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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심양석 지음 / 프롬북스 / 2026년 8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손으로 그린 집 한 채가 표지의 거의 전부입니다. 삐뚤삐뚤한 선으로 세운 벽, 굴뚝에서 동그랗게 말려 올라가는 연기, 창문 하나. 그 안쪽에 빨간 손글씨로 제목이 앉아 있어요. 어떤 책은 표지에서 이미 말투를 들려주는데,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그랬습니다. 가르치려고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아니라, 밥 다 먹고 상 치운 뒤에 조용히 꺼내는 말의 높이였어요.
책은 아빠가 자녀에게 보내는 편지 묶음입니다. 가족, 친구와 관계, 학교생활과 공부, 앞으로 살아갈 태도까지 네 장으로 나뉘어 있고, 글마다 짧은 그림과 웹툰이 붙습니다. 두께도 판형도 보통입니다. 손에 쥐면 부담이 없고, 한 편이 두 쪽을 넘지 않으니 진도라는 개념 없이 읽힙니다. 지은이 심양석 작가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오래 일했고 인스타그램에서 두 아들과의 일상을 웹툰으로 그려왔다고 하는데, 아이들 말버릇과 반응을 아는 사람의 문장이라는 게 읽는 동안 계속 느껴졌습니다.

1장의 식탁 이야기부터 마음이 기울었어요. 아침저녁으로 일하는 부모와 학교, 학원을 오가는 아이가 한 상에 둘러앉는 일이 하루에 한 번도 어렵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그 짧은 시간이 실은 축복이라는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다 괄호 하나가 나옵니다. "그래서 식탁에서는 최대한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몰랐지?)" 아이에게 들키듯 적어놓은 이 한 줄에 책 전체의 기획이 다 들어 있습니다. 밥상에서 삼킨 말들을 종이에 옮겨 적은 것이 이 도서의 정체라는 뜻이니까요. 뒤따르는 세 컷 웹툰도 좋았습니다. 책 그만 보고 먹으라는 잔소리와 졸고 있는 아이로 시작해, 치킨 앞에서 다 같이 웃고, 마지막에는 부부만 남아 하루 수고했다고 주고받으며 닫힙니다. 글이 말한 소소한 이야기를 그림이 곧바로 증거로 내놓는 구성이에요.

2장에서 만난 '당당히 거절할 수 있는 용기'는 아이용 조언으로만 두기 아까운 대목입니다. 부탁을 받을 때 몸과 마음이 괜찮을지 먼저 묻고, 들어줄 거라면 부담이 덜한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합니다. 시간을 나눠 돕거나 할 수 있는 만큼만 돕는 방법까지 예로 들고, 거절할 때 쓸 말투를 세 문장이나 적어둡니다. 지금은 피곤해서 어렵다고, 그 부탁은 못 들어주지만 다른 건 도울 수 있다고, 시간이 부족하니 절반만 도와주겠다고. 결론은 이렇게 닫힙니다. "꼭 기억하렴. 부탁을 들어주는 건 언제나 네 선택이고, 네 권리야."

이 챕터에는 솔직히 의문도 남았습니다. 힘든 상황에서 부탁을 거절한다는 이유로 멀어질 관계라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끝날 수밖에 없다고 쓴 부분이에요. 어른에게는 맞는 말인데, 관계의 폭이 교실 하나만큼인 아이에게는 조금 이르고 단호하게 들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대목은 아이 혼자 읽기보다 옆에서 한마디 덧붙여줄 사람이 필요해 보였어요. 재미있는 건 이 글에 붙은 웹툰입니다. 기획안을 대신 해달라, 서류를 부탁한다는 말에 흔쾌히 응하다가 결국 등 뒤에 '부탁'이라는 글자를 커다랗게 매달고 울먹이는 장면인데, 배경이 교실이 아니라 직장입니다. 아이 눈높이라는 기획과 살짝 어긋나지만, 거절을 가르치면서 정작 못 하는 쪽이 누구인지 숨기지 않은 셈이라 오히려 정직하게 읽혔습니다.
4장으로 갈수록 이야기의 반경이 넓어집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는 제목만 보면 한때 유행한 말장난처럼 스쳐갈 수 있는데, 도입 그림이 그 가벼움을 곧장 눌러버립니다. 휴대전화를 보며 저 가족은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고, 저 부모는 아이에게 명품을 선물했다고 중얼거리는 어른이 있고, 그 옆에서 아이 둘이 아빠를 부르며 놀이터에 같이 가자고 묻습니다. 비교에 붙잡힌 쪽은 아이가 아니었어요. 본문에는 출처를 밝히지 않은 인터넷 글도 인용되는데, 좋은 대학이나 좋은 직장, 또래보다 적은 연봉, 늦은 출발로는 인생이 망하지 않지만 남의 삶과 자신을 견주기 시작하면 정신이 반드시 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저자가 더한 문장이 오래 남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한 모습에만 집중하다 보면, 너의 소중한 일상은 어느 순간 초라하고 불행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 손에 쥔 것이 줄어들지 않았는데도 이름만 바뀌는 일, 그 이치를 뒤따르는 세 컷 웹툰이 아주 간명하게 보여줍니다. 행복이라는 명패를 달고 웃던 얼굴이 더 큰 명패를 본 순간 멈추고, 마지막 컷에서 배경이 어둡게 깔리며 명패의 글자만 불행으로 바뀝니다.

우리 쪽 사정과 겹치는 이야기라 더 그랬을 겁니다. 명절이나 방학이면 어김없이 올라오는 여행 사진, 학원 정보와 남의 집 성적, 형편보다 앞서가는 소비까지, 비교가 일상이 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이만큼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어른의 목소리는 흔하지 않습니다. 책 뒤쪽에는 부모가 자녀에게, 자녀가 부모에게 쓰는 편지 자리가 비어 있는데, 그 빈 칸을 언제 채울지는 각자 형편대로 두면 될 것 같습니다. 당장 못 채워도 이 도서의 가치가 줄어들지는 않아요.
띠지에 적힌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라는 물음은 2장 안에 같은 제목의 글로 들어 있습니다. 아이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보이지만 먼저 답해야 하는 쪽은 책을 펼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잔소리를 줄이는 일은 결국 할 말을 고르는 일이고, 고르려면 스스로를 먼저 들여다봐야 하니까요. 북유럽 카페를 통해 서평단으로 받아 읽었는데, 서평을 쓰기 위해 읽는 책들 사이에서 이 한 권은 위치가 좀 달랐습니다. 다 읽고 나서 서평 파일이 아니라 아이 책장 쪽을 먼저 떠올리게 만들었으니까요.
9월 중순으로 들어서면서 저녁 공기가 제법 선선해졌습니다. 여름내 각자 흩어져 있던 식구들이 다시 한 상에 앉기 쉬워지는 계절이에요. 상을 물리고 나서 이 책 한 편을 소리 내어 읽어주기에도 알맞은 분량입니다. 아이가 자라 혼자 길을 걸을 때 이 문장들을 다시 꺼내 읽는다면, 그때는 아마 지금과 다른 대목에 밑줄이 그어질 겁니다.
밥상에서 삼킨 말들을 종이에 옮겨 적은 아빠의 편지, 그래서 아이보다 어른이 먼저 읽게 되는 한 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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