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 왜 당신 마음에 들어야 합니까 - 남들 마음속에 살다 내 인생을 놓친 사람들에게
김경일 지음 / 퍼스트펭귄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비교하는 순간 오답이 생긴다, <내 인생이 왜 당신 마음에 들어야 합니까> 서평

제목만 보면 누가 누구한테 단단히 한 소리 하는 책 같아요.


<내 인생이 왜 당신 마음에 들어야 합니까>. 소리 내서 읽으면 괜히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가는 제목입니다. 그런데 막상 펼쳐보면 저자가 목소리를 높이는 대목은 거의 없더라고요. 오히려 조용히 되묻는 쪽이에요. "본인은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하고요.


추석 연휴 한가운데 금요일이라 그런지 이 제목이 유난히 입에 붙는 거 같아요. 명절이면 꼭 오가는 질문들 있잖아요. 요즘 회사는 어떠냐, 애들 성적은 어떠냐, 누구네는 이번에 집을 넓혔다더라. 그런 이야기 사이에 앉아 있다 보면 이 제목이 속으로 한 번쯤 튀어나올 거 같더군요. 물론 입 밖으로 냈다가는 명절이 길어질 테니 속으로만요.


저자는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이에요. 아주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사람의 판단과 의사결정을 연구해 온 분이고, 여러 방송에서 심리 멘토로 이름이 알려져 있죠. 그래서인지 글이 상담실 맞은편에 앉아 이야기 나누는 느낌에 가까워요. 어려운 이론을 늘어놓는 대신 사람들이 실제로 털어놓는 말을 먼저 꺼내 놓고 시작합니다.


책은 아담한 편이에요.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판형에 두께도 보통 소설책 정도라 가방에 넣어 다니기 부담이 없더라고요. 가벼운 게 참 반가웠어요. 요즘 제 주변에서 가벼운 건 지갑밖에 없었거든요.

다섯 개 장에 아흔 개 꼭지가 담겨 있고, 꼭지 하나하나가 짧아서 어디를 펼쳐도 거기서부터 읽으면 되는 구조입니다. 목차만 훑어봐도 궁금한 제목이 줄줄이 나와요. '나이 들수록 쓰지 말아야 하는 이 말', '수년 만에 연락 온 친구가 청첩장을 건네면' 같은 제목은 안 펼쳐볼 재간이 없겠더라고요.


프롤로그는 상담에서 자주 듣는다는 고민들로 문을 엽니다. 부모님이 실망하실까 봐 하고 싶은 일을 망설이는 사람, 남들이 실패한 사람으로 볼까 봐 직장을 못 그만두는 사람, 미움받을까 봐 하고 싶은 말을 삼키는 사람 이야기예요. 저자는 이분들이 자기 인생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자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고 말해요. 부모님의 기대, 동료의 평가, 친구들의 삶은 한참 나오는데 가장 중요한 한 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는 거죠.


가장 중요한 한 사람, 바로 자기 자신.

그래서 저자는 <내 인생이 왜 당신 마음에 들어야 합니까>라는 질문이 누군가에게 화를 내려는 말도, 남의 의견을 무시하겠다는 선언도 아니라고 해요. 너무 많은 목소리에 묻혀 있던 내 마음을 다시 확인하려는 질문이라고요. 제목의 날이 이 대목에서 조금 무뎌지면서 오히려 더 편하게 읽히기 시작하는 거 같았어요.


인지심리학 이야기도 위로가 됐습니다. 사람의 뇌는 다른 사람의 반응을 중요한 정보로 받아들이도록 발달해서, 거부당했다고 느끼면 몸이 아플 때와 비슷한 고통으로 인식하기도 한대요.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게 의지가 약하거나 자존감이 낮아서만은 아니라는 거죠. 눈치 보는 게 성격 탓만은 아니라니 괜히 어깨가 좀 펴지더라고요.

그 뒤에 이어지는 '상상 속 평가' 이야기도 좋았어요. 실제로 들은 말보다 머릿속에서 지어낸 평가에 더 시달린다는 건데, 예로 든 문장 중에 '이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하면 철없다고 생각할 거야'가 있습니다. 마흔 넘어 서평 블로그 하는 아재한테는 남 얘기 같지가 않더군요. 저자 말로는 실제로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대요. 결국 내가 만들어낸 '상상 속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살아가는 셈이라고요.


유독 속도를 늦춰서 읽게 된 건 연봉 이야기였어요. 연봉 5천만 원을 받으며 회사 생활에 꽤 만족하던 사람이 동창 모임에서 친구 연봉이 8천만 원이라는 말을 듣는 장면입니다. 그 순간부터 괜찮던 회사가 부족해 보이고, 재미있던 일에서도 의미를 찾기 어려워진대요. 그리고 저자가 묻습니다. 무엇이 달라졌나요? 연봉도 회사도 하는 일도 그대로인데 말이죠.


"달라진 것은 오직 비교의 기준뿐입니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한 사람치고 이 장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 같아요. SNS 이야기도 이어지는데, 남의 편집된 하이라이트와 내 일상의 비하인드 장면을 비교하는 거라서 "이 싸움에서 내 인생이 이기기는 어렵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피식 웃었다가 조금 씁쓸해지는 문장이었습니다.


비교는 과거의 선택까지 오답으로 만든다는 대목도 있어요. '그때 다른 회사를 선택했어야 했는데', '일찍 투자를 시작했어야 했는데'. 이 나이쯤 되면 이런 문장 몇 개는 다들 품고 살잖아요. 저자는 지금 알게 된 걸 그때의 내가 몰랐다고 해서 그 시절의 나를 어리석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요. 이 대목은 조금 오래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솔직히 읽는 내내 제 안에서 걸렸던 게 하나 있었어요. 비교하지 말라는 말, 머리로는 알겠는데 그게 되냐는 거죠. 그런데 책 안에 딱 그 질문이 먼저 나옵니다. "교수님,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대답은 "맞습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예요. 따지려고 준비했던 말이 쑥 들어가 버렸어요. 뇌는 원래 비교로 세상을 이해하니 비교 자체를 없앨 수는 없고, 다만 무엇을 누구와 어떤 목적으로 비교할지는 고를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그 현실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3장의 '감정에도 경계선이 필요하다'는 회사 다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필요한 꼭지 같아요. 홧김에 욕을 했어, 홧김에 싸워졌지, 홧김에 필요 없는 물건을 사버렸네. 저자는 이 말들의 공통점이 화를 느낀 직후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한 데 있다고 봐요. 강한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에는 이성을 맡는 전전두엽보다 감정을 맡는 편도체가 먼저 움직인다고 하고요.


해법이 의외로 간단해서 좋았어요. 그 장소를 벗어나라는 겁니다. 뇌가 장소와 감정을 함께 기억하기 때문에, 언성을 높이던 공간에서 몇 걸음만 떨어져도 감정의 강도가 낮아진대요. 회의 끝나고 홧김에 쓰던 답장 메일을 임시 저장만 해두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비슷한 원리겠구나 싶었고요.


"그 몇 걸음이 후회할 행동과 현명한 선택의 경계선이 되어 줄 것입니다."

4장의 '마흔 이후에도 삶이 흔들리는 이유'는 제목부터 제 얘기 같았어요. <논어>에서 공자가 마흔을 불혹이라 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저자보다 열 살쯤 어린 40대 후배들이 "선배님, 왜 이렇게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고 심지어 막막하기까지 하는 거죠?" 하고 묻는다는 대목으로 넘어갑니다. 불혹은커녕 매일 흔들리는 입장에서는 그 후배 자리에 제 이름을 넣어도 될 거 같더라고요.

저자는 그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말해요. 수명이 길어진 만큼 고민하고 방황하는 시기도 길어졌고, 여든이 되고 구십이 되어도 자기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정하고 방황해야 하는 시대라는 거죠. 흔들리는 게 당연한 나이라는 말로 들려서 한결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목차 맨 끝에 놓인 꼭지가 '끝까지 해내려 하지 마세요'라는 것도 재밌었어요. 마지막 꼭지 제목이 끝까지 하지 말라니. 퇴근 전에, 연말이 되기 전에 뭐든 깔끔하게 마무리하려고 애쓰는 게 직장인의 습성인데 저자는 여기서 자이가르닉 효과를 꺼내 옵니다. 사람은 끝난 일보다 끝나지 않은 일을 더 오래 기억한대요. 그래서 작가들도 다음 문단을 막 시작하려는 순간 펜을 놓고, 운동도 '조금 더 할 수 있는데' 싶을 때 멈추는 편이 내일 다시 시작하기 쉽다고 하더군요.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완벽하게 끝내는 사람보다 꾸준히 이어가는 사람이 결국 더 멀리 갑니다."

책 속에는 질투와 부러움을 가르는 문장도 있어요.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생기는데, 그 감정을 "남을 끌어내리는 데 쓰면 질투가 되고, 나를 끌어올리는 데 쓰면 부러움이 됩니다"라고요. 동창 모임 연봉 이야기와 나란히 놓고 읽으니 더 와닿는 문장이었어요.


소장 가치는 충분한 거 같아요. 책상 옆에 두고 필요한 꼭지를 그때그때 찾아 읽기 좋은 책입니다. 욱하는 날엔 3장을, 막막한 날엔 4장을 펴면 되니까요. 회사에서 남의 눈치 보느라 하루가 다 가는 분이라면 제목만으로도 속이 좀 시원해지실 거예요. 읽는 내내 제 얘기를 들킨 것 같으면서도 재미있게 넘어갔습니다.


바람이 제법 선선해진 계절이에요. 가을은 원래 뭔가를 다 거둬들이는 때라지만, <내 인생이 왜 당신 마음에 들어야 합니까>를 덮고 나니 전부 끝내지 않아도 괜찮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더라고요. 이 책 말대로라면 송편도 한두 개는 남겨둬야 내일 또 손이 가는 거겠죠. 그게 제일 어려운 실천일 거 같긴 합니다.


내 마음에 드는 가을 보내세요. 좋은 책을 만나서 마음 한쪽이 가벼워진 기분이에요.


남의 마음에 들려고 애쓰던 시선을 내 쪽으로 슬며시 돌려놓는, 짧고 다정한 마음 수업 같은 책


#내인생이왜당신마음에들어야합니까 #김경일 #김경일교수 #퍼스트펭귄 #인지심리학 #심리학책 #교양심리학 #자기계발서 #책추천 #신간도서 #서평 #책리뷰 #북스타그램 #눈치 #비교하지않기 #자이가르닉효과 #마흔 #직장인책추천 #BOOKU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