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조각 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 - 교육이 답이라는 거짓말
롭 헨더슨 지음, 김은지 옮김 / 푸른숲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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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원을 만들어 서던 장면부터 꺼내고 싶습니다. 케임브리지에 도착한 첫 주, 게이츠 장학생 아흔 명이 둘러앉아 아이스브레이커 게임을 합니다. 사회자가 쪽지를 읽고 해당되는 사람이 가운데로 나가는 방식이었고, 뒤쪽 질문은 두 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가, 로드 트립을 해본 적 있는가 같은 것들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첫 질문이 어렸을 때 반에서 장난꾸러기였느냐였습니다. 저자는 반사적으로 걸어 나갔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흔 명 가운데 그 자리에 선 사람은 자기뿐이었습니다. 사다리 꼭대기에 닿은 사람이 그곳에서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이 소속감이 아니라 거리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산산조각 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의 표지는 형광 연둣빛 바탕에 보라색 글자를 세로로 세워 놓고, 그 글자들을 일부러 잘라 흩어 놓았습니다. 제목이 말하는 상태를 조판이 먼저 보여 주는 셈이죠. 아래쪽 검정 띠에는 "계층의 사다리에 관한 가장 솔직한 보고서"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두께도 있고 다루는 무게도 상당해서, 처음 받아 들었을 때부터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어야 할 책이라고 짐작했어요. 실제로 그렇게 읽었고, 그렇게 읽는 편이 맞았습니다.


책의 문을 여는 장은 2018년 예일대 졸업식 날에서 출발합니다. 인생의 정점을 먼저 세워 둔 다음, 곧바로 세 살 무렵의 첫 기억으로 내려갑니다. 어둠 속에서 엄마 무릎을 붙잡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던 경찰관 두 사람, 그리고 흰 복도에서 초콜릿 우유를 흘리고 도와달라고 엄마를 쳐다보는 장면이요. 엄마가 팔을 움직일 수 없었던 이유는 수갑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저자는 문단 끝에 한 문장으로 툭 놓아둡니다. 감정을 크게 쓰지 않는데 읽는 쪽에서 감정이 올라오는 서술 방식이 이 책 전체를 지탱합니다.


이어지는 대목에는 위탁 보호 통계가 줄줄이 나옵니다. 다섯 명 중 한 명은 최소 다섯 곳 이상의 가정에 배정되고, 시스템을 떠나는 연령의 중앙값은 일곱 살이라는 숫자들이요. 그 뒤에 저자는 자신이 그 통계들을 뒷받침하는 개별 사례라고 적습니다. 아이를 특정 가정에 정들지 않게 하려고 미리 이 집 저 집 돌리는 관행에 대해서는 이렇게 씁니다. "이 전략은 아이들로부터 불필요하게 안정감을 박탈할 뿐이다." 선의로 설계된 제도가 개별 아이에게는 손상으로 돌아오는 구조를 보여 주는 문장입니다.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장면은 급식 줄입니다. 등교 첫날 식사 카드를 요구받았는데 그런 게 없었고, 받아 온 신청서를 위탁 어머니에게 가져갔더니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아주머니가 그걸 돈을 내라는 서류로 오해해 서명해 주지 않습니다. 무료 급식 등록 신청서였는데도요. 아이는 오해의 내용까지는 이해하지 못한 채 점심을 먹지 못할 거라는 사실만 이해합니다. 그런데도 매일 줄에 섰다고 해요. "마법처럼 시스템에 내가 등록돼 있기를 바라며." 서류를 읽고 처리하는 능력 자체가 자본이라는 이야기를 이 책은 다섯 살 아이의 점심시간으로 먼저 보여 줍니다. 나중에 급식 아주머니가 카드를 건네준 뒤에 적어 둔 문장들도 기억에 남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점심을 먹을 수 있어 기뻤고, 조금 덜 외로웠고, 배가 고프지 않으니 수업에도 더 잘 집중할 수 있었다는 순서요. 설명을 붙이지 않고 결과만 나열하는데 그 안에 급식의 의미가 다 들어 있습니다.


책의 중심 개념인 '사치 신념'은 뒤쪽에서 완성됩니다. 상층 계급에는 거의 아무런 비용 없이 지위를 부여하는 반면, 하층 계급에는 종종 대가를 치르게 하는 아이디어나 의견이라는 정의입니다. 저자는 여기에 부르디외를 끌어와 상류층에 받아들여지려면 교육과 언어와 취향이 필요하고, 그 세 가지에 능숙한 감각을 "편안함"이라 부른다고 소개합니다. 학위증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 단어로 압축한 대목이죠. 예일에서 캐나다 구스 파카가 여기저기 보였다는 관찰, 900달러라는 옷값이 당시 미국인의 평균 주급에 맞먹었다는 계산도 함께 나옵니다. 값이 높아야 표지가 된다는 논리는 우리 쪽에서도 낯설지 않습니다. 한동안 중고등학생 사이에 특정 브랜드 패딩이 교복처럼 번지고 가격대별로 서열을 매기는 '계급도'라는 말까지 돌았고, 부모 등골이 휜다는 뜻의 신조어가 붙었던 시기가 있었으니까요. 옷 한 벌이 소속의 증명서로 작동하는 경험은 어느 사회에나 있다는 걸 책을 읽으면서 다시 확인했습니다.


저자가 힘주어 말하는 부분은 그다음입니다. "부유한 계급의 사람들은 불우한 사람들에게 해로운 생활 방식을 조장한다. 그러는 한편, 그들은 자신을 악영향에서 보호한다." 같은 선택의 결과가 계층에 따라 갈린다는 설명이 뒤따릅니다. 유복한 가정의 학생은 경험 삼아 한 번 해보고도 대개 괜찮을 것이지만, 부모가 부재하는 집의 아이는 같은 시도 한 번으로 자멸할 수 있다는 대비요. 1960년에는 생물학적 부모와 사는 아이의 비율이 부유층과 노동자 계층 모두 95퍼센트로 같았는데 2005년에는 각각 85퍼센트와 30퍼센트로 갈라졌다는 수치도 제시됩니다. 런웨이의 유행이 몇 해 뒤 동네 백화점으로 흘러들듯 상류층의 신념도 불행까지 함께 아래로 흘러내린다는 비유가 이 논의를 닫습니다.


다만 이 구간을 읽으면서 한 번씩 속도를 줄여야 했습니다. 저자가 드는 사례가 마약 합법화와 경찰 예산, 특정 담론처럼 미국 정치의 쟁점에 바짝 붙어 있어서, 한국의 계층 지형에 그대로 옮겨 놓기에는 한 겹 걸러 읽을 필요가 있어 보였어요. 주장이 가장 뜨거워지는 자리에서 상관관계를 인과처럼 밀고 나가는 대목도 눈에 띕니다. 예산 삭감 이후 살인율이 치솟았다는 서술이 그런 예인데, 이 시기 범죄 증가의 원인을 두고는 팬데믹으로 인한 실업과 학교 폐쇄를 더 직접적인 요인으로 보는 분석도 있어서 학계에서 여전히 논쟁 중인 사안입니다. 책의 진단을 저자의 해석으로 받아 두고, 우리 사정은 우리 자료로 다시 따져 보는 편이 정직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 스스로도 명문대가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는 단서를 달아 두니, 그 신중함을 독자 쪽에서도 이어받으면 될 것 같아요.


마지막 장은 다시 안쪽으로 돌아옵니다. 저자는 원가족을 한쪽 끝이 고정된 고무줄에 비유합니다. 거리를 둘 수는 있지만 멀어질수록 더 강하게 끌어당길 뿐이라는 것이죠. 어른들의 응원이 아무리 쌓여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 애정이 공허하게 느껴졌다는 고백, 가족이 자기를 사랑한다면 다른 사람이 데려가도록 두지 않을 거라고 믿는 아이의 논리를 성인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인용되는 정신의학자의 문장이 앞부분의 한 장면을 설명해 줍니다. 자신을 학대하는 가족과 위탁 가정 중 후자를 택하는 열 살 미만 아동을 본 적이 없다는 말이요. 책의 앞머리에서 식탁 다리를 붙잡고 버티던 아이의 마음이 왜 그랬는지, 수백 쪽을 건너 뒤늦게 답이 옵니다. 그리고 허구 속 고아들을 열거한 뒤 저자는 짧게 못을 박습니다. "삶은 동화나 만화책과 다르다."


무엇을 떠날 수는 있어도 그것이 나를 떠나지는 않는다는 문장 앞에서는 걸음이 느려졌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독자로 떠올린 사람이 누구였는지도 밝혀 두는데, 상류층이 이 책을 읽는 장면을 상상하면 속이 울렁거렸고, 대신 어릴 적 학교 도서관에서 그랬듯 이 책을 집어 들고 희망을 얻을 자기 같은 아이를 계속 떠올렸다고 합니다. 자기 처지를 비춰 볼 실화를 찾지 못했던 아이가 자라서 그 실화를 직접 써냈다는 뜻이 됩니다. 독자에게 동정심을 느꼤다면 그 마음을 지금 비슷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에게 돌려 달라는 요청도 함께 적어 두었어요. 회고록과 사회 비평이 왜 한 권에 묶여 있는지에 대한 답은 결국 그 문장인 듯합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편하게 읽고 편하게 접는 책이 있고, 읽는 속도가 자꾸 느려지는 책이 있습니다. 이 한 권은 후자였고, 다 읽고 나서도 며칠 더 데리고 있게 됐어요. 성공담으로 소비하기 쉬운 이력을 가진 사람이 성공담의 자리를 내주고 대신 통계와 자기 결함을 함께 내놓았다는 점이 오래 남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중이라면 좋은 학군과 좋은 성적 이야기를 잠깐 접어 두고 이 책의 앞부분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사회 구조와 계층 이동에 관심이 있는 분께는 뒷부분의 개념 정리가 유용할 거예요. 자기 힘으로 어딘가에 올라섰다고 생각해 온 사람에게는 책 후반부가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데, 그 불편함이 이 도서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침저녁 공기가 확실히 달라지는 계절입니다. 여름의 열기가 빠지고 창문을 열어 두면 서늘한 바람이 들어오는 시기에,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성취의 목록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환경이라는 이야기를 읽은 건 나쁘지 않은 순서였던 것 같아요. 이 가을에 누군가의 안정감을 조금 보태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보려 합니다.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올라간 사람이 그 사다리의 구조를 해부한 기록이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하는 한 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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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일흔, 처음으로 ‘나’로 살기 시작했다
장미킴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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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프롤로그를 넘기면 곧바로 딸의 질문이 나옵니다. 엄마, 친구들 SNS만 보면 다들 해외여행 가고 대기업 들어가고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인 것 같아. 이 비교 지옥에서 어떻게 빠져나와야 해. 그러면 엄마가 답합니다. 스무 개의 장이 전부 이런 식이에요. 질문 하나에 대답 하나. 목차만 봤을 때는 요즘 흔한 시니어 에세이겠거니 했는데, 펼쳐보니 상담 기록에 가까웠습니다.


<내 나이 일흔, 처음으로 '나'로 살기 시작했다>는 1957년생 장미킴 저자가 서른일곱 해 만에 이혼 도장을 찍고 난 뒤의 시간을 딸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묶은 책입니다. 색소폰과 장구를 배우고 차차차를 추는 일흔의 이야기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읽어보면 도전담보다는 판단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관한 책에 가깝습니다.


표지부터 이 책의 성격이 드러납니다. 연한 초록과 분홍이 나란히 놓인 배경에 창문 하나가 크게 자리하고, 흰 커튼 사이로 찻잔과 개어둔 수건, 안경, 들꽃 꽂은 화병이 놓여 있어요. 창밖엔 꽃나무가 보입니다. 조용하고 단정한 그림인데, 바로 아래 노란 띠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착하게만 살면 호구 되는 세상, 가끔은 한 성깔 하고 살아라!" 이 두 가지가 한 표지 안에 같이 있는 게 어색하지 않더군요. 책을 다 읽고 나면 오히려 그 조합이 정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장의 제목은 발밑의 민들레를 봐야 남의 집 장미가 안 부럽다는 말입니다. 저자는 국민학교 동창회에서 겪은 일을 꺼내놓아요. 가장 좋은 옷을 골라 입고 거울 앞에서 매무새를 다듬으며 나도 이만하면 잘 살았다는 자부심을 품고 나갔는데, 다이아 반지를 낀 친구 옆에서 그 자부심이 풍선처럼 터져버렸다고요. 집에 오는 버스에서 창밖을 보다 눈물이 핑 돌았고 한동안 동창회 근처에도 가기 싫었다는 고백이 이어집니다. 일흔의 저자가 굳이 이 장면을 첫 장에 놓은 이유가 있겠지요. 비교를 안 하는 사람이 해주는 조언이 아니라 지독하게 해본 사람의 정리라는 걸 먼저 밝혀두는 셈입니다.


그 뒤에 나오는 결론은 소박합니다. 남과 저울질하는 동안에는 제 인생이 그 자리에 멈춘다는 것, 그러니 비교 대상을 과거의 자신으로 바꾸라는 것. 반지하 단칸방에서 방 두 개짜리 옥탑으로 옮기던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는 대목이 근거로 붙습니다. 낡은 트럭에 짐을 싣고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면서도 힘든 줄 몰랐다고, 창문을 열면 볕이 쏟아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고 적어놨어요. 옥탑이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는 걸 모를 리 없는 사람이 쓴 문장이라 더 남습니다. 장을 닫는 말은 이렇습니다. "너는 너라는 존재만으로도 가장 충분히 빛나는 주인공이니까."


3부의 인간관계 이야기도 눈여겨봤습니다. 걸러내야 할 사람 유형을 짚어가는데, 험담하는 사람을 경계하라고 해놓고 곧바로 방향을 자기 쪽으로 돌립니다. 나 자신도 험담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조심하라고요. 사소한 서운함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조금씩 흘리다가 결국 여러 사람에게 미움받게 된 친구 사례를 붙이면서, 말이란 게 생각한 대로 그대로 전해지지 않을 때가 많다고 정리합니다.


같은 장에서 저자는 민망한 속내도 꺼내놓습니다.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기운이 쭉 빠졌다고, 삶이 유독 고달플 때는 저렇게 잘살면 나 좀 도와주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요. 그런 마음을 품으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지쳐 있을 땐 슬며시 들더라는 문장에서, 이 책이 왜 훈계로 읽히지 않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장의 마무리는 잘라내라는 말이 아니라 채우라는 말입니다. 나를 궁금해해 주고 서로 안부를 챙기며 힘든 일도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곁을 채우라는 쪽이에요. 사람을 고를 때 학벌이나 집안 같은 조건 대신 태도를 보라는 기준도 함께 제시되는데, 학벌이나 자란 환경은 본인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많지만 인성은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라는 구분이 명료했습니다.


4부에서는 나이 50에 처음 춤을 배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텝 하나 제대로 못 밟아 넘어지면서도 그 한 시간이 즐거웠다는 회고, 6시 이후엔 선생님들이 가르쳐주지 않으니 점심시간을 쪼개 개인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는 기록이 이어져요. 할까 말까 망설이는 이유의 대부분이 남의 눈치라고 진단하면서, 아침마다 눈치 아웃을 소리 내어 외치라는 처방을 내놓습니다. 30년 넘게 관광버스 한번 타려 해도 허락을 받아야 했고,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도 남편이 된장찌개를 먹자고 하면 제 입맛을 죽이고 살았다는 시절을 지나온 사람의 말입니다. 저자는 이혼하고 광명을 찾은 뒤에야 제 인생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걸 알았다고 썼어요. 그리고 딸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남의 눈치 뒤에 숨어서 네 소중한 열정을 썩히지 말렴."


다만 전부 고개를 끄덕이며 읽지는 못했습니다. 같은 장에 "시간이 없다는 건 결국 열정이 없다는 소리야"라는 단언이 있어요. 새벽 4시에 일어나 청소 일을 나가고 오후에 돌아와 졸음을 참으며 장구를 치러 가는 사람이 한 말이니 무게가 없진 않습니다. 그런데 마흔 후반에서 쉰 언저리를 지나는 사람들 중에는 아이 뒷바라지와 부모 돌봄과 직장을 동시에 지고 있어서 시간이 없는 게 열정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적지 않지요. 저자 자신도 고달플 때는 마음이 무너졌다고 앞에서 털어놨던 터라, 이 대목만은 조금 성급하게 밀어붙인 인상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 책은 논증을 하려는 책이 아니라 딸에게 등을 떠미는 책이니, 그 화법으로 받아들이면 크게 걸릴 일은 아닙니다.


손에 쏙 들어오는 판형에 180쪽이라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앉은 자리에서 두세 장씩 끊어 읽기 좋았어요.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정보를 얻는 책과 마음을 건드리는 책이 갈리는데, 이번 한 권은 후자였습니다. 특히 부모 세대의 언어를 오랜만에 정면으로 마주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딸에게 하는 말로 쓰였지만, 그 말을 들으며 자란 세대가 읽으면 발신자와 수신자 양쪽에 다 서게 되거든요. 어머니에게 못 물어본 것들이 떠오르는 분이라면 이 책이 대신 답해주는 대목이 몇 군데 있을 겁니다. 요즘 새로 뭔가 배워볼까 망설이는 마음이 있다면 해보고 후회하는 것과 안 하고 후회하는 건 차원이 다르다는 저자의 구분이 도움이 될 테고요.


9월 중순으로 접어드니 창문을 열어둘 만한 밤이 늘었습니다. 여름 내내 미뤄둔 것들을 꺼내보기에 나쁘지 않은 계절이지요. 표지 속 창가에 놓인 찻잔과 안경처럼, 별것 아닌 물건들이 제자리에 놓여 있는 풍경이 이 책의 온도와 닮았습니다. 일흔에 인스타그램을 시작해 수백만 뷰를 낸 사람이 하는 말이라 요란할 줄 알았는데, 정작 남는 건 조용한 문장들이었어요.


남이 가진 것에 두었던 기준을 제가 고를 수 있는 것 쪽으로 옮겨놓게 하는, 일흔의 담백한 인생 문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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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조작되는 것이다 ㅣ 시대철학 2
파울 요제프 괴벨스 지음 / 비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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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를 받고 먼저 눈에 걸린 건 색이었어요. 연한 살구빛 바탕에 세필로 그린 듯한 초상, 그 아래를 가로지르는 짙은 버건디 띠. 배색만 보면 조용한 교양서인데, 정작 거기 얹힌 문장은 진실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설계된다는 선언입니다. 디자인의 온도와 문구의 온도가 서로 다르다는 인상, 그게 이 한 권에 대한 첫 느낌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목차를 펼치고 잠시 망설였습니다. 저자 이름이 요제프 괴벨스인 데다, 다섯 개 장의 소제목이 전부 명령문이에요. 가상의 적을 악마화하라거나, 동정심을 거세하라는 문장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출판사 소개글은 이 도서가 선동술을 배우기 위한 책이 아니라 반면교사라고 분명히 밝혀두었는데, 목차만 훑으면 독하게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처세서로 오해할 여지가 충분합니다. 이 간극을 어떻게 감당할지가 읽는 동안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1장의 마지막 글은 시각이 활자를 앞선다는 이야기로 출발합니다. 대중은 읽기 전에 보고, 시각이 점령된 뒤에야 활자를 끼워 맞춘다는 것이죠. 읽은 것은 잊혀도, 본 것은 남는다. 이 짧은 문장 뒤에 붙는 역사적 사례가 나치 독일의 뉴스릴이었습니다. 실제로 1930년대 초까지 독일의 뉴스릴 시장은 네 개 제작사로 갈라져 있었는데, 1933년 이후 선전부의 감독과 검열 아래 놓였고 1939년 폴란드 침공을 계기로 통합되어 1940년 6월부터 '독일 주간 뉴스'라는 단일 타이틀로 극장에 걸렸습니다. 극장에서 본영화 앞에 붙던 그 짧은 화면 안에는 진군하는 전차와 환호하는 군중과 미소 짓는 총통이 있었고, 후퇴와 시체와 공포는 없었습니다. 보고 나온 관객은 전쟁을 안다고 믿었습니다. 책은 여기서 사람의 뇌가 본 것과 일어난 것을 구분하지 못하며, 그 구분하지 못함이 모든 권력의 출발점이라고 짚습니다. 권력은 일어난 일을 통제하지 못하고 보여줄 것을 통제한다는 정리에 이르면, 90년 전 이야기가 조금도 멀지 않게 들려요. 출근길에 넘기는 짧은 영상과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본 화면이 매일 같은 자리에 같은 자국을 남긴다는 대목은 숏폼과 알고리즘 피드에 익숙해진 지금의 우리를 거의 그대로 묘사합니다.


3장으로 넘어가면 문제가 시간 쪽으로 옮겨갑니다. 반복이 신념을 만든다는 이야기인데, 근거로 든 사실은 꽤 단단합니다. 1933년 제정된 편집자법 이후 선전부와 제국언론원이 언론인 등록과 보도 지침을 쥐고 있었고, 등록하지 않은 사람은 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법조문에는 제국의 힘을 국내외에서 약화시킬 내용을 싣지 못하게 하는 조항까지 들어 있었어요. 같은 메시지가 다른 자리, 다른 입, 다른 매체에서 동시에 흘러나올 때 사람들은 그것을 객관적 사실로 착각한다는 진단이 여기서 나옵니다.


읽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진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저자는 같은 일이 회사에서도 벌어진다고 씁니다. 누군가 가볍게 흘린 평가가 다음 주에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고, 세 번째 사람의 입에서 같은 말이 나올 때 그 평가는 사실이 되어버립니다. 사실로 굳은 평가는 평판이 되고, 평판이 된 뒤에는 그 말이 누구에게서 시작되었는지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조직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이라면 이 문장의 실감을 부인하기 어려울 거예요. 뒤이어 칭찬의 경로도 똑같다고 말합니다. 세 번 반복된 칭찬은 능력이 되고, 다섯 번은 권위가 되고, 열 번은 권력이 된다는 계산이죠. 그리고 이렇게 못 박습니다. "권력은 능력에서 오지 않는다. 권력은 반복에서 온다." 이 차가운 사실을 마주하지 못하면 평생 자기 능력만 닦다가 끝난다는 말이 뒤따르는데, 성실함 하나로 버텨온 쪽에서는 씁쓸할 수밖에 없는 진단입니다.


다만 책을 덮고 나서 한 가지는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 도서에는 확인 가능한 역사적 사실과 저자 자신의 해석이 같은 문장 결로 나란히 놓여 있어요. 뉴스릴 통합이나 편집자법처럼 자료로 뒷받침되는 서술이 있고, 괴벨스가 두려워한 단 한 종류의 인간이 있었다는 식의 해석이 있는데, 둘의 무게가 같아 보이게 쓰여 있습니다. 3장의 소제목으로 걸린 거짓의 반복에 관한 문장 역시 한국에서 오래 괴벨스 어록처럼 통용되어 왔지만, 정본 전기에서도 출처가 확인되지 않는 종류에 속합니다. 오히려 1934년 연설에서 그는 거짓말을 수반한 선전은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책은 해당 문장을 괴벨스의 어록으로 내세우지 않고 반복이라는 현상을 설명하는 틀로 쓰고 있어서 큰 흠은 아니지만, 반면교사를 자처한 책이라면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저자의 목소리인지 조금 더 표시해두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 도서가 미덥게 느껴진 대목도 3장에 있었습니다. 비판적으로 읽으라고 권하는 책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을 저자가 알고 있어요. 매번 다 의심하면 사람은 살 수가 없고, 살 수 없는 자리에서 결국 더 큰 권위에 기대게 된다면서 의심의 끝은 새로운 맹신이라고 씁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의심하지 말고, 자기 안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한 문장만 의심해 보라고 권합니다. 자기 문장이 들어섰는지 알아보는 표식도 단순합니다. 그 문장을 떠올릴 때 누구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고,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의 호흡으로만 발음된다는 것.


짐은 내려놓을 수 있다는 말도 이 안에 있습니다. 내려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이미 절반은 자유인데, 짐인 줄도 모르고 평생 지고 다니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이죠. 그 문장 앞에서는 반박할 마음이 들지 않았어요.


마지막 장은 뉘른베르크의 밤에서 시작합니다.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가 고안한 빛의 기둥, 그리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함성이 나옵니다. 성화 봉송이 그 대회에서 처음 도입되었다는 사실을 저는 이 책을 계기로 다시 확인해봤는데, 올림피아의 고대 경기장에서 채화한 불을 3천 명이 넘는 주자가 이어 달려 베를린까지 옮겼고, 봉송 경로는 옛 독일 올림픽 선수가 설계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감동으로 소비하는 의례의 출발점이 선전의 무대였다는 사실은 차분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자가 짚는 핵심은 괴벨스가 가장 정교하게 설계한 것이 연설문이 아니라 공간이었다는 점입니다. 어둠과 빛의 비율, 군중의 밀도, 음악의 박자를 계산해두면 그 안에 들어선 사람은 자기 의지로 환호한다고 믿게 되고, 공간이 끌어낸 환호를 스스로 신념이라 부르게 된다는 것이죠.


여기서 책은 규모를 갑자기 줄입니다. 회식 자리를 떠올려보라고 해요. 모두가 한 사람을 비웃을 때 같이 웃지 않으면 분위기가 깨지고, 한 결정에 혼자 침묵하면 눈치 없는 사람이 됩니다.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고 따라 웃은 웃음과 따라 끄덕인 고갯짓이 쌓여 어느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입을 막는다는 서술이었습니다. 조명과 깃발의 역사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저녁 자리까지 내려오는 이 이동이 이 책의 가장 좋은 솜씨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차가운 사람이 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같이 웃고 같이 박수쳐도 좋다고, 다만 그 박수의 끝에서 오늘 무엇에 동의했는지 한 줄을 적어두라고 합니다. 그 기록이 다음 날의 판단을 지킨다는 것이죠. 되짚는 동안 부끄러움이 올라온다면 회복의 신호이고, 부끄러움조차 올라오지 않는다면 경고의 신호라는 구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5장의 제목이 유난히 살벌한데, 정작 그 안에 담긴 태도는 이렇게 온순했어요.


책의 끝자락에 놓인 이미지는 한 발 늦은 박수입니다. 환호 속에서 반 박자 늦게 손을 마주치는 그 미세한 시차가 자기 의지의 마지막 표시이고, 그 표시가 남은 사람은 다음 날 거울 앞에서 자기를 알아본다는 것이죠. 지배자의 자리를 무대 위가 아니라 무대 아래 환호의 한가운데로 옮겨놓는 마무리인데, 목차 내내 군림과 탈취를 외쳐온 책이 마지막에 와서 스스로의 기대를 배반하는 구조입니다. 이 배반이 있어서 저는 이 한 권을 처세서가 아니라 경고문으로 읽었습니다.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매일 무엇을 듣고 보고 말하는지, 그 셋의 합이 다음 일 년이고, 다음 일 년이 쌓여 십 년이 되고, 십 년이 쌓여 그 사람의 얼굴이 된다는 대목입니다. 얼굴은 그 사람이 반복한 모든 것을 정확히 보여 준다는 말 앞에서, 살아온 시간이 어느 정도 쌓인 사람은 잠깐 조용해질 수밖에 없더군요.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읽고 나서 마음이 편해지는 책과 불편해지는 책이 갈립니다. 이 도서는 후자였어요. 다만 그 불편함이 나쁜 종류는 아니었습니다. 자기계발서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우리가 확신이라 부르는 것들의 출처를 되짚게 만드는 쪽이고, 뉴스와 피드와 회의실에서 매일 오가는 말들을 조금 다르게 듣게 합니다. 얇고 가벼운 판형이라 오래 들고 있기에 좋은 안내서인데, 그 안에 든 질문은 오래 남는 편입니다. 격한 문장에 쉽게 설득되지 않는 독자라면 오히려 이 책과 잘 맞을 것 같고, 스스로 판단한다고 믿어온 시간이 길수록 읽는 재미와 서늘함이 함께 올 겁니다.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바뀌기 시작한 9월입니다. 한낮의 더위는 아직 남았는데 저녁 무렵의 바람은 확실히 다른 결로 불어와요. 이런 계절에는 한 해 동안 무엇을 믿고 무엇을 따라 웃었는지 조용히 되짚어보기가 조금 수월합니다. 이 한 권은 그 되짚음의 목록을 꽤 구체적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확신이 어디서 왔는지 묻게 만드는 책. 선동의 기술을 가르치는 대신, 이미 새겨진 자국을 들춰볼 용기를 권하는 안내서입니다.


#권력은주어지는것이아니라철저히조작되는것이다 #요제프괴벨스 #비원 #시대철학 #북유럽카페 #서평단 #인문서추천 #신간추천 #프레임 #미디어리터러시 #가짜뉴스 #확증편향 #알고리즘 #비판적사고 #선전과선동 #독서기록 #책추천 #직장인독서 #가을독서 #BOOKU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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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만든 세계 - 통화·공급망·기술을 둘러싼 패권전쟁
유재일 지음 / 김영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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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검정과 회색만으로 채운 표지 위에 낡은 지도 한 장이 흰 선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MAR PACIFICUM, AMERICA SEPTENT 같은 라틴어 지명이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어서, 세계가 아직 측량되는 중이던 시절의 화면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어요. 두 개의 반구가 위아래로 겹쳐 모래시계처럼 서 있는 구도도 눈에 오래 남습니다. <미국을 만든 세계>는 그 조용한 화면 아래쪽에 붉은 글씨 한 줄만 뜨겁게 얹어 두었습니다. 새로운 질서를 설계한 국가가 세상을 장악했다는 문장이었죠.



책은 보통 크기에 보통 두께입니다. 패권이라는 단어를 앞세운 도서치고는 위압감이 없어서, 손에 쥐었을 때 오히려 마음이 편했습니다. 실제로 읽는 속도도 잘 붙는 편이었어요.

첫 장은 은 이야기로 문을 엽니다. 은은 모든 것의 시발점이었다, 은은 모든 것과 바꿀 수 있었고 마침 일본에는 은이 풍부했다는 선언으로 시작하는데요. 이와미 은광을 필두로 대항해시대 은 생산량의 30퍼센트를 일본이 차지했고, 그 은으로 서양의 무기와 탄약을 샀다는 설명이 뒤를 받칩니다. 여기서 저자는 임진왜란을 조선과 일본의 싸움으로만 두지 않고, 대항해시대를 만난 동북아시아에서 벌어진 패권전쟁으로 다시 세워 놓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임진왜란에는 조총과 거북선과 의병이 있었습니다. 이 책에는 거기에 회계 장부가 한 장 더 붙어요. 화력 병기가 발명돼도 탄약을 대량으로 확보할 경제력이 없으면 화력 전쟁 자체를 수행할 수 없다는 대목에서, 전쟁이 결국 보급과 재원의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일본은 조총 부품을 분업으로 만들어 한곳에서 조립하는 생산 단지까지 갖췄지만 화약의 원료인 염초는 끝내 수입에 의존했다고 합니다. 강수량이 많고 습해서 염초가 쌓이지 않고 씻겨 나가는 땅, 화산 지형 특성상 산성인 토양. 염초를 만드는 박테리아는 알칼리를 선호한다니, 화약이라는 것도 결국 흙과 날씨의 문제였던 셈입니다.

조선은 오줌과 분뇨가 섞인 흙을 긁어모아 끓이고 정제하는 자초법으로 화약을 자체 조달했고, 그 기술은 엄격히 관리된 국가 기밀이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고려 말 최무선이 주물 기술과 자초법을 후대에 전한 계보도 짧게 나옵니다. 조선은 주조로 대포를 만들고 자초법으로 화약을 얻었으며, 일본은 단조로 조총을 만들고 화약은 사들였습니다. 두 나라가 택한 제조 방식의 차이가 전황에 그대로 반영되어, 조선은 함포로 해전을 압도하고 일본은 조총으로 육상 회전을 압도했다는 정리는 꽤 명쾌했어요. 은을 캐는 기술인 회취법이 조선에서 건너간 것이었고, 그 은이 다시 조선을 향한 전쟁 자금이 됐다는 흐름은 읽고 나서도 마음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중간쯤에는 영국이 빚과 씨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1721년 캘리코 금지법으로 인도산 면직물을 막아 봤지만 품질과 가격은 따라잡히지 않았다고 해요. 인도에는 숙련노동자가 풍부하고 인건비도 저렴했기 때문입니다. 법으로 지켜 주는 울타리 안에서도 밀수품에 밀리던 업자들이 결국 기술 쪽으로 방향을 틀고, 플라잉 셔틀과 제니 방적기와 수력 방적기가 그 자리에서 나옵니다. 1774년에 금지법은 폐지되고, 이제 영국 면직물이 수출길에 올라섭니다.

맨체스터가 왜 면직물의 도시였는지 설명하는 대목이 특히 재미있었습니다. 건조하면 면실이 잘 끊기는데 적당히 습한 날씨는 실을 팽팽하고 질기게 유지해 주고, 맨체스터가 딱 그런 날씨였다는 겁니다. 수력을 얻기 쉬웠고, 인도에서 원료가 들어오는 리버풀이 가까웠고, 증기기관 시대에는 랭커셔 탄광의 석탄을 바로 받을 수 있었죠. 산업혁명의 발상지가 된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인데, 거대한 역사도 날씨와 물길과 항구의 거리 같은 사소한 조건 위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습니다.

철도가 깔리자 물류비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원자재와 노동자와 투자금이 한곳으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 대목에 랭커셔-요크셔 철도회사 노동자들이 친목과 체력 단련을 위해 만든 축구팀이 훗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됐다는 이야기가 곁들여져 있어요. 종일 석탄가루를 뒤집어쓰며 노동하던 철도 노동자들 삶의 희망이 그 출발이었다고 저자는 적어 두었습니다. 금융과 공급망을 다루는 책 한가운데에서 이런 문장을 만나면 온도가 달라집니다.

이 챕터의 결론은 제목 그대로입니다.

"영국은 성취해냈다. 빚을 갚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끼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것임을 증명했다."



철길이 깔리고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올 때마다 영구채는 상대적으로 쪼그라들었고, 영구채가 미래를 짓누르기에는 영국의 성장 속도가 너무도 빨랐다고 합니다. 나폴레옹 전쟁 직후 GDP 대비 200퍼센트를 넘던 부채가 1840년에 140퍼센트 이하로 떨어졌다는 숫자도 나오는데요. 저는 숫자보다 그 앞에 놓인 한 문장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이 시기 사람들에게 미래는 반드시 오늘보다 더 나으리라는 희망이 있었다는 서술이었어요. 성장률이 이자율을 웃도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표정이 어땅했을지 짐작해 봤습니다. 그런 확신이 흔치 않은 요즘이라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어요.

뒤로 갈수록 이야기는 돈이 몸을 벗는 과정으로 넘어갑니다. 전신환 챕터가 그렇습니다. 지금도 송장에 T/T로 남아 있는 그 약자가, 물리적인 현금을 직접 배송하던 시대를 끝내고 돈을 정보로 바꿔 놓은 기술이라는 설명이에요. 수개월 걸리던 국제 송금이 몇 시간으로 줄고, 해적과 난파와 강도의 위험이 사라집니다. 은을 배에 싣고 태평양을 건너던 첫 장의 풍경과 겹쳐 읽으면, 화폐가 무게를 잃어 가는 경로가 곧 주도권이 옮겨 가는 경로였다는 것이 보입니다.

다만 속도를 쥔 쪽과 그 속도에 노출된 쪽의 처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식민 본국 중앙은행은 전신으로 식민지의 자본 흐름과 원자재 가격과 기업 수익성을 실시간으로 파악했고, 채산성이 떨어지면 전신환 한 번으로 자금을 회수해 그 경제를 파탄으로 몰았다고 해요. 예금은 식민지에서 모으고 대출은 본국 기업에 해주는 회로, 식민지의 자본으로 식민지 수탈에 필요한 인프라를 깔았다는 요약 앞에서는 숨을 좀 고르게 됩니다.

그 사례로 1905년 조선의 화폐정리사업이 나옵니다. 백동화를 갑·을·병종으로 나누고 상태가 불량한 병종은 일본 제일은행권으로 교환해 주지 않았다는 이야기. 병으로 판정된 화폐를 쥐고 있던 사람은 그대로 자산을 잃었고, 결제 화폐가 바뀌는 과정에서 조선 상인들이 몰락했으며 그 빈자리를 일본 자본이 채웠습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만 놓고 보면 수탈의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이어집니다. 낮은 금리의 자금을 전신환으로 들여온 쪽이 급전이 필요한 사람과 땅값 급등을 예견하지 못한 사람을 상대로 거래를 활발히 하면서 경제를 장악했다는 설명이죠.

솔직히 이 대목에서는 저자와 조금 다른 자리에 서서 읽었습니다. 헐값에 샀다거나 강제로 빼앗았다고 보는 것이 사안을 단순화한 관점이라는 서술에는 일리가 있고, 교과서가 놓쳐 온 회로를 보여주는 것도 분명합니다. 그런데 제일은행권이 조선의 결제 화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조건 자체가 이미 주권의 문제였습니다. 금융 기술의 우위라는 설명이 정교해질수록 그 전제가 배경으로 물러나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자도 문단 끝에서 차별적 신용 공급이 세계 모든 식민지에서 발생한 수탈의 방법이라고 못 박아 두긴 했는데, 그 한 줄이 좀 더 앞에 놓였다면 읽는 마음이 덜 서늘했을 것 같습니다.

러일전쟁을 다룬 부분은 이 책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입니다. 런던으로 급파된 일본은행 부총재 다카하시 고레키요가 차관 협상에 사활을 걸고, 협상 내용을 도쿄에 전신으로 타전하며 지휘를 받아 결국 타결에 성공합니다. 영국 자본가들이 빌려준 돈은 전신환으로 일본 국고에 즉시 입금되고, 일본 정부는 그 돈을 곧바로 영국과 미국의 군수업체로 송금해 최신식 전함과 무기와 탄약을 공급받았습니다. 반면 러시아는 프랑스에서 거액을 빌렸지만 전신환을 쓸 수 없어 블라디보스토크나 뤼순까지 돈을 보내서 물자를 구매해야 했다고 해요. 저자는 이를 두고 수행해야 할 전쟁의 난이도가 달랐다고 표현합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완공 직전이었던 러시아가 바이칼호 얼음 위에 임시 철도를 깐 이야기도 나옵니다. 얼음이 깨지고 기관차가 수몰되는 순간 크게 좌절했을 것이라는 문장 뒤에, 바이칼호 구간을 마무리한 후에 전쟁이 터졌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붙습니다. 챕터의 마지막은 짧습니다. 금융과 물류, 이 두 가지 때문에 희비가 엇갈렸다는 것이죠.

얼음판 위의 철길을 읽다가 첫 장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임진왜란에서 일본이 장기 포위전을 버티지 못한 이유로 군량 보급선이 지나치게 길었다는 설명이 있었거든요. 16세기의 산길과 20세기 초의 얼어붙은 호수가 같은 문제를 다른 무대에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이 300년을 가로지르며 하려던 말이 바로 그 지점에 있는 것 같아요. 총칼의 승부처럼 보이는 사건들의 아래쪽에 언제나 돈의 배선도와 물자의 동선이 깔려 있었다는 겁니다.

책을 덮고 나서 가장 크게 남은 것은 위기감보다 오히려 담담함이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한국을 패권전쟁을 수행하며 무역대국이 된 제국이 아니라, 미국의 동맹으로서 미 패권 질서를 공기처럼 흡입하며 여기까지 온 나라로 규정합니다. 울타리가 무너지고 자국우선주의가 판을 치는 지금의 정세가 극도의 불안과 혼란을 준다는 진단도 함께요. 환율과 에너지 가격, 장바구니 물가처럼 우리가 체감하는 변화들이 어디서 시작된 흔들림인지 알고 나면, 불안이 사라지지는 않아도 형태를 얻습니다. 형태를 아는 불안은 그래도 견딜 만해요. 이 도서의 미덕은 위로의 말을 건네는 데 있지 않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의 지반을 보여주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유럽 카페를 통해 서평단으로 받은 책입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대체로 마음을 다독이는 쪽이거나 지식을 채우는 쪽 중 하나인데, 이 한 권은 세계 뉴스를 읽는 눈을 조금 다르게 고쳐 준 편에 속합니다. 국제 정세 기사를 볼 때마다 진영과 인물 이야기에 먼저 눈이 가던 습관이 있었다면, 이 책을 읽은 뒤로는 자금이 어디서 조달되고 물자가 어느 경로로 움직이는지를 먼저 찾게 될 것 같아요. 역사 교양서를 좋아하는 분에게는 익숙한 사건들이 다시 조립되는 재미가 있을 테고, 역사를 멀게 느끼는 분이라도 은과 화약과 철도와 전신이라는 구체적인 물건을 따라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유재일의 유튜브를 보던 분이라면 영상에서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한 줄로 꿰어지는 감각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9월 중순의 아침 공기가 며칠 사이에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창을 열면 여름의 습기가 빠진 서늘함이 먼저 들어오고, 해가 지는 시간도 눈에 띄게 빨라졌어요. 계절이 바뀔 때는 옷장을 정리하듯 생각도 한 번 정리하고 싶어지는데, 올해 초가을에는 이 한 권이 그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세계가 다시 거칠어지는 시기에 무엇을 기준으로 뉴스를 읽어야 할지, 그 기준선을 하나 얻은 기분입니다.

은과 철도와 전신을 따라가며, 총칼 뒤에 깔린 돈과 물자의 배선도를 읽게 하는 한 권. 미국이 흔들리는 시대에 한국이 어디 서 있는지를 차분히 확인시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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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심양석 지음 / 프롬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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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손으로 그린 집 한 채가 표지의 거의 전부입니다. 삐뚤삐뚤한 선으로 세운 벽, 굴뚝에서 동그랗게 말려 올라가는 연기, 창문 하나. 그 안쪽에 빨간 손글씨로 제목이 앉아 있어요. 어떤 책은 표지에서 이미 말투를 들려주는데,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그랬습니다. 가르치려고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아니라, 밥 다 먹고 상 치운 뒤에 조용히 꺼내는 말의 높이였어요.


책은 아빠가 자녀에게 보내는 편지 묶음입니다. 가족, 친구와 관계, 학교생활과 공부, 앞으로 살아갈 태도까지 네 장으로 나뉘어 있고, 글마다 짧은 그림과 웹툰이 붙습니다. 두께도 판형도 보통입니다. 손에 쥐면 부담이 없고, 한 편이 두 쪽을 넘지 않으니 진도라는 개념 없이 읽힙니다. 지은이 심양석 작가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오래 일했고 인스타그램에서 두 아들과의 일상을 웹툰으로 그려왔다고 하는데, 아이들 말버릇과 반응을 아는 사람의 문장이라는 게 읽는 동안 계속 느껴졌습니다.


1장의 식탁 이야기부터 마음이 기울었어요. 아침저녁으로 일하는 부모와 학교, 학원을 오가는 아이가 한 상에 둘러앉는 일이 하루에 한 번도 어렵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그 짧은 시간이 실은 축복이라는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다 괄호 하나가 나옵니다. "그래서 식탁에서는 최대한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몰랐지?)" 아이에게 들키듯 적어놓은 이 한 줄에 책 전체의 기획이 다 들어 있습니다. 밥상에서 삼킨 말들을 종이에 옮겨 적은 것이 이 도서의 정체라는 뜻이니까요. 뒤따르는 세 컷 웹툰도 좋았습니다. 책 그만 보고 먹으라는 잔소리와 졸고 있는 아이로 시작해, 치킨 앞에서 다 같이 웃고, 마지막에는 부부만 남아 하루 수고했다고 주고받으며 닫힙니다. 글이 말한 소소한 이야기를 그림이 곧바로 증거로 내놓는 구성이에요.


2장에서 만난 '당당히 거절할 수 있는 용기'는 아이용 조언으로만 두기 아까운 대목입니다. 부탁을 받을 때 몸과 마음이 괜찮을지 먼저 묻고, 들어줄 거라면 부담이 덜한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합니다. 시간을 나눠 돕거나 할 수 있는 만큼만 돕는 방법까지 예로 들고, 거절할 때 쓸 말투를 세 문장이나 적어둡니다. 지금은 피곤해서 어렵다고, 그 부탁은 못 들어주지만 다른 건 도울 수 있다고, 시간이 부족하니 절반만 도와주겠다고. 결론은 이렇게 닫힙니다. "꼭 기억하렴. 부탁을 들어주는 건 언제나 네 선택이고, 네 권리야."


이 챕터에는 솔직히 의문도 남았습니다. 힘든 상황에서 부탁을 거절한다는 이유로 멀어질 관계라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끝날 수밖에 없다고 쓴 부분이에요. 어른에게는 맞는 말인데, 관계의 폭이 교실 하나만큼인 아이에게는 조금 이르고 단호하게 들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대목은 아이 혼자 읽기보다 옆에서 한마디 덧붙여줄 사람이 필요해 보였어요. 재미있는 건 이 글에 붙은 웹툰입니다. 기획안을 대신 해달라, 서류를 부탁한다는 말에 흔쾌히 응하다가 결국 등 뒤에 '부탁'이라는 글자를 커다랗게 매달고 울먹이는 장면인데, 배경이 교실이 아니라 직장입니다. 아이 눈높이라는 기획과 살짝 어긋나지만, 거절을 가르치면서 정작 못 하는 쪽이 누구인지 숨기지 않은 셈이라 오히려 정직하게 읽혔습니다.


4장으로 갈수록 이야기의 반경이 넓어집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는 제목만 보면 한때 유행한 말장난처럼 스쳐갈 수 있는데, 도입 그림이 그 가벼움을 곧장 눌러버립니다. 휴대전화를 보며 저 가족은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고, 저 부모는 아이에게 명품을 선물했다고 중얼거리는 어른이 있고, 그 옆에서 아이 둘이 아빠를 부르며 놀이터에 같이 가자고 묻습니다. 비교에 붙잡힌 쪽은 아이가 아니었어요. 본문에는 출처를 밝히지 않은 인터넷 글도 인용되는데, 좋은 대학이나 좋은 직장, 또래보다 적은 연봉, 늦은 출발로는 인생이 망하지 않지만 남의 삶과 자신을 견주기 시작하면 정신이 반드시 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저자가 더한 문장이 오래 남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한 모습에만 집중하다 보면, 너의 소중한 일상은 어느 순간 초라하고 불행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 손에 쥔 것이 줄어들지 않았는데도 이름만 바뀌는 일, 그 이치를 뒤따르는 세 컷 웹툰이 아주 간명하게 보여줍니다. 행복이라는 명패를 달고 웃던 얼굴이 더 큰 명패를 본 순간 멈추고, 마지막 컷에서 배경이 어둡게 깔리며 명패의 글자만 불행으로 바뀝니다.


우리 쪽 사정과 겹치는 이야기라 더 그랬을 겁니다. 명절이나 방학이면 어김없이 올라오는 여행 사진, 학원 정보와 남의 집 성적, 형편보다 앞서가는 소비까지, 비교가 일상이 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이만큼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어른의 목소리는 흔하지 않습니다. 책 뒤쪽에는 부모가 자녀에게, 자녀가 부모에게 쓰는 편지 자리가 비어 있는데, 그 빈 칸을 언제 채울지는 각자 형편대로 두면 될 것 같습니다. 당장 못 채워도 이 도서의 가치가 줄어들지는 않아요.


띠지에 적힌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라는 물음은 2장 안에 같은 제목의 글로 들어 있습니다. 아이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보이지만 먼저 답해야 하는 쪽은 책을 펼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잔소리를 줄이는 일은 결국 할 말을 고르는 일이고, 고르려면 스스로를 먼저 들여다봐야 하니까요. 북유럽 카페를 통해 서평단으로 받아 읽었는데, 서평을 쓰기 위해 읽는 책들 사이에서 이 한 권은 위치가 좀 달랐습니다. 다 읽고 나서 서평 파일이 아니라 아이 책장 쪽을 먼저 떠올리게 만들었으니까요.


9월 중순으로 들어서면서 저녁 공기가 제법 선선해졌습니다. 여름내 각자 흩어져 있던 식구들이 다시 한 상에 앉기 쉬워지는 계절이에요. 상을 물리고 나서 이 책 한 편을 소리 내어 읽어주기에도 알맞은 분량입니다. 아이가 자라 혼자 길을 걸을 때 이 문장들을 다시 꺼내 읽는다면, 그때는 아마 지금과 다른 대목에 밑줄이 그어질 겁니다.


밥상에서 삼킨 말들을 종이에 옮겨 적은 아빠의 편지, 그래서 아이보다 어른이 먼저 읽게 되는 한 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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