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엘렌 모어스는 "오스틴이 쓴 모든 소설의 첫 번째 문단에는, 특히 그녀의 가장 훌륭한 첫 문장들에는 반드시 돈에 대한 언급이 있다"고 했다.* 오스틴의 소설에 나오는 남자들은 모두 결혼정보업체의 분석 능력 못지않은 섬세함으로 재력을 평가받고 등급이 매겨진다. 그들의 영지와 거기서 나오는 연간 수입뿐 아니라, 예를 들어 목사 후보라면 그에게 교구를 물려줄 목사가 지금 얼마를 벌고 있으며 살날이 대충 얼마 남았는지, 혹은 친척 중 유산을 기대할 만한 노인이 있는지 등, 미래 가치까지 꼼꼼하게 평가 항목에 들어간다. - P83
오스틴의 주인공들은 남자에게 모든 권리가 다 주어지는 사회에서 그들을 지켜줄 든든한 아버지를 두지 못한 힘없는 딸들이다. 이 삭막하고 계산적인 세상에서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길을 찾아야 한다. - P84
남자는 수학을 잘하고 여자는 말을 잘한다는 식으로, 남성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여성은 감성이 풍부하다는 오랜 성차별적 고정관념과 이분법이 존재한다. 이런 관점을 생각하면 ‘감성’에는 기존의 권위에 저항하는 혁명적인 성격보다는, 오히려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보는 기존의 통념에 부합하는 면이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지적 능력과 이성적 판단력이 떨어지는 존재로 흔히 여겨져왔으며, 감정을 못 이겨 히스테리에 빠지거나 쓰러지는 나약한 존재로 그려졌다(그러나 여성들이 툭하면 기절한 것은 연약해서가 아니라 갑옷 같은 코르셋 때문이었다). 엘리너의 이성적인 분별력은 사회적으로 여성의 특성이라고 간주되지 않는 소위 ‘남성적’ 능력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엘리너의 분별심과 이성은 오히려 남성들조차 결여한 자질이다. 윌러비와 에드워드가 감정에 이끌려 실수를 저지르거나 이기심에 사로잡혀 잘못된 행동을 하면 엘리너는 그들의 과오와 약점을 냉정히 판단하고 때로는 따끔하게 일침을 가한다. 이렇게 타인을 도덕적으로 교정해주고 가르침을 전하는 능력은 일반적으로 남성에게 기대되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엘리너의 분별력은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남성들이 여성의 감수성을 이상화하는 경향이 여성을 자기희생적인 노예 상태에 빠뜨리기 때문에 여성에게 이성이 필요하다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를 비롯한 당대 페미니스트들의 주장과도 통하는 것이다. - P91
사랑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불나방처럼 뛰어들기엔 오스틴의 세계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한가로이 모여 무도회나 즐기는 즐겁고 평화로운 곳처럼 보일지 몰라도, 물 위에 떠 있는 백조처럼 다들 물 밑에서는 미친 듯이 발장구를 치고 있다. 매리앤은 언니가 항상 감정을 지나치게 절제한다고 비난하지만, 언니에 비해 내공이 부족한 그가 미처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여성은 자신의 애정을 보답받을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고 실패할 경우 사회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취약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려는 엘리너의 노력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책이다. - P92
하지만 여성을 진지한 교육이 필요한 온전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세계에서 교육이 항상 엘리너와 매리앤에게 실리를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스스로 연마한 공부의 힘으로 그들은 주변의 멍청하고 속물적인 인간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지만, 이 똑똑하고 감수성 예민한 소녀들은 닭장 속의 학 같은 존재다. - P95
매리앤을 보면 첫사랑이 생각난다는 브랜든 대령의 말은 매리앤을 전형적인 감상소설의 여주인공으로 보고 있음을 뜻한다. 매리앤의 자기 파괴적 행동은, 낭만적인 주인공이 자신의 감정을 충실히 따르며 관습에 맞서는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관습을 무시하고 자기감정에만 충실했던 방자한 주인공에 대한 처벌의 의미로 볼 수 있다. 프랑스 철학자 루소는 남성과 여성의 각기 다른 특징은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것, 본질적으로 타고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즐겨 읽었던 감상소설 주인공의 역할을 매리앤이 현실에서 재현하는 모습에서 엿볼 수 있듯이, 과도한 감성이라는 소위 ‘여성적’ 특질은 문화적으로 구성된다. 열혈 여성 독자와 이에 반응하는 주변인들이 소설 속 허구를 현실로 만들고, 이는 역으로 여성은 감성이 과해서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넣는다는 종래의 믿음을 뒷받침한다. 마주 보며 서로를 끝없이 비추는 두 개의 거울처럼 현실과 허구는 서로를 생산하고 강화한다. - P99
오스틴의 아이러니는 삶이 우리가 기대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대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꼭 불행해진다는 것도 아니다. 정열적인 매리앤은 불순한 티 하나 섞이지 않은 완벽한 환희와 완벽한 절망을 추구했지만, 인간은 불완전하고 삶은 우연투성이다. 조금은 씁쓸한 결말일지 몰라도, 살아남아서 불완전한 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또한 다른 방식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불완전한 세계와 어리석고 이기적인 인간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작가 오스틴이 견지해온 자세이기도 하다. 오스틴은 가혹하리만치 날카롭게 인물들의 속물스러움과 어리석음을 폭로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혐오와 경멸로 넘어가진 않는다. - P101
엘리너와 매리앤이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이르게 되는 도덕적 성숙과 결혼이라는 결말은, 여성들의 행동과 선택이 많은 제약을 받는 상황에서 죽거나 절망하지 않고, 루시처럼 자신의 존엄을 버리고 비굴하게 굴복하지도 않은 채 자존을 지키며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성취로서 의미가 있다. 루시가 루시의 방식대로 생존하듯이 엘리너에게는 엘리너의 삶의 방식이 있다. 결국 《이성과 감성》에서 오스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사회적·경제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여성으로서, 냉혹하고 때로는 적대적인 이 세계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운명에 기댄 환상적인 로맨스일 필요는 없고, 남성중심적 가부장제 사회의 관습에 무력하게 짓밟히는 비극일 필요도 없다. 제인 오스틴은 독신 여성 작가로서 자신을 얽어맸던 수많은 현실의 제약을 넘어 여성의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가능성을 내다본다. 그것이 오늘날에도 많은 여성이 오스틴을 읽고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는 힘일지도 모른다. - P102
부자의 아름다운 몸은 때로는 닉의 묘사처럼 ‘잔인한 몸’이기도 하다. 상대가 누구건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하며, 걸리적거리는 것은 그 가공할 힘으로 잔혹하게 파괴한다. - P110
"좋아. 딸이라서 기뻐. 그리고 그 애가 바보가 되면 좋겠어. 이런 세상에서 여자아이는 그렇게 되는 게 최고야. 예쁘고 작은 바보."
자신을 "예쁘고 작은 바보"라고 말하는 여자는 적어도 바보가 아니다. 데이지의 말은 "예쁘고 작은 바보"가 되는 것 외에는 여자에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체념의 표현이면서 그렇게 만드는 ‘이런 세상’에 대한 냉소이다. 데이지는 남편이 대놓고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자기도 알고 친구도 알고 온 세상이 알지만 모른 척한다. 데이지는 순진한 남자를 파멸시키는 팜 파탈이라기보다는 가부장제의 가련한 희생자로 보이기도 한다. 조던은 개츠비가 데이지와 재회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며 닉에게 이렇게 말한다. "데이지한테도 자기 인생이 있어야죠." - P111
개츠비에 대한 톰의 공격은 단순히 자기 아내를 넘보는 외간 남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내려준 자신의 지위와 특권을 수호하려는 백인 상류층 남성의 신성한 성전이다. - P117
개츠비는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복음의 가장 충실한 신도였다. 남이 보기엔 아무리 허황되어도, 실낱같은 희망을 예민하게 포착해내어 악착같이 매달리는 집요하고 무모한 낙관주의야말로 그의 동력이었다. 닉은 개츠비가 "정말 대단한 것"을 갖고 있었다고 평가하는데, 그것은 바로 "1만 마일 밖의 지진까지도 감지하는 정교한 지진계처럼 삶의 희망을 감지해내는 고도의 민감성"이었다. 닉은 미국 역사 초기의 무모한 선조들에겐 있었지만 이제 20세기의 미국인들에게는 흔적기관처럼 희미하게 남은 그 퇴화된 촉수를 개츠비에게서 발견하고 탄복했던 것이다. - P119
둘의 만남을 묘사한 장면을 읽어보면 흥미롭게도 정작 데이지에 대한 묘사는 없고 온통 데이지의 눈부시게 멋진 집에 대한 묘사뿐이다. 데이지는 그토록 중요한 인물인데 작품 전체를 뒤져봐도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 않다. 심지어 데이지의 머리카락 색깔조차 어느 대목에서는 금발, 다른 대목에서는 검은색이라고 하는 식으로 제각각이다. 데이지는 마치 현실의 인물이 아닌 양 애매모호하고 흐릿하다. 데이지는 그를 둘러싼 부유한 환경과 뒤섞여서 구체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존재에 가까워진다. - P121
돈이 부여하는 특권을 이렇게까지 이상화하다니, 개츠비는 어리석은 바보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중 누가 돈의 매력, 돈이 발산하는 신비로운 아우라에 초연할 수 있을까? 요즘 SNS에서 뜨는 많은 인플루언서는 오로지 돈이 많다는 이유 하나로 인기를 얻고 사랑받는다. 물론 화장, 성형, ‘포샵’ 등으로 완벽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외모 자체는 그들의 핵심 경쟁력이 아니다. 노래를 잘 부른다거나 연기를 잘한다거나, 별다른 재능을 보여주지 않아도 추앙받는 이유는 ‘금수저’라는 배경이 뿜어내는 휘황찬란한 후광 덕분이다. - P123
데이지가 무책임하며 이기적인 여자라는 사실은 어떤 식으로도 옹호하기 힘들다. 하지만 개츠비의 사랑도 데이지라는 한 인간 자체에 대한 온전한 마음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데이지가 상징하는 것조차 넘어서는 그 무언가를 향한 열망, 어딘지 모르지만 물질적 욕망이 약속하는 것 이상의 세계로 가고 싶은 열망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P134
닉은 겸허하게 한계를 수용하고 안전한 벽 안에 머무는 평범한 인물이지만, 무용한 시도를 끝내 감행하며 자신을 파멸까지 몰아간 개츠비의 ‘위대함’을 인정한다. 그 시도가 무엇을 위한 것이었건, 그 자체로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고 본다. 닉은 개츠비의 죽음을 홀로 쓸쓸히 아파하면서 사라진 초록색 꿈을 함께 애도한다. 지나가버린 모든 것,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은 아름답다. 잃어버린 첫사랑과 지나간 꿈을 애도할 줄 몰랐던 것이 개츠비의 비극이었을지도 모른다. - P136
성공이 근면 성실함과 노력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우연의 산물이었다는 이러한 엉뚱한 전개는 아메리칸드림에 대한 모독으로 비쳤다. 그리고 ‘자수성가한 사람’은 ‘셀프 메이드 맨’이지 ‘우먼’이 아니다. 전형적인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면 허스트우드가 이에 더 가깝다. 적어도 그는 사고를 치기 전까진 오랫동안 성실하게 일해 고용인들의 신임을 얻고 부를 쌓았다. 그랬던 허스트우드는 뉴욕 거리를 헤매는 노숙자로 전락하고, 캐리는 그를 버리고도 운이 좋아 원하는 것을 다 가진다니. 당대 독자들로서는 용서할 수 없다고 분개할 만도 하다. 그렇지만 노력이 늘 정당한 보상을 받지는 못하며, 성공한 사람 모두가 존경받을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믿고 싶지 않아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드라이저의 진짜 죄목은 모두가 알아도 외면해왔던 추한 진실을 덮은 포장을 걷어치워버린 것이었다. - P155
누구나 캐리처럼 ‘더 나은 삶’을 꿈꾼다. 그런데 ‘더 나은 삶’이란 무엇을 말하는 건지, 어떻게 살아야 더 잘 사는 건지는 애매하다. 소비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상의 가치는 더 비싼 물건을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다.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않듯이, 숨 쉴 때 공기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듯이, 우리는 주변 환경 속에 푹 잠겨 자신이 속한 사회의 가치를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 P157
캐리가 드루에와 허스트우드에게 끌렸던 것은 그들이 캐리가 갖고 싶어 한 물건들을 사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을 자신이 동경하는 더 높은 가치의 세계를 대변하는 대사들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개츠비는 데이지의 부도덕함과 경박함을 끝까지 깨닫지 못했지만, 캐리는 적어도 두 남자가 상징하는 가치들이 자신이 원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캐리가 드루에와 허스트우드를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사회적·경제적으로 훨씬 월등한 위치에 있었지만, 캐리는 그들을 무조건 우러러보거나 복종하지 않았다. 캐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들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더는 그들과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며, 그곳을 벗어나 다른 어딘가를 꿈꾼다. 캐리는 분명 충동과 우연에 휘둘리는 나약한 인간이지만 주체적인 면 또한 갖고 있다. - P159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순진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특권이다. - P165
고르곤이 된 엘렌에게는 ‘오빠만 믿고 따라와’ 식의 맨스플레인이 통하지 않는다. 아처는 엘렌을 사랑하지만, 엘렌과의 몇 차례 짧은 만남은 매번 좋지 않게 끝난다. 엘렌 또한 그를 사랑하면서도 그의 열정에 기대대로 보답해주거나 고분고분 끌려오지 않기 때문에 둘의 만남은 늘 다툼으로 끝나고 아처는 화가 나서 자리를 뜬다. 항상 메이를 리드해왔던 탓에 자기도 미처 몰랐거나 인정하기 싫었던 숨은 속내를 날카롭게 찌르는 엘렌에 당혹을 느끼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도 했을 것이다. 순진한 골짜기의 소년 아처와 달리 넓은 세상을 떠돌며 산전수전 다 겪어본 엘렌은 그가 뭘 몰라서 더 호기롭게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P172
키가 크고 늘씬하며 건강한 운동선수 같은 메이는 활쏘기에 능하다. 단 한 번에 정확히 과녁을 꿰뚫듯이, 메이는 매번 효과적으로 타격을 날려 현실에서 빠져나가려는 아처를 주저앉힌다. 메이는 아처의 믿음대로 연약하고 무지하며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메이는 사회가 요구하는 순수한 여성의 조건을 두루 꿰뚫고 이에 부합하는 여성상을 연기하도록 철저하게 훈련된 인물이다. 그런 메이가 자신의 감정과 신념에 충실한 엘렌보다 많은 제약과 관습에 순응하는 인습적인 여성인 것은 맞지만, 아처가 생각하듯이 상상력과 이해력이 결핍된 인물도 아니다. 아처는 메이가 폐렴으로 죽고 난 후 메이가 엘렌에 대한 남편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위해 엘렌을 포기했음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아들에게서 듣는다. 가슴속 깊이 묻은 아처의 꿈과 욕망을 이해하고 심지어 동정해준 유일한 인물이 아내였던 것이다. - P178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위세를 떨치는 명문가나, 거기에 어떻게든 끼어보려고 기를 쓰는 신흥 졸부나 실은 다 거기서 거기다. 명문가라는 집안들도 유럽 귀족을 흉내 내는 ‘짝퉁’에 불과하다. 이런 진실을 모른 척할 뿐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짝퉁끼리의 진품 흉내 내기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진다. 뉴욕 상류 사회는 귀족의 혈통이나 역사적 전통, 문화적 자산 같은 알맹이가 없으므로 유럽 귀족들보다 더욱 필사적으로 형식과 예법에 집착한다. 귀족이나 신분 제도가 없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세워진 나라가 정작 유럽보다 그런 가치에 집착한다는 점이야말로 아이러니하다. 진품은 굳이 자신이 진품임을 증명할 필요가 없으니까 오히려 자유롭게 파격과 실험을 행하고 선을 넘나들 수 있지만, 가품은 더 악착같이 진품을 한 땀 한 땀 그대로 베껴야 한다. 그래서 가장 ‘순수한’ 여성인 메이가 실제로는 사회의 정교한 관습과 예법에 따라 철저히 훈련된 인물인 것처럼 뉴욕 사회가 표방하는 순수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모순이 생겨난다. - P180
워튼은 한 사회의 성숙도는 원초적인 공포를 대면할 수 있는 능력 수준이라고 보았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지적인 정직성과 용기가 정신적 성숙에 대한 첫 시험이다. 사상의 영역에서 사회가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까지는 그 사회는 도덕적·정신적으로 속박 상태에 있다." 워튼은 경험을 통한 성숙을 두려워하고 ‘불쾌한 것’을 한사코 못 본 척 피하려 하는 도덕적 순수성에 대한 집착이 미국인들을 정신적인 유아 상태에 머물게 만든다고 보았다.* - P182
어느 쪽이든 여성은 남주인공을 나쁜 길로 인도하거나 모험을 떠나도록 자극하는 부수적인 역할에 머문다. 워튼은 이런 익숙한 남성중심적 구도를 비튼다. 두 여자의 관계는 한 남자를 두고 대립하는 전형적인 삼각관계의 구도에서 벗어난다. 남편 곁을 떠나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엘렌은 남자를 유혹하는 전형적인 팜 파탈이 아니며, 남편을 가정에 붙잡아두는 메이 또한 희생적인 성녀가 아니다. 엘렌은 사랑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저버릴 만큼 의리 없고 이기적인 여자가 아니고, 이 유약하고 순진한 온실 속 화초남이 큰소리만 쳤지 자신을 따라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엘렌은 열정이 넘치고 감성이 풍부한 여자이지만 여자들이 사랑에 목숨을 걸고 감정에 쉽게 흔들린다는 고정관념을 따르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쪽은 오히려 바람 불면 흔들리는 갈대 같은 아처다. 메이 또한 어떤 상황에서든 흔들리지 않고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침착하게 냉정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엘렌과 비슷하다. - P186
"엘렌에게 부당하게 대해서 미안하다고 했거든요. 여기 있으면서 친척이지만 낯선 이방인들, 사정도 알지 못하면서 비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틈에서 홀로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해주지 못했어요. (…) 엘렌은 이 말을 하고 싶어 했던 내 심정을 헤아려주더군요. 모든 것을 다 이해했을 거예요." - P188
아처는 엘렌을 현실에서 포기함으로써 엘렌을 가졌다. 그것이 그가 엘렌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엘렌은 그의 이루지 못한 꿈과 몽상 속에서 현실의 인간이 아닌 하나의 추상으로 박제되었으며,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것이 많은 비겁한 남자들이 그들이 가질 자격이 없는 용감하고 아름답고 독특한 여자들을 자기 식대로 소비하는 방식이다. - P188
엘렌을 비참한 상황에서 구해준 것은 아처의 사랑이 아니라 그의 독립적인 정신을 이해하고 존중한 할머니의 지원이었고, ‘못된 여자’로서의 연대였다. - P190
그러나 이 아름다운 화초를 키워낸 세계, 그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주었던 세계가 이제 더는 현실의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에 비극이 있다. - P198
이러한 패배와 쇠락의 음울한 분위기는 남부 문학의 대표 작가인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에 짙게 배어 있다. 남부를 제외한 미국 문화 전반에는 혹독한 패배나 실패, 세상의 어두운 면을 경험해본 적 없는 어린아이의 낙천성과 순진함이 있다. 본토를 공격당한 경험이 역사를 통틀어 9·11 테러밖에 없다는 초강대국 사람들의 인생관이란 하루가 멀다 하고 외적의 침략을 겪어온 신산한 역사를 가진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남부인들의 정서가 더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남부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패배의 역사를 경험한 지역이다. 그리고 그들은 노예제라는 선조의 죄과를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을 굴복시킨 천박한 ‘북부 양키’들을 증오하면서도 이 패배에 자신들의 책임도 있다는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 P201
블랑쉬는 자신이 그렇게밖에는 살아갈 수 없도록 키워진 의존적인 존재, 고향을 잃고 영원히 현실 바깥을 부유하는 아웃사이더임을 잘 알고 있다. 비극의 주인공에게 필수적인 조건은 자기 인식이다. 자기가 어떤 존재이며 왜 몰락할 수밖에 없는지 끝까지 깨닫지 못하는 인물의 몰락은 별 의미가 없다. 윌리엄스는 미쳐버린 블랑쉬에게 이러한 자기 인식을 부여하고, 그가 날뛰다가 구속복이 입혀진 채 강제로 끌려나가는 비참한 모습이 아니라 남부 숙녀답게 우아함과 고고함을 잃지 않은 모습으로 의사가 내민 손을 잡고 떠나게 해준다. 그럼으로써 블랑쉬는 가장 밑바닥까지 추락했어도 끝내 스탠리조차 파괴할 수 없었던 비극적 존엄을 보여준다. - P210
연약함 때문에 죄를 짓는 인물은 블랑쉬만이 아니다. 작품 속 다른 인물들도 어느 정도는 블랑쉬처럼 연약하다. 스텔라는 남편 없이 아이를 데리고 살아갈 자신이 없기 때문에 언니를 배신하며, 미치도 여성의 정숙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고 블랑쉬의 진심을 받아들일 만큼 강한 인간이 못 된다. 블랑쉬의 남편 앨런도 동성애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거부당하자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다. 가장 강해 보이는 마초 스탠리조차 블랑쉬를 그대로 두면 아내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자기 방어 때문에 그를 공격한다. 그는 역설적으로 연약하기 때문에 과도하게 폭력에 기댄다. 그러나 블랑쉬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은 공모하여 블랑쉬를 희생시킴으로써 자기들의 연약함을 감춘다. - P214
그러나 테레즈가 남편의 약에 비소를 섞었던 까닭은 결코 그를 죽이고 싶도록 증오해서가 아니다. 말이 잘 안 통한다는 이유로 배우자를 죽일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기혼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테레즈를 가장 괴롭히는 문제는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본인도 모른다는 것이다. 소나무숲에 화재가 일어나 소란스러웠던 어느 날 문득 남편의 약에 독을 탈 생각이 떠올랐지만, 살인을 계획한 진정한 동기는 스스로도 찾아낼 수가 없다. - P225
테레즈가 행복해질 수 없는 이유는 가정을 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세계에 그를 구원해줄 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P231
드라이저는 시스터 캐리를 타락한 여자라고 단죄하지 않았다. 플로베르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었던 에마가 자신이 낳은 아이가 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절망했으리라는 것을 안다. 이디스 워튼의 양순하고 다소곳한 메이 웰랜드는 아마도 워튼의 어머니가 딸에게 바랐겠지만 그는 될 수 없었던 인물일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예기치 않았던 순간에, 아무 관심도 없었던 타인에게서 나의 숨겨진 얼굴을 언뜻 본다.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서로 만나고, 스쳐 지나가고, 얽힌다. 그 뜻밖의 사건을 가능케 하는 것이 문학이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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