ㅋㅋㅋ
꺄아억
꺄아아ㅡ아악
꺙악
꺅❗️❗️❗️❗️❗️❗️❗️❗️❗️❗️❗️❗️






이렇게 왕비 셰에라자드는 꼽추의 죽음이 야기한 일련의 이야기들을 모두 끝냈다. 그리고 날이 밝기 시작했으므로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동생 디나르자드는 언니가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
「언니! 이 이야기는 그 예상 밖의 결말 때문에 더욱 매력적이었어요! 나는 꼽추가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했거든요.」
「나도 이 극적인 반전이 매우 유쾌했소.」 샤리아가 말했다. 「이발사의 형제들의 이야기들도 재미있었고….」
「바그다드의 절름발이 청년 이야기는 정말로 웃겼어요!」 디나르자드가 다시 말했다.
「디나르자드야! 네가 즐거웠다니 나도 몹시 기쁘구나.」 왕비가 말했다. 「그리고 폐하! 다행히 폐하께서도 제 이야기를 지루하게 여기지 않으셨다니 말씀드리겠습니다. 폐하께서 다시 한 번 제 목숨을 연장해 주신다면, 내일 아불하산 알리 이븐 베카르와 칼리프 하룬알라시드의 총비(寵妃) 솀셀니하르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사옵니다. 이 이야기는 꼽추의 것만큼이나 폐하께서 들으실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이옵니다.」
인도의 술탄은 지금까지 셰에라자드가 들려준 이야기들에 지극히 만족했던 터라, 그녀가 약속하는 이야기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는 아침 기도와 어전 회의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하지만 왕비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는 자신의 속내는 결코 드러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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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 - 문학적 우정을 찾아서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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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개더러워)

(근데 이게 치운 겁니다ㅋ)




안녕하세요? 고란고란

읽는 건 대충하고 쓰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고라니입니다.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했는데

대출한 날 읽다 보니까

너무도 술술... 잘 읽힌 나머지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책이나 끝내버린 고라니입니다.


........


성별을 떠나서 읽기 좋았던 책인데요.

아 물론 요즘은 저와 다른 생각을 하는 분이 계실 거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ㅋㅋ

뭐 아무튼


하지만 이 책이 가치가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간 예술사, 문화사, 기타등등 인류사에서

없다시피 소외되었던 여성간의 우정에 조명했기 때문!! 입니다.


추천사를 쓴 김하나 또한

"여자들에게도 우정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하지요

ㅋㅋㅋ

(실화냐? 누구냐? 그럼 동성애만 하겠냐? 미쳤나 진짜...)


그리고 주류 콘텐츠를 보면 여자들은 우정과 연대보다는

서로를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헐뜯으며 깎아내리고

괜찮은 남자의 눈에 들어서 시집 잘 가서 팔자 펴고자 하는

그런 존재인 것 같기도 해요

나이가 많으면 이런 존재도 못 되고요(ㅋㅋ)

으하하학


그래서 이 책에 실린 여자들간의 우정이 너무 대단하고 부러웠다네용.

특히 질투하고 시기하고 때로는 소원해졌다가도

결국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치열하게 발전해나가는

그런... 친구를 오랫동안 둘 수 있는 인품 자체가...

이것 또한 대단하고 부러웟도다.


하지만 인상깊었던 것은...

역시 버지니아 울프의 남편인 레너드 울프입니다.

여자가 득실득실한 책에서

또!!! 남자만 봐서 죄송합니다 비남성 동지 여러분.

하지만 제 이야길 들어 보십시오.

보통 비슷한 일에 종사하는데 아내의 재능이나 성과가 더 뛰어나면

...

그걸 못 견디는 남성 동지가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레너드 울프는

애초에 버지니아의 지성에 반한 데다가

집안도 비벼볼 만한 레벨이 아니어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그는 정말 여성의 진정한 동지이자

그 자신도 개쌉상남자였던 걸까요

본인도 여러 일을 하고 글도 썼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남편으로만 알려져도 괜찮다.

이렇게 생각했다니...


요즘 원고를 쓰면서

최강서포터가 진짜 필요하다 (보통 아내라는 이름이기도 해요)

이런 걸 느끼고 있는데요

그런 와중에 남자가 같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를 지원한...

레너드 울프의 상남자력에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


그래서 여성의 지성에 매료된 남자...

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 되네요.

(개인적으로 결혼의지 다지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레너드 울프 얘길 알고는 있었는데

책 뒤에 나오는 다이앤 아버스의 남편...을 보면

하... 이사람도

남자 오조오억명이 거친 전철을 밟습니다.

(개인적으로 비혼의지 다지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내가 더 뛰어나자 질투하고 시기하고 기죽고 결국 아내 말고 딴여자 만나고 이혼엔딩ㅋㅋ


레너드 울프를 본받으십시오!!!

김향안 같은 와이프를 원하지 말고

본인이 먼저 레너드 울프를 본받으세요!!

아오 진짜 개짱나서...


근데 제가 뭐...

사실ㅋㅋ

레너드 울프, 김향안급 서포터가 될 의향은 진짜 하나도 없고요ㅋㅋㅋ

그보다는 이 책에서 주로 다룬

여성 예술가/직업인 사이의 우정...

...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주변에 창작자가 많고

제 대학 동기들이 또 전공을 살려서 취업해서,

현장에서 많이 일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그분들은.......태반이 동성입니다.

이 책과도 같죠ㅋㅋ


그래서 내가 내 소중한 친구들에게

어떤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없느니만 못한 친구는 안 될 수 있을까ㅋㅋ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여자로서 이런 게 여자끼리만 가능다는 게 날 울적하게 함.

울적.

(성별 이분법 ㅈㅅ 하지만 이해를 수월하게 하기 위하여...)

남자와 여자가 되면

1. 남자가 여자를 뮤즈로만 둠.

2. 남자가 여자의 재능을 죽임.

3. 남자가 여자를 서포터로만 씀.

4. 남자가 여자의 뛰어난 재능과 결실을 못 견뎌서 파국엔딩남.

아니 남성 동지 여러분.

여자를 여자로 보지 말고 동등한 인간 존재자로 봐 주십시오?


ㅋㅋ 그럼

저는 위의 일을 피하기 위해

오늘도 비연애 비혼 의지를 다지며

원고나 하러 가겠습니다...


남성 동지 여러분

여자를 동지와 동등한 인간 존재자로 보십시오

그리고 동등한 직업인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저는 남성이 저품질 인간성을 가져서

아~ 고차원생물인 여자랑 말이 안 통하네~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고

사회가 님들을 버려놧다고 생각합니다.

빠져나오십시오.





참고로 깨우침은 셀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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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12-01 18: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도 개웃긴 고라니님 리뷰
버지니아 울프 남편이ㄹㅇ상남자네요
멀쩡한 손가락가지고 난리치는 그들이 버지니아 울프 남편같은 정상남이 될 수 있을지.. 요원하다 요원해..

책식동물 2023-12-04 13:52   좋아요 1 | URL
에휴그러니까여 사실 레너드 울프의 행동을 여자가 햇다 치면 또 막 글케까진 유별나지 않으니까요..........

잠자냥 2023-12-01 21: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로판 쓰지 말고 개그를 쓰는 건 어떨지?!

책식동물 2023-12-04 13:52   좋아요 2 | URL
그럼 한국로판계의 좟나큰손실이...되지않을까요? ㅋㅋ 농담♡
 

아니.

제가 밑줄 긋기 해서 잔뜩 올렸는데

이틀에 나눠서 올렸더니

앞부분이 안 됐더라고요?

...

그래서 추가합니다.





-이하 인용-

그러나 모두가 선망하고 우러르는 화려한 삶은 아닐지라도, 이 여덟 여주인공에게는 각자 꿈꾸는 삶, 남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해도 포기할 수 없는 깊은 욕망이 있다. 그 꿈 때문에 때로는 사회로부터 잔혹하게 처벌받는다 하더라도, 나는 타협하고 순응하기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제 갈 길을 가는?때로는 그 끝이 낭떠러지일지라도?이 여자들에게 매혹되었다. 세상의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여성상에서 조금씩은 어긋나지만, 그 틀에 굳이 자신을 맞추려고 애쓰지도 않는 이 여주인공들은 가끔은 어리석고 심지어 사악하기도 하지만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고전의 여주인공들이라니, 말만 들어도 곰팡내가 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긴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칼날처럼 날카롭게 번득이는 이들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썼다. - P8

책은 양날의 검과 같다. 책을 통해 여자들은 다른 세계를 꿈꾸고, 내면의 허락받지 못할 욕망을 발견하고, 이런 욕망과 경험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구했다. - P10

드레스가 오랫동안 중국의 전족이나 카렌족의 목 고리처럼 여성의 행동을 억압하고 일정한 성 역할을 강요하는 데 이용되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드레스는 여성들의 저항 수단이자 세상에 맞서는 전투복이기도 했다. 폭 넓은 크리놀린 드레스는 움직임에 제약을 가했지만, 원치 않는 남자들의 집적대는 손길을 막아주었고 임신으로 불룩해진 배를 가리는 데에도 유용했다. 미셸 푸코의 말처럼, 권력이 있는 곳에 언제나 저항이 있다. 드레스는 단순히 한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없다. - P13

영어에 "be in somebody’s shoes"라는 표현이 있다. "(상상으로) 남의 처지가 되어보다"라는 뜻이다. 문학은 남의 신발을 살짝 신어보듯 ‘내가 만약 저 사람이라면’ 하고 가정하며 타인의 처지에 자신을 대입해보는 경험이다. 소설 읽기를 통해 우리는 다른 삶의 가능성들을 상상해보고 내가 겪어보지 않은 타인의 경험에 공감할 수 있다. 그렇게 타인을 나의 세계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나의 세계의 지평이 확장된다. - P15

허구는 현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항상 현실을 초과한다. - P22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곤 하지만 마음의 양식도 잘못 먹으면 탈이 난다. 아름다운 귀부인들과 매력적인 신사들이 나오는 로맨스물은, 책이 아니었더라면 시골 중산층의 좁고 얕은 세계에 만족하며 살았을 이 상상력 풍부한 소녀에게 다른 세상을 보는 눈을 주었다. 소설 속 세계에 비하면 현실의 인간들은 얼마나 한심하고 지겨우며, 일상은 또 얼마나 밋밋하고 단조로운가. - P25

문제는 때로 책에서의 이러한 감정들은 실제 삶에서보다 훨씬 더 극적으로 과장되고 부풀려지곤 한다는 점이다. - P27

이 19세기 프랑스 시골구석에서 인생이 소설과 똑같기를 기대하는 새 신부가 느끼는 억울함은 21세기의 우리가 SNS를 돌아다닐 때마다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 것이다. 나만 빼놓고 모두가 신나고 재미있게 살고 있다. 나만 뒤에 남겨놓고 인생이 흘러간다. - P28

이제 서로를 너무나 잘 알아버려서 더는 새로울 것이 없는 때가 오고, 서로에게 싫증이 나면서 에마는 슬프게도 자신이 도망쳐왔던 바로 그 "결혼 생활의 모든 진부함"을 간통 속에서 다시 발견한다. - P35

그가 꿈꾸는 고상하고 낭만적인 감정들과 호사스러운 삶의 조건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 P37

그러나 현실의 어떤 감정도 시간 앞에서 늘 똑같이 생생하고 강렬할 수 없듯이, 물건이 주는 만족감에도 한계 효용이라는 것이 있다. 우울한 기분을 가장 쉽게 잊을 수 있는 수단이 쇼핑이기 때문에 많은 우울증 환자가 쇼핑 중독에 빠지지만, 새로운 물건을 손에 넣은 뒤 느끼는 만족감은 일시적일 뿐이다. 순간의 만족이 지나가면 더욱 공허해진다. 잠시 메워졌던 구멍은 더 크게 입을 벌린다. 끔찍한 권태의 늪에서 빠져나오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에마는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손에 닿는 것은 뭐든지 끌어다 쑤셔넣는다. 환상을 좇기 위해 그가 치러야 했던 대가는 현실의 삶 전체였다. 에마는 자신과 남편, 딸의 인생까지 파멸로 몰아넣는다. - P38

플로베르는 비소를 삼킨 에마가 긴 시간에 걸쳐 처절한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우리가 아무리 천상의 꿈을 꾸어도 지상에 묶인 존재임을 차갑게 드러낸다. - P39

《마담 보바리》가 고발당한 이유는 불륜 묘사가 화끈해서가 아니라, 유부녀의 불륜과 사치라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도덕적으로 단죄하는 권선징악의 시각에서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플로베르는 에마가 파멸해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그에게 공감하지도, 그렇다고 비판하지도 않는 냉정하고 중립적인 관점을 견지한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에마의 꿈과 환멸, 욕망과 좌절을 있는 그대로 정밀하게 묘사할 뿐이다. - P40

친구들의 악평에 정신을 차린 플로베르는 감정을 과장하고 여과 없이 격정적으로 쏟아놓는 낭만주의적 경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를 악물고 그다음 작품인 《마담 보바리》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지웠다. 그는 예술이 작가의 속내를 털어놓는 요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41

문학계는 《마담 보바리》와 더불어 사실주의가 완성되고 자연주의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를 발표한 1857년은 프랑스 혁명과 함께 유럽을 휩쓸었던 낭만주의의 열기가 가시고 사실주의와 자연주의가 새로운 문학 경향으로 부상한 시기였다. 플로베르는 이 두 사조의 교차점 위에 서 있었던 셈이다. 낭만주의 소설에 심취하고 절망, 고독, 죽음 같은 낭만주의 주제에 열광하는 에마의 묘사는 낭만주의에 대한 조롱이고 패러디다. 에마가 연인들과 주고받는 대화에서 잘 드러나는 범속한 현실에 대한 환멸, 진부하고 고루한 도덕과 관습에 대한 비판, 열정과 감성에 대한 찬양은 플로베르가 비판하고자 하는 낭만주의적 관점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플로베르가 불륜에 대해 훈계하려고 이 책을 쓰지 않았듯이, 단순히 낭만주의를 공격하고 비웃으려는 뜻에서 쓴 것도 아니다. 플로베르는 "내가 보바리 부인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친구들에게 불태워버리라는 혹평을 들을 만큼 감상주의로 범벅된 작품 《성 앙투안느의 유혹》을 썼던 낭만주의자가 바로 플로베르였다. 그는 《마담 보바리》를 쓰면서 자기 안의 에마 보바리와 치열하게 싸웠던 것이다. - P41

"날 그냥 내버려둬요!" 아무도 에마처럼 그렇게 살 수는 없지만, 에마의 강렬한 낭만적 환상은 분명 전염성이 있다. 닳아빠진 바람둥이 로돌프도, 소심한 공증인 레옹도, 그를 만나 적어도 한동안은 그가 꾸는 꿈을 같이 꾼다. 그의 꿈속에서 그 꿈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가장 치명적으로 전염된 인물은 에마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에마에게 잊힌 채 그 꿈 바깥의 현실에 홀로 남아 있던 샤를이다. 아내가 탐독하던 로맨스소설 한 권 읽어본 적 없고 아내가 자신과 다른 꿈을 꾸고 있었던 것도 전혀 몰랐던 이 사실주의적인 남자는 아내의 죽음 이후 비로소 비극적인 로맨스의 주인공처럼 사랑 때문에 파멸해간다. - P42

가정교사로 산다는 것은 평생 부초처럼 이 집 저 집 떠돌며, 주인집 가족 사이에 끼지 못하고 하녀들과도 어울리지 못하는 어중간한 처지로 경제적 궁핍과 고독, 고립을 견디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당시 하녀가 연봉 20파운드에 가외 부수입을 받았다고 하니 가정교사는 가방끈만 길었지 하녀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불안정한 노동 조건과 낮은 임금을 감수해야 하는 비정규직 여성의 고단한 현실은 19세기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 P50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데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유일한 무기인 미모나 성적 매력도 없는 제인. 그렇다고 납작 엎드려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기에는 너무 똑똑하고 주체적인 여자. 세상은 제인에게 이 모든 부당함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라고 때로는 타이르고 때로는 윽박지르지만, 어린 제인은 분노로 미친 듯이 날뛰며 악을 쓴다. - P50

개인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천부 인권 개념은 전 유럽 대륙으로 퍼져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 혁명의 사상적 동력이 되었지만, 이러한 권리가 여성, 유색 인종,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는 여전히 허락되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제인의 신념은 프랑스 혁명의 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 P53

리드 숙모는 제인이 자기 눈에 띄지 않게 구석에 처박혀 눈을 내리깔고 있기를 바랐을 것이고, 로체스터는 제인이 자신의 정부가 되어 유럽을 돌며 주인님이 베풀어주는 호사를 즐겨주기만을 바랐을 것이다. 세인트 존이 제인에게 바란 것은 선교사의 부인으로서 자신의 충실한 도구가 되어주는 것이었다. 각자 제인에게 바라는 바는 달랐지만 절대적인 ‘순종’을 원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며, 그들은 제인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 P56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사랑과 자존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는 제인의 삶에서 언제나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제인에게 진정한 사랑은 개인과 개인이 독립된 인격으로서 서로를 동등한 상대로 존중할 때 피어날 수 있는 감정이다. 일체의 사회적·경제적 조건과 상황을 전부 다 무로 돌릴 수 있는 강력하고 절대적인 힘은 아니다. 오히려 사랑의 감정적 힘에 자기 자신을 잃고 쓸려가버리지 않도록 버텨야 한다. 절대적인 구원의 힘으로서의 낭만적 사랑을 갈구하는 쪽은 제인이 아니라 로체스터이다. 그는 타락과 절망 속을 헤매었던 과거를 솔직히 고백하면서 제인만이 자신을 구해줄 유일한 빛이고 희망이라고 호소하지만, 제인은 그의 애절한 호소에도 뜻을 굽히지 않는다. 재산, 계급, 지위, 미모와 같은 외적 조건과 관계없이 내면의 영혼이 지닌 가치 그 자체만으로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란다는 제인의 소망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실현되지 못한 이상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급진적이다 못해 과격해 보일 지경이다. - P57

그러나 제인에게는 도덕관념 말고도 그의 사랑에 굴복하지 않아야 할 다른 이유가 있다. 사회적으로 고립무원의 처지라 해도, 그는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 다른 누구도 나를 보호하거나 지켜줄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나를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내가 나를 염려한다. 고독할수록, 홀로일수록, 의지할 데 없을수록,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할 거야." - P61

제인은 한 남자에게 경제적·사회적으로 종속되는 것도 모자라 법적 지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정부의 위치로 자신을 낮춘다면, 언젠가는 자신을 사랑한다던 남자도, 심지어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 날이 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P61

사랑은 때로는 가장 위험한 덫이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조차 받아들이게 만든다. 제인은 로체스터와의 사랑이 한창 불타오를 때, "미래의 남편이 나의 전 세계, 아니 세계 이상의 것, 천국의 희망"이 되어 "일식이 인간과 거대한 태양 사이에 가로놓이듯이" 자신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았다고 고백했다. 이 말은 진실한 기독교인으로서의 참회의 고백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눈을 멀게 하는 사랑의 맹목성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결국 제인은 생살을 찢어내는 듯이 아픈 로체스터와의 이별을 감수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누구의 것도 아닌 가난하고 고독한 단독자, ‘제인 에어’로 남기 위해. - P61

《제인 에어》는 게이츠헤드의 "미친 고양이" 제인이 교육과 경험을 통해 교화되고 결국 사회 안에서 타인들에게 인정받으며 안정된 자리를 잡아가는 일종의 성장담이라고도 할 수 있다. - P62

그런 점에서 《제인 에어》는 분명 사랑으로 모든 고난을 극복하는 로맨스의 외피를 쓰고 있으면서도 사랑의 낭만성 뒤에 감추어진 현실적 토대를 무섭도록 냉정하게 드러낸다. 두 사람이 맺어지려면 어떤 식으로든 양쪽 저울 눈금을 맞추기 위해 넘치는 부분을 자르고 모자라는 부분은 보태는 조정이 필요한 것이다. - P70

물론 제인은 그들이 더 바랄 것이 없이 완전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말로 고아 소녀의 외롭고 길었던 여정이 마무리되었음을 전한다. 하지만 단조로운 일상의 갑갑함을 못 이겨 손필드 저택 복도를 하릴없이 오가던 열아홉 살 소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른 세계로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고 싶었던 그의 꿈은? - P71

제인이 로체스터를 사랑하게 된 이유도 그가 신분과 나이, 재산의 격차를 뛰어넘어 자신이 가진 지성과 교양, 문화적 취향을 알아보고 동등한 개인으로 대해주었기 때문이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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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러버 고란이.

이 책을 너무 인상깊게 읽다.

친구한테도 추천했는데 친구도 무척 좋아했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책이 있다는 게...

살까 말까 고민했는데 결국은 샀네욤^-^





-이하 인용-

문학평론가 엘렌 모어스는 "오스틴이 쓴 모든 소설의 첫 번째 문단에는, 특히 그녀의 가장 훌륭한 첫 문장들에는 반드시 돈에 대한 언급이 있다"고 했다.* 오스틴의 소설에 나오는 남자들은 모두 결혼정보업체의 분석 능력 못지않은 섬세함으로 재력을 평가받고 등급이 매겨진다. 그들의 영지와 거기서 나오는 연간 수입뿐 아니라, 예를 들어 목사 후보라면 그에게 교구를 물려줄 목사가 지금 얼마를 벌고 있으며 살날이 대충 얼마 남았는지, 혹은 친척 중 유산을 기대할 만한 노인이 있는지 등, 미래 가치까지 꼼꼼하게 평가 항목에 들어간다. - P83

오스틴의 주인공들은 남자에게 모든 권리가 다 주어지는 사회에서 그들을 지켜줄 든든한 아버지를 두지 못한 힘없는 딸들이다. 이 삭막하고 계산적인 세상에서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길을 찾아야 한다. - P84

남자는 수학을 잘하고 여자는 말을 잘한다는 식으로, 남성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여성은 감성이 풍부하다는 오랜 성차별적 고정관념과 이분법이 존재한다. 이런 관점을 생각하면 ‘감성’에는 기존의 권위에 저항하는 혁명적인 성격보다는, 오히려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보는 기존의 통념에 부합하는 면이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지적 능력과 이성적 판단력이 떨어지는 존재로 흔히 여겨져왔으며, 감정을 못 이겨 히스테리에 빠지거나 쓰러지는 나약한 존재로 그려졌다(그러나 여성들이 툭하면 기절한 것은 연약해서가 아니라 갑옷 같은 코르셋 때문이었다). 엘리너의 이성적인 분별력은 사회적으로 여성의 특성이라고 간주되지 않는 소위 ‘남성적’ 능력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엘리너의 분별심과 이성은 오히려 남성들조차 결여한 자질이다. 윌러비와 에드워드가 감정에 이끌려 실수를 저지르거나 이기심에 사로잡혀 잘못된 행동을 하면 엘리너는 그들의 과오와 약점을 냉정히 판단하고 때로는 따끔하게 일침을 가한다. 이렇게 타인을 도덕적으로 교정해주고 가르침을 전하는 능력은 일반적으로 남성에게 기대되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엘리너의 분별력은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남성들이 여성의 감수성을 이상화하는 경향이 여성을 자기희생적인 노예 상태에 빠뜨리기 때문에 여성에게 이성이 필요하다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를 비롯한 당대 페미니스트들의 주장과도 통하는 것이다. - P91

사랑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불나방처럼 뛰어들기엔 오스틴의 세계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한가로이 모여 무도회나 즐기는 즐겁고 평화로운 곳처럼 보일지 몰라도, 물 위에 떠 있는 백조처럼 다들 물 밑에서는 미친 듯이 발장구를 치고 있다. 매리앤은 언니가 항상 감정을 지나치게 절제한다고 비난하지만, 언니에 비해 내공이 부족한 그가 미처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여성은 자신의 애정을 보답받을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고 실패할 경우 사회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취약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려는 엘리너의 노력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책이다. - P92

하지만 여성을 진지한 교육이 필요한 온전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세계에서 교육이 항상 엘리너와 매리앤에게 실리를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스스로 연마한 공부의 힘으로 그들은 주변의 멍청하고 속물적인 인간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지만, 이 똑똑하고 감수성 예민한 소녀들은 닭장 속의 학 같은 존재다. - P95

매리앤을 보면 첫사랑이 생각난다는 브랜든 대령의 말은 매리앤을 전형적인 감상소설의 여주인공으로 보고 있음을 뜻한다. 매리앤의 자기 파괴적 행동은, 낭만적인 주인공이 자신의 감정을 충실히 따르며 관습에 맞서는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관습을 무시하고 자기감정에만 충실했던 방자한 주인공에 대한 처벌의 의미로 볼 수 있다. 프랑스 철학자 루소는 남성과 여성의 각기 다른 특징은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것, 본질적으로 타고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즐겨 읽었던 감상소설 주인공의 역할을 매리앤이 현실에서 재현하는 모습에서 엿볼 수 있듯이, 과도한 감성이라는 소위 ‘여성적’ 특질은 문화적으로 구성된다. 열혈 여성 독자와 이에 반응하는 주변인들이 소설 속 허구를 현실로 만들고, 이는 역으로 여성은 감성이 과해서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넣는다는 종래의 믿음을 뒷받침한다. 마주 보며 서로를 끝없이 비추는 두 개의 거울처럼 현실과 허구는 서로를 생산하고 강화한다. - P99

오스틴의 아이러니는 삶이 우리가 기대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대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꼭 불행해진다는 것도 아니다. 정열적인 매리앤은 불순한 티 하나 섞이지 않은 완벽한 환희와 완벽한 절망을 추구했지만, 인간은 불완전하고 삶은 우연투성이다. 조금은 씁쓸한 결말일지 몰라도, 살아남아서 불완전한 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또한 다른 방식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불완전한 세계와 어리석고 이기적인 인간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작가 오스틴이 견지해온 자세이기도 하다. 오스틴은 가혹하리만치 날카롭게 인물들의 속물스러움과 어리석음을 폭로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혐오와 경멸로 넘어가진 않는다. - P101

엘리너와 매리앤이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이르게 되는 도덕적 성숙과 결혼이라는 결말은, 여성들의 행동과 선택이 많은 제약을 받는 상황에서 죽거나 절망하지 않고, 루시처럼 자신의 존엄을 버리고 비굴하게 굴복하지도 않은 채 자존을 지키며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성취로서 의미가 있다. 루시가 루시의 방식대로 생존하듯이 엘리너에게는 엘리너의 삶의 방식이 있다. 결국 《이성과 감성》에서 오스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사회적·경제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여성으로서, 냉혹하고 때로는 적대적인 이 세계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운명에 기댄 환상적인 로맨스일 필요는 없고, 남성중심적 가부장제 사회의 관습에 무력하게 짓밟히는 비극일 필요도 없다. 제인 오스틴은 독신 여성 작가로서 자신을 얽어맸던 수많은 현실의 제약을 넘어 여성의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가능성을 내다본다. 그것이 오늘날에도 많은 여성이 오스틴을 읽고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는 힘일지도 모른다. - P102

부자의 아름다운 몸은 때로는 닉의 묘사처럼 ‘잔인한 몸’이기도 하다. 상대가 누구건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하며, 걸리적거리는 것은 그 가공할 힘으로 잔혹하게 파괴한다. - P110

"좋아. 딸이라서 기뻐. 그리고 그 애가 바보가 되면 좋겠어. 이런 세상에서 여자아이는 그렇게 되는 게 최고야. 예쁘고 작은 바보."

자신을 "예쁘고 작은 바보"라고 말하는 여자는 적어도 바보가 아니다. 데이지의 말은 "예쁘고 작은 바보"가 되는 것 외에는 여자에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체념의 표현이면서 그렇게 만드는 ‘이런 세상’에 대한 냉소이다. 데이지는 남편이 대놓고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자기도 알고 친구도 알고 온 세상이 알지만 모른 척한다. 데이지는 순진한 남자를 파멸시키는 팜 파탈이라기보다는 가부장제의 가련한 희생자로 보이기도 한다. 조던은 개츠비가 데이지와 재회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며 닉에게 이렇게 말한다. "데이지한테도 자기 인생이 있어야죠." - P111

개츠비에 대한 톰의 공격은 단순히 자기 아내를 넘보는 외간 남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내려준 자신의 지위와 특권을 수호하려는 백인 상류층 남성의 신성한 성전이다. - P117

개츠비는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복음의 가장 충실한 신도였다. 남이 보기엔 아무리 허황되어도, 실낱같은 희망을 예민하게 포착해내어 악착같이 매달리는 집요하고 무모한 낙관주의야말로 그의 동력이었다. 닉은 개츠비가 "정말 대단한 것"을 갖고 있었다고 평가하는데, 그것은 바로 "1만 마일 밖의 지진까지도 감지하는 정교한 지진계처럼 삶의 희망을 감지해내는 고도의 민감성"이었다. 닉은 미국 역사 초기의 무모한 선조들에겐 있었지만 이제 20세기의 미국인들에게는 흔적기관처럼 희미하게 남은 그 퇴화된 촉수를 개츠비에게서 발견하고 탄복했던 것이다. - P119

둘의 만남을 묘사한 장면을 읽어보면 흥미롭게도 정작 데이지에 대한 묘사는 없고 온통 데이지의 눈부시게 멋진 집에 대한 묘사뿐이다. 데이지는 그토록 중요한 인물인데 작품 전체를 뒤져봐도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 않다. 심지어 데이지의 머리카락 색깔조차 어느 대목에서는 금발, 다른 대목에서는 검은색이라고 하는 식으로 제각각이다. 데이지는 마치 현실의 인물이 아닌 양 애매모호하고 흐릿하다. 데이지는 그를 둘러싼 부유한 환경과 뒤섞여서 구체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존재에 가까워진다. - P121

돈이 부여하는 특권을 이렇게까지 이상화하다니, 개츠비는 어리석은 바보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중 누가 돈의 매력, 돈이 발산하는 신비로운 아우라에 초연할 수 있을까? 요즘 SNS에서 뜨는 많은 인플루언서는 오로지 돈이 많다는 이유 하나로 인기를 얻고 사랑받는다. 물론 화장, 성형, ‘포샵’ 등으로 완벽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외모 자체는 그들의 핵심 경쟁력이 아니다. 노래를 잘 부른다거나 연기를 잘한다거나, 별다른 재능을 보여주지 않아도 추앙받는 이유는 ‘금수저’라는 배경이 뿜어내는 휘황찬란한 후광 덕분이다. - P123

데이지가 무책임하며 이기적인 여자라는 사실은 어떤 식으로도 옹호하기 힘들다. 하지만 개츠비의 사랑도 데이지라는 한 인간 자체에 대한 온전한 마음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데이지가 상징하는 것조차 넘어서는 그 무언가를 향한 열망, 어딘지 모르지만 물질적 욕망이 약속하는 것 이상의 세계로 가고 싶은 열망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P134

닉은 겸허하게 한계를 수용하고 안전한 벽 안에 머무는 평범한 인물이지만, 무용한 시도를 끝내 감행하며 자신을 파멸까지 몰아간 개츠비의 ‘위대함’을 인정한다. 그 시도가 무엇을 위한 것이었건, 그 자체로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고 본다. 닉은 개츠비의 죽음을 홀로 쓸쓸히 아파하면서 사라진 초록색 꿈을 함께 애도한다. 지나가버린 모든 것,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은 아름답다. 잃어버린 첫사랑과 지나간 꿈을 애도할 줄 몰랐던 것이 개츠비의 비극이었을지도 모른다. - P136

성공이 근면 성실함과 노력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우연의 산물이었다는 이러한 엉뚱한 전개는 아메리칸드림에 대한 모독으로 비쳤다. 그리고 ‘자수성가한 사람’은 ‘셀프 메이드 맨’이지 ‘우먼’이 아니다. 전형적인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면 허스트우드가 이에 더 가깝다. 적어도 그는 사고를 치기 전까진 오랫동안 성실하게 일해 고용인들의 신임을 얻고 부를 쌓았다. 그랬던 허스트우드는 뉴욕 거리를 헤매는 노숙자로 전락하고, 캐리는 그를 버리고도 운이 좋아 원하는 것을 다 가진다니. 당대 독자들로서는 용서할 수 없다고 분개할 만도 하다. 그렇지만 노력이 늘 정당한 보상을 받지는 못하며, 성공한 사람 모두가 존경받을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믿고 싶지 않아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드라이저의 진짜 죄목은 모두가 알아도 외면해왔던 추한 진실을 덮은 포장을 걷어치워버린 것이었다. - P155

누구나 캐리처럼 ‘더 나은 삶’을 꿈꾼다. 그런데 ‘더 나은 삶’이란 무엇을 말하는 건지, 어떻게 살아야 더 잘 사는 건지는 애매하다. 소비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상의 가치는 더 비싼 물건을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다.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않듯이, 숨 쉴 때 공기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듯이, 우리는 주변 환경 속에 푹 잠겨 자신이 속한 사회의 가치를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 P157

캐리가 드루에와 허스트우드에게 끌렸던 것은 그들이 캐리가 갖고 싶어 한 물건들을 사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을 자신이 동경하는 더 높은 가치의 세계를 대변하는 대사들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개츠비는 데이지의 부도덕함과 경박함을 끝까지 깨닫지 못했지만, 캐리는 적어도 두 남자가 상징하는 가치들이 자신이 원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캐리가 드루에와 허스트우드를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사회적·경제적으로 훨씬 월등한 위치에 있었지만, 캐리는 그들을 무조건 우러러보거나 복종하지 않았다. 캐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들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더는 그들과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며, 그곳을 벗어나 다른 어딘가를 꿈꾼다. 캐리는 분명 충동과 우연에 휘둘리는 나약한 인간이지만 주체적인 면 또한 갖고 있다. - P159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순진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특권이다. - P165

고르곤이 된 엘렌에게는 ‘오빠만 믿고 따라와’ 식의 맨스플레인이 통하지 않는다. 아처는 엘렌을 사랑하지만, 엘렌과의 몇 차례 짧은 만남은 매번 좋지 않게 끝난다. 엘렌 또한 그를 사랑하면서도 그의 열정에 기대대로 보답해주거나 고분고분 끌려오지 않기 때문에 둘의 만남은 늘 다툼으로 끝나고 아처는 화가 나서 자리를 뜬다. 항상 메이를 리드해왔던 탓에 자기도 미처 몰랐거나 인정하기 싫었던 숨은 속내를 날카롭게 찌르는 엘렌에 당혹을 느끼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도 했을 것이다. 순진한 골짜기의 소년 아처와 달리 넓은 세상을 떠돌며 산전수전 다 겪어본 엘렌은 그가 뭘 몰라서 더 호기롭게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P172

키가 크고 늘씬하며 건강한 운동선수 같은 메이는 활쏘기에 능하다. 단 한 번에 정확히 과녁을 꿰뚫듯이, 메이는 매번 효과적으로 타격을 날려 현실에서 빠져나가려는 아처를 주저앉힌다. 메이는 아처의 믿음대로 연약하고 무지하며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메이는 사회가 요구하는 순수한 여성의 조건을 두루 꿰뚫고 이에 부합하는 여성상을 연기하도록 철저하게 훈련된 인물이다. 그런 메이가 자신의 감정과 신념에 충실한 엘렌보다 많은 제약과 관습에 순응하는 인습적인 여성인 것은 맞지만, 아처가 생각하듯이 상상력과 이해력이 결핍된 인물도 아니다. 아처는 메이가 폐렴으로 죽고 난 후 메이가 엘렌에 대한 남편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위해 엘렌을 포기했음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아들에게서 듣는다. 가슴속 깊이 묻은 아처의 꿈과 욕망을 이해하고 심지어 동정해준 유일한 인물이 아내였던 것이다. - P178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위세를 떨치는 명문가나, 거기에 어떻게든 끼어보려고 기를 쓰는 신흥 졸부나 실은 다 거기서 거기다. 명문가라는 집안들도 유럽 귀족을 흉내 내는 ‘짝퉁’에 불과하다. 이런 진실을 모른 척할 뿐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짝퉁끼리의 진품 흉내 내기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진다. 뉴욕 상류 사회는 귀족의 혈통이나 역사적 전통, 문화적 자산 같은 알맹이가 없으므로 유럽 귀족들보다 더욱 필사적으로 형식과 예법에 집착한다. 귀족이나 신분 제도가 없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세워진 나라가 정작 유럽보다 그런 가치에 집착한다는 점이야말로 아이러니하다. 진품은 굳이 자신이 진품임을 증명할 필요가 없으니까 오히려 자유롭게 파격과 실험을 행하고 선을 넘나들 수 있지만, 가품은 더 악착같이 진품을 한 땀 한 땀 그대로 베껴야 한다. 그래서 가장 ‘순수한’ 여성인 메이가 실제로는 사회의 정교한 관습과 예법에 따라 철저히 훈련된 인물인 것처럼 뉴욕 사회가 표방하는 순수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모순이 생겨난다. - P180

워튼은 한 사회의 성숙도는 원초적인 공포를 대면할 수 있는 능력 수준이라고 보았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지적인 정직성과 용기가 정신적 성숙에 대한 첫 시험이다. 사상의 영역에서 사회가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까지는 그 사회는 도덕적·정신적으로 속박 상태에 있다." 워튼은 경험을 통한 성숙을 두려워하고 ‘불쾌한 것’을 한사코 못 본 척 피하려 하는 도덕적 순수성에 대한 집착이 미국인들을 정신적인 유아 상태에 머물게 만든다고 보았다.* - P182

어느 쪽이든 여성은 남주인공을 나쁜 길로 인도하거나 모험을 떠나도록 자극하는 부수적인 역할에 머문다. 워튼은 이런 익숙한 남성중심적 구도를 비튼다. 두 여자의 관계는 한 남자를 두고 대립하는 전형적인 삼각관계의 구도에서 벗어난다. 남편 곁을 떠나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엘렌은 남자를 유혹하는 전형적인 팜 파탈이 아니며, 남편을 가정에 붙잡아두는 메이 또한 희생적인 성녀가 아니다. 엘렌은 사랑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저버릴 만큼 의리 없고 이기적인 여자가 아니고, 이 유약하고 순진한 온실 속 화초남이 큰소리만 쳤지 자신을 따라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엘렌은 열정이 넘치고 감성이 풍부한 여자이지만 여자들이 사랑에 목숨을 걸고 감정에 쉽게 흔들린다는 고정관념을 따르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쪽은 오히려 바람 불면 흔들리는 갈대 같은 아처다. 메이 또한 어떤 상황에서든 흔들리지 않고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침착하게 냉정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엘렌과 비슷하다. - P186

"엘렌에게 부당하게 대해서 미안하다고 했거든요. 여기 있으면서 친척이지만 낯선 이방인들, 사정도 알지 못하면서 비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틈에서 홀로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해주지 못했어요. (…) 엘렌은 이 말을 하고 싶어 했던 내 심정을 헤아려주더군요. 모든 것을 다 이해했을 거예요." - P188

아처는 엘렌을 현실에서 포기함으로써 엘렌을 가졌다. 그것이 그가 엘렌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엘렌은 그의 이루지 못한 꿈과 몽상 속에서 현실의 인간이 아닌 하나의 추상으로 박제되었으며,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것이 많은 비겁한 남자들이 그들이 가질 자격이 없는 용감하고 아름답고 독특한 여자들을 자기 식대로 소비하는 방식이다. - P188

엘렌을 비참한 상황에서 구해준 것은 아처의 사랑이 아니라 그의 독립적인 정신을 이해하고 존중한 할머니의 지원이었고, ‘못된 여자’로서의 연대였다. - P190

그러나 이 아름다운 화초를 키워낸 세계, 그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주었던 세계가 이제 더는 현실의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에 비극이 있다. - P198

이러한 패배와 쇠락의 음울한 분위기는 남부 문학의 대표 작가인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에 짙게 배어 있다. 남부를 제외한 미국 문화 전반에는 혹독한 패배나 실패, 세상의 어두운 면을 경험해본 적 없는 어린아이의 낙천성과 순진함이 있다. 본토를 공격당한 경험이 역사를 통틀어 9·11 테러밖에 없다는 초강대국 사람들의 인생관이란 하루가 멀다 하고 외적의 침략을 겪어온 신산한 역사를 가진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남부인들의 정서가 더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남부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패배의 역사를 경험한 지역이다. 그리고 그들은 노예제라는 선조의 죄과를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을 굴복시킨 천박한 ‘북부 양키’들을 증오하면서도 이 패배에 자신들의 책임도 있다는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 P201

블랑쉬는 자신이 그렇게밖에는 살아갈 수 없도록 키워진 의존적인 존재, 고향을 잃고 영원히 현실 바깥을 부유하는 아웃사이더임을 잘 알고 있다. 비극의 주인공에게 필수적인 조건은 자기 인식이다. 자기가 어떤 존재이며 왜 몰락할 수밖에 없는지 끝까지 깨닫지 못하는 인물의 몰락은 별 의미가 없다. 윌리엄스는 미쳐버린 블랑쉬에게 이러한 자기 인식을 부여하고, 그가 날뛰다가 구속복이 입혀진 채 강제로 끌려나가는 비참한 모습이 아니라 남부 숙녀답게 우아함과 고고함을 잃지 않은 모습으로 의사가 내민 손을 잡고 떠나게 해준다. 그럼으로써 블랑쉬는 가장 밑바닥까지 추락했어도 끝내 스탠리조차 파괴할 수 없었던 비극적 존엄을 보여준다. - P210

연약함 때문에 죄를 짓는 인물은 블랑쉬만이 아니다. 작품 속 다른 인물들도 어느 정도는 블랑쉬처럼 연약하다. 스텔라는 남편 없이 아이를 데리고 살아갈 자신이 없기 때문에 언니를 배신하며, 미치도 여성의 정숙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고 블랑쉬의 진심을 받아들일 만큼 강한 인간이 못 된다. 블랑쉬의 남편 앨런도 동성애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거부당하자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다. 가장 강해 보이는 마초 스탠리조차 블랑쉬를 그대로 두면 아내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자기 방어 때문에 그를 공격한다. 그는 역설적으로 연약하기 때문에 과도하게 폭력에 기댄다.
그러나 블랑쉬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은 공모하여 블랑쉬를 희생시킴으로써 자기들의 연약함을 감춘다. - P214

그러나 테레즈가 남편의 약에 비소를 섞었던 까닭은 결코 그를 죽이고 싶도록 증오해서가 아니다. 말이 잘 안 통한다는 이유로 배우자를 죽일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기혼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테레즈를 가장 괴롭히는 문제는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본인도 모른다는 것이다. 소나무숲에 화재가 일어나 소란스러웠던 어느 날 문득 남편의 약에 독을 탈 생각이 떠올랐지만, 살인을 계획한 진정한 동기는 스스로도 찾아낼 수가 없다. - P225

테레즈가 행복해질 수 없는 이유는 가정을 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세계에 그를 구원해줄 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P231

드라이저는 시스터 캐리를 타락한 여자라고 단죄하지 않았다. 플로베르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었던 에마가 자신이 낳은 아이가 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절망했으리라는 것을 안다. 이디스 워튼의 양순하고 다소곳한 메이 웰랜드는 아마도 워튼의 어머니가 딸에게 바랐겠지만 그는 될 수 없었던 인물일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예기치 않았던 순간에, 아무 관심도 없었던 타인에게서 나의 숨겨진 얼굴을 언뜻 본다.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서로 만나고, 스쳐 지나가고, 얽힌다. 그 뜻밖의 사건을 가능케 하는 것이 문학이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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口大
왜 이렇게 재밌어

유례를 찾기 힘든 이 비인간적 행위는 도성 전체를 경악하게 했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것은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와 애절한 한탄뿐이었다. 이 집에서는 딸을 잃어 절망한 아비의 흐느낌이 솟아올랐고, 저 집에서는 같은 운명이 딸에게 닥쳐올 것을 예감한 어미가 토하는 신음 소리가 허공에 메아리쳤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술탄에게 쏟아지던 칭송과 축복의 소리는 간데없이 사라졌고, 대신 도성 안에는 술탄에게 퍼붓는 백성의 욕설만이 가득했다.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이 끔직한 불의의 집행자가 된 대재상에게도 두 딸이 있었는데, 맏이의 이름은 셰에라자드이고 둘째의 이름은 디나르자드였다. 둘째 역시 장점이 없지 않은 아가씨였지만 첫째는 여성으로서 보기 드문 용기와 무한한 재치와 경탄스러운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무수한 책을 읽었을 뿐 아니라 기억력 또한 비상하여 한 번 읽은 것은 결코 잊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철학, 의학, 역사, 각종 예술에 능통했으며 당대의 가장 뛰어난 시인들을 능가하는 훌륭한 시를 짓곤 했다. 여기에 뛰어난 미모를 가졌으며, 이 모든 미덕들을 완성하는 왕관과도 같은 견고한 덕성을 지니고 있었다.

샤리아는 방금 들은 이야기에 너무도 매혹되었고 셰에라자드에게도 마음이 녹아 있었던지라, 그녀를 한 달간 살려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 결심을 입 밖에 내지는 않고 평소처럼 몸을 일으켜 나가 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멋진 현관홀을 지나 매우 널찍한 내정으로 들어갔습니다. 내정은 열주(列柱)가 늘어선 회랑으로 빙 둘러싸여 있었으며, 회랑 안쪽으로는 호사스럽기 그지없는 방들이 들여다보였습니다. 내정 안쪽에 있는 작은 사실에는 방의 벽면을 따라서 좌단
[8]
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가운데는 호박(琥珀) 옥좌가 놓여 있었습니다. 엄청나게 굵은 다이아몬드들과 진주들로 장식된 네 개의 흑단 기둥이 떠받치고 있고, 경탄스러운 솜씨로 금실이 수놓인 인도산의 붉은 공단으로 덮인 화려한 옥좌였습니다. 또 내정 중앙에는 커다란 수반이 있었습니다. 가장자리가 흰 대리석으로 된 이 수반 안에는 수정같이 맑은 물이 찰랑대고 있었는데, 그 위로는 황금빛 황동 사자상의 아가리에서 콸콸 뿜어져 나오는 물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나타난 새벽빛은 셰에라자드에게 침묵을 강요했다.

세 명의 아름다운 아가씨와 짐꾼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 몹시 궁금해진 술탄이 다음 밤에 이야기를 계속 듣자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알로에 나무와 용연향을 첨가한 수십 개의 양초를 켜자, 방안은 향긋한 냄새로 가득 차는 동시에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왜냐하면 두 번째 탁발승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들은 모든 이야기들 중에서도 술탄님이 들으시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그런 내용이기 때문이지.」 「나도 그러리라 생각하오.」 샤리아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지는 내일 들어 보면 알겠지.」

하지만 부적이 부서진 결과로 매우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의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음 날 꼭 나머지 이야기를 들으리라 마음먹었다.

〈참으로 기막힌 사건들이로다!〉 술탄은 생각했다. 〈그 왕자가 정령의 명에 따를 정도로 그렇게 모진 놈인지는 내일 가보면 알 수 있겠지.〉

〈그 착한 수도승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좋으련만! 내일은 하늘이 결코 그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좋겠군.〉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시샘쟁이가 또다시 죽도록 배 아파했는지 몹시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이것을 다음 밤에 알아보리라 마음먹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리아는 그 이야기의 남은 부분이 지금까지 들은 부분만큼이나 유쾌하리라 생각하고 다음 날 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술탄은 과연 다음 이야기가 오늘 들은 것만큼이나 신기한 것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왕비에게 허락한 유예 기간이 벌써 며칠 전부터 끝나 있기는 했지만, 또다시 셰에라자드의 목숨을 연장해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때 샤리아가 끼어들었다. 「나는 세 번째 탁발승의 이야기를 좀 듣고 싶구먼.」

저것은 다름 아닌 〈검은 산〉이랍니다. 이 〈검은 산〉은 커다란 자석 광산으로, 지금부터 우리 함대 전체를 끌어당길 것입니다. 배의 구조물에는 못이며 철물들이 잔뜩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내일 우리가 어느 정도의 거리에 도달하면, 자석의 힘은 너무도 강력해져서 배 안의 모든 못들이 뽑혀 나가 산에 달라붙고 배들은 해체되어 침몰할 것입니다. 자석이란 그 속성상 쇠붙이를 끌어당기고 또 이러한 인력을 통해 한층 강화되는 까닭에, 저 산의 바다 쪽 면은 그것이 침몰시킨 무수히 많은 배들의 못으로 온통 뒤덮여 있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검은 산〉의 힘은 보전되는 동시에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산은 깎아지른 듯한 경사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상에는 청동 기둥들로 받친 청동 돔이 하나 있습니다. 이 돔 위에는 기사의 상(像)이 서 있는데, 납으로 된 그의 흉갑에는 마법의 주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상이야말로 인근 해역에서 일어난 배들의 침몰과 숱한 죽음의 원인이라 합니다. 또한 그것이 무너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하여 이 일대를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불행이 닥칠 것이라 하옵니다.」

이야기의 시작 부분을 들은 술탄은 왕비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가 이날도 그녀를 죽이지 않은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이야기는 너무도 비극적이어서 인도의 술탄마저 가슴이 저며 올 정도였다. 앞으로 탁발승이 어떻게 될지 몹시 걱정스러워진 그는 이날도 셰에라자드를 죽일 수 없었다. 그를 이 모든 불안감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날과 같은 이유로 또다시 왕비의 목숨을 연장해 주고는, 그녀를 디나르자드와 함께 방에 남겨 두고 밖으로 나왔다.

이날도 샤리아의 호기심은 그가 한 잔인한 맹세보다 더욱 강했다.

이날 새벽 디나르자드는 전날만큼 일찍 일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날이 밝기 전에는 왕비를 깨울 수 있었다.

여기에서 셰에라자드가 이야기를 중단하자 그녀의 동생이 이유를 물었다. 「벌써 날이 밝은 게 안 보이니?」 왕비가 대답했다. 「왜 좀 더 일찍 깨우지 않았니?」 탁발승이 마흔 명의 미녀가 있는 성에 도착했을 때부터 무언가 신나는 일들이 벌어지리라고 잔뜩 기대하고 있었던 술탄으로서는, 그다음 이야기를 놓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또다시 왕비의 처형을 뒤로 미루었다.

샤리아는 대답하지 않고 일어났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완벽할 정도로 멋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이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는다면 세상에 그보다 어리석은 일이 없겠지!〉

사실 우리가 이 황금 문 열쇠를 가져갈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왕자님의 조심성과 절제력을 의심하는 것이 되기에 감히 그럴 수는 없답니다….」

셰에라자드는 계속하고 싶었으나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샤리아는 마흔 명의 여인이 떠나고 난 후 성에 혼자 남은 탁발승이 어떻게 할 것인가 몹시 궁금했던지라, 이를 다음 날 밤에 알아보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도 큰 즐거움을 느꼈던 술탄이 다음 날 그 뒷부분을 안 듣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셰에라자드는 이 대목에서 이야기를 중단하고 샤리아에게 말했다. 「폐하! 벌써 날이 밝았는데 폐하께서는 모르셨던 모양이군요? 만일 제가 이야기를 더 이어 간다면 그건 폐하의 너그러우심을 남용하는 것이겠지요.」 술탄은 이 기이한 이야기의 뒷부분을 다음 날 밤에 들으리라 마음먹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리아는 이제 셰에라자드가 들려줄 이야기는 앞의 모든 이야기들의 대단원을 이루리라 확신하고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즐거움은 완전해야 하는 법, 끝까지 다 들어야겠다.〉 그는 이날도 왕비의 목숨을 살려 주리라 마음먹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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