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 왜 당신 마음에 들어야 합니까 - 남들 마음속에 살다 내 인생을 놓친 사람들에게
김경일 지음 / 퍼스트펭귄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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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비교하는 순간 오답이 생긴다, <내 인생이 왜 당신 마음에 들어야 합니까> 서평

제목만 보면 누가 누구한테 단단히 한 소리 하는 책 같아요.


<내 인생이 왜 당신 마음에 들어야 합니까>. 소리 내서 읽으면 괜히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가는 제목입니다. 그런데 막상 펼쳐보면 저자가 목소리를 높이는 대목은 거의 없더라고요. 오히려 조용히 되묻는 쪽이에요. "본인은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하고요.


추석 연휴 한가운데 금요일이라 그런지 이 제목이 유난히 입에 붙는 거 같아요. 명절이면 꼭 오가는 질문들 있잖아요. 요즘 회사는 어떠냐, 애들 성적은 어떠냐, 누구네는 이번에 집을 넓혔다더라. 그런 이야기 사이에 앉아 있다 보면 이 제목이 속으로 한 번쯤 튀어나올 거 같더군요. 물론 입 밖으로 냈다가는 명절이 길어질 테니 속으로만요.


저자는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이에요. 아주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사람의 판단과 의사결정을 연구해 온 분이고, 여러 방송에서 심리 멘토로 이름이 알려져 있죠. 그래서인지 글이 상담실 맞은편에 앉아 이야기 나누는 느낌에 가까워요. 어려운 이론을 늘어놓는 대신 사람들이 실제로 털어놓는 말을 먼저 꺼내 놓고 시작합니다.


책은 아담한 편이에요.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판형에 두께도 보통 소설책 정도라 가방에 넣어 다니기 부담이 없더라고요. 가벼운 게 참 반가웠어요. 요즘 제 주변에서 가벼운 건 지갑밖에 없었거든요.

다섯 개 장에 아흔 개 꼭지가 담겨 있고, 꼭지 하나하나가 짧아서 어디를 펼쳐도 거기서부터 읽으면 되는 구조입니다. 목차만 훑어봐도 궁금한 제목이 줄줄이 나와요. '나이 들수록 쓰지 말아야 하는 이 말', '수년 만에 연락 온 친구가 청첩장을 건네면' 같은 제목은 안 펼쳐볼 재간이 없겠더라고요.


프롤로그는 상담에서 자주 듣는다는 고민들로 문을 엽니다. 부모님이 실망하실까 봐 하고 싶은 일을 망설이는 사람, 남들이 실패한 사람으로 볼까 봐 직장을 못 그만두는 사람, 미움받을까 봐 하고 싶은 말을 삼키는 사람 이야기예요. 저자는 이분들이 자기 인생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자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고 말해요. 부모님의 기대, 동료의 평가, 친구들의 삶은 한참 나오는데 가장 중요한 한 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는 거죠.


가장 중요한 한 사람, 바로 자기 자신.

그래서 저자는 <내 인생이 왜 당신 마음에 들어야 합니까>라는 질문이 누군가에게 화를 내려는 말도, 남의 의견을 무시하겠다는 선언도 아니라고 해요. 너무 많은 목소리에 묻혀 있던 내 마음을 다시 확인하려는 질문이라고요. 제목의 날이 이 대목에서 조금 무뎌지면서 오히려 더 편하게 읽히기 시작하는 거 같았어요.


인지심리학 이야기도 위로가 됐습니다. 사람의 뇌는 다른 사람의 반응을 중요한 정보로 받아들이도록 발달해서, 거부당했다고 느끼면 몸이 아플 때와 비슷한 고통으로 인식하기도 한대요.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게 의지가 약하거나 자존감이 낮아서만은 아니라는 거죠. 눈치 보는 게 성격 탓만은 아니라니 괜히 어깨가 좀 펴지더라고요.

그 뒤에 이어지는 '상상 속 평가' 이야기도 좋았어요. 실제로 들은 말보다 머릿속에서 지어낸 평가에 더 시달린다는 건데, 예로 든 문장 중에 '이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하면 철없다고 생각할 거야'가 있습니다. 마흔 넘어 서평 블로그 하는 아재한테는 남 얘기 같지가 않더군요. 저자 말로는 실제로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대요. 결국 내가 만들어낸 '상상 속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살아가는 셈이라고요.


유독 속도를 늦춰서 읽게 된 건 연봉 이야기였어요. 연봉 5천만 원을 받으며 회사 생활에 꽤 만족하던 사람이 동창 모임에서 친구 연봉이 8천만 원이라는 말을 듣는 장면입니다. 그 순간부터 괜찮던 회사가 부족해 보이고, 재미있던 일에서도 의미를 찾기 어려워진대요. 그리고 저자가 묻습니다. 무엇이 달라졌나요? 연봉도 회사도 하는 일도 그대로인데 말이죠.


"달라진 것은 오직 비교의 기준뿐입니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한 사람치고 이 장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 같아요. SNS 이야기도 이어지는데, 남의 편집된 하이라이트와 내 일상의 비하인드 장면을 비교하는 거라서 "이 싸움에서 내 인생이 이기기는 어렵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피식 웃었다가 조금 씁쓸해지는 문장이었습니다.


비교는 과거의 선택까지 오답으로 만든다는 대목도 있어요. '그때 다른 회사를 선택했어야 했는데', '일찍 투자를 시작했어야 했는데'. 이 나이쯤 되면 이런 문장 몇 개는 다들 품고 살잖아요. 저자는 지금 알게 된 걸 그때의 내가 몰랐다고 해서 그 시절의 나를 어리석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요. 이 대목은 조금 오래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솔직히 읽는 내내 제 안에서 걸렸던 게 하나 있었어요. 비교하지 말라는 말, 머리로는 알겠는데 그게 되냐는 거죠. 그런데 책 안에 딱 그 질문이 먼저 나옵니다. "교수님,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대답은 "맞습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예요. 따지려고 준비했던 말이 쑥 들어가 버렸어요. 뇌는 원래 비교로 세상을 이해하니 비교 자체를 없앨 수는 없고, 다만 무엇을 누구와 어떤 목적으로 비교할지는 고를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그 현실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3장의 '감정에도 경계선이 필요하다'는 회사 다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필요한 꼭지 같아요. 홧김에 욕을 했어, 홧김에 싸워졌지, 홧김에 필요 없는 물건을 사버렸네. 저자는 이 말들의 공통점이 화를 느낀 직후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한 데 있다고 봐요. 강한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에는 이성을 맡는 전전두엽보다 감정을 맡는 편도체가 먼저 움직인다고 하고요.


해법이 의외로 간단해서 좋았어요. 그 장소를 벗어나라는 겁니다. 뇌가 장소와 감정을 함께 기억하기 때문에, 언성을 높이던 공간에서 몇 걸음만 떨어져도 감정의 강도가 낮아진대요. 회의 끝나고 홧김에 쓰던 답장 메일을 임시 저장만 해두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비슷한 원리겠구나 싶었고요.


"그 몇 걸음이 후회할 행동과 현명한 선택의 경계선이 되어 줄 것입니다."

4장의 '마흔 이후에도 삶이 흔들리는 이유'는 제목부터 제 얘기 같았어요. <논어>에서 공자가 마흔을 불혹이라 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저자보다 열 살쯤 어린 40대 후배들이 "선배님, 왜 이렇게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고 심지어 막막하기까지 하는 거죠?" 하고 묻는다는 대목으로 넘어갑니다. 불혹은커녕 매일 흔들리는 입장에서는 그 후배 자리에 제 이름을 넣어도 될 거 같더라고요.

저자는 그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말해요. 수명이 길어진 만큼 고민하고 방황하는 시기도 길어졌고, 여든이 되고 구십이 되어도 자기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정하고 방황해야 하는 시대라는 거죠. 흔들리는 게 당연한 나이라는 말로 들려서 한결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목차 맨 끝에 놓인 꼭지가 '끝까지 해내려 하지 마세요'라는 것도 재밌었어요. 마지막 꼭지 제목이 끝까지 하지 말라니. 퇴근 전에, 연말이 되기 전에 뭐든 깔끔하게 마무리하려고 애쓰는 게 직장인의 습성인데 저자는 여기서 자이가르닉 효과를 꺼내 옵니다. 사람은 끝난 일보다 끝나지 않은 일을 더 오래 기억한대요. 그래서 작가들도 다음 문단을 막 시작하려는 순간 펜을 놓고, 운동도 '조금 더 할 수 있는데' 싶을 때 멈추는 편이 내일 다시 시작하기 쉽다고 하더군요.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완벽하게 끝내는 사람보다 꾸준히 이어가는 사람이 결국 더 멀리 갑니다."

책 속에는 질투와 부러움을 가르는 문장도 있어요.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생기는데, 그 감정을 "남을 끌어내리는 데 쓰면 질투가 되고, 나를 끌어올리는 데 쓰면 부러움이 됩니다"라고요. 동창 모임 연봉 이야기와 나란히 놓고 읽으니 더 와닿는 문장이었어요.


소장 가치는 충분한 거 같아요. 책상 옆에 두고 필요한 꼭지를 그때그때 찾아 읽기 좋은 책입니다. 욱하는 날엔 3장을, 막막한 날엔 4장을 펴면 되니까요. 회사에서 남의 눈치 보느라 하루가 다 가는 분이라면 제목만으로도 속이 좀 시원해지실 거예요. 읽는 내내 제 얘기를 들킨 것 같으면서도 재미있게 넘어갔습니다.


바람이 제법 선선해진 계절이에요. 가을은 원래 뭔가를 다 거둬들이는 때라지만, <내 인생이 왜 당신 마음에 들어야 합니까>를 덮고 나니 전부 끝내지 않아도 괜찮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더라고요. 이 책 말대로라면 송편도 한두 개는 남겨둬야 내일 또 손이 가는 거겠죠. 그게 제일 어려운 실천일 거 같긴 합니다.


내 마음에 드는 가을 보내세요. 좋은 책을 만나서 마음 한쪽이 가벼워진 기분이에요.


남의 마음에 들려고 애쓰던 시선을 내 쪽으로 슬며시 돌려놓는, 짧고 다정한 마음 수업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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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정한 방식으로는 결코 나를 담아낼 수 없다 ㅣ 한국철학전집 2
세종 지음 / 결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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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성군의 가면 뒤, 설계하는 왕 세종 <세상이 정한 방식으로는 결코 나를 담아낼 수 없다> 서평


지폐 속에서 제일 자주 뵙는 얼굴인데 정작 제대로 들여다본 적은 없는 분이 계세요.


세종대왕님이요. 명절만 되면 지갑에서 유난히 빨리 떠나가시는 분이라 얼굴 뵙기가 더 힘들기도 하고요.

그렇게 익숙한 얼굴을 두고 이 책은 첫머리부터 가면이라는 말을 꺼냅니다. 지폐 속에 박제되고 교과서 속에 정갈하게 앉아 있는 인자한 얼굴이 세종 진면모의 절반도 안 된다고요. 시작부터 제법 세게 나오는구나 싶었어요.


<세상이 정한 방식으로는 결코 나를 담아낼 수 없다>는 출판사 결의 <한국철학전집> 두 번째 책이에요. 첫 권은 이순신 편인 <스스로를 경계하지 않는 자는 결코 남을 벨 수 없다>였고요. 권마다 인물이 달라서 이 책부터 읽어도 괜찮지만, 앞 권 서평 먼저 보고 오시면 시리즈 분위기를 잡기가 편해요. 마침 오늘이 금요일이자 한가위 당일이네요. 출근 걱정 없는 금요일이라니, 명절이 주는 선물 중에 이만한 게 없는 거 같습니다. 표지에도 세종 옆으로 둥근 달이 하나 떠 있어서 추석에 꺼내 이야기하기 딱 맞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책이 세종에게 붙이는 이름은 '설계하는 왕'이에요. 백성을 불쌍히 여긴 왕은 역사에 흔했는데 왜 유독 세종만 오백 년 넘게 이름이 남았느냐고 묻고는, 답을 아주 짧게 내놓습니다. "그는 감정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감정을 도구로 바꾸었다." 그러고는 여느 왕들과 세종을 나란히 세워 보여주는데, 이 대목이 참 시원시원했어요. 다른 왕들이 탄식하고 끝낼 때 세종은 문자를 만들었고, 관리를 야단치고 말 때 십칠만 명에게 직접 물었고, 중국 달력을 베껴 나눠줄 때 조선의 하늘을 새로 계산했다는 거죠.


장 구성도 좀 특이한 편이에요. 법고창신, 지인지감, 분골쇄신, 실사구시, 제왕지업까지 네 글자 사자성어로 다섯 장을 세웠고, 그 아래 꼭지 제목은 거의 다 "~하라", "~마라"로 끝나요. 목차만 보면 자기계발서 기운이 확 풍기는데, 막상 들어가 보면 세종 시대 이야기가 뼈대를 단단히 받치고 있어서 읽는 맛이 따로 있더군요.

1장 첫 꼭지는 훈민정음 이야기로 열립니다. 표지에 적힌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든다"가 바로 여기로 이어지는 셈이에요. 15세기 조선은 법전도 판결문도 임금의 교서도 전부 한자였고, 백성은 관아에 끌려가도 자기에게 무슨 죄목이 씌워지는지 읽을 수 없었대요. 책은 백성이 문맹이 되도록 방치되어 있었다고 말하는데, 그 뒤에 나오는 문장이 이 꼭지의 심장 같았어요.


"어려움은 그 자체로 권력이다."

한문을 익히는 데 십수 년이 걸리니 지식은 극소수에게 몰리고, 그 소수가 문서를 쥐고, 문서를 쥔 자가 나라를 쥐었다는 흐름이에요. 그러니 훈민정음이 쉬웠다는 것 자체가 사대부들한테는 위협이었다는 얘기고요. 쉬움은 혁명이라는 표현이 처음엔 좀 과한가 싶었는데, 여기까지 따라오고 나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더라고요.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그다음이에요. 책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회사 이야기를 꺼내거든요. 어떤 업무는 왜 특정한 몇 사람만 다룰 수 있게 남아 있는지, 어떤 정보는 왜 상급자 머릿속에만 들어 있는지, 어떤 결정은 왜 닫힌 방 안에서만 내려지는지.


이 나이까지 회사를 다니다 보면 이런 장면이 전혀 낯설지 않죠. 그 사람한테 물어보러 가야 하고, 그 사람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그 사람이 알려주는 만큼만 알 수 있는 구조. 책은 그 안에 갇혀 있으면 아무리 성실해도 그 사람을 넘어설 수 없다고 말합니다. 뜨끔하면서도 이상하게 속이 시원했어요. 이어서 "당신은 지금 누구의 문자로 자신을 적고 있는가"라고 묻는데, 내 이력서와 하루와 성과를 적는 문법이 정말 내 것이냐는 질문이라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더군요.


"남의 언어로 자신을 설명하려 하지 마라. 남의 문법으로 자신의 성과를 정리하지 마라. 남의 기준으로 자신의 시간을 재지 마라."

세종이라는 사람이 제일 가깝게 느껴진 건 오히려 몸이 무너져 가는 대목이었어요. 말년의 세종은 소갈증을 오래 앓았고, 책은 이걸 지금 이름으로 당뇨라고 설명합니다. 그 병이 눈까지 갉아먹어서 결국엔 자기가 만든 문자마저 제 눈으로 온전히 읽기 어려워졌다고 해요.


평생 문서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 문서를 읽지 못하게 된 거죠.

그런데도 세종은 물러나지 않았대요. 승지가 문서를 읽어 아뢰던 관행을 사실상 자기 눈으로 삼아, 귀로 듣고 지시를 내렸다는 겁니다. 눈으로 읽는 문서는 앞뒤를 오가며 다시 볼 수 있지만 귀로 듣는 문서는 흘러가 버리잖아요. 그 자리에서 바로 판단하려면 지방 사정이며 관료들 성향이며 재정과 국경 형편이 머릿속에 한 장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야 했을 거라고요. 몸이 무너질수록 머릿속 조선은 더 뚜렷해졌다는 설명에서는 존경스러운 마음과 서늘한 기운이 같이 느껴졌어요. 책이 이걸 광기에 가깝다고까지 표현하는데 과장으로 들리지는 않더라고요.


눈이 감겨가는 왕이 문서를 귀로 듣던 그 방을 상상해 보라는 문장도 있어요. 어둡고, 무겁고, 조용했을 거라고 하는데, 그 세 마디가 이 꼭지 전체의 공기 같았습니다.

솔직히 좀 걸렸던 대목도 이 꼭지에 있어요. 책이 독자의 몸에 직접 말을 걸거든요. 눈이 침침한가, 어깨가 뭉치는가, 잠이 얕은가. 늘 피곤한 게 기본값인 사람한테는 하나같이 제 얘기라 웃음이 나다가, 오늘 좀 피곤해서 일을 미뤘다는 말이 얼마나 초라해지느냐는 문장에서는 좀 따끔했어요. 책 전체 말투가 워낙 단호해서 처음엔 세게 들리는 순간도 있었고요. 그런데 곧이어 "우리는 세종처럼 살 필요는 없다. 그것은 인간에게 가혹한 삶이다"라는 문장이 나와요. 이 대목에서 어깨 힘이 조금 풀리더군요. 균형 잡힌 삶에서 나오는 균형 잡힌 결과도 나쁘지 않다고 인정해 주는 대목도 앞에 있어서, 무작정 몰아붙이는 책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꼭지 끝머리의 짧은 문장들도 오래 기억날 것 같아요. 화려하지 않다, 낭만적이지도 않다, 다만 무너지지 않는다.

중년 입장에서 제일 할 말이 많아지는 건 4장의 달력 이야기였어요. 조선은 오랫동안 명나라 달력을 받아 썼는데, 하늘은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별이 뜨는 각도도 해의 길이도 달라서 조선 농부들은 늘 며칠씩 어긋난 시간표 위에서 살았대요. 세종은 그 어긋남을 참지 않고 혼천의와 간의를 세우고, 앙부일구를 거리에 놓고, 자격루로 궁궐 안에 시간을 알리게 했죠. 그 끝에 한양의 위도를 기준으로 다시 계산한 역법서 <칠정산>이 나왔고요. 앙부일구가 거리에 놓이면서 백성이 처음으로 자기 눈으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는 대목이 참 좋았어요.


그러다 책이 슬쩍 묻습니다. 스물다섯에 무엇을 해야 하고, 서른에 무엇을 이루어야 하고, 마흔에 어디에 있어야 한다는 그 시간표는 누가 만들었느냐고요.

마흔을 한참 지나온 입장에서는 이 질문이 좀 다르게 들리더라고요. 남들 달력으로 보면 늘 조금씩 늦은 거 같고 뭔가 놓친 거 같은 기분이 드는 나이거든요. 책은 그게 잘 살지 못해서가 아니라 남의 기준표 위에 서 있어서 어긋나 보이는 거라고 말해줘요. 회사에서 남이 짜준 일정표대로만 움직이는 게 답답했던 분이라면 이 장이 특히 즐겁게 읽힐 거 같아요.


"남의 시간표를 사는 사람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 계절을 산다."

이 문장은 따로 오려서 책상 앞에 붙여두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세상이 정한 방식으로는 결코 나를 담아낼 수 없다>는 판형이 손에 쏙 들어오고, 두께도 보통 교양서보다 얇은 편이라 가방에 넣고 다니기 부담이 없어요. 책은 가벼운데 내용은 체급이 꽤 나가서, 헤비급 선수가 라이트급 계체량을 가뿐히 통과한 느낌이랄까요. 프롤로그 면 바탕에 표지 그림이 흐릿하게 깔려 있는 것도 소장하는 맛을 더해줍니다. <한국철학전집>이 권수를 늘려갈수록 책장 한 칸을 따로 비워주고 싶어지는 시리즈예요.


오늘 밤엔 한가위 보름달이 뜨겠죠. 표지 속 둥근 달이랑 겹쳐 보일 것 같고, 한글날도 두 주 남짓 남았으니 이 계절에 세종 이야기를 만난 건 타이밍이 꽤 좋았던 셈이에요. <세상이 정한 방식으로는 결코 나를 담아낼 수 없다> 덕분에 올해는 보름달한테 소원을 빌면서 제 달력 한 장도 새로 그려볼 생각입니다. 좋은 책 한 권 품고 맞는 명절이라 마음이 든든하네요. 다들 넉넉한 한가위 보내세요.


마음을 문자와 달력으로 옮겨 만든 왕 세종이, 남의 시간표로 살아온 중년에게 내 하늘은 내가 직접 계산해 보라고 말을 거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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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프렌즈 나가사키·사가 - 최고의 휴가를 위한 스마트 가이드북, 2027~2028년 최신판 ㅣ 베스트 프렌즈 시리즈 13
운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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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가볍게 들고 가서 깊게 보고 오는 규슈 소도시, <베스트 프렌즈 나가사키·사가> 서평


나가사키 짬뽕이 하나도 안 맵다는 거, 알고 계셨어요?

저는 여태 하얀 국물에 고춧가루가 살짝 도는 음식쯤으로 막연히 그려왔거든요. 그런데 <베스트 프렌즈 나가사키·사가>를 펼쳐 보니 한국 짬뽕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고 매운맛은 거의 없다고 적혀 있더라고요. 오래 알고 지낸 줄 알았던 음식이 알고 보니 초면이었던 셈이라 혼자 웃었습니다.


표지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에요. 크림빛 노란 바탕에 둥근 창처럼 오려낸 사진이 있고, 그 안으로 별무늬가 찍힌 주황색 노면전차가 들어오고 있어요. 위쪽에는 '알차다', '편하다', '가볍다'라고 적힌 말풍선 세 개가 줄줄이 달려 있고요. 판형이 손에 쏙 들어오고 두께도 보통 여행 가이드북보다 한결 날씬해서, 가방에 넣어도 어깨가 항의할 일은 없을 것 같더군요. 중앙북스 베스트 프렌즈 시리즈의 열세 번째 책입니다. 글은 오래된 성터와 골목을 따라 걸으며 기록한다는 역사여행작가 운민이 썼습니다.


날씬하다고 속까지 가벼운 건 아니에요. 나가사키현에서는 나가사키시, 사세보, 히라도, 운젠, 시마바라를 다루고, 사가현에서는 사가시, 우레시노, 다케오, 가라쓰, 이마리, 아리타를 다뤄요. 도시만 열한 곳입니다.


읽다 보면 이 책은 음식 이야기를 할 때 꼭 역사를 한 숟갈 같이 떠 주는 버릇이 있는 거 같아요.

카스텔라만 해도 그래요. 뿌리는 16세기 중반 포르투갈 상인과 선교사가 들여온 서양 과자이고, 당시 일본에서는 그들을 '남만인'이라 불렀다고 하네요. 카스텔라라는 이름도 포르투갈어로 카스티야 왕국을 뜻하는 말에서 왔다고 알려져 있대요. 나가사키 장인들이 물엿을 넣어 촉촉하게 만들고 바닥에 굵은 설탕 알갱이를 남겨 사각거리게 했다는 대목에서는 입안에서 그 소리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재미있었던 건 후쿠사야, 분메이도, 쇼오켄 세 집을 단맛, 촉촉함, 설탕 알갱이 식감으로 나눠 별점을 매긴 표였어요. 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이런 주석이 붙어 있더군요.


"별점은 제품의 우열이 아니라 대표 제품의 맛과 식감을 이해하기 위한 상대적인 기준이다."

해마다 평가 시즌이면 등급표 앞에서 작아지는 직장인이라 그런지, 이 문장이 카스텔라보다 더 달게 느껴졌어요. 어디가 제일인지 줄 세우지 않고 제 입맛을 찾아보라는 쪽이라 마음이 편했습니다.


짬뽕으로 넘어가면 이야기에서 사람 냄새가 조금 더 납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나가사키에 머물던 중국인 유학생들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대요. 이들이 싸고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고민하다 나온 게 짬뽕이라고 하더군요. 식당 소개에 나오는 시카이로가 바로 그 발상지인데, 1899년 푸젠성 출신 진평순이 문을 연 곳이라고 해요.


월급날을 앞둔 주에 점심 메뉴판 앞에서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리는 마음이 그 시절 유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겠구나 싶었어요.


"한 그릇 안에 바다와 육지의 재료가 함께 들어가는 셈이다."

돼지 뼈와 닭 뼈로 우린 국물에 양배추, 숙주, 어묵, 오징어, 새우, 조개까지. 문장 하나에 그릇이 통째로 그려지는 느낌이 듭니다. 국물을 먼저 맛보고 나서 후추나 고추기름을 조금 더하라는 팁이 있고, 굵은 면이 국물을 빨리 먹으니 뜨거울 때 먹으라는 당부도 있어요. 그대로 따라 해 보고 싶어지더라고요. 현지 마트에서 사 올 만한 컵면과 봉지 짬뽕까지 사진으로 소개하니, 다녀와서도 한동안 짬뽕 생활이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군함도 꼭지였어요.

정식 이름은 하시마인데, 멀리서 보면 군함처럼 생겨서 그렇게 불렸다고 해요. 한때는 좁은 섬 위에 고층 콘크리트 아파트와 학교, 병원, 영화관까지 들어섰던 탄광 도시였대요. 그 뒤편에 조선인과 중국인 강제 동원의 역사가 남아 있다는 것도 책은 에두르지 않고 말하더군요.


"세계유산이라는 화려한 이름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아래에 놓인 노동과 수탈, 식민지 역사를 함께 읽어야 한다."

여행 가이드북이니 풍경 사진 한 장에 투어 시간표 정도로 넘어가도 이상할 게 없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점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역사여행작가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닌 것 같아요. 이어지는 투어 안내는 차분하고 실용적이에요. 날씨와 파도가 가장 큰 변수라서 날이 괜찮아 보여도 상륙을 못 할 수 있으니, 일정 마지막 날보다는 여유 있는 날에 넣으라고 권하더라고요. 상륙하더라도 정해진 견학로로만 다닐 수 있다는 것까지 미리 알려주니, 가서 서운해할 일은 줄어들 것 같습니다.


사가의 먹거리 장은 첫 문장부터 결이 달라요.

"사가현은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좋은 재료가 가진 매력을 알려주는 미식 여행지다."

회사에도 이런 사람이 꼭 한 명씩 있잖아요. 회의 때는 말수가 적은데 막상 일을 맡기면 제 몫을 조용히 해내는 사람이요. 사가가 딱 그런 동네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부드러운 사가규, 우레시노 온천수로 끓여 국물이 뽀얗게 변한다는 온천두부, 회로 먹고 남은 다리와 몸통을 튀김이나 구이로 한 번 더 즐긴다는 요부코 오징어. 시시리안 라이스는 이름은 시칠리아를 떠올리게 하는데 정작 사가에서 태어난 양식풍 메뉴래요. 나가사키의 도루코라이스도 이름은 '튀르키예 라이스'인데 튀르키예 요리와는 별 상관이 없다고 해서 피식하게 되더군요. 이 동네 사람들은 이름 짓는 데 장난기가 좀 있는 모양입니다.


우레시노 온천 꼭지는 읽는 것만으로 어깨가 조금 내려가는 느낌이었어요. 일본 3대 미인탕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물에 몸을 담그면 피부에 닿는 감촉이 실크처럼 부드럽다고 하네요. 탕에 너무 오래 있기보다 짧게 여러 번 나눠 들어가라는 팁은, 사우나에서 누가 오래 버티나 시합하던 우리 또래 아재들이 새겨들을 말 같습니다.


온천 거리 주변도 알차게 채워져 있어요. 도요타마히메 신사는 '미인의 신사'라는 별명이 있대요. 이곳에서는 메기를 여신의 사자로 여겨, 흰 도자기 메기상에 온천물을 끼얹으며 피부 건강을 빈다고 합니다. 수령 약 800년으로 알려진 녹나무가 입구에 선 즈이코지도 있고, 돌로 만든 긴 족욕 공간에 온천수가 흐르는 시볼트 족욕탕도 소개돼요. 다케이와 전망대 설명에는 당부가 하나 붙어 있어요. 올라가는 산길이 좁고 굽은 구간이 많으니, 일본에서 렌터카를 처음 모는 여행자는 되도록 낮에 도도로키 폭포 쪽에서 올라가라고요. 이런 한 줄이 길 위에서 여행을 구해 주는 문장 같더라고요.


우레시노 녹차 소개는 이렇게 끝나요.

"우레시노 온천과 함께 즐기면 몸은 온천으로 풀고 마음은 차 향으로 쉬어가는 듯한 힐링의 시간이 된다."


온천두부 한 그릇으로 꽉 찬 하루를 마무리하자는 대목까지 이어 읽으면 우레시노에서의 하루 일정이 저절로 짜이는 기분이에요. 키워드 페이지에는 아리타가 일본 최초의 자기 생산지로 소개돼 있어요. 현 이름이 사가라 그런지 녹차든 도자기든 자꾸 뭘 사 가지고 오고 싶어지더군요.


솔직히 걸렸던 건 제 쪽 사정이에요. '달라진 일본 여행' 꼭지에 따르면 일본의 캐시리스 결제 비율이 2025년에 58.0%까지 올라갔대요. 페이페이나 알리페이플러스 제휴 가맹점이라면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도 쓸 수 있다고 하고요. 동전 지갑부터 챙기던 아재 입장에서는 반가우면서도 살짝 긴장되는 소식이었습니다. 다행히 결제 순서가 앱 화면 그림과 함께 차근차근 나와 있어요. 페이페이 로고가 붙어 있어도 모든 매장에서 한국 간편결제가 되는 건 아니라는 주의사항과, 점원에게 물어볼 일본어 한 문장까지 챙겨 주고요. 요부코, 히라도, 운젠, 우레시노 같은 작은 동네에는 여전히 현금만 받는 곳이 있으니 1,000엔권과 동전을 준비하라는 얘기에는 괜히 안심이 됐어요.


<베스트 프렌즈 나가사키·사가>는 정가 15,000원이고, 지역별 상세 지도와 나가사키 노면전차 노선도까지 책 속에 들어 있어요. 떠나기 전에 한 번, 가서 또 한 번 펼쳐 볼 책이라 여행 가방 앞주머니에 넣어 두면 딱 좋을 크기입니다. 이름처럼 옆에 두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친구 같은 책이에요.


벌써 9월도 끝자락이라 아침저녁 바람이 제법 선선해졌어요. 키워드 페이지를 보면 매년 가을 사가평야 하늘에 열기구가 수없이 떠오른다는데, 딱 요즘 계절에 어울리는 그림 같아요.


오늘은 금요일이니 온천두부는 못 끓여도 따끈한 녹차 한 잔은 우려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든든한 여행 친구 하나 사귄 기분이라 좋네요. 다들 선선하고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안 매운 짬뽕 한 그릇에서 시작해 군함도의 아픈 역사와 우레시노 온천두부까지, 가볍게 들고 가서 깊게 보고 올 수 있게 해주는 나가사키·사가 여행 가이드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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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0 받던 93년생 간호사가 4년 만에 27억을 만든 방법
부토리 지음 / 필름(Feelm)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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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부는 시간의 크기였다" 월 200 받던 93년생 간호사가 4년 만에 27억을 만든 방법 서평


"스무 살과 마흔 살은 무엇이 가장 다를까?"

책 뒤쪽에서 이 질문이 툭 튀어나오는데 괜히 뜨끔하더라고요. 마흔은 진작 넘겼고 어느새 40대 후반이거든요. 가진 돈을 떠올릴 법한 자리에 저자는 '남은 시간'이라는 답을 내놓습니다. 그 대목 때문에 이 책을 젊은 사람들 재테크 책으로만 치워둘 수가 없었어요.


9월도 끝자락이라 아침저녁 공기가 제법 선선해졌어요. 한 주 피로가 제일 무겁게 쌓이는 목요일인데도 이 책 얘기는 빨리 풀어놓고 싶어서 좀 들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퇴근하고 유튜브 틀어놓은 채 졸았을 텐데, 요즘은 책부터 손에 잡히니 서평단 하면서 사람이 좀 바뀐 거 같아요.


이번에 만난 책은 부토리 님의 <월 200 받던 93년생 간호사가 4년 만에 27억을 만든 방법>입니다. 출판사는 필름이고요. 제목 첫머리 '월 200'에서 잠깐 제 월급명세서가 스쳐 지나갔는데, 뒤에 붙은 27억을 보고 바로 정신이 들더군요.

솔직히 처음엔 살짝 경계했어요. 숫자가 큼직하게 박힌 제목이 어쩐지 유튜브 썸네일 같았거든요. 그런데 서문을 펼치면 이 두 줄이 먼저 나옵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가난하다. 돈밖에 없는 사람은 더 가난하다."

경계심이 스르르 풀린 건 여기서부터였던 거 같아요.

저자는 2016년 수원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해요. 정규직이 된 뒤 받은 첫 월급이 180만 원, 그 뒤로도 230만 원 남짓. 남들 잘 때 일하고 남들 쉬는 주말에 병원을 지키면서 '이렇게 평생 내 시간을 돈과 바꾸며 살아야 하는 걸까?'라는 질문이 자꾸 떠올랐다고 합니다. 직장 생활 오래 한 사람한테 이 질문은 꽤 아프게 들리더라고요.


그 뒤 구급대원이 되면서 이야기가 한층 무거워져요. 살리려고 온 힘을 다했지만 끝내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대요. 위급한 환자를 태우고 몇 시간을 달려갔는데 받아줄 수 없다는 말 한마디에 구급차 문을 다시 닫아야 했던 날도 있었고요. 누군가를 도우러 출동한 현장에서 욕설과 성희롱성 발언을 견뎌야 했던 날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끝에 저자가 꺼낸 말은 "우리에게 '언젠가'가 반드시 주어진다는 보장은 없다"였어요.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프롤로그의 2017년 10월 30일이에요. 퇴근을 한 시간 반쯤 앞두고 심폐소생술을 받던 90대 할머니가 응급실로 들어옵니다. 응급 처치를 거듭한 끝에 심장이 다시 뛰어서 중환자실로 올라가요.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같은 날 비슷한 시간에 젊은 배우가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보게 되죠. 누구는 아흔이 넘어 다시 심장이 뛰고, 누구는 훨씬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한 하루. 재테크 책의 문이 이런 장면으로 열릴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 시절 얘기도 담담하게 나와요. 네 식구가 열 평대 방 두 칸 집에 살았고, 옥상 물탱크가 터지면 양동이로 물을 받았대요. 바닥이 다 젖으면 가족들과 찜질방에서 며칠을 지냈다고 하고요. 그래서 지금도 집을 볼 때 누수에 굉장히 예민하다는 한 줄에서, 이 사람이 집 얘기에 왜 그렇게 진심인지 조금 알 것 같았어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무렵엔 세 식구가 원룸에 살았는데, 아기가 잠들면 불을 다 끄고 스탠드 조명 하나에 의지해 밥을 먹었다고 하더군요.


이 책만의 색깔이 제일 진하게 느껴진 건 3부 '우리가 주식으로 돈을 잃는 이유'였습니다. 27억을 만든 사람이 자기 손실을 이렇게 숨김없이 꺼내놓을 줄은 몰랐거든요. 2019년에 산 애플 주식이 코로나19 때 -25%까지 빠졌대요. 새벽 세 시 구급 출동을 다녀와 센터에서 그 하락을 보면서 다시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해요. 2021년에는 재무제표도 안 보고 한 종목에 돈을 넣었는데, 몇 번 수익이 나자 자신감이 붙어 1,000만 원을 넣었답니다. 그 돈이 주식병합까지 겹쳐 10만 원이 됐대요. 신랑도 같은 종목에 넣었다가 똑같이 잃어서, 둘이 합친 손실이 1,980만 원이라고 하고요. 저자는 그 시절을 "참 바보 같았던 과거"라고 부르더라고요.


유튜브만 켜면 '곧 열 배 오를 주식' 같은 영상이 끝없이 뜬다는 얘기에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불과 얼마 전까지 그런 영상을 멍하니 보던 게 제 저녁이었으니까요. 저자는 실패의 이유를 대부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데서 찾는데, 이건 투자 말고 회사 일에도 그대로 들어맞는 말 같습니다.

그다음 이야기는 좀 귀여워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계좌를 만들어 아동수당으로 ETF를 사주다 보니 저절로 적립식 투자를 하게 됐대요. 그러면서 저자가 묻습니다. 2019년에 주식을 처음 접한 엄마와 2022년에 처음 시작한 아이 중 누가 더 좋은 수익을 냈을까. 답은 아이였다고 해요.


투자 방향을 알려준 선생님이 갓난아기였던 셈.

6부로 넘어가면 생활 감각이 확 살아나서 좋았어요. 자녀가 7세 이하일 때는 육아 동선이 중요하다면서 단지 안 놀이터, 상가와 연결된 엘리베이터, 경사형 엘리베이터 같은 시설을 꼽는데, 아이를 직접 키워본 사람이라서 나오는 기준 같더라고요. 소방공무원 시절 선배들이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될 때 쓰려고 육아휴직을 1년쯤 남겨두더라는 이야기도 참 현실적이었고요.


표도 빼곡하게 들어 있습니다. 지금 부부가 모은 돈이 얼마일 때 5년 안에 1억을 만들려면 한 달에 얼마씩 모아야 하는지 칸칸이 나와 있어요. 두 사람이 3,000만 원을 모았다면 부부가 매달 약 117만 원, 각자 59만 원 정도를 저축해야 한다는 식이에요. "가장 중요한 것은 숫자와 친해지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이런 표 앞에서 실감 나더군요.


사실 표가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머릿속 계산기가 살짝 버벅거렸어요. 기준이 주로 사회 초년생과 신혼부부라서 40대 후반 입장에선 조금 먼 동네 얘기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러다 바로 옆에서 첫 내 집 마련 평균 연령이 46.4세라는 통계를 보고 괜히 웃음이 났습니다. 딱 제 나이대 숫자라서요.


저자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대목도 인상적이었어요. 전세 레버리지로 여러 채를 사봤지만 마음이 편안하지는 않았고, 경제적 자유를 위해 시작한 투자인데 오히려 자유와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평택 아파트로 좋은 수익을 내고도 '커넥팅'의 중요성을 다시 깨달았다는 이야기까지, 잘된 투자에서도 배운 걸 챙겨서 꺼내놓는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중년 직장인으로서 가장 크게 반응한 건 에필로그였습니다. 회사는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60세가 되면 나가야 하고 대기업은 40대만 돼도 퇴사 압박을 받는다, 국민연금은 65세부터라 소득 공백이 생긴다. 야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일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다는 문장에서는 쓴웃음이 나더군요.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27억을 만든 이 사람도 처음엔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가 벌벌 떨면서 중개사와 이야기했대요. 전화공포증이 있어서 집 보러 간다는 예약 전화 한 통도 너무 힘들었다고 하고요. 이 고백을 읽고 저자가 확 가깝게 느껴졌어요. "투자는 원래 겁이 나는 일이다"라는 말이 그래서 더 믿음직스럽게 들렸던 거 같아요.


맛보기로 서문의 한 대목을 옮겨볼게요. 보유한 아파트 네 채의 시세가 30억을 넘었을 때 '그래서 나는 이제 정말 부자가 된 걸까?'라는 질문을 마주하고 나서 나온 문장이에요.

"내게 부란 결국 돈의 크기가 아니라, 내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의 크기였다."


이걸 깨닫고 아파트 세 채를 팔아 주식, ETF, 금, 비트코인으로 자산을 나눴다고 해요.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남편과 아들 태준이가 있었다는 이야기로 서문이 이어지고요. 숫자로 가득한 책인데 정작 가장 오래 남는 건 사람 이야기라서 좋았습니다.


<월 200 받던 93년생 간호사가 4년 만에 27억을 만든 방법>은 한 번 읽고 끝낼 책은 아닌 거 같아요. 목차를 보면 통장 쪼개기부터 ETF 고르는 기준, ISA·연금저축·IRP, 입지 분석, 계약할 때 주의할 점까지 순서대로 이어져 있어서 필요한 장만 다시 꺼내 보기 좋겠더라고요. 보통 책보다 두께도 무게감도 제법 있는 편인데, 27억까지는 몰라도 팔 힘은 확실히 붙을 것 같습니다. 표지 띠에 초판 한정 '부토리 시크릿 노트'가 딸려 있다고 적혀 있으니 그것도 챙겨볼 만하고요.


이제 막 첫 월급을 받은 사람에게는 앞길을 미리 비춰주는 책일 거고, 저 같은 아재에게는 늦었다는 생각을 조금 내려놓게 해주는 책이었어요. 프롤로그 끝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느려도 괜찮다. 방향만 제대로 잡는다면 결국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다."

바람이 선선해지는 가을 목요일, 든든한 길잡이 한 권 챙긴 기분이에요. 주말엔 통장 내역부터 한번 들여다보려고요. 지금이 앞으로 살 날 중 가장 젊은 날이라니, 오늘은 그 말 믿어보겠습니다.


27억보다 오래 남는 건, 돈 때문에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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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끝내는 상속과 증여 - 대형 로펌 상속·증여 전문 변호사들이 알려주는 세금 가장 적게 내면서 분쟁 없이 상속하는 방법
양소라.허시원 지음 / 세이코리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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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추석에 꺼내 볼 경제서 양소라/허시원 <한 권으로 끝내는 상속과 증여> 서평

"아파트를 증여해 주면 아버지의 건강과 영혼까지 책임지겠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써 준 각서에 들어 있던 말이에요. 이 정도면 효자 소리 듣고도 남겠다 싶은데, 아버지 A는 각서를 받은 다음 날 아파트 소유권을 넘겨줬고, 아들은 그 뒤로 말을 바꿔 생활비를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과연 A는 아파트를 돌려받을 수 있었을까요. <한 권으로 끝내는 상속과 증여>에 실린 사례인데, 저는 당연히 돌려받겠거니 싶었거든요.


책을 쓴 두 사람은 법무법인(유) 화우의 파트너 변호사예요. 자산분쟁팀장인 양소라 변호사가 1부에서 상속과 분쟁을, 공인회계사이기도 한 조세자문팀장 허시원 변호사가 2부에서 세금을 맡았습니다. 가족끼리 얼굴 붉히는 문제와 세금을 계산하는 문제가 한 권 안에 나란히 들어 있는 셈이에요. 상속이라는 게 원래 그 둘이 붙어 다니는 일이라 그런지, 이 조합이 꽤 든든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두께도 보통 실용서보다 제법 두툼한 편입니다.


개정판 서문에서 눈이 간 건 저자들의 고백 같은 한 문장이었어요. 올해 3월 17일부터 시행된 개정 민법 때문에 미리 준비하려는 자문이 늘어서, 변호사가 된 이래 가장 많은 유언장을 작성한 한 해가 됐다는 거예요. 유류분을 돌려주는 방식이 원물 반환에서 현금 반환으로 바뀌면서, 부동산을 증여받은 사람은 그 부동산을 팔아 유류분을 마련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양도소득세를 내고 유류분까지 주고 나면 손에 남는 돈이 얼마 안 된다는 설명에서, 법이 바뀌면 사람들 고민의 모양도 같이 바뀌는구나 싶었습니다.

반대로 숨통이 트이는 변화도 있습니다. 부모를 부양하거나 재산을 지키고 불리는 데 기여한 대가로 받은 재산은 특별수익에서 빠질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해요.


1부 2장의 첫 꼭지 제목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무슨 일부터 해야 할까?"예요. 갑작스러운 죽음에 어머니도 형제들도 정신이 없고, 장례부터 상속과 세금까지 막막하기만 한 A의 상황으로 시작합니다. 그다음부터는 할 일이 순서대로 나와요. 사망신고는 사망 사실을 안 날로부터 1개월 안에 하고, 기본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는 상세본으로 한꺼번에 수십 통 떼어두라고 해요. 사망신고를 할 때 안심상속 원스톱서비스까지 같이 신청하면 고인의 금융거래, 토지, 자동차, 세금, 연금 가입 여부를 한 번에 조회할 수 있다고요. 은행에 들를 때 잔고증명서에 더해 10년 치 거래 내역까지 미리 떼어두라는 대목은, 현장에서 이런 일을 수없이 겪어본 사람만 해줄 수 있는 말 같았어요.


사망신고 한 번에, 재산 조회까지 한 번에.

제 나이가 되니 이런 목록은 언젠가 꺼내 볼 메모처럼 읽힙니다. 유언이 없고 상속인이 여럿이면 누가 아파트를 갖고 누가 현금을 가질지 정하는 상속재산분할을 거쳐야 한대요. 그 전까지는 모두가 재산을 잠정적으로 함께 가진 상태일 뿐이라는 설명도 이어지고요.


배우자가 없으면 5억 원, 있으면 10억 원 정도면 상속세 신고가 필요 없다는 얘기만 주워듣고 있던 저한테는 괜히 찔리는 문장도 하나 있었어요. "상속재산이 5억 원보다 적더라도 상속세를 내야 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신고기한 안에 신고하면 세액공제 3%를 받고, 놓치면 가산세까지 문다는 설명이 바로 옆에 붙어 있습니다.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맨 앞에서 꺼낸 효도계약서 이야기였어요. A의 재산이라곤 아파트 한 채와 국민연금이 전부였고, 국민연금만으로는 생활비가 모자라 그 아파트로 주택연금을 받을 생각이었대요. 그런데 아파트값이 오르니 지금 증여받아야 세금을 아낀다는 아들의 설득에 결국 마음이 움직였고요. 비슷한 사례에서 법원은 A가 아파트를 돌려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건강과 영혼까지 책임지겠다"는 말만으로는 아들이 어떤 의무를 지는지 불확실하다고 봤대요. 그래서 부담부증여로 인정되지 않았고, 단순증여로 이미 소유권이 넘어간 이상 계약을 해제할 수 없었다는 거예요.


각서에 담긴 말이 크면 클수록 믿음직할 것 같은데, 법 앞에서는 그 크기가 오히려 빈틈이 됐다는 게 씁쓸하더라고요. 저자들은 효도계약서라면 제목부터 '부담부증여계약서'로 쓰라고 해요. 부양료를 매달 얼마 줄지, 병원비는 누가 낼지까지 구체적으로 적고, 약속을 어기면 계약을 해제하고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내용도 넣으라고요. 작성 예시에는 매달 부양료 300만 원, 해제 통보 후 1주일 안에 반환, 반환이 늦어지면 하루 10만 원씩 지급한다는 조항까지 들어 있습니다. 효도를 계약서로 받는다는 게 처음엔 좀 서글프게 들렸어요. 그런데 예시를 보고 나니 이게 부모 쪽의 마지막 안전장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려주기 전에, 나부터.

바로 뒤에 붙은 새 항목 "고령화 시대, 자산승계도 좋지만 나를 위한 케어도 필요하다"는 이 이야기와 한 줄로 이어지는 느낌이에요. 이론상으로는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다지만, 80대 노인이 되어 변호사를 찾아가 자녀를 상대로 소송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성년후견도 자녀 중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법원이 전문가 후견인을 선임하고 보수까지 지급해야 한다고 해요. 그래서 믿을 만한 금융기관에 유언대용신탁을 해두는 경우가 늘고 있대요. 치매에 걸리면 신탁관리인이 병원비와 요양비, 생활비 용도로만 돈을 꺼낼 수 있게 묶어두는 설계라고 합니다.


임의후견계약서에 최고 등급 요양병원에 가야 하고 간병인 3명이 8시간씩 교대해야 한다고 적어둔 고객 이야기도 나와요.


"누구나 나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 짧은 문장으로 꼭지가 닫힙니다.

부모님 세대를 떠올리며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제 노후 쪽으로도 눈이 가더군요. 물려주는 이야기인 줄 알았던 책이 지키는 이야기도 함께 하고 있었던 거죠.


<한 권으로 끝내는 상속과 증여>의 2부로 넘어가면 분위기가 숫자 쪽으로 확 바뀝니다. 제목부터 궁금했던 꼭지는 "며느리나 사위에게 증여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였어요. 며느리나 사위는 법정상속인이 아니라서 상속세 과세가액에 합산되는 기간이 5년이고, 자녀는 10년이라는 차이가 있대요. 여기에 누진세율까지 겹치면 계산이 달라져요. 20억 원을 자녀 한 명에게 몰아주면 증여세가 6억 4000만 원인데, 자녀 부부에게 10억 원씩 나누면 합쳐서 4억 8000만 원이 된다고 합니다. 다만 사위나 며느리는 1촌 인척이라 증여재산공제가 1000만 원뿐이니, 공제와 과거 증여까지 같이 따져보라는 단서가 붙어요. 명절마다 사위를 백년손님으로 모시는 데는 세법적인 이유도 있었던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주변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절세 비법이 등장하는 대목도 있어요. 다주택자인 A가 시가 5억 원쯤 되는 아파트를 팔려는데, 지인이 조언을 합니다. 아내에게 증여한 다음 아내가 곧바로 팔면 증여세도 양도소득세도 안 낸다는 거예요. 배우자 증여공제 6억 원이면 증여세가 없고, 증여 당시 시가가 취득가가 되니 양도차익도 거의 없다는 계산이었죠. 책의 답은 짧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인의 조언은 틀렸다."


소득세법은 10년 안에 배우자나 직계존비속에게 증여받은 부동산을 팔면, 취득가를 증여받은 가격이 아니라 증여한 사람이 예전에 산 가격으로 본다고 해요. A가 그 아파트를 2억 원에 샀다면 아내는 양도차익 3억 원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해요. 아파트를 증여하면서 쓴 5억 원만큼의 증여재산공제도 10년 동안 다시 쓸 수 없게 되고요. 책은 이 상황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결과적으로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만 있는 셈이다." 증여 뒤에 이혼을 해도 이 특례가 적용되고,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만 예외라고 해요. 거기까지 읽고 나니 세법이 사람들 꼼수를 꽤 오래 지켜봐 왔구나 싶었어요.


솔직히 걸렸던 건 숫자에 약한 제 쪽이었어요. 괄호 안에 괄호가 들어간 누진세율 계산식은 한 줄씩 짚어가며 따라가야 했고, 대습상속이나 특별수익 같은 용어도 처음엔 입에 잘 붙지 않더군요. 그래도 꼭지마다 A의 사연을 먼저 꺼내놓고 시작하니, 낯선 말들도 사람 이야기에 얹혀서 따라오는 편이었습니다.


<한 권으로 끝내는 상속과 증여>는 한 번 읽고 치우는 책은 아닌 거 같아요. 서문을 보면 가업상속공제 쪽에도 큰 제도 변화가 예고돼 있다고 해요. 그러니 책장 잘 보이는 자리에 꽂아두고, 집안에 일이 생겼을 때나 내 노후를 그려볼 때 다시 펼쳐 볼 책에 가깝습니다. 제 또래라면 부모님 쪽과 내 쪽을 번갈아 보게 되는 책이라 더 반가울 것 같고요. 읽는 내내 몰랐던 걸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목요일, 바람 끝이 제법 가을답네요. 이 책을 명절 선물로 돌렸다가는 받는 쪽에서 무슨 뜻이냐고 되물을 것 같아서, 그건 조용히 참아보겠습니다. 미리 알아두면 싸울 일이 줄어든다는 걸 배우고 나니 마음 한쪽이 한결 든든해요. 다들 보름달처럼 둥글고 넉넉한 한가위 보내세요.


"건강과 영혼까지 책임지겠다"는 각서도 지켜주지 못한 집 한 채, 바뀐 상속법과 세금 앞에서 부모와 나를 함께 지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든든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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