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조각 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 - 교육이 답이라는 거짓말
롭 헨더슨 지음, 김은지 옮김 / 푸른숲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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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원을 만들어 서던 장면부터 꺼내고 싶습니다. 케임브리지에 도착한 첫 주, 게이츠 장학생 아흔 명이 둘러앉아 아이스브레이커 게임을 합니다. 사회자가 쪽지를 읽고 해당되는 사람이 가운데로 나가는 방식이었고, 뒤쪽 질문은 두 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가, 로드 트립을 해본 적 있는가 같은 것들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첫 질문이 어렸을 때 반에서 장난꾸러기였느냐였습니다. 저자는 반사적으로 걸어 나갔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흔 명 가운데 그 자리에 선 사람은 자기뿐이었습니다. 사다리 꼭대기에 닿은 사람이 그곳에서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이 소속감이 아니라 거리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산산조각 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의 표지는 형광 연둣빛 바탕에 보라색 글자를 세로로 세워 놓고, 그 글자들을 일부러 잘라 흩어 놓았습니다. 제목이 말하는 상태를 조판이 먼저 보여 주는 셈이죠. 아래쪽 검정 띠에는 "계층의 사다리에 관한 가장 솔직한 보고서"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두께도 있고 다루는 무게도 상당해서, 처음 받아 들었을 때부터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어야 할 책이라고 짐작했어요. 실제로 그렇게 읽었고, 그렇게 읽는 편이 맞았습니다.


책의 문을 여는 장은 2018년 예일대 졸업식 날에서 출발합니다. 인생의 정점을 먼저 세워 둔 다음, 곧바로 세 살 무렵의 첫 기억으로 내려갑니다. 어둠 속에서 엄마 무릎을 붙잡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던 경찰관 두 사람, 그리고 흰 복도에서 초콜릿 우유를 흘리고 도와달라고 엄마를 쳐다보는 장면이요. 엄마가 팔을 움직일 수 없었던 이유는 수갑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저자는 문단 끝에 한 문장으로 툭 놓아둡니다. 감정을 크게 쓰지 않는데 읽는 쪽에서 감정이 올라오는 서술 방식이 이 책 전체를 지탱합니다.


이어지는 대목에는 위탁 보호 통계가 줄줄이 나옵니다. 다섯 명 중 한 명은 최소 다섯 곳 이상의 가정에 배정되고, 시스템을 떠나는 연령의 중앙값은 일곱 살이라는 숫자들이요. 그 뒤에 저자는 자신이 그 통계들을 뒷받침하는 개별 사례라고 적습니다. 아이를 특정 가정에 정들지 않게 하려고 미리 이 집 저 집 돌리는 관행에 대해서는 이렇게 씁니다. "이 전략은 아이들로부터 불필요하게 안정감을 박탈할 뿐이다." 선의로 설계된 제도가 개별 아이에게는 손상으로 돌아오는 구조를 보여 주는 문장입니다.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장면은 급식 줄입니다. 등교 첫날 식사 카드를 요구받았는데 그런 게 없었고, 받아 온 신청서를 위탁 어머니에게 가져갔더니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아주머니가 그걸 돈을 내라는 서류로 오해해 서명해 주지 않습니다. 무료 급식 등록 신청서였는데도요. 아이는 오해의 내용까지는 이해하지 못한 채 점심을 먹지 못할 거라는 사실만 이해합니다. 그런데도 매일 줄에 섰다고 해요. "마법처럼 시스템에 내가 등록돼 있기를 바라며." 서류를 읽고 처리하는 능력 자체가 자본이라는 이야기를 이 책은 다섯 살 아이의 점심시간으로 먼저 보여 줍니다. 나중에 급식 아주머니가 카드를 건네준 뒤에 적어 둔 문장들도 기억에 남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점심을 먹을 수 있어 기뻤고, 조금 덜 외로웠고, 배가 고프지 않으니 수업에도 더 잘 집중할 수 있었다는 순서요. 설명을 붙이지 않고 결과만 나열하는데 그 안에 급식의 의미가 다 들어 있습니다.


책의 중심 개념인 '사치 신념'은 뒤쪽에서 완성됩니다. 상층 계급에는 거의 아무런 비용 없이 지위를 부여하는 반면, 하층 계급에는 종종 대가를 치르게 하는 아이디어나 의견이라는 정의입니다. 저자는 여기에 부르디외를 끌어와 상류층에 받아들여지려면 교육과 언어와 취향이 필요하고, 그 세 가지에 능숙한 감각을 "편안함"이라 부른다고 소개합니다. 학위증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 단어로 압축한 대목이죠. 예일에서 캐나다 구스 파카가 여기저기 보였다는 관찰, 900달러라는 옷값이 당시 미국인의 평균 주급에 맞먹었다는 계산도 함께 나옵니다. 값이 높아야 표지가 된다는 논리는 우리 쪽에서도 낯설지 않습니다. 한동안 중고등학생 사이에 특정 브랜드 패딩이 교복처럼 번지고 가격대별로 서열을 매기는 '계급도'라는 말까지 돌았고, 부모 등골이 휜다는 뜻의 신조어가 붙었던 시기가 있었으니까요. 옷 한 벌이 소속의 증명서로 작동하는 경험은 어느 사회에나 있다는 걸 책을 읽으면서 다시 확인했습니다.


저자가 힘주어 말하는 부분은 그다음입니다. "부유한 계급의 사람들은 불우한 사람들에게 해로운 생활 방식을 조장한다. 그러는 한편, 그들은 자신을 악영향에서 보호한다." 같은 선택의 결과가 계층에 따라 갈린다는 설명이 뒤따릅니다. 유복한 가정의 학생은 경험 삼아 한 번 해보고도 대개 괜찮을 것이지만, 부모가 부재하는 집의 아이는 같은 시도 한 번으로 자멸할 수 있다는 대비요. 1960년에는 생물학적 부모와 사는 아이의 비율이 부유층과 노동자 계층 모두 95퍼센트로 같았는데 2005년에는 각각 85퍼센트와 30퍼센트로 갈라졌다는 수치도 제시됩니다. 런웨이의 유행이 몇 해 뒤 동네 백화점으로 흘러들듯 상류층의 신념도 불행까지 함께 아래로 흘러내린다는 비유가 이 논의를 닫습니다.


다만 이 구간을 읽으면서 한 번씩 속도를 줄여야 했습니다. 저자가 드는 사례가 마약 합법화와 경찰 예산, 특정 담론처럼 미국 정치의 쟁점에 바짝 붙어 있어서, 한국의 계층 지형에 그대로 옮겨 놓기에는 한 겹 걸러 읽을 필요가 있어 보였어요. 주장이 가장 뜨거워지는 자리에서 상관관계를 인과처럼 밀고 나가는 대목도 눈에 띕니다. 예산 삭감 이후 살인율이 치솟았다는 서술이 그런 예인데, 이 시기 범죄 증가의 원인을 두고는 팬데믹으로 인한 실업과 학교 폐쇄를 더 직접적인 요인으로 보는 분석도 있어서 학계에서 여전히 논쟁 중인 사안입니다. 책의 진단을 저자의 해석으로 받아 두고, 우리 사정은 우리 자료로 다시 따져 보는 편이 정직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 스스로도 명문대가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는 단서를 달아 두니, 그 신중함을 독자 쪽에서도 이어받으면 될 것 같아요.


마지막 장은 다시 안쪽으로 돌아옵니다. 저자는 원가족을 한쪽 끝이 고정된 고무줄에 비유합니다. 거리를 둘 수는 있지만 멀어질수록 더 강하게 끌어당길 뿐이라는 것이죠. 어른들의 응원이 아무리 쌓여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 애정이 공허하게 느껴졌다는 고백, 가족이 자기를 사랑한다면 다른 사람이 데려가도록 두지 않을 거라고 믿는 아이의 논리를 성인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인용되는 정신의학자의 문장이 앞부분의 한 장면을 설명해 줍니다. 자신을 학대하는 가족과 위탁 가정 중 후자를 택하는 열 살 미만 아동을 본 적이 없다는 말이요. 책의 앞머리에서 식탁 다리를 붙잡고 버티던 아이의 마음이 왜 그랬는지, 수백 쪽을 건너 뒤늦게 답이 옵니다. 그리고 허구 속 고아들을 열거한 뒤 저자는 짧게 못을 박습니다. "삶은 동화나 만화책과 다르다."


무엇을 떠날 수는 있어도 그것이 나를 떠나지는 않는다는 문장 앞에서는 걸음이 느려졌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독자로 떠올린 사람이 누구였는지도 밝혀 두는데, 상류층이 이 책을 읽는 장면을 상상하면 속이 울렁거렸고, 대신 어릴 적 학교 도서관에서 그랬듯 이 책을 집어 들고 희망을 얻을 자기 같은 아이를 계속 떠올렸다고 합니다. 자기 처지를 비춰 볼 실화를 찾지 못했던 아이가 자라서 그 실화를 직접 써냈다는 뜻이 됩니다. 독자에게 동정심을 느꼤다면 그 마음을 지금 비슷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에게 돌려 달라는 요청도 함께 적어 두었어요. 회고록과 사회 비평이 왜 한 권에 묶여 있는지에 대한 답은 결국 그 문장인 듯합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편하게 읽고 편하게 접는 책이 있고, 읽는 속도가 자꾸 느려지는 책이 있습니다. 이 한 권은 후자였고, 다 읽고 나서도 며칠 더 데리고 있게 됐어요. 성공담으로 소비하기 쉬운 이력을 가진 사람이 성공담의 자리를 내주고 대신 통계와 자기 결함을 함께 내놓았다는 점이 오래 남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중이라면 좋은 학군과 좋은 성적 이야기를 잠깐 접어 두고 이 책의 앞부분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사회 구조와 계층 이동에 관심이 있는 분께는 뒷부분의 개념 정리가 유용할 거예요. 자기 힘으로 어딘가에 올라섰다고 생각해 온 사람에게는 책 후반부가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데, 그 불편함이 이 도서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침저녁 공기가 확실히 달라지는 계절입니다. 여름의 열기가 빠지고 창문을 열어 두면 서늘한 바람이 들어오는 시기에,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성취의 목록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환경이라는 이야기를 읽은 건 나쁘지 않은 순서였던 것 같아요. 이 가을에 누군가의 안정감을 조금 보태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보려 합니다.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올라간 사람이 그 사다리의 구조를 해부한 기록이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하는 한 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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