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 뿌미맘 가계부 - 푼돈이 목돈 되는 기적의 가계부!
상큼한 뿌미맘 차지선 지음 / 시원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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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2027 뿌미맘 가계부 서평, 커피값에 뜨끔한 아재의 내년 가계부 미리 보기


서평단 활동을 하면서 별별 책을 다 받아 봤는데, 이번에 온 책은 제가 직접 채워 넣어야 하는 책이었습니다. <2027 뿌미맘 가계부>예요. 10월 초인데 벌써 내년 가계부라니, 달력보다 2027년이 한 발 먼저 와 버린 기분이 들더군요. 그런데 프롤로그를 펼치자마자 "비록 100만 원도 안 되는 적은 월급이었지만 매달 월급의 70% 이상을 모았죠"라는 문장이 나와서, 월급쟁이 아재는 시작부터 좀 찔렸어요.


가계부를 쓰면 가게 갈 일이 줄어서 가계부라고 부르나 봐요. 실없는 소리 한번 해 봤습니다.

<2027 뿌미맘 가계부>는 쓰기 전에 지출부터 세 갈래로 나눠 보는 구성이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고정비, 생활비, 특별비를 표로 정리해 뒀는데, 고정비 표에는 관리비, 전기, 수도 같은 공과금 말고도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유튜브 같은 영상 구독료 칸이 따로 있어요. 정수기나 공기청정기 렌털, 부모님 용돈까지 들어가 있고요. 표를 보는 순간 우리 집 카드 명세서가 머릿속에 쫙 펼쳐지는 느낌이 듭니다. 매달 빠져나가는데 정확히 얼마인지 모르는 게 생각보다 많은 거 같아요.


생활비 표 옆에는 '내가 추가하고 싶은 예시'라는 빈칸이 하나 더 있어요. 자기계발 항목 예시로 헬스PT, 필라테스, 등산, 골프가 나란히 적혀 있는 걸 보고 괜히 웃음이 나더라고요. 특별비 쪽에는 생일, 명절 지원비, 결혼식 축의금, 친목 동호회 회비, 여름휴가가 있어요.


축의금, 부의금, 동창회 회비. 이것만 모아도 1년이면 꽤 되겠다 싶었어요.

작성 예시 면은 일주일이 양쪽으로 펼쳐지는 구조입니다. 월요일 칸에 "마트 30,000", 화요일 칸에 "휴지 15,900", 목요일에는 "소아과 8,000"과 "기저귀 42,900", 토요일에는 "커트 18,000", 일요일에는 "냉면 29,000". 하루에 한두 줄이면 끝이고, 맨 오른쪽 칸에서 항목별로 더하면 한 주 합계 358,930원이 딱 나와요. 옆 말풍선에는 "'항목+비용'을 적거나 '비용'만 간단히 적어요"라고 쓰여 있고요. 가계부라고 하면 영수증 붙이고 칸마다 빽빽하게 채우는 모습부터 떠올렸는데, 이 정도면 저도 해 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작하기 전에 꼭지 제목이 "가계부는 일주일에 한 번 정리하는 것을 추천해요!"예요. 매일 쓰면 좋지만 매일 시간 내기는 쉽지 않으니, 일요일 저녁이나 월요일 아침처럼 나만의 '가계부 시간'을 정해 두라고 합니다. 퇴근하면 녹초가 되는 사람한테는 이 말이 꽤 든든하게 들려요.


가계부를 써도 돈이 안 모인다는 동생의 질문에 저자가 해 준 대답도 좋았어요. "가계부를 잘 쓰는 사람은 글씨를 예쁘게 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소비를 돌아보는 사람이야." 그러면서 정 어려우면 그날까지 쓴 비용을 그냥 통으로라도 적으라고까지 해요. 추천하지는 않지만 중간에 포기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면서요.


"가계부는 완벽하게 쓰는 사람보다 끝까지 쓰는 사람이 결국 이깁니다."

매주 '이번 주 가장 잘한 소비 1가지'와 '다음에는 줄이고 싶은 소비 1가지'를 적어 보라는 팁도 있어요. 제 경우엔 줄이고 싶은 소비 칸이 매주 같은 걸로 채워질 거 같은 예감이 들긴 합니다.

솔직히 걸렸던 건 살림 Q&A에서 식비 줄이는 팁을 읽을 때였어요. 평일에는 카페에 안 가고 주말에만 가끔 간다는 대목이요. "커피값도 쌓이면 꽤 큰 돈되잖아요"라는 말에 반박할 거리가 하나도 없더군요. 회사 다니는 사람한테 점심 먹고 마시는 커피 한 잔은 거의 하루의 의식 같은 건데. 맞는 말이라 더 뜨끔했습니다.


신용카드를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다는 고백도 나와요. 어릴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빚이 얼마나 무서운지 직접 겪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체크카드와 현금을 쓰지만 그 방식을 남한테 강요하지는 않아요. 절제가 된다면 신용카드도 괜찮고, 잘 안 된다면 줄이거나 체크카드와 섞어 쓰라는 정도로만 권합니다. 자기 경험을 정답처럼 밀어붙이지 않는 점이 좋았어요.


저자 사진 옆에는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미니멀리스트 '상큼한 뿌미맘'"이라는 소개 문구가 있어요. 가계부를 20년 넘게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썼고, 그렇게 기른 힘으로 부모님 도움 없이 3,000만 원의 결혼 자금을 모았다고 합니다. 숫자만 보면 엄청난 절약 고수인데, 말투는 옆집 사람처럼 편해서 읽는 부담이 덜하더라고요.


다른 대목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은 건 에필로그였어요. 뿌미가 네 살이 되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자유 시간이 생겼는데, 1년쯤 지나자 '내가 그동안 뭘 한 거지?' 하는 불안이 찾아왔대요. 그 뒤로 1년 동안 52권을 읽고 독후감 52개를 썼고, 2018년 12월에 유튜브를 시작해 4개월 만에 구독자 1만 명, 6개월 만에 2만 명이 됐다고 합니다. 매일 새벽 2시간씩 공부해서 MKYU 수석 장학생이 된 이야기도 나와요.


1년에 52권. 서평단을 하면서 이제야 책 읽는 재미를 알아 가는 저한테는 남 얘기 같지 않은 숫자였어요.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계정이 모두 해킹당했다는 고백이 이어지거든요. 오래 쌓아 온 기록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현실 앞에서 많이 좌절했다고 해요.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는 생각이 시간이 지나면서 '이 경험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려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 담담하게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가계부를 쓰며 배운 가장 큰 가치는 돈을 모으는 기술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였다고 말해요. "저는 새롭게 다시 시작하겠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데, 숫자를 적는 책 맨 끝에 사람 이야기가 놓여 있으니 앞에서 본 표들이 조금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2027 뿌미맘 가계부>는 판형이 보통 소설책보다 크고 제법 두툼한 편이라 책상에 펼쳐 놓고 쓰기 좋아요. 1월부터 12월까지 열두 달 구성이고, 이번 판에는 '이번 달 돌아보기'와 '다음 달 준비하기' 페이지가 새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별책부록인 월 결산 노트에 무지출 스티커, 영수증 봉투까지 딸려 있어서, 영수증을 모아 뒀다가 일주일에 한 번 정리하는 방식과 잘 맞을 거 같아요. 다 채우고 나면 제 1년이 고스란히 남는 기록장이 되는 셈이니, 보통 책을 꽂아 두는 것과는 의미가 좀 다를 거 같습니다. 가계부를 사 놓고 몇 주 만에 서랍에 넣어 버린 적이 있는 분이라면 이 가계부의 느슨한 규칙이 꽤 편하게 느껴질 거예요.


10월 초, 주말을 하루 앞둔 목요일이에요. 아침저녁 공기가 제법 선선해져서 이제 가을이 왔구나 싶습니다. <2027 뿌미맘 가계부>의 1월 칸은 아직 비어 있지만, 첫 줄을 적을 날이 은근히 기다려져요.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는데 올가을엔 제 통장도 살이 좀 올랐으면 좋겠네요. 좋은 습관 하나 들일 수 있을 거 같아서 기분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몇 줄이면 되는 가계부. 끝까지 쓰는 사람이 이긴다고 다독여 주는 1년짜리 기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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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건물주의 정석 : 네이버 블로그 편 ㅣ 온라인 건물주의 정석
알파남(김지수) 지음 / 모티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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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블로그 제목만 바꿔도 달라진다? <온라인 건물주의 정석 네이버 블로그 편> 서평


유튜브 영상 하나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이야기, 예전의 저였으면 그냥 웃고 넘겼을 거 같아요.

저도 한때는 퇴근하면 유튜브만 틀어놓다가 잠들던 사람이었거든요. 요즘은 서평단 덕분에 책부터 집어 들지만요. 그런데 이 책을 쓴 알파남(김지수) 님은 출퇴근길에 블로그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영상을 봤고, 그걸 흘려보내지 않고 정말로 블로그를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같은 유튜브를 보고 누구는 꾸벅꾸벅 졸았고 누구는 건물을 올렸다니, 첫 장부터 괜히 옆구리가 찔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온라인 건물주의 정석 네이버 블로그 편>은 기본편에 이어 나온 시리즈라서 앞 권 서평 먼저 보고 오시면 편해요. 이번 권은 제목 그대로 네이버 블로그 하나에만 집중한 실전편입니다.

책을 받아 들면 먼저 덩치에 놀라게 돼요. 판형부터 큼직하고 보통 경제경영서보다 제법 두툼한 편이라, 손에 든 느낌이 거의 벽돌 한 장이에요. 온라인 건물주 되는 법을 알려주기 전에 벽돌 나를 체력부터 점검해 주는 책인가 싶더라고요.


저자 이력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29살까지 자동차 부품회사 운전기사였고, 월급은 약 250만 원에 학자금 대출이 2,000만 원 남아 있었다고 해요. 좋은 학벌도 대단한 인맥도 없었다고 본인 입으로 말하고요. 출퇴근길마다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는 대목이 있는데요.

'내가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돈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들 수는 없을까?'

이 질문은 마흔 후반 직장인한테도 영 남의 얘기 같지 않더라고요. 내가 일을 멈추는 순간 수입도 같이 멈추는 구조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월급쟁이라면 다들 한 번쯤 머릿속으로 해봤을 계산 같아요.


처음부터 잘 풀린 것도 아니었대요. 몇 시간을 들여 글을 써도 조회수가 0인 날이 많았고, 하루 종일 들여다봐도 수익이 없던 날이 이어졌다고 하고요. 그러다 처음으로 100원이 벌렸고, 그 100원이 1,000원이 되고, 어느 순간 하루 1만 원이 됐다고 합니다. 저자가 굵게 강조해 둔 문장은 이거였어요. "내가 출근하지 않은 시간에도, 내가 작성한 글이 사람을 불러오고 돈을 벌 수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100억이라는 숫자는 표지에서 이미 실컷 봤으니, 정작 오래 남는 건 그 100원 쪽인 거 같아요. "꿈은 나눗셈입니다"라는 소제목도 같은 결이더군요. 월 300만 원이 목표라면 먼저 월 30만 원을 만들어 보고, 글 하나로 1만 원을 벌었다면 그런 글을 30개 만들 방법을 고민하라는 얘기예요. 큰 숫자를 잘게 쪼개 놓으니 덜 막막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온라인 건물주의 정석 네이버 블로그 편>만의 특이한 점을 꼽자면, 아예 "블로그 3개를 운영합니다"를 기본 전제로 깔고 간다는 거예요. 네이버에서는 실명 계정 하나로 블로그를 최대 3개까지 운영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블로그 하나 굴리는 것도 벅찬 입장에선 처음에 좀 아찔하게 들렸어요.

그렇다고 1번은 검색형, 2번은 홈판형, 3번은 쇼핑 커넥트형 하는 식으로 칼같이 나누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셋을 블로그의 종류라기보다 콘텐츠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라는 설명이 나오는데, 이 대목에서 머리가 한결 정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검색을 노리고 쓴 글이 홈판에 걸릴 수도 있고, 홈판형 글이 검색으로 꾸준히 사람을 데려올 수도 있다고 하니까요.


하나를 하든 셋을 하든 출발점은 같습니다.

"지금은 모든 내용을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블로그를 개설하고, 글을 작성합니다." 5장 끝에 나오는 이 두 문장이 은근히 든든했어요. 두꺼운 책 앞에서 잔뜩 긴장한 초보한테 일단 어깨 힘부터 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거든요.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16장 "블로그 수익을 결정하는 것은 제목입니다"였어요. 저자가 블로그로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 1,000명 이상의 글을 살펴봤더니, 공통으로 걸린 문제가 다름 아닌 '제목'이었다고 해요. 본문에는 시간과 정성을 듬뿍 들이면서 제목은 그때그때 느낌대로 짓는다는 거죠.


예시가 아주 생활 밀착형입니다. 임플란트 비용이 궁금한 사람은 '임플란트 1개 가격'이나 '65세 이상 임플란트 비용' 같은 말로 검색하는데, 블로그 제목이 "어금니가 아팠던 어느 날"이면 본문이 아무리 알차도 찾아올 수가 없대요. 그래서 "임플란트 1개 가격과 치료 과정, 직접 상담받은 후기"처럼 바꾸라고 하더군요. 앞의 것은 글쓴이가 하고 싶은 말이고 뒤의 것은 검색하는 사람이 찾는 말이라는 정리가 붙는데, 이 두 줄짜리 비교가 그 장 전체를 다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이어서 나오는 '돈을 못 버는 블로그 제목' 목록에서는 웃음이 터졌습니다. "오늘의 이야기", "오랜만에 다녀온 곳", "드디어 해결했습니다", "내돈내산 솔직 후기".


뜨끔. 그것도 몇 번이나.

서평 블로그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제 글 제목들을 슬쩍 떠올려 보게 되더라고요. 기름값 뉴스를 예로 든 부분도 재미있었어요. "운전자라면 정말 속상한 소식"이나 "오늘 주유소에 다녀온 이야기" 같은 제목은 느낌과 감상만 있고 검색하는 사람이 얻을 정보가 없다고 콕 집어요. 대신 "지역별 최저가 주유소 조회 방법과 주유비 절약 팁"처럼 바꿔 보라고 하고요. 운전기사 출신 저자가 기름값 예시를 드니까 괜히 더 실감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온라인 건물주의 정석 네이버 블로그 편>에서 제일 오래 붙들고 있던 문장은 이거였어요.

"좋은 제목은 낚시가 아닙니다. 검색한 사람이 원하는 답이 이 글에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약속입니다."


키워드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이고 제목은 가게 간판이라는 비유도 함께 나와요. 아무리 좋은 자리에 가게를 열어도 간판만 보고 뭘 파는 곳인지 모르면 손님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얘기인데, '온라인 건물주'라는 책 제목이랑 딱 맞물려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질문을 검색어로 바꾸는 연습도 있어요. "어디서 신청하지?"는 '소상공인 전기요금 지원 신청 방법'으로, "왜 사진이 안 보내지지?"는 '카카오톡 사진 전송 안 됨'으로 바꾸는 식이에요. 따라 하다 보면 머릿속에 검색창이 하나 생기는 기분이랄까요.


에필로그로 넘어가면 결이 확 달라집니다.

"정말 간절합니다", "커피 한잔하면서 인생 상담을 받고 싶습니다" 같은 메시지를 자주 받는다는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저자는 그 마음을 안다고 해요. 통장에 남은 돈보다 학자금 대출 2,000만 원이 더 크게 보이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면서 꺼내는 말은 꽤 냉정합니다. 자본주의는 간절함보다 능력에 돈을 지불한다고, 시장은 "당신이 얼마나 힘든가?"를 묻는 대신 "당신은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고요.


마흔 후반 직장인한테 가장 가깝게 와닿은 건 '블로그가 좋은 진짜 이유'라는 소제목 쪽이었어요. 직장에 다니면 누군가의 평가에 따라 월급과 자리가 정해지고, 돈이 들어오는 통로가 하나뿐이면 부당한 말을 들어도 참게 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월급 말고 내가 직접 만드는 수익이 생기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함께 넓어집니다"라고 하더군요. 가족에게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시간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문장은, 이 나이쯤 되면 누구나 한 번쯤 그려봤을 장면이라 쉽게 넘어가지지 않았어요.


"회사에서는 적당히 해야 해", "인생 뭐 있어? 그냥 편하게 살아." 이런 말은 이 나이가 되면 듣기도 하고 하기도 하는 말이라 좀 찔렸습니다. 그렇다고 저자가 자신을 갈아 넣으라고 몰아붙이는 것도 아니에요. 건강과 가족을 잃어가면서까지 일할 필요는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긋더라고요. 진짜 여유는 해야 할 때 제대로 해낸 사람이 나중에 얻는 선택권이라는 문장은 20대, 30대를 향한 말 같으면서도 지금의 저한테도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 문장. "인생을 바꿀 단 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면 이제 멈추세요. 거울을 보면 됩니다."

솔직히 처음에 걸렸던 건 숫자였어요. 자본금 0원, 6년, 100억 같은 숫자가 표지부터 큼지막하게 박혀 있어서, 혹시 "누구나 금방 된다"는 쪽의 책인가 하는 경계심이 살짝 들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저자가 먼저 "월 300만 원이 모든 사람에게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누구나 월 300만 원을 벌 수 있습니다" 같은 과장된 제목은 신뢰를 잃기 쉽다고 지적하더군요. 그 대목을 지나고 나서는 경계심이 꽤 풀렸어요. 에필로그 말투가 단호한 편이라 지친 날엔 좀 따끔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그게 또 이 책의 맛인 것 같기도 합니다.


한 번 읽고 끝날 책은 아닌 거 같아요. 표와 예시가 많고 판형이 커서 한눈에 시원하게 보이고, 제목 점검 항목처럼 글 쓸 때마다 옆에 펴놓고 하나씩 대조해 볼 만한 내용이 가득하거든요. 책을 끝까지 읽고 후기를 남기면 애드포스트 승인용 AI 봇, 승인 방법 정리 PDF, 키워드 모음집 PDF를 받을 수 있는 이벤트도 안내돼 있어요. 월급이라는 통로 하나에 기대 사는 게 가끔 불안했던 직장인이라면 읽는 내내 재미있게 넘어갈 책 같습니다.


어느새 10월 둘째 주 목요일이에요. 아침저녁 바람이 제법 서늘해졌고, 하루만 버티면 금요일이라 마음도 조금 가벼워지는 날이네요. 가을은 거두는 계절이라는데 저는 아직 거둘 게 없으니, 올가을엔 블로그 밭에 키워드 씨앗부터 뿌려볼까 합니다. <온라인 건물주의 정석 네이버 블로그 편> 덕분에 가을 초입에 튼튼한 설계도 한 장 손에 쥔 기분이에요. 제목 점검 항목부터 하나씩 따라 해 볼 생각입니다.


첫 100원과 검색되는 제목 하나에서 온라인 건물이 올라간다는 걸 알려주는 네이버 블로그 실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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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 역사 - 중동의 3천년 역사를 이해한다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시토미 유조 지음, 정애영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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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낙타 안장 하나가 연 3천 년, <아라비아 역사> 서평


10월 들어 첫 수요일이에요. 한 주의 한가운데라 그런지 수요일은 이름부터 '수'고 많다는 소리로 들리더라고요. 아침저녁 공기가 제법 차가워졌는데, 이번에 받은 책은 한낮 사막의 열기를 잔뜩 품고 있었습니다.

중동이라는 말을 들으면 저는 석유랑 전쟁 말고는 떠오르는 게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라비아 역사>는 그 땅의 3천 년을 처음부터 같이 걸어 보자고 손을 내미는 느낌이 듭니다.


3천 년이라.

부제만 보고도 살짝 겁이 났는데, 두께도 보통 소설책보다 제법 두툼한 편이에요. 이걸 낙타 한 마리에 다 실을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판형이 아담한 문고판이라 손에는 생각보다 잘 감기더군요. 원서는 일본 주코신쇼에서 2018년에 나온 <物語 アラビアの歴史>이고, 시토미 유조는 도쿄대 명예교수로 아라비아 고대사와 동서 해상 교류사를 연구해 온 분이라고 합니다. 역자는 그를 '본연의 아라비아사'를 쓴 선구적 연구자라고 소개하더라고요.


이야기의 문을 여는 게 왕이나 영웅이 아니고 낙타 안장이라는 점이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기원전 12세기 무렵 단봉낙타에 얹는 안장이 고안되면서 대상로와 향료의 길이 열렸고, 그 길을 따라 남아라비아의 사바 왕국 같은 문명이 자라났다는 이야기입니다.


도구 하나가 길을 만들고, 길이 나라를 만들고.

셰바 여왕 대목에서는 저자가 꽤 깐깐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열왕기 상) 10장으로 익숙한 전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법 없이 하나씩 다시 따져 보거든요. 그러면서 사바의 실제 모습은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의 설형문자 기록 쪽에서 찾아 들어갑니다. 낙타 200마리, 사르곤 2세 시절인 기원전 716/5년, 카리빌이라는 이름까지. 전설 속 나라가 숫자와 이름을 달고 지도 위로 내려오는 기분이었습니다. 원서 출간 무렵 인터뷰에서 저자가 젊은 연구자들에게 선입관을 버리고 통설을 그대로 믿지 말라고 당부했다던데, <아라비아 역사>의 이 장에서 그 목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것 같았어요.


다른 데보다 속도를 늦춰 천천히 읽게 된 건 이슬람의 탄생을 다룬 대목이에요. 저자는 이슬람의 출현을 '네이티비스트 무브먼트', 우리말로 토착주의 운동이라는 틀로 읽어 보자고 제안합니다. 기존 종교로는 설명이 안 되는 큰 변동이 닥쳤을 때 새 종교로 사회 질서를 다시 세우려는 움직임을 가리킨다고 해요.


여기서 끌어오는 비교 사례가 뉴질랜드와 중국이라 처음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1840년 와이탕기 조약 뒤 토지가 팔려 나가며 흔들리던 마오리 사회에서, 테우아 하우메네가 1862년 대천사 가브리엘의 계시를 받았다며 마오리를 선민으로, 뉴질랜드를 약속의 땅으로 설파한 하우하우 운동이 하나예요. 다른 하나는 과거에 낙방하고 앓아누웠던 홍수전이 꿈속 노인을 상제 야훼로, 자신을 예수의 동생으로 여기면서 시작된 태평천국이고요. 멀리 떨어진 두 땅에서 이렇게 닮은 일이 벌어졌다는 게 신기하더군요.


이 틀을 아라비아에 대입하는 부분은 따라가는 재미가 제일 쏠쏠했던 것 같아요. 무함마드 사후 사자흐, 아스와드, 투라이하 같은 이른바 '가짜 예언자'들이 잇따라 나타나는데, 저자가 무게를 두는 건 그들을 따른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아라비아에 예언자를 기다리는 분위기가 퍼져 있었다는 거죠. 3세기 이래 오리엔트 3대 열강 사이에 끼어 지냈고, 무함마드가 장년이던 무렵엔 동서 두 제국이 20년 넘게 사투를 벌였다고 해요. 부족들이 "마른 침을 삼키며" 전황을 지켜봤다는 짧은 표현에 그 시절 긴장이 다 들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사료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먼저 털어놓고 조심조심 추론을 쌓아 가는 서술이라 오히려 믿음이 가더라고요.

근현대로 넘어오면 인물들이 훨씬 또렷해져요. 1차 대전 직전 영국 해군이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고, 이란 유전과 아바단섬 제유소를 지키려 바스라를 점령하는 데서 석유의 시대가 문을 엽니다. 메카의 후세인은 카이로의 맥마흔과 1915년부터 이듬해까지 서로 5통씩 편지를 주고받고, 아랍제국을 약속받았다고 믿은 채 1916년 6월 반기를 들어요. 연락장교로 합류한 로렌스는 히자즈 철도를 거듭 노리는 게릴라전을 펼치고요. 이름만 들어 본 로렌스가 나와서 반가웠는데, 저자의 평가는 차분하다 못해 서늘할 정도였어요.


"광범한 사회의 지지를 얻은 진정한 의미의 아랍혁명은 되지 못했다."


그 사이 영국은 사이크스-피코 협정과 밸푸어 선언까지 세 갈래 외교를 벌여 두었고, 1920년 산레모 회의에서 시리아·레바논은 프랑스, 팔레스타인·트랜스요르단·이라크는 영국 위임통치로 갈라집니다. 파이사르가 왕으로 추대된 시리아국은 4개월 만에 무너지고요. 영국이 1921년 파이사르를 이라크 국왕으로, 1923년 압둘라를 트랜스요르단 국왕으로 앉혀 "하심가의 체면은 세워주었다"는 문장에서는 쓴웃음이 났습니다.

후세인이라는 인물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이 좀 복잡해져요. 오스만의 위협이 사라지자 영국의 재정 지원이 끊겼고, 아랍 수장의 권위는 부하들에게 부를 얼마나 나눠 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그 설명 끝에 이런 문장이 붙어 있더군요.


"친척을 제외하고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칠 자는 더 이상 없었던 것"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예산 따라 사람이 움직이는 풍경이 낯설지 않은데, 사막의 정치도 결국 비슷한 원리로 굴러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924년 튀르키예 공화국 정부가 칼리파 제도를 없애고 며칠 뒤, 후세인이 스스로 칼리파 즉위를 선언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넘어갑니다.


옮긴이의 말도 따로 챙겨 읽을 만했어요. 정애영 역자는 어린 시절 친척 집 큰 저택에 갑자기 불이 꺼지고 보일러를 못 틀었던 기억이, 커서 보니 70년대 오일쇼크였다고 털어놓습니다. 사우디와 쿠웨이트 건설 현장에서 땀 흘린 한국인 근로자들 이야기를 귀동냥하며 "불같이 뜨거운 사막"을 그려 봤다는 회상도 이어지고요. 중동 건설 현장 이야기는 제 또래라면 한 번쯤 들어 봤을 법한 얘기라, 아득하던 사막이 이 대목에서 성큼 가까워졌어요. 여러 강대국 사이에서 험한 역사를 겪은 아라비아가 한국사와 닮았다는 역자의 말도, 마른 침을 삼키던 부족들을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솔직히 낯선 인명과 지명이 쉴 새 없이 나와서 따라가기 버거운 구간이 있긴 해요. 역자도 그걸 알았는지 "아라비아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으로" 읽어 달라고 부탁하는데, 그 말을 떠올리니 이름 하나하나에 매달리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더라고요.

아라비아만 따로 떼어 3천 년을 훑는 책은 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중동 소식이 뉴스에 나올 때마다 꺼내 보기 좋겠다 싶어서, <아라비아 역사>는 책장 잘 보이는 자리에 꽂아 두고 싶은 쪽입니다.


석유와 전쟁으로만 알던 땅에 낙타 대상이 오가던 긴 시절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좋은 책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어요. 바람이 하루가 다르게 차가워지는 요즘, 사막 열기 한 번 제대로 쬐고 나니 이번 환절기는 거뜬히 넘길 것 같은 기분입니다. 다들 감기 조심하시고, 또 재밌는 책 들고 찾아올게요.


낙타 안장 하나에서 시작해 석유의 시대까지, 아라비아만 따로 떼어 3천 년을 따라가 보는 역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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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Who - 누가 인생 후반전에서 승리하는가
박형수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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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40대 후반 직장인이 읽은 <은퇴 후 Who>서평, 퇴직이 조금 덜 무서워졌어요


"지잉~."

휴대전화 진동 한 번에 27년 다닌 회사와 작별하게 된 상무님이 있습니다. 화면에 뜬 이름은 재무담당 부사장이었고, 들려온 말은 "백방으로 알아봤는데 도저히 방법이 없어요…"였다고 해요. <은퇴 후 Who>는 이 전화 한 통으로 첫 이야기를 엽니다. 저 같은 40대 후반 직장인한테는 첫 장면부터 남의 일로만 읽히지는 않더라고요.

아침저녁 바람이 제법 쌀쌀해진 10월 첫 수요일이에요. 한 주의 딱 허리쯤이라 몸은 무겁고 주말은 아직 멀게만 느껴지는 날인데, 이런 날 붙들고 있기엔 '퇴직'이 좀 무거운 단어이긴 하죠. 솔직히 제목을 처음 봤을 땐 '은퇴 후~' 하고 길게 한숨 쉬는 소리인 줄 알았어요. 알고 보니 영어 Who, 그러니까 '누가'였습니다. 누가 인생 후반전에서 웃게 되는지를 묻는 책이더군요.


<은퇴 후 Who>는 중앙일보 '더중앙플러스'에서 박형수 기자가 연재하는 '은퇴Who'를 바탕으로 엮었다고 해요. 기자가 퇴직 뒤 새 삶을 시작한 50명을 직접 만났고, 그중 24명의 이야기를 골라 담았습니다. 기자가 쓴 책이라 딱딱한 기사체를 떠올렸는데, 막상 펼쳐 보면 주인공이 "나는"으로 시작해 자기 얘기를 직접 풀어 가는 1인칭이에요. 중간중간 인터뷰 육성이 따로 들어가 있어서, 옆자리 선배한테 살아온 얘기를 듣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은퇴후조언'이라는 페이지가 붙어서 본인이 직접 뽑은 실전 팁을 따로 정리해 주는 것도 좋았어요. 보통 자기계발서보다 제법 두툼한 편인데, 한 사람 이야기가 한 편씩 끊겨 있어서 마음 가는 사람부터 골라 읽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첫 주인공 강찬영 씨 이야기는 숫자에서 시작합니다. 한진해운 상무 시절 월 1000만원, 퇴직 직후 스카우트된 곳에서는 월 800만원. 그 자리마저 1년 2개월 만에 끝나자, 같은 업계로 다시 가 봐야 옛 후배들한테 반갑지 않은 부탁이나 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고 해요. 이 대목에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더군요. 회사 이름을 떼고 나면 '부탁하는 사람'으로 남기 쉽다는 건, 직장 생활 좀 해 본 사람이면 대충 아는 그림이라서요.


그 뒤의 선택이 재밌었어요. 아내가 가계 사정을 꼼꼼히 따져 보더니 근검절약 모드로 바꾸면 월 300만원이면 되니까 "당신은 200만원만 벌어오면 된다"고 했다는 거예요. 차를 팔고, 골프를 끊고, 휴대전화는 알뜰폰으로 바꿨대요. 그렇게 시작한 일이 택배 분류였습니다. 오전엔 원광디지털대 동양철학과 온라인 수업을 듣고, 오후 4시부터 밤 11시까지는 현장에 나가는 말 그대로 주경야독이었다고 합니다.

사방이 뚫린 작업장이라 여름엔 옷에 소금꽃이 피었다는데, 정작 본인은 나중엔 "오히려 좋다"는 생각이 들더래요. 몸은 고돼도 업무 고민이 없으니 마음은 가벼웠다고요. 임원 시절엔 경영진과 부하 직원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 했는데, 여기선 일한 만큼 정확하게 받으니 "세상 편했다"고 합니다.


샌드위치 신세.

책에 나온 이 표현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는데, 웃고 나니 조금 씁쓸하기도 했어요. 중간관리자로 사는 40대 후반이라면 위아래로 눌리는 그 느낌을 모를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 사람이 택배 상자 앞에서 마음이 편하다고 하니, 편하다는 게 꼭 몸이 편한 것만은 아닌 거 같아요. 지금은 국민학생 때부터 좋아하던 그림으로 돌아와 '시니어 웹툰 작가'로 지내고, 방탄소년단 노래 가사를 주역과 명리학으로 풀어서 해외 팬들과 나눈다고 하니 인생 참 모를 일입니다.


두 번째로 오래 붙잡고 읽은 사람은 변성일 씨예요. 이분은 출발선부터 다릅니다. 대기업 임원이 아니라 여러 중소기업을 12년 동안 옮겨 다닌 사무직이었고, 둘째가 태어난 2011년에 회사를 나왔어요. 그때 나이가 마흔이었대요. 본인 말로는 "버티고 버티다 떠밀리듯 나온" 거였고요.

다른 꼭지보다 유독 천천히 읽게 된 건 그다음부터였어요. 국비 지원으로 가구 만들기 과정을 듣고 이력서를 100장 넘게 냈는데 번번이 떨어집니다. 정말 가고 싶던 공방에서는 "우리는 나이 많은 사람은 뽑지 않으니 그만 지원했으면 좋겠다"는 이메일이 왔다고 하더군요. 겨우 들어간 공방은 월급 100만원에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고, 소리 지르는 대표 밑에서 10개월을 버티다 나왔다고 하고요. 퇴직하고 3년이 지나도록 자리를 못 잡자 "억장이 무너졌다"고 하는데, 그 짧은 말에 담긴 가장의 사정이 어떤 건지 대충은 짐작이 가더라고요.


솔직히 이 책에서 제 마음에 제일 걸린 것도 그 이메일이에요. 나이가 이력서 맨 윗줄에서 먼저 읽히는 세상이라는 건 알고 있어도, 이렇게 활자로 보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래도 이 이야기가 계속 무겁게만 흐르지는 않아요. 좌절해 있던 그의 눈에 신문 기사 하나가 들어오는데, 세계적인 가구 기업 이케아가 한국에 들어온다는 소식이었어요. '카펜터'라는 직군을 보고 목수를 뽑나 보다 싶어 무작정 지원했다가 서류에서 떨어지고, 몇 달 뒤 인사팀에서 다른 직군으로 면접을 보겠느냐는 연락을 받습니다. 그 면접 장면이 이래요.

"무작정 간 그 면접이 진짜 재밌었어요. 그룹 면접을 보는데, 면접관들이 '우리는 당신의 배경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사람 자체가 궁금하다'면서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주더라고요. 그리고 정말로 나이, 경력, 학벌, 자격증 등 배경에 대해선 단 하나도 묻지 않았어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물건 3개를 가져오라'는 준비물에 그가 챙겨 간 건 직접 깎은 나무 소품 하나, 그리고 손수 만든 샌드위치와 김밥이었대요. 조언 페이지를 보면 면접이 4시간이나 걸렸고,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 어떻게 화해하는지까지 물었다고 하네요. 이 대목은 읽는 내내 재미있었습니다. 그 면접에서도 결국 떨어지지만, 카펜터가 매장 쇼룸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게 수확이었다고 해요. 그 길로 인테리어 현장에서 '노가다'를 4년 했고, 2018년 이케아 고양점이 문을 열 때 마흔일곱 살에 합격합니다. 아내가 '이케아 직원 세일 혜택' 얘기를 듣고 함박웃음을 지었다는 대목에서는 저도 따라 웃었어요.


입사 뒤 이야기에는 찔리는 데가 하나 있었어요. 예전 직장에선 근무시간에 커피를 마시고 몰래 주식 창이나 야구 중계를 보다가, 팀장 눈치를 보며 늦게까지 야근하는 일이 흔했대요. 이케아에서는 일할 땐 '초집중'하고 퇴근이나 휴가는 눈치 안 보고 쓴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지긋지긋하던 월요병까지 다 나았다니, 그 말이 제일 부러웠습니다.


세 번째 사람, 김민식 PD 편은 결이 또 다릅니다. 2020년 24년 다닌 MBC를 명예퇴직으로 나왔는데, 코로나19가 한창이라 평생 꿈꾸던 산티아고 순례길도, 동료들과의 밥자리도 다 막혔다고 해요. 선배들 환송연은 기획하고 MC까지 보던 예능 PD가 정작 자기 환송연 하나 없이 회사를 나왔다는 대목에선 웃을 수가 없었어요. 퇴직자들을 모아 놓고 강사가 꺼냈다는 첫마디 "여러분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불행한 퇴직자들이십니다"도 저한테는 쉽게 지나가지지 않는 말이었고요.


그런 그가 지금은 스스로 '연금술사'이자 '월천거사'라고 해요. 연금으로 술을 살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사람, 그리고 월 소득이 1000만원 넘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래요. 그런데 비결이라고 내놓는 게 의외로 소박합니다. 30대부터 적은 돈으로 연금저축을 시작했고, 보너스나 승진으로 목돈이 생기면 써 버리지 않고 연금 상품에 하나씩 더 들었다고 해요. 퇴직 위로금으로 대출을 갚고 남은 5000만원으로 평생 처음 자기한테 선물을 하려다가, '사고 싶은 게 생기면 최소 6개월은 묵혀두자'는 원칙 때문에 캠핑카를 결국 안 샀대요. 대신 그 돈에 붙은 이자 70만원으로 자전거를 샀다는 일화에선 웃음이 나더라고요. 본인도 "좀 지독한가요. 하하." 하니까요.


김민식 PD가 4050에게 해 주는 얘기는 저한테 제일 실용적으로 와닿았어요. 지금의 소비와 취미가 퇴직 뒤에도 이어질 수 있는지 점검해 보라는 것, 그리고 후배가 할부로 뭘 사려고 하면 "그럼 일단 12개월 적금 넣어"라고 말해 준다는 대목이요. "사람이 좌절하는 순간은 선택지를 빼앗겼을 때인 것 같아요"라는 말은 골프 얘기 끝에 나오는데, 꼭 골프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닌 거 같더군요.


세 사람 이야기를 나란히 놓고 보니 공통점이 몇 가지 보였어요. 강찬영 씨와 변성일 씨는 둘 다 아내가 먼저 등을 밀어줬습니다. 강찬영 씨는 "나보다 빨리 과거와 결별해 준 아내"라고 했고, 변성일 씨의 아내는 동화작가였는데 "행복한 인생을 살려면 행복한 일을 찾아야 한다"며 자기가 글로 돈을 벌 테니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라고 했대요. 강찬영 씨 조언 페이지 첫 항목도 '가장 든든한 버팀목은 배우자'였고요. 또 하나는 다들 숫자부터 따져 봤다는 거예요. 강찬영 씨 아내가 계산한 월 300만원, 김민식 PD가 가계부를 써서 뽑은 생존비 월 200만원 같은 숫자들이요.


결국 다들 덜 쓰는 법부터 익힌 사람들이었습니다.

<은퇴 후 Who>는 한 번에 쭉 읽고 꽂아 두기보다 곁에 두고 한 사람씩 꺼내 읽기 좋은 책 같아요. 오늘은 세 사람 얘기만 했지만, 목차에는 '연봉 1억'의 마술사 소방관, 농협을 그만둔 72세 화가, 구례에서 1억을 버는 부부 같은 제목이 줄줄이 있어서 다음엔 누구 얘기를 들어 볼까 고르는 재미가 있습니다. 인물마다 실린 사진도 반가웠어요. 웹툰 화면 앞의 강찬영 작가, 쇼룸 앞에서 팔짱 낀 변성일 씨 얼굴을 보고 나니 활자로만 읽던 사람이 옆 동네 형님처럼 느껴지더라고요. 표지에서 턱을 괸 할아버지 옆에 그려진 자전거가, 다 읽고 나면 김민식 PD의 그 자전거처럼 보이는 것도 소소한 재미예요. 퇴직이 멀게 느껴지는 사람이든 바로 그 문턱에 선 사람이든, 자기 나이에 맞는 대목 하나쯤은 건질 거 같아요.


길가 은행나무들이 슬슬 노란 물이 들 채비를 하는 10월입니다. 인생으로 치면 저도 딱 이 계절쯤에 서 있는 것 같은데, <은퇴 후 Who>를 덮고 나니 다가올 겨울이 조금 덜 무섭게 느껴지네요. 한 주의 반환점인 수요일에 좋은 선배들 얘기를 실컷 듣고 나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일단 저는 '30년 뒤의 나'한테 혼나지 않게 오늘 저녁엔 엘리베이터 말고 계단으로 올라가 볼까 해요. 김민식 PD 계산법대로라면 그것만으로 PT비 5만원은 번 셈이니까요.


직함을 내려놓은 선배들이 '회사원 나'에서 '그냥 나'로 돌아가는 길을 자기 목소리로 들려주는, 40대 직장인에게 미리 건네는 든든한 예고편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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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지막 피부과
박상영.박의정 지음 / 나비의활주로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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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가려운 데를 제대로 긁어주는 책, <당신의 마지막 피부과> 서평

독감 보름, 아니면 온몸 두드러기 보름.

둘 중 하나를 꼭 골라야 한다면 어느 쪽이세요? <당신의 마지막 피부과>는 첫 꼭지를 이 밸런스 게임으로 엽니다. 저자는 망설임 없이 독감을 고르겠다고 하더군요. 독감은 약을 털어 넣고 이불 속에 누워 쉴 권리라도 있는데, 벌겋게 달아오른 채 쉼 없이 가려운 피부병은 단 1분 1초의 평온함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유였어요. 그 설명을 듣고 나니 저도 독감 쪽에 손을 들게 되더라고요.


10월 초입, 한 주의 허리쯤인 수요일입니다. 아침저녁 공기가 바삭하게 마르기 시작하니 피부과 책을 만나기에 딱 맞는 철인 거 같아요. 제목만 보면 마지막 경고장 같은데, 막상 열어보면 가려운 데를 제대로 긁어주는 책이더라고요.

요즘 피부과라고 하면 레이저랑 시술부터 떠오르잖아요. <당신의 마지막 피부과>는 진주에서 20년 넘게 진료실을 지켜온 두 원장의 진료 기록이에요. 피부과 전문의 박상영 원장과 신경과 전문의 출신 박의정 원장 부부가 함께 썼습니다. 레이저를 켜기 전에 환자의 하루부터 묻는 의사들이라는 소개가 읽어보니 꼭 맞는 거 같았어요.


진료실 이야기만 나오는 것도 아니에요. (왕도 피하지 못한 가려움)이라는 소제목 아래로 조선의 세조가 등장합니다. 종기와 궤양이 온몸을 덮어 진물과 고름이 끊이지 않았고, 정사를 뒤로한 채 전국의 약수터와 온천을 찾아다녔다고 하더군요. 욕조 안에서 업무를 보던 장 폴 마라도 나와요. 초상화마다 조끼 안에 손을 넣고 있는 나폴레옹의 그 포즈가 가려움을 참으려던 습관이었을지 모른다는 추측까지 이어지고요. 처칠의 하얀 각질, 마이클 잭슨의 백반증 이야기도 뒤따릅니다.


역사책 속 그 근엄한 얼굴들 뒤에 가려움이 숨어 있었다니.

저자들은 통증은 응급실로 달려갈 명분이 되는데 가려움은 유난스러움 취급을 받는다고 말해요. 그러면서 피부병은 그걸 겪는 당사자에게 재난이라고 잘라 말하죠. 앞에 깔아둔 역사 이야기 덕분인지 그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더라고요. 한 해 700만 명이 넘는 사람, 그러니까 국민 7명 중 1명이 피부 문제로 병원을 찾는다는 숫자도 함께 나옵니다. 첫 꼭지 끝자락의 이 문장이 이 책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거 같아요.


"피부과는 단순히 매끄러운 피부를 만드는 곳만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붉은 자국 뒤에 숨겨진 환자의 재난을 읽어내고, 무너진 피부 장벽을 다시 세워 평범한 일상을 되찾아주는 곳이다."

40대 후반 직장인으로서 제일 찔렸던 건 PART 4 첫 꼭지 (정기적으로 혈압은 재면서 피부는 왜?)였어요. 회사 건강검진 때마다 혈압 재고 피 뽑고 내시경까지 받으면서, 피부를 검사 대상으로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종합건강검진 항목에서 피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1%도 안 된다는 대목에선 괜히 웃음이 나더라고요. 딱 제 얘기라서요. 나이에 따라 봐야 할 곳이 다르다면서 40대와 50대는 호르몬 변화와 그동안 쌓인 자외선 손상을 살펴야 한다는데, 이 나이에 쌓인 게 어디 자외선뿐일까 싶기도 했습니다.


유독 속도를 늦춰 읽게 된 건 70대 후반 할머니 이야기예요. 팔다리가 가렵다며 가려움증 주사 한 대만 놔달라고 오셨는데, 원장님 눈에 뺨 한구석의 거칠거칠한 검은 점이 걸렸대요.

"어르신, 이거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요?" "아이고, 원장님. 안 그래도 이것도 나중에 시간 나면 싹 빼려고 했어요."

할머니가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긴 그 점은 오랜 세월 선크림도 없이 뙤약볕 아래서 농사지으며 쌓인 자외선 손상이 만든 광선각화증이었어요. 피부암으로 진행될 수 있는 전암성 병변이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일찍 발견해 깨끗하게 나았다는 문장까지 가서야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가려운 팔다리만 보고 처방전을 뚝딱 끊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대목에서는, 이분들이 진료 시간을 왜 그렇게 길게 쓰는지 알 것 같았어요. 발바닥 사마귀로 왔다가 얼굴과 목덜미의 아토피까지 함께 잡게 된 중학생 이야기도 같은 결입니다. 보호자는 그저 체질이려니 하고 지내왔다는데,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가더군요.


개인적으로 제일 반가웠던 건 박스 글 (의사 박의정이 진단한 마흔의 피부 기록)이에요. 남에게 권하는 검사를 정작 자기는 받아본 적이 없다면 권할 자격이 없다며, 원장님이 직접 검진을 받고 결과를 털어놓거든요. 유·수분이 부족하고 색소와 주름이 잘 생기는 피부, 임신과 출산을 거치며 짙어진 기미가 결과로 나왔대요. 결과는 대체로 무난했는데 정작 마음에 걸린 건 습관이었다고 하더군요. 아침에 한 번 바르고 마는 자외선 차단제, 하루 여덟 시간을 모니터 앞에서 보내는 건조한 실내, 오래 내버려 둔 변비와 소화불량 같은 것들이요.


솔직히 이 대목에서 좀 걸렸어요. 하루 여덟 시간 모니터 앞이면 저는 양반 소리 들을 처지고, 자외선 차단제는 아침에 한 번이라도 바르면 다행인 날이 더 많거든요. 원장님은 그 뒤로 외출할 때 두세 시간마다 차단제를 덧바르고, 물을 더 마시고, 식이섬유를 챙긴대요. 그 목록이 하나같이 제 일상에서 빠져 있는 것들이라 뜨끔했습니다.


대단한 처방은 아니다.

원장님이 스스로 붙인 이 한마디라서 오히려 믿음이 가는 거 같아요. 환자에게 권하기 전에 내가 먼저 겪어봤다는 말을 이제는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마무리까지, 의사가 쓴 글인데 옆자리 동료가 건네는 얘기처럼 편하게 읽혀요.


PART 5로 넘어가면 결이 조금 달라집니다. 백반증을 앓던 80대 중반 할머니가 허리 압박 골절로 큰 수술을 받은 몸으로 진주 외곽에서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며 매주 병원을 찾으셨대요. 치료가 정체되던 무렵 원장님이 날도 추운데 석 달쯤 쉬었다가 봄에 다시 시작하자고 권하자,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해요.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 나중에 자식들이 오래도록 볼 영정사진 찍어야 하는데 이 얼룩덜룩한 얼굴로 찍으면 자식들 마음이 얼마나 속상하겠나. 내 발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깨끗하게 고쳐놓으려고 내가 이렇게 오는 거잖아."


원장님은 이 말 앞에서 이동 거리와 치료 효율만 셈하던 자기 시야가 부끄러웠다고 고백해요. 미용 치료라는 말을 이런 자리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거울 앞에서 단정하고 싶은 마음은 나이가 든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도, 할머니의 목소리를 거치고 나니 한결 또렷하게 들리는 거 같아요.


또 한 분은 편도로 버스 세 번, 왕복 여섯 번을 갈아타며 일주일에 두 번씩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오셨다는 할머니예요. 원장님 수술이 길어지는 바람에 그냥 돌아가셔야 했던 날이 있었대요. 미안한 마음에 다음 진료를 무료로 해드렸더니, 그다음 진료일에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을 한 상자 가득 안고 오셨다고 하죠. 그 뒤로 직원들이 레이저 기계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가장 먼저 할머니 차트를 찾아 전화를 드렸다는 대목이 참 좋았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직원들이 알아서 한 일이었다고 하니까요. 이어지는 동정과 공감 이야기에서는 환자의 발치로 내려가 그 사람의 눈높이에서 함께 바라보는 게 공감이라고 하는데, 두 할머니 이야기를 지나온 뒤라 설명이 쉽게 들어오더라고요.


맺는 글 (그렇게 의사가 된다)에는 박상영 원장의 전공의 시절이 나와요. 새벽 2시, 병원에서 차로 20분 거리였던 문산휴게소의 자판기, 그리고 당시 500원이던 파란색 캔커피 하나. 고급 커피를 얼마든지 마실 수 있는 지금도 그 캔커피를 제일 좋아한다는 고백이 괜히 반갑더라고요. 캔커피 한 잔으로 버티던 시절 이야기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품고 있는 거 같아서요. 그 무렵 큰 사고를 당해 근무하던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서도 처음 꺼낸 말이 "아까 내원한 환자 어디 있습니까?"였대요. 그런데 원장님은 지금이라면 후배에게 절대 권하지 않을 일이라고 스스로 선을 긋습니다. 그 솔직함 덕분에 영웅담처럼 읽히지 않아서 좋았어요. 좋은 의사는 정답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의 고통 앞에서 끝까지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라는 문장이, 이 책 전체를 한 줄로 묶어주는 느낌이 듭니다.


<당신의 마지막 피부과>는 두께도 보통 에세이 정도라 부담이 없고, 물방울이 둥글게 고리를 그린 하늘빛 표지가 깔끔해서 책장에 꽂아두기에도 좋아요. 차례를 보면 아이의 아토피부터 사춘기 여드름, 대상포진과 옴, 무좀, 탈모, 피부암, 끝나지 않는 두드러기까지 생애 주기를 따라가요. 집에 누가 피부 때문에 고생할 때 해당 장을 펼쳐보면 되는 구성이라 오래 두고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에서 얼굴 두껍게 버티는 건 자신 있었는데, 정작 진짜 피부 두께는 신경 써본 적이 없었다는 걸 이번에 알았네요.


10월 들어 공기가 제법 건조해졌어요. 이번 가을엔 로션 한 통이랑 선크림 하나쯤은 가방에 넣고 다닐 생각입니다. <당신의 마지막 피부과> 덕분에 좋은 의사 두 분을 책으로 먼저 만난 거 같아서, 마음까지 촉촉해진 기분이에요.


가려움도 재난이라고 말해주는 두 의사의 진료실, 혈압은 재면서 피부는 왜 안 보느냐는 질문 앞에서 내 습관부터 돌아보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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