는 사람이 결국 더 멀리 갑니다."

책 속에는 질투와 부러움을 가르는 문장도 있어요.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생기는데, 그 감정을 "남을 끌어내리는 데 쓰면 질투가 되고, 나를 끌어올리는 데 쓰면 부러움이 됩니다"라고요. 동창 모임 연봉 이야기와 나란히 놓고 읽으니 더 와닿는 문장이었어요.


소장 가치는 충분한 거 같아요. 책상 옆에 두고 필요한 꼭지를 그때그때 찾아 읽기 좋은 책입니다. 욱하는 날엔 3장을, 막막한 날엔 4장을 펴면 되니까요. 회사에서 남의 눈치 보느라 하루가 다 가는 분이라면 제목만으로도 속이 좀 시원해지실 거예요. 읽는 내내 제 얘기를 들킨 것 같으면서도 재미있게 넘어갔습니다.


바람이 제법 선선해진 계절이에요. 가을은 원래 뭔가를 다 거둬들이는 때라지만, <내 인생이 왜 당신 마음에 들어야 합니까>를 덮고 나니 전부 끝내지 않아도 괜찮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더라고요. 이 책 말대로라면 송편도 한두 개는 남겨둬야 내일 또 손이 가는 거겠죠. 그게 제일 어려운 실천일 거 같긴 합니다.


내 마음에 드는 가을 보내세요. 좋은 책을 만나서 마음 한쪽이 가벼워진 기분이에요.


남의 마음에 들려고 애쓰던 시선을 내 쪽으로 슬며시 돌려놓는, 짧고 다정한 마음 수업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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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정한 방식으로는 결코 나를 담아낼 수 없다 ㅣ 한국철학전집 2
세종 지음 / 결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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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성군의 가면 뒤, 설계하는 왕 세종 <세상이 정한 방식으로는 결코 나를 담아낼 수 없다> 서평


지폐 속에서 제일 자주 뵙는 얼굴인데 정작 제대로 들여다본 적은 없는 분이 계세요.


세종대왕님이요. 명절만 되면 지갑에서 유난히 빨리 떠나가시는 분이라 얼굴 뵙기가 더 힘들기도 하고요.

그렇게 익숙한 얼굴을 두고 이 책은 첫머리부터 가면이라는 말을 꺼냅니다. 지폐 속에 박제되고 교과서 속에 정갈하게 앉아 있는 인자한 얼굴이 세종 진면모의 절반도 안 된다고요. 시작부터 제법 세게 나오는구나 싶었어요.


<세상이 정한 방식으로는 결코 나를 담아낼 수 없다>는 출판사 결의 <한국철학전집> 두 번째 책이에요. 첫 권은 이순신 편인 <스스로를 경계하지 않는 자는 결코 남을 벨 수 없다>였고요. 권마다 인물이 달라서 이 책부터 읽어도 괜찮지만, 앞 권 서평 먼저 보고 오시면 시리즈 분위기를 잡기가 편해요. 마침 오늘이 금요일이자 한가위 당일이네요. 출근 걱정 없는 금요일이라니, 명절이 주는 선물 중에 이만한 게 없는 거 같습니다. 표지에도 세종 옆으로 둥근 달이 하나 떠 있어서 추석에 꺼내 이야기하기 딱 맞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책이 세종에게 붙이는 이름은 '설계하는 왕'이에요. 백성을 불쌍히 여긴 왕은 역사에 흔했는데 왜 유독 세종만 오백 년 넘게 이름이 남았느냐고 묻고는, 답을 아주 짧게 내놓습니다. "그는 감정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감정을 도구로 바꾸었다." 그러고는 여느 왕들과 세종을 나란히 세워 보여주는데, 이 대목이 참 시원시원했어요. 다른 왕들이 탄식하고 끝낼 때 세종은 문자를 만들었고, 관리를 야단치고 말 때 십칠만 명에게 직접 물었고, 중국 달력을 베껴 나눠줄 때 조선의 하늘을 새로 계산했다는 거죠.


장 구성도 좀 특이한 편이에요. 법고창신, 지인지감, 분골쇄신, 실사구시, 제왕지업까지 네 글자 사자성어로 다섯 장을 세웠고, 그 아래 꼭지 제목은 거의 다 "~하라", "~마라"로 끝나요. 목차만 보면 자기계발서 기운이 확 풍기는데, 막상 들어가 보면 세종 시대 이야기가 뼈대를 단단히 받치고 있어서 읽는 맛이 따로 있더군요.

1장 첫 꼭지는 훈민정음 이야기로 열립니다. 표지에 적힌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든다"가 바로 여기로 이어지는 셈이에요. 15세기 조선은 법전도 판결문도 임금의 교서도 전부 한자였고, 백성은 관아에 끌려가도 자기에게 무슨 죄목이 씌워지는지 읽을 수 없었대요. 책은 백성이 문맹이 되도록 방치되어 있었다고 말하는데, 그 뒤에 나오는 문장이 이 꼭지의 심장 같았어요.


"어려움은 그 자체로 권력이다."

한문을 익히는 데 십수 년이 걸리니 지식은 극소수에게 몰리고, 그 소수가 문서를 쥐고, 문서를 쥔 자가 나라를 쥐었다는 흐름이에요. 그러니 훈민정음이 쉬웠다는 것 자체가 사대부들한테는 위협이었다는 얘기고요. 쉬움은 혁명이라는 표현이 처음엔 좀 과한가 싶었는데, 여기까지 따라오고 나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더라고요.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그다음이에요. 책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회사 이야기를 꺼내거든요. 어떤 업무는 왜 특정한 몇 사람만 다룰 수 있게 남아 있는지, 어떤 정보는 왜 상급자 머릿속에만 들어 있는지, 어떤 결정은 왜 닫힌 방 안에서만 내려지는지.


이 나이까지 회사를 다니다 보면 이런 장면이 전혀 낯설지 않죠. 그 사람한테 물어보러 가야 하고, 그 사람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그 사람이 알려주는 만큼만 알 수 있는 구조. 책은 그 안에 갇혀 있으면 아무리 성실해도 그 사람을 넘어설 수 없다고 말합니다. 뜨끔하면서도 이상하게 속이 시원했어요. 이어서 "당신은 지금 누구의 문자로 자신을 적고 있는가"라고 묻는데, 내 이력서와 하루와 성과를 적는 문법이 정말 내 것이냐는 질문이라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더군요.


"남의 언어로 자신을 설명하려 하지 마라. 남의 문법으로 자신의 성과를 정리하지 마라. 남의 기준으로 자신의 시간을 재지 마라."

세종이라는 사람이 제일 가깝게 느껴진 건 오히려 몸이 무너져 가는 대목이었어요. 말년의 세종은 소갈증을 오래 앓았고, 책은 이걸 지금 이름으로 당뇨라고 설명합니다. 그 병이 눈까지 갉아먹어서 결국엔 자기가 만든 문자마저 제 눈으로 온전히 읽기 어려워졌다고 해요.


평생 문서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 문서를 읽지 못하게 된 거죠.

그런데도 세종은 물러나지 않았대요. 승지가 문서를 읽어 아뢰던 관행을 사실상 자기 눈으로 삼아, 귀로 듣고 지시를 내렸다는 겁니다. 눈으로 읽는 문서는 앞뒤를 오가며 다시 볼 수 있지만 귀로 듣는 문서는 흘러가 버리잖아요. 그 자리에서 바로 판단하려면 지방 사정이며 관료들 성향이며 재정과 국경 형편이 머릿속에 한 장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야 했을 거라고요. 몸이 무너질수록 머릿속 조선은 더 뚜렷해졌다는 설명에서는 존경스러운 마음과 서늘한 기운이 같이 느껴졌어요. 책이 이걸 광기에 가깝다고까지 표현하는데 과장으로 들리지는 않더라고요.


눈이 감겨가는 왕이 문서를 귀로 듣던 그 방을 상상해 보라는 문장도 있어요. 어둡고, 무겁고, 조용했을 거라고 하는데, 그 세 마디가 이 꼭지 전체의 공기 같았습니다.

솔직히 좀 걸렸던 대목도 이 꼭지에 있어요. 책이 독자의 몸에 직접 말을 걸거든요. 눈이 침침한가, 어깨가 뭉치는가, 잠이 얕은가. 늘 피곤한 게 기본값인 사람한테는 하나같이 제 얘기라 웃음이 나다가, 오늘 좀 피곤해서 일을 미뤘다는 말이 얼마나 초라해지느냐는 문장에서는 좀 따끔했어요. 책 전체 말투가 워낙 단호해서 처음엔 세게 들리는 순간도 있었고요. 그런데 곧이어 "우리는 세종처럼 살 필요는 없다. 그것은 인간에게 가혹한 삶이다"라는 문장이 나와요. 이 대목에서 어깨 힘이 조금 풀리더군요. 균형 잡힌 삶에서 나오는 균형 잡힌 결과도 나쁘지 않다고 인정해 주는 대목도 앞에 있어서, 무작정 몰아붙이는 책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꼭지 끝머리의 짧은 문장들도 오래 기억날 것 같아요. 화려하지 않다, 낭만적이지도 않다, 다만 무너지지 않는다.

중년 입장에서 제일 할 말이 많아지는 건 4장의 달력 이야기였어요. 조선은 오랫동안 명나라 달력을 받아 썼는데, 하늘은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별이 뜨는 각도도 해의 길이도 달라서 조선 농부들은 늘 며칠씩 어긋난 시간표 위에서 살았대요. 세종은 그 어긋남을 참지 않고 혼천의와 간의를 세우고, 앙부일구를 거리에 놓고, 자격루로 궁궐 안에 시간을 알리게 했죠. 그 끝에 한양의 위도를 기준으로 다시 계산한 역법서 <칠정산>이 나왔고요. 앙부일구가 거리에 놓이면서 백성이 처음으로 자기 눈으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는 대목이 참 좋았어요.


그러다 책이 슬쩍 묻습니다. 스물다섯에 무엇을 해야 하고, 서른에 무엇을 이루어야 하고, 마흔에 어디에 있어야 한다는 그 시간표는 누가 만들었느냐고요.

마흔을 한참 지나온 입장에서는 이 질문이 좀 다르게 들리더라고요. 남들 달력으로 보면 늘 조금씩 늦은 거 같고 뭔가 놓친 거 같은 기분이 드는 나이거든요. 책은 그게 잘 살지 못해서가 아니라 남의 기준표 위에 서 있어서 어긋나 보이는 거라고 말해줘요. 회사에서 남이 짜준 일정표대로만 움직이는 게 답답했던 분이라면 이 장이 특히 즐겁게 읽힐 거 같아요.


"남의 시간표를 사는 사람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 계절을 산다."

이 문장은 따로 오려서 책상 앞에 붙여두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세상이 정한 방식으로는 결코 나를 담아낼 수 없다>는 판형이 손에 쏙 들어오고, 두께도 보통 교양서보다 얇은 편이라 가방에 넣고 다니기 부담이 없어요. 책은 가벼운데 내용은 체급이 꽤 나가서, 헤비급 선수가 라이트급 계체량을 가뿐히 통과한 느낌이랄까요. 프롤로그 면 바탕에 표지 그림이 흐릿하게 깔려 있는 것도 소장하는 맛을 더해줍니다. <한국철학전집>이 권수를 늘려갈수록 책장 한 칸을 따로 비워주고 싶어지는 시리즈예요.


오늘 밤엔 한가위 보름달이 뜨겠죠. 표지 속 둥근 달이랑 겹쳐 보일 것 같고, 한글날도 두 주 남짓 남았으니 이 계절에 세종 이야기를 만난 건 타이밍이 꽤 좋았던 셈이에요. <세상이 정한 방식으로는 결코 나를 담아낼 수 없다> 덕분에 올해는 보름달한테 소원을 빌면서 제 달력 한 장도 새로 그려볼 생각입니다. 좋은 책 한 권 품고 맞는 명절이라 마음이 든든하네요. 다들 넉넉한 한가위 보내세요.


마음을 문자와 달력으로 옮겨 만든 왕 세종이, 남의 시간표로 살아온 중년에게 내 하늘은 내가 직접 계산해 보라고 말을 거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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