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조작되는 것이다 ㅣ 시대철학 2
파울 요제프 괴벨스 지음 / 비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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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를 받고 먼저 눈에 걸린 건 색이었어요. 연한 살구빛 바탕에 세필로 그린 듯한 초상, 그 아래를 가로지르는 짙은 버건디 띠. 배색만 보면 조용한 교양서인데, 정작 거기 얹힌 문장은 진실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설계된다는 선언입니다. 디자인의 온도와 문구의 온도가 서로 다르다는 인상, 그게 이 한 권에 대한 첫 느낌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목차를 펼치고 잠시 망설였습니다. 저자 이름이 요제프 괴벨스인 데다, 다섯 개 장의 소제목이 전부 명령문이에요. 가상의 적을 악마화하라거나, 동정심을 거세하라는 문장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출판사 소개글은 이 도서가 선동술을 배우기 위한 책이 아니라 반면교사라고 분명히 밝혀두었는데, 목차만 훑으면 독하게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처세서로 오해할 여지가 충분합니다. 이 간극을 어떻게 감당할지가 읽는 동안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1장의 마지막 글은 시각이 활자를 앞선다는 이야기로 출발합니다. 대중은 읽기 전에 보고, 시각이 점령된 뒤에야 활자를 끼워 맞춘다는 것이죠. 읽은 것은 잊혀도, 본 것은 남는다. 이 짧은 문장 뒤에 붙는 역사적 사례가 나치 독일의 뉴스릴이었습니다. 실제로 1930년대 초까지 독일의 뉴스릴 시장은 네 개 제작사로 갈라져 있었는데, 1933년 이후 선전부의 감독과 검열 아래 놓였고 1939년 폴란드 침공을 계기로 통합되어 1940년 6월부터 '독일 주간 뉴스'라는 단일 타이틀로 극장에 걸렸습니다. 극장에서 본영화 앞에 붙던 그 짧은 화면 안에는 진군하는 전차와 환호하는 군중과 미소 짓는 총통이 있었고, 후퇴와 시체와 공포는 없었습니다. 보고 나온 관객은 전쟁을 안다고 믿었습니다. 책은 여기서 사람의 뇌가 본 것과 일어난 것을 구분하지 못하며, 그 구분하지 못함이 모든 권력의 출발점이라고 짚습니다. 권력은 일어난 일을 통제하지 못하고 보여줄 것을 통제한다는 정리에 이르면, 90년 전 이야기가 조금도 멀지 않게 들려요. 출근길에 넘기는 짧은 영상과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본 화면이 매일 같은 자리에 같은 자국을 남긴다는 대목은 숏폼과 알고리즘 피드에 익숙해진 지금의 우리를 거의 그대로 묘사합니다.


3장으로 넘어가면 문제가 시간 쪽으로 옮겨갑니다. 반복이 신념을 만든다는 이야기인데, 근거로 든 사실은 꽤 단단합니다. 1933년 제정된 편집자법 이후 선전부와 제국언론원이 언론인 등록과 보도 지침을 쥐고 있었고, 등록하지 않은 사람은 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법조문에는 제국의 힘을 국내외에서 약화시킬 내용을 싣지 못하게 하는 조항까지 들어 있었어요. 같은 메시지가 다른 자리, 다른 입, 다른 매체에서 동시에 흘러나올 때 사람들은 그것을 객관적 사실로 착각한다는 진단이 여기서 나옵니다.


읽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진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저자는 같은 일이 회사에서도 벌어진다고 씁니다. 누군가 가볍게 흘린 평가가 다음 주에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고, 세 번째 사람의 입에서 같은 말이 나올 때 그 평가는 사실이 되어버립니다. 사실로 굳은 평가는 평판이 되고, 평판이 된 뒤에는 그 말이 누구에게서 시작되었는지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조직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이라면 이 문장의 실감을 부인하기 어려울 거예요. 뒤이어 칭찬의 경로도 똑같다고 말합니다. 세 번 반복된 칭찬은 능력이 되고, 다섯 번은 권위가 되고, 열 번은 권력이 된다는 계산이죠. 그리고 이렇게 못 박습니다. "권력은 능력에서 오지 않는다. 권력은 반복에서 온다." 이 차가운 사실을 마주하지 못하면 평생 자기 능력만 닦다가 끝난다는 말이 뒤따르는데, 성실함 하나로 버텨온 쪽에서는 씁쓸할 수밖에 없는 진단입니다.


다만 책을 덮고 나서 한 가지는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 도서에는 확인 가능한 역사적 사실과 저자 자신의 해석이 같은 문장 결로 나란히 놓여 있어요. 뉴스릴 통합이나 편집자법처럼 자료로 뒷받침되는 서술이 있고, 괴벨스가 두려워한 단 한 종류의 인간이 있었다는 식의 해석이 있는데, 둘의 무게가 같아 보이게 쓰여 있습니다. 3장의 소제목으로 걸린 거짓의 반복에 관한 문장 역시 한국에서 오래 괴벨스 어록처럼 통용되어 왔지만, 정본 전기에서도 출처가 확인되지 않는 종류에 속합니다. 오히려 1934년 연설에서 그는 거짓말을 수반한 선전은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책은 해당 문장을 괴벨스의 어록으로 내세우지 않고 반복이라는 현상을 설명하는 틀로 쓰고 있어서 큰 흠은 아니지만, 반면교사를 자처한 책이라면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저자의 목소리인지 조금 더 표시해두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 도서가 미덥게 느껴진 대목도 3장에 있었습니다. 비판적으로 읽으라고 권하는 책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을 저자가 알고 있어요. 매번 다 의심하면 사람은 살 수가 없고, 살 수 없는 자리에서 결국 더 큰 권위에 기대게 된다면서 의심의 끝은 새로운 맹신이라고 씁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의심하지 말고, 자기 안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한 문장만 의심해 보라고 권합니다. 자기 문장이 들어섰는지 알아보는 표식도 단순합니다. 그 문장을 떠올릴 때 누구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고,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의 호흡으로만 발음된다는 것.


짐은 내려놓을 수 있다는 말도 이 안에 있습니다. 내려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이미 절반은 자유인데, 짐인 줄도 모르고 평생 지고 다니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이죠. 그 문장 앞에서는 반박할 마음이 들지 않았어요.


마지막 장은 뉘른베르크의 밤에서 시작합니다.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가 고안한 빛의 기둥, 그리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함성이 나옵니다. 성화 봉송이 그 대회에서 처음 도입되었다는 사실을 저는 이 책을 계기로 다시 확인해봤는데, 올림피아의 고대 경기장에서 채화한 불을 3천 명이 넘는 주자가 이어 달려 베를린까지 옮겼고, 봉송 경로는 옛 독일 올림픽 선수가 설계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감동으로 소비하는 의례의 출발점이 선전의 무대였다는 사실은 차분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자가 짚는 핵심은 괴벨스가 가장 정교하게 설계한 것이 연설문이 아니라 공간이었다는 점입니다. 어둠과 빛의 비율, 군중의 밀도, 음악의 박자를 계산해두면 그 안에 들어선 사람은 자기 의지로 환호한다고 믿게 되고, 공간이 끌어낸 환호를 스스로 신념이라 부르게 된다는 것이죠.


여기서 책은 규모를 갑자기 줄입니다. 회식 자리를 떠올려보라고 해요. 모두가 한 사람을 비웃을 때 같이 웃지 않으면 분위기가 깨지고, 한 결정에 혼자 침묵하면 눈치 없는 사람이 됩니다.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고 따라 웃은 웃음과 따라 끄덕인 고갯짓이 쌓여 어느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입을 막는다는 서술이었습니다. 조명과 깃발의 역사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저녁 자리까지 내려오는 이 이동이 이 책의 가장 좋은 솜씨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차가운 사람이 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같이 웃고 같이 박수쳐도 좋다고, 다만 그 박수의 끝에서 오늘 무엇에 동의했는지 한 줄을 적어두라고 합니다. 그 기록이 다음 날의 판단을 지킨다는 것이죠. 되짚는 동안 부끄러움이 올라온다면 회복의 신호이고, 부끄러움조차 올라오지 않는다면 경고의 신호라는 구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5장의 제목이 유난히 살벌한데, 정작 그 안에 담긴 태도는 이렇게 온순했어요.


책의 끝자락에 놓인 이미지는 한 발 늦은 박수입니다. 환호 속에서 반 박자 늦게 손을 마주치는 그 미세한 시차가 자기 의지의 마지막 표시이고, 그 표시가 남은 사람은 다음 날 거울 앞에서 자기를 알아본다는 것이죠. 지배자의 자리를 무대 위가 아니라 무대 아래 환호의 한가운데로 옮겨놓는 마무리인데, 목차 내내 군림과 탈취를 외쳐온 책이 마지막에 와서 스스로의 기대를 배반하는 구조입니다. 이 배반이 있어서 저는 이 한 권을 처세서가 아니라 경고문으로 읽었습니다.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매일 무엇을 듣고 보고 말하는지, 그 셋의 합이 다음 일 년이고, 다음 일 년이 쌓여 십 년이 되고, 십 년이 쌓여 그 사람의 얼굴이 된다는 대목입니다. 얼굴은 그 사람이 반복한 모든 것을 정확히 보여 준다는 말 앞에서, 살아온 시간이 어느 정도 쌓인 사람은 잠깐 조용해질 수밖에 없더군요.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읽고 나서 마음이 편해지는 책과 불편해지는 책이 갈립니다. 이 도서는 후자였어요. 다만 그 불편함이 나쁜 종류는 아니었습니다. 자기계발서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우리가 확신이라 부르는 것들의 출처를 되짚게 만드는 쪽이고, 뉴스와 피드와 회의실에서 매일 오가는 말들을 조금 다르게 듣게 합니다. 얇고 가벼운 판형이라 오래 들고 있기에 좋은 안내서인데, 그 안에 든 질문은 오래 남는 편입니다. 격한 문장에 쉽게 설득되지 않는 독자라면 오히려 이 책과 잘 맞을 것 같고, 스스로 판단한다고 믿어온 시간이 길수록 읽는 재미와 서늘함이 함께 올 겁니다.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바뀌기 시작한 9월입니다. 한낮의 더위는 아직 남았는데 저녁 무렵의 바람은 확실히 다른 결로 불어와요. 이런 계절에는 한 해 동안 무엇을 믿고 무엇을 따라 웃었는지 조용히 되짚어보기가 조금 수월합니다. 이 한 권은 그 되짚음의 목록을 꽤 구체적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확신이 어디서 왔는지 묻게 만드는 책. 선동의 기술을 가르치는 대신, 이미 새겨진 자국을 들춰볼 용기를 권하는 안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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