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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프렌즈 나가사키·사가 - 최고의 휴가를 위한 스마트 가이드북, 2027~2028년 최신판 ㅣ 베스트 프렌즈 시리즈 13
운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6년 9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가볍게 들고 가서 깊게 보고 오는 규슈 소도시, <베스트 프렌즈 나가사키·사가> 서평
나가사키 짬뽕이 하나도 안 맵다는 거, 알고 계셨어요?
저는 여태 하얀 국물에 고춧가루가 살짝 도는 음식쯤으로 막연히 그려왔거든요. 그런데 <베스트 프렌즈 나가사키·사가>를 펼쳐 보니 한국 짬뽕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고 매운맛은 거의 없다고 적혀 있더라고요. 오래 알고 지낸 줄 알았던 음식이 알고 보니 초면이었던 셈이라 혼자 웃었습니다.
표지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에요. 크림빛 노란 바탕에 둥근 창처럼 오려낸 사진이 있고, 그 안으로 별무늬가 찍힌 주황색 노면전차가 들어오고 있어요. 위쪽에는 '알차다', '편하다', '가볍다'라고 적힌 말풍선 세 개가 줄줄이 달려 있고요. 판형이 손에 쏙 들어오고 두께도 보통 여행 가이드북보다 한결 날씬해서, 가방에 넣어도 어깨가 항의할 일은 없을 것 같더군요. 중앙북스 베스트 프렌즈 시리즈의 열세 번째 책입니다. 글은 오래된 성터와 골목을 따라 걸으며 기록한다는 역사여행작가 운민이 썼습니다.
날씬하다고 속까지 가벼운 건 아니에요. 나가사키현에서는 나가사키시, 사세보, 히라도, 운젠, 시마바라를 다루고, 사가현에서는 사가시, 우레시노, 다케오, 가라쓰, 이마리, 아리타를 다뤄요. 도시만 열한 곳입니다.

읽다 보면 이 책은 음식 이야기를 할 때 꼭 역사를 한 숟갈 같이 떠 주는 버릇이 있는 거 같아요.
카스텔라만 해도 그래요. 뿌리는 16세기 중반 포르투갈 상인과 선교사가 들여온 서양 과자이고, 당시 일본에서는 그들을 '남만인'이라 불렀다고 하네요. 카스텔라라는 이름도 포르투갈어로 카스티야 왕국을 뜻하는 말에서 왔다고 알려져 있대요. 나가사키 장인들이 물엿을 넣어 촉촉하게 만들고 바닥에 굵은 설탕 알갱이를 남겨 사각거리게 했다는 대목에서는 입안에서 그 소리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재미있었던 건 후쿠사야, 분메이도, 쇼오켄 세 집을 단맛, 촉촉함, 설탕 알갱이 식감으로 나눠 별점을 매긴 표였어요. 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이런 주석이 붙어 있더군요.
"별점은 제품의 우열이 아니라 대표 제품의 맛과 식감을 이해하기 위한 상대적인 기준이다."
해마다 평가 시즌이면 등급표 앞에서 작아지는 직장인이라 그런지, 이 문장이 카스텔라보다 더 달게 느껴졌어요. 어디가 제일인지 줄 세우지 않고 제 입맛을 찾아보라는 쪽이라 마음이 편했습니다.

짬뽕으로 넘어가면 이야기에서 사람 냄새가 조금 더 납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나가사키에 머물던 중국인 유학생들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대요. 이들이 싸고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고민하다 나온 게 짬뽕이라고 하더군요. 식당 소개에 나오는 시카이로가 바로 그 발상지인데, 1899년 푸젠성 출신 진평순이 문을 연 곳이라고 해요.
월급날을 앞둔 주에 점심 메뉴판 앞에서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리는 마음이 그 시절 유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겠구나 싶었어요.
"한 그릇 안에 바다와 육지의 재료가 함께 들어가는 셈이다."
돼지 뼈와 닭 뼈로 우린 국물에 양배추, 숙주, 어묵, 오징어, 새우, 조개까지. 문장 하나에 그릇이 통째로 그려지는 느낌이 듭니다. 국물을 먼저 맛보고 나서 후추나 고추기름을 조금 더하라는 팁이 있고, 굵은 면이 국물을 빨리 먹으니 뜨거울 때 먹으라는 당부도 있어요. 그대로 따라 해 보고 싶어지더라고요. 현지 마트에서 사 올 만한 컵면과 봉지 짬뽕까지 사진으로 소개하니, 다녀와서도 한동안 짬뽕 생활이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군함도 꼭지였어요.
정식 이름은 하시마인데, 멀리서 보면 군함처럼 생겨서 그렇게 불렸다고 해요. 한때는 좁은 섬 위에 고층 콘크리트 아파트와 학교, 병원, 영화관까지 들어섰던 탄광 도시였대요. 그 뒤편에 조선인과 중국인 강제 동원의 역사가 남아 있다는 것도 책은 에두르지 않고 말하더군요.

"세계유산이라는 화려한 이름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아래에 놓인 노동과 수탈, 식민지 역사를 함께 읽어야 한다."
여행 가이드북이니 풍경 사진 한 장에 투어 시간표 정도로 넘어가도 이상할 게 없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점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역사여행작가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닌 것 같아요. 이어지는 투어 안내는 차분하고 실용적이에요. 날씨와 파도가 가장 큰 변수라서 날이 괜찮아 보여도 상륙을 못 할 수 있으니, 일정 마지막 날보다는 여유 있는 날에 넣으라고 권하더라고요. 상륙하더라도 정해진 견학로로만 다닐 수 있다는 것까지 미리 알려주니, 가서 서운해할 일은 줄어들 것 같습니다.
사가의 먹거리 장은 첫 문장부터 결이 달라요.
"사가현은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좋은 재료가 가진 매력을 알려주는 미식 여행지다."
회사에도 이런 사람이 꼭 한 명씩 있잖아요. 회의 때는 말수가 적은데 막상 일을 맡기면 제 몫을 조용히 해내는 사람이요. 사가가 딱 그런 동네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부드러운 사가규, 우레시노 온천수로 끓여 국물이 뽀얗게 변한다는 온천두부, 회로 먹고 남은 다리와 몸통을 튀김이나 구이로 한 번 더 즐긴다는 요부코 오징어. 시시리안 라이스는 이름은 시칠리아를 떠올리게 하는데 정작 사가에서 태어난 양식풍 메뉴래요. 나가사키의 도루코라이스도 이름은 '튀르키예 라이스'인데 튀르키예 요리와는 별 상관이 없다고 해서 피식하게 되더군요. 이 동네 사람들은 이름 짓는 데 장난기가 좀 있는 모양입니다.
우레시노 온천 꼭지는 읽는 것만으로 어깨가 조금 내려가는 느낌이었어요. 일본 3대 미인탕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물에 몸을 담그면 피부에 닿는 감촉이 실크처럼 부드럽다고 하네요. 탕에 너무 오래 있기보다 짧게 여러 번 나눠 들어가라는 팁은, 사우나에서 누가 오래 버티나 시합하던 우리 또래 아재들이 새겨들을 말 같습니다.
온천 거리 주변도 알차게 채워져 있어요. 도요타마히메 신사는 '미인의 신사'라는 별명이 있대요. 이곳에서는 메기를 여신의 사자로 여겨, 흰 도자기 메기상에 온천물을 끼얹으며 피부 건강을 빈다고 합니다. 수령 약 800년으로 알려진 녹나무가 입구에 선 즈이코지도 있고, 돌로 만든 긴 족욕 공간에 온천수가 흐르는 시볼트 족욕탕도 소개돼요. 다케이와 전망대 설명에는 당부가 하나 붙어 있어요. 올라가는 산길이 좁고 굽은 구간이 많으니, 일본에서 렌터카를 처음 모는 여행자는 되도록 낮에 도도로키 폭포 쪽에서 올라가라고요. 이런 한 줄이 길 위에서 여행을 구해 주는 문장 같더라고요.
우레시노 녹차 소개는 이렇게 끝나요.
"우레시노 온천과 함께 즐기면 몸은 온천으로 풀고 마음은 차 향으로 쉬어가는 듯한 힐링의 시간이 된다."

온천두부 한 그릇으로 꽉 찬 하루를 마무리하자는 대목까지 이어 읽으면 우레시노에서의 하루 일정이 저절로 짜이는 기분이에요. 키워드 페이지에는 아리타가 일본 최초의 자기 생산지로 소개돼 있어요. 현 이름이 사가라 그런지 녹차든 도자기든 자꾸 뭘 사 가지고 오고 싶어지더군요.
솔직히 걸렸던 건 제 쪽 사정이에요. '달라진 일본 여행' 꼭지에 따르면 일본의 캐시리스 결제 비율이 2025년에 58.0%까지 올라갔대요. 페이페이나 알리페이플러스 제휴 가맹점이라면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도 쓸 수 있다고 하고요. 동전 지갑부터 챙기던 아재 입장에서는 반가우면서도 살짝 긴장되는 소식이었습니다. 다행히 결제 순서가 앱 화면 그림과 함께 차근차근 나와 있어요. 페이페이 로고가 붙어 있어도 모든 매장에서 한국 간편결제가 되는 건 아니라는 주의사항과, 점원에게 물어볼 일본어 한 문장까지 챙겨 주고요. 요부코, 히라도, 운젠, 우레시노 같은 작은 동네에는 여전히 현금만 받는 곳이 있으니 1,000엔권과 동전을 준비하라는 얘기에는 괜히 안심이 됐어요.
<베스트 프렌즈 나가사키·사가>는 정가 15,000원이고, 지역별 상세 지도와 나가사키 노면전차 노선도까지 책 속에 들어 있어요. 떠나기 전에 한 번, 가서 또 한 번 펼쳐 볼 책이라 여행 가방 앞주머니에 넣어 두면 딱 좋을 크기입니다. 이름처럼 옆에 두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친구 같은 책이에요.

벌써 9월도 끝자락이라 아침저녁 바람이 제법 선선해졌어요. 키워드 페이지를 보면 매년 가을 사가평야 하늘에 열기구가 수없이 떠오른다는데, 딱 요즘 계절에 어울리는 그림 같아요.
오늘은 금요일이니 온천두부는 못 끓여도 따끈한 녹차 한 잔은 우려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든든한 여행 친구 하나 사귄 기분이라 좋네요. 다들 선선하고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안 매운 짬뽕 한 그릇에서 시작해 군함도의 아픈 역사와 우레시노 온천두부까지, 가볍게 들고 가서 깊게 보고 올 수 있게 해주는 나가사키·사가 여행 가이드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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