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제가 밑줄 긋기 해서 잔뜩 올렸는데

이틀에 나눠서 올렸더니

앞부분이 안 됐더라고요?

...

그래서 추가합니다.





-이하 인용-

그러나 모두가 선망하고 우러르는 화려한 삶은 아닐지라도, 이 여덟 여주인공에게는 각자 꿈꾸는 삶, 남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해도 포기할 수 없는 깊은 욕망이 있다. 그 꿈 때문에 때로는 사회로부터 잔혹하게 처벌받는다 하더라도, 나는 타협하고 순응하기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제 갈 길을 가는?때로는 그 끝이 낭떠러지일지라도?이 여자들에게 매혹되었다. 세상의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여성상에서 조금씩은 어긋나지만, 그 틀에 굳이 자신을 맞추려고 애쓰지도 않는 이 여주인공들은 가끔은 어리석고 심지어 사악하기도 하지만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고전의 여주인공들이라니, 말만 들어도 곰팡내가 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긴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칼날처럼 날카롭게 번득이는 이들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썼다. - P8

책은 양날의 검과 같다. 책을 통해 여자들은 다른 세계를 꿈꾸고, 내면의 허락받지 못할 욕망을 발견하고, 이런 욕망과 경험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구했다. - P10

드레스가 오랫동안 중국의 전족이나 카렌족의 목 고리처럼 여성의 행동을 억압하고 일정한 성 역할을 강요하는 데 이용되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드레스는 여성들의 저항 수단이자 세상에 맞서는 전투복이기도 했다. 폭 넓은 크리놀린 드레스는 움직임에 제약을 가했지만, 원치 않는 남자들의 집적대는 손길을 막아주었고 임신으로 불룩해진 배를 가리는 데에도 유용했다. 미셸 푸코의 말처럼, 권력이 있는 곳에 언제나 저항이 있다. 드레스는 단순히 한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없다. - P13

영어에 "be in somebody’s shoes"라는 표현이 있다. "(상상으로) 남의 처지가 되어보다"라는 뜻이다. 문학은 남의 신발을 살짝 신어보듯 ‘내가 만약 저 사람이라면’ 하고 가정하며 타인의 처지에 자신을 대입해보는 경험이다. 소설 읽기를 통해 우리는 다른 삶의 가능성들을 상상해보고 내가 겪어보지 않은 타인의 경험에 공감할 수 있다. 그렇게 타인을 나의 세계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나의 세계의 지평이 확장된다. - P15

허구는 현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항상 현실을 초과한다. - P22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곤 하지만 마음의 양식도 잘못 먹으면 탈이 난다. 아름다운 귀부인들과 매력적인 신사들이 나오는 로맨스물은, 책이 아니었더라면 시골 중산층의 좁고 얕은 세계에 만족하며 살았을 이 상상력 풍부한 소녀에게 다른 세상을 보는 눈을 주었다. 소설 속 세계에 비하면 현실의 인간들은 얼마나 한심하고 지겨우며, 일상은 또 얼마나 밋밋하고 단조로운가. - P25

문제는 때로 책에서의 이러한 감정들은 실제 삶에서보다 훨씬 더 극적으로 과장되고 부풀려지곤 한다는 점이다. - P27

이 19세기 프랑스 시골구석에서 인생이 소설과 똑같기를 기대하는 새 신부가 느끼는 억울함은 21세기의 우리가 SNS를 돌아다닐 때마다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 것이다. 나만 빼놓고 모두가 신나고 재미있게 살고 있다. 나만 뒤에 남겨놓고 인생이 흘러간다. - P28

이제 서로를 너무나 잘 알아버려서 더는 새로울 것이 없는 때가 오고, 서로에게 싫증이 나면서 에마는 슬프게도 자신이 도망쳐왔던 바로 그 "결혼 생활의 모든 진부함"을 간통 속에서 다시 발견한다. - P35

그가 꿈꾸는 고상하고 낭만적인 감정들과 호사스러운 삶의 조건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 P37

그러나 현실의 어떤 감정도 시간 앞에서 늘 똑같이 생생하고 강렬할 수 없듯이, 물건이 주는 만족감에도 한계 효용이라는 것이 있다. 우울한 기분을 가장 쉽게 잊을 수 있는 수단이 쇼핑이기 때문에 많은 우울증 환자가 쇼핑 중독에 빠지지만, 새로운 물건을 손에 넣은 뒤 느끼는 만족감은 일시적일 뿐이다. 순간의 만족이 지나가면 더욱 공허해진다. 잠시 메워졌던 구멍은 더 크게 입을 벌린다. 끔찍한 권태의 늪에서 빠져나오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에마는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손에 닿는 것은 뭐든지 끌어다 쑤셔넣는다. 환상을 좇기 위해 그가 치러야 했던 대가는 현실의 삶 전체였다. 에마는 자신과 남편, 딸의 인생까지 파멸로 몰아넣는다. - P38

플로베르는 비소를 삼킨 에마가 긴 시간에 걸쳐 처절한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우리가 아무리 천상의 꿈을 꾸어도 지상에 묶인 존재임을 차갑게 드러낸다. - P39

《마담 보바리》가 고발당한 이유는 불륜 묘사가 화끈해서가 아니라, 유부녀의 불륜과 사치라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도덕적으로 단죄하는 권선징악의 시각에서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플로베르는 에마가 파멸해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그에게 공감하지도, 그렇다고 비판하지도 않는 냉정하고 중립적인 관점을 견지한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에마의 꿈과 환멸, 욕망과 좌절을 있는 그대로 정밀하게 묘사할 뿐이다. - P40

친구들의 악평에 정신을 차린 플로베르는 감정을 과장하고 여과 없이 격정적으로 쏟아놓는 낭만주의적 경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를 악물고 그다음 작품인 《마담 보바리》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지웠다. 그는 예술이 작가의 속내를 털어놓는 요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41

문학계는 《마담 보바리》와 더불어 사실주의가 완성되고 자연주의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를 발표한 1857년은 프랑스 혁명과 함께 유럽을 휩쓸었던 낭만주의의 열기가 가시고 사실주의와 자연주의가 새로운 문학 경향으로 부상한 시기였다. 플로베르는 이 두 사조의 교차점 위에 서 있었던 셈이다. 낭만주의 소설에 심취하고 절망, 고독, 죽음 같은 낭만주의 주제에 열광하는 에마의 묘사는 낭만주의에 대한 조롱이고 패러디다. 에마가 연인들과 주고받는 대화에서 잘 드러나는 범속한 현실에 대한 환멸, 진부하고 고루한 도덕과 관습에 대한 비판, 열정과 감성에 대한 찬양은 플로베르가 비판하고자 하는 낭만주의적 관점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플로베르가 불륜에 대해 훈계하려고 이 책을 쓰지 않았듯이, 단순히 낭만주의를 공격하고 비웃으려는 뜻에서 쓴 것도 아니다. 플로베르는 "내가 보바리 부인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친구들에게 불태워버리라는 혹평을 들을 만큼 감상주의로 범벅된 작품 《성 앙투안느의 유혹》을 썼던 낭만주의자가 바로 플로베르였다. 그는 《마담 보바리》를 쓰면서 자기 안의 에마 보바리와 치열하게 싸웠던 것이다. - P41

"날 그냥 내버려둬요!" 아무도 에마처럼 그렇게 살 수는 없지만, 에마의 강렬한 낭만적 환상은 분명 전염성이 있다. 닳아빠진 바람둥이 로돌프도, 소심한 공증인 레옹도, 그를 만나 적어도 한동안은 그가 꾸는 꿈을 같이 꾼다. 그의 꿈속에서 그 꿈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가장 치명적으로 전염된 인물은 에마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에마에게 잊힌 채 그 꿈 바깥의 현실에 홀로 남아 있던 샤를이다. 아내가 탐독하던 로맨스소설 한 권 읽어본 적 없고 아내가 자신과 다른 꿈을 꾸고 있었던 것도 전혀 몰랐던 이 사실주의적인 남자는 아내의 죽음 이후 비로소 비극적인 로맨스의 주인공처럼 사랑 때문에 파멸해간다. - P42

가정교사로 산다는 것은 평생 부초처럼 이 집 저 집 떠돌며, 주인집 가족 사이에 끼지 못하고 하녀들과도 어울리지 못하는 어중간한 처지로 경제적 궁핍과 고독, 고립을 견디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당시 하녀가 연봉 20파운드에 가외 부수입을 받았다고 하니 가정교사는 가방끈만 길었지 하녀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불안정한 노동 조건과 낮은 임금을 감수해야 하는 비정규직 여성의 고단한 현실은 19세기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 P50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데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유일한 무기인 미모나 성적 매력도 없는 제인. 그렇다고 납작 엎드려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기에는 너무 똑똑하고 주체적인 여자. 세상은 제인에게 이 모든 부당함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라고 때로는 타이르고 때로는 윽박지르지만, 어린 제인은 분노로 미친 듯이 날뛰며 악을 쓴다. - P50

개인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천부 인권 개념은 전 유럽 대륙으로 퍼져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 혁명의 사상적 동력이 되었지만, 이러한 권리가 여성, 유색 인종,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는 여전히 허락되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제인의 신념은 프랑스 혁명의 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 P53

리드 숙모는 제인이 자기 눈에 띄지 않게 구석에 처박혀 눈을 내리깔고 있기를 바랐을 것이고, 로체스터는 제인이 자신의 정부가 되어 유럽을 돌며 주인님이 베풀어주는 호사를 즐겨주기만을 바랐을 것이다. 세인트 존이 제인에게 바란 것은 선교사의 부인으로서 자신의 충실한 도구가 되어주는 것이었다. 각자 제인에게 바라는 바는 달랐지만 절대적인 ‘순종’을 원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며, 그들은 제인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 P56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사랑과 자존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는 제인의 삶에서 언제나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제인에게 진정한 사랑은 개인과 개인이 독립된 인격으로서 서로를 동등한 상대로 존중할 때 피어날 수 있는 감정이다. 일체의 사회적·경제적 조건과 상황을 전부 다 무로 돌릴 수 있는 강력하고 절대적인 힘은 아니다. 오히려 사랑의 감정적 힘에 자기 자신을 잃고 쓸려가버리지 않도록 버텨야 한다. 절대적인 구원의 힘으로서의 낭만적 사랑을 갈구하는 쪽은 제인이 아니라 로체스터이다. 그는 타락과 절망 속을 헤매었던 과거를 솔직히 고백하면서 제인만이 자신을 구해줄 유일한 빛이고 희망이라고 호소하지만, 제인은 그의 애절한 호소에도 뜻을 굽히지 않는다. 재산, 계급, 지위, 미모와 같은 외적 조건과 관계없이 내면의 영혼이 지닌 가치 그 자체만으로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란다는 제인의 소망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실현되지 못한 이상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급진적이다 못해 과격해 보일 지경이다. - P57

그러나 제인에게는 도덕관념 말고도 그의 사랑에 굴복하지 않아야 할 다른 이유가 있다. 사회적으로 고립무원의 처지라 해도, 그는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 다른 누구도 나를 보호하거나 지켜줄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나를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내가 나를 염려한다. 고독할수록, 홀로일수록, 의지할 데 없을수록,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할 거야." - P61

제인은 한 남자에게 경제적·사회적으로 종속되는 것도 모자라 법적 지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정부의 위치로 자신을 낮춘다면, 언젠가는 자신을 사랑한다던 남자도, 심지어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 날이 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P61

사랑은 때로는 가장 위험한 덫이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조차 받아들이게 만든다. 제인은 로체스터와의 사랑이 한창 불타오를 때, "미래의 남편이 나의 전 세계, 아니 세계 이상의 것, 천국의 희망"이 되어 "일식이 인간과 거대한 태양 사이에 가로놓이듯이" 자신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았다고 고백했다. 이 말은 진실한 기독교인으로서의 참회의 고백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눈을 멀게 하는 사랑의 맹목성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결국 제인은 생살을 찢어내는 듯이 아픈 로체스터와의 이별을 감수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누구의 것도 아닌 가난하고 고독한 단독자, ‘제인 에어’로 남기 위해. - P61

《제인 에어》는 게이츠헤드의 "미친 고양이" 제인이 교육과 경험을 통해 교화되고 결국 사회 안에서 타인들에게 인정받으며 안정된 자리를 잡아가는 일종의 성장담이라고도 할 수 있다. - P62

그런 점에서 《제인 에어》는 분명 사랑으로 모든 고난을 극복하는 로맨스의 외피를 쓰고 있으면서도 사랑의 낭만성 뒤에 감추어진 현실적 토대를 무섭도록 냉정하게 드러낸다. 두 사람이 맺어지려면 어떤 식으로든 양쪽 저울 눈금을 맞추기 위해 넘치는 부분을 자르고 모자라는 부분은 보태는 조정이 필요한 것이다. - P70

물론 제인은 그들이 더 바랄 것이 없이 완전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말로 고아 소녀의 외롭고 길었던 여정이 마무리되었음을 전한다. 하지만 단조로운 일상의 갑갑함을 못 이겨 손필드 저택 복도를 하릴없이 오가던 열아홉 살 소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른 세계로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고 싶었던 그의 꿈은? - P71

제인이 로체스터를 사랑하게 된 이유도 그가 신분과 나이, 재산의 격차를 뛰어넘어 자신이 가진 지성과 교양, 문화적 취향을 알아보고 동등한 개인으로 대해주었기 때문이다. - P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