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이후의 인간 - 다가온 변화, 예견된 미래
반병현 지음 / 생능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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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자유롭게 글쓰다

요즘 AI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챗지피티를 사용하고, 거기에서 잠재성을 발견하고, 유료로 전환해서 더 많은 자료를 챗을 통해 알아가면서, 이제 시대는 다시 한번 변했다는 생각을 한다. 일상적인 컴의 사용, 스마트폰의 출현 이후 이제 새로운 변환기를 맞게 되는데,그 시점이 챗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시대가 변하면서, 에이아이는 빠른 시간 내에 급변하고 있다. 어쩌면 몇 년 안에 적어도 십년안에 AI는 ANI를 넘어 AGI로 가고, 더 나아가 ASI로 가는 것이 우리 세대안에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은 얼마나 변할까? 우리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속에서, 급변하는 디지털과 거북이처럼 천천히 변하는 아날로그 속에서, 그 속에서 융합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이 시대의 흐름이,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는 셈이다.

책 20페이지에 나오는 십 여년전의 전문가의 예측과 현재의 상황은 너무 다르다. AI가 실생활에 미치는 영역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얼마나 생각없고 미천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인 셈인데, 그런 우리가 어떻게 몇 년 뒤의 AI세상에 대해 제대로 예측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창의성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창의성, 독창성은 인간에게 내재된 선천적인 특성이 아니다. 경험의 누적, 그리고 경험의 오류. 모든 것은 경험에서 비롯되고, 그 경험에서 창의성과 독창성이 나온다. 그리고 우리는 AI의 경험을 따라갈 수 없다.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데, 현 시대의 인류가 생각하는 독창성과 창의성은 인간보다 AI가 더 잘 구현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사실을 10년 전만해도, 전문가라는 자들도차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인간의 한계가 생각보다 심하다.

생물학적, 화학적으로 인간은 이미 AI나 마찬가지다. 전자의 이동으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결국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은 전기적인 존재이고, 더 넓게 보면 AI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풀지 못한 깨달음이라는 영역이 존재하기에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갖는다. 하지만, 이런 깨달음 조차 이미 전기적인 존재로서 갖게 된 것인 만큼 언젠가 AI가 깨달음을 갖게 되리라는 건 자명하다. 이건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우리는 급변의 시대를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별로 변한 게 없는, 실세계는 별로 변한 게 없어 보이지만, 첨단 분야 속에서는 이미 급변하고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의 블랙미러 처럼 우리 실생활은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이지만,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놀랄만한 세계들이 펼쳐질 것이다. 조만간, 적어도 내가 죽기 전에 블랙미러의 한 편 같은 세상이 펼쳐질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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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을 위한 니체 ㅣ 열다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우르줄라 미헬스 벤츠 엮음, 홍성광 옮김 / 열림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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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자유롭게 글을 쓰다

이 책은 작년에 출간된 니체의 위대한 자유의 개정판이다. 나온 지 일년 밖에 안 된 책을 다시 재개정해서 낸 책이다. 1년 밖에 안 된 책을 재개정하는 건 좀처럼 보기 힘든 경우가 아닐까 싶다.

다시 이 책을 보면서 느낀 점은 그 때와는 다르다. 일단 지금은 ai시대가 됐다. 읽으면서 느낀 점은 앞으로 ai시대에 가장 어울리고 변혁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철학자는 니체라는 사실이다. 니체의 글 속에 있는 도전과 창의, 변혁과 진보는 향후 우리가 ai시대를 살아가는 방향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으로도 니체의 중요성은 커질 것이다.

아포리즘은 항상 장점과 단점을 갖는다. 어리숙한 자에게는 장점이 더 많고, 비판적인 자에게는 단점이 더 많다. 아포리즘이 갖는 치명적인 단점은 명백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때로 아포리즘에 매력을 느낄 때가 있다. 간단히 말하면 편리성 때문이다. 편리성은 얼마나 철학적으로 불쾌하고 편협한 말인가. 철학에 접근하는 자들에게 아포리즘은 가장 쉽게 맛볼 수 있는 독약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아포리즘은 조심해야 하고 신중해야 한다. 긴 글에서, 장문의 글에서, 복잡하고 난해한 글 중에서 뽑아낸 몇 개의 글들이 갖는 강렬함은 그 본연의 글 속에 있을 때 그 가치를 갖는다. 곰에게서 빼낸 웅담은 어디에서도 가치를 인정받지만, 글 중에서 빼낸 글은 본래의 글을 잃으면 발가벗겨진 내 대로에 내팽겨진 사랑스런 연인의 모습이 될 수 있다.

이 책에서 느껴지는 니체의 모습은 한마디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이다. 살 만큼 산 노인이 인생에 대해 논하는 글들같다. 하지만 우리는 니체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죽고, 어떻게 자신의 사상을 치열하게 이루어 냈는지, 그래서 이 시대의 예언자로 등극했는지 알고 있다. 니체가 갖는 사상의 위대성을 세상을 오래산 노철학자의 사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도전하고 고민하게 하고, 자신의 기존 사상을 엎어버릴 만한,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망치로 맞는 것처럼 내 뇌를 내리치는 그 힘이다. 그 힘 때문에 니체가 우리가에 의미가 있는 셈이다. 니체에게서 우리가 바라야 하는 모습의 진정한 원형은 도전과 혁신이다. 현대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불가능을 위해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에너지다. 우주에 존재하는 에너지의 총합은 같지만, 그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보급해 주는 이 시대의 영구기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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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이 답답할 때 부처를 읽는다 - 오늘도 마음이 흔들리는 당신을 위한 지혜의 말들
우뤄취안 지음, 정주은 옮김 / 알토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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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고 자유롭게 쓰다

이 책은 대만의 성엄스님이라는 스님의 말과 그와 관련되어 저자가 자신의 의견을 적은 글이다. 전체적으로 간단히 얘기하면, 책 내용이 책 제목만큼 좋지는 않다. 실망스럽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일단 저자의 불교에 대한 깊이나 삶에 대한 성찰이 깊지 못하다.

원 제목은 108가지 생각전환법이라는 책인데, 이 책을 한국어로 옮기면서 책 제목을 바꿨다. 그런데 이 108가지의 내용은 사실 하나하나가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라, 계속 연결되는 내용들을 나눈 것이다. 결국 전체적으로 보면 몇 개위 주제가 되지도 않는데 그걸 번호를 붙여가며, 책의 볼륨을 키웠다. 왜 이렇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하면 책 볼륨이 늘어나지만, 동일한 내용을 이렇게 나눠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이게 독자를 위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 위주의 책엮음이다. 실망스러운 일이다.

성엄스님이 얼마나 위대한 선승인지는 유감스럽게도 이 책으로 알 수 없다. 일단 이 책의 저자가 스님의 가치를 담을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 책 내용이 진부하고 전체적으로 세상 살이에 대한 자기만의 생각이 있긴 하지만, 이를 불교와 연결시킬만한 불자로서의 깊이는 없다. 결국 이 책으로는 성엄스님이라는 분이 얼마나 훌룡한지 알 수 없다. 오히려 이 책을 통해서 본 성엄스님은 그저 그런 스님에 불과하다. 그만큼 저자의 불교에 대한 깊이와 불자의 삶에 대한 깊이가 불자가 아닌 나보다 더 얕아 보인다. 이건 어떻게 보면 성엄스님에 대한 가치절하일 수도 있겠다. 저자의 생각이 깊지 못하니, 언급되는 인물조차 같이 격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책을 누구나 읽기 쉽게 내는 것과 책의 깊이는 다르다. 쉽고 가볍게 읽으면서도 그 속에 깊이를 담글 수 있다는 말이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수준의 책을 쓴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불필요한 일이다. 보는 사람도 피곤해 진다. 저자는 100권이 넘는 책을 썼다고 한다. 20년 동안 책을 썼다면 일년에 5권, 대략 2개월에 한 권정도 썼다는 얘기다. 그러니 깊이가 있을 수 없다. 인문학서에서 책을 많이 냈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 욕이다. 책을 몇 권 써본 나도, 이런 류의 책은 한 달이면 쓸 수 있다. 하지만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안 쓰는 것일 뿐이다. 책을 많이 내는 게 뭐가 중요한가. 그 깊이가 낮다면 오히려 아니냄만 못하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바라본 성엄스님은 그저 그럼 스님에 불과하다. 내용이 불교의 깊이를 담지 못하니, 보는 내가 민밍하다. 결국 나에게는 이 책이 한 위대한 인물을 깍아내리는 책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결론. 이 책으로 인해 성엄스님은 나에게는 그저 그런 평범한 스님에 불과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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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예찬
스테파니 오셰 지음, 이소영 옮김 / 마음의숲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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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고, 자유롭게 쓰다


사랑스러운 책이다.

저자의 고양이에 대한 사랑을 알 수 있다. 말 그대로 예찬이다. 내가 캐우는 고양이가 때로 섭섭할 때가 있는데, 모든 사람이, 모든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라 생각하니 맘이 편하다.

책 내용은 간단한 에세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고양이에 대한 에세이지만, 경험이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문학에 연관되어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러다 보니 재미보다는 뭔가 문학에 더 친숙해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경수필보다는 중수필에 가깝지 않을까? 어찌 보면 논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프랑스사람이다보니 프랑스 문학이 주가 될 수 밖에 없는데, 우리가 아는 프랑스 문학이 얼마나 한정되어 있는가. 그러다보니여기에서 언급되는 문학의 대부분은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다. 아니 나만 모르는 것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 소개된 프랑스문학은 우리가 익히 아는 것 외에는 극히 한정적으로 소개되었을 것이기에,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가 나차럼 어느 정도의 거리를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유일하지만 큰 약점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문학이 인용되는데, 그 중 들어보거나 읽어본 책은 너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 몰입감을 느끼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를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고양이에 대한 좋은 책이라 볼 수 있다. 저자의 문학적 소질도 보이고, 번역자의 솜씨도 좋아, 글이 술술 익힌다. 글을 풀어가는 필력이 좋으니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 책이 조금은 즐겁게 볼 수 있는 수준이 된다. 특히 첫 챕터가 제일 좋았다. 제일 좋기 때문에 앞에 나온 걸수도 있겠다.책도 그리 길지 않으니 천천히 읽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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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품은 미술관 - 예술가들이 바라본 하늘과 천문학 이야기
파스칼 드튀랑 지음, 김희라 옮김 / 미술문화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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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자유롭게 쓰다

재미있는 책이다.

재미있는 책은 소재가 참신하거나, 필력이 좋거나, 볼거리가 풍부할 때 가능하다. 이 책은 소재가 참신하다. 그리고 내용도 상당히 좋다. 상당한 시간을 갖고, 다양한 자료를 찾아가면서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저자의 수고가 보인다. 한국에서는 찾기 힘든 다양한 정보들과 자료들을 볼 수 있다. 이런 책들을 보면 주로 유명한 책의 번역이 주가 되는 우리 나라의 번역 시장이 얼마나 협소하고 편중적인지 알 수 있다. 제대로 된 공부를 하려면, 더 많은 자료의 습득을 위해 영어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뭏튼 이 책은 다양한 자료로 보는 재미, 읽는 재미가 있다. 약간 번역의 맛이 어색하긴 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내용을 읽기에는 그렇게 문제가 없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우주와 관련되 다양한 미술작품을 보는 맛이 상당하다. 소재가 참신하고 필력도 괜찮고, 볼거리도 풍부하니, 전체적으로 옆에 두고 차근차근히 계속해서 보고 싶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우주와 관련된 수많은 나라들의 수많은 정보와 자료들을 통해 어떻게 보면 천문학의 역사에 대한 개론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니 천문학 역사서라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림으로 표현되는 그 당시의 문화를 보면서 인간의 이해의 폭과 깊이, 그리고 점점 더 깊어가는 하늘과 별에 대한 인식의 바다를 보면서, 우주가 더 가까이 더 깊숙히 우리 주위에 다가오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우주 속에 살아가고 있다. 우주를 바라보지만, 결국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셈이다. 대칭적인 우주가 아니라, 일인칭적인 우주. 그 속에서 우리는 더 자유로운 존재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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