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문학동네 30주년 기념 특별판) 문학동네 30주년 기념 특별판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6월
평점 :
절판


책이 아닌 교재
진부한 설교가 되어버린 우화

내가 싫어하는 요소들이
두루 섞인 가벼운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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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 모르는 사람들을.
-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몰락은 패배이지만 몰락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
세계는 그들을 파괴하지만 그들이 지키려 한 그 하나는 파괴하지 못한다. 그들은 지면서 이긴다.
성공을 찬미하는 세계는 그들의 몰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몰락의 에티카다. 온 세계가 성공을 말할 때 문학은 몰락을 선택한 자들을 내세워 삶을 바꿔야 한다고. 세계는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에게는 보편성과 객관성에 대한 야망이 많지 않다. 나는 차라리 압도적인 특수성 혹은 매혹적인 주관성이고 싶다.(...)


책을 좋아하고 작가를 존경하는 분의 아들로 태어난 것은 행운이다.
(...)

2008년 12월
신형철



말은 미끄러지고 행동은 엇나간다.
말에 배반당하기 때문에 다른 말들을 찾아헤메는 것이 시인이다.
시인들은 말들이 실패하는 지점에서 그 실패를 한없이 곱씹는다.
그 치열함이 시인의 시적 발화를 독려한다.

한편 행동이 통제불능이라 그 밑바닥을 들여다보려는 자들이 소설가다. 소설가는 법과 금기의 틀을 위협하는 선택과 결단의 순간을 창조하고 그 순간이 욕하는 진실을 오래 되새긴다. 그것이 소설가의 서사 구성을 추동한다.
요컨대 문학의 근원적 물음은 이것이다.
˝나는 과연 무엇을 말할 수 있고/없고, 무엇을 행할 수 있는가/없는가?˝
말하자면 나의 진실에 부합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날그날의 효율을 위해 이 질문을 건너뛸 때 우리의 정치, 행정, 사법은 개살구가 되고 만다.
문학이 불가피한 것은 저 질문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문학이라는 제도와 거기서 생산되는 문학 상품들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저 질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갖가지 모험들이 불가피한 것이다. 시적인 발화의 실험과 소설적인 행동의 감행이 불가피한 것이다. p14


이런 시인들은 ˝시를 삶에 대한 가벼운 복수로 여기는 사람들˝(토마스 만, <토니오 크뢰거>)에게 충고한다.
제 안의 심연에서 솟아나오는 한 줄의 발화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기념비‘(들뢰즈,가타리)가 시라고 말이다.p15


문학은 구축하는 초자아의 총체성이 아니라 배제되는 무의식의 총체성이기 때문이다 p18


시는 발화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틈에서 출몰하는 진실을 겨냥하고, 소설은 행위가 감행되고 철회되는 틈에서 발생하는 진실을 조준한다.
(.....)
문학은 몰락 이후의 첫번째 표정이다.. 몰락의 에티카다.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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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여관의 삼수생 아들
진우연의 한 마디는 이렇게 인증사진 올리는 절 뜨끔하게 만드네요. 독서는 허세 맛인데 ^^

˝다 읽은 책을 사람들 눈에 띄는 곳에 놓아두는 녀석들을 나는 경멸했다˝ 70쪽


with.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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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양장으로 나온 개정판.

양장보다 더 좋아하는 스타일.
제본이 쫙 ~ 펼쳐도 부담없는.

20여년전에
<나는 소망한다.내게 금지된것을>
<천년의 사랑> 을 읽었고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요즘
<원미동사람들> <모순>을 읽었다.

양귀자 선생은 2000년대 이후로는 작품이 없는데 좋은 작품으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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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몇 번이나 시도하다 완독을 포기한 <전체주의의 기원>,<인간의 조건>,<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가깝게 다가선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정확히 설명한다.
아렌트의 명성을 존경하는 것이 아닌, 이제 아렌트의 정치철학에 존경하게 된 책이 되었다.

이진우 교수님의 발췌와 해석이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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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괴물 같은 악을 저지른 자는 왜 괴물이 아닌가?

우리의 정치적 삶을 총체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한 명 또는 몇몇 괴물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행위가 서로 얽혀 만들어진 어떤 시스템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이 악에 대처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한나 아렌트의 매우 도전적인 주제로 우리를 이끈다.p63


많은 사람은 이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 그 단어가 지칭하는 사태를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p64


아렌트가 이 개념을 유일하게 사용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이 마지막 문장은 이미 ‘악의 평범성‘의 성격을 말해준다.
악은 ‘사고를 허용하지 않기‘때문에 평범하다. 사고할 능력이 없음이 결국 악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행위가 비록 괴물 같기는 하지만 행위자는 결코 괴물이지도 악마이지도 안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에 대한 아렌트의 해석이었다.
이러한 인식이 악마적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의 죄와 책임을 줄여주거나 벗겨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은 책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그들은 왜 자신들의 행위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인가? p69


아렌트는 사유할 능력 없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능력 없음, 말할 능력 없음이 결국 악을 키운다고 말한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우리는 어떤 사회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인지에 관해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없다.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은 자신의 이기심과 사생활로 도피하지만, 그것은 전체주의 정권이 가장 쉽게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사용한 이래 죽을 때까지 사유할 수 있음의 의미를 파고든다. p80


5. 왜 우리는 다른 의견을 가져야 하는가?


한나 아렌트만큼 정치의 전제조건인 인간의 다원성을 철저하게 사유한 철학자도 없다. p111


아렌트적 의미에서 정치적 인간은 동시에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다. 정치적 인간은 자신의 자유가 타인의 현존과 평등성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정치적 공간은 ˝서로 다른 개인들이 함께할 때에만 생길 수 있고, 그들이 함께 머물러 있는 동안에만 지속될 수 있는 공간이다.˝ p118


사람들은 행위자들이 다수라는 사실에서 오는 우연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피해갈 수 있는 대체물에 유혹을 느낀다.사람들은 되도록 뜻과 마음이 같은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려 하고, 자신의 신념에 일치하는 정보와 의견만 받아들이는 확증 편향을 강화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동의할 수 있는 - 진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가 설령 다원성을 파괴하더라도 통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플라톤의 철인 통치의 이상이 생겨났다. p121


플라톤은 다양한 의견을 경멸하고 절대적 척도를 요구했다.
아렌트는 소크라테스를 소환함으로써 서양 역사에서 잊힌 다원성의 전통을 복원하려 한다.
p122


다원성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새로운 시작을 불가능하게 만든 전체주의를 해부한 1951년의 <전체주의의 기원>과 다원성이라는 인간의 조건을 성찰한 1958년의 <인간의 조건> p123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역설은 다원성의 정치를 대변한다 p126


사람들은 정치에 혐오를 느껴 철학으로 도피하지만,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결국 정치이다. 우리가 다원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이다.

너무 많은 의견 속에서 진리를 찾기는 무척 어렵다.
다원성이 버거울수록 여론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의견만 절대화하는 전체주의의 유혹이다. p127


소크라테스와 아렌트의 관점에서 보면 정치적 공동체에서 중요한 것은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게 말하는 것이다 p131


6. 우리는 무엇을 위해 자유로운가?


우리가 사적인 이해관계를 넘어 다른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동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 우리는 이미 정치적이다. p135


7. 정치권력은 꼭 폭력적이어야 하는가?


권력과 폭력이 동일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권력과 폭력은 반대의 것이다.
하나가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곳에 다른 하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폭력은 권력이 위험에 빠질 때 등장하지만, 제멋대로 내버려 두었을 때에는 권력의 소멸을 불러온다. p 168


권력이 너무 취약하여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여론조작의 유혹에 빠지고, 자신이 원하는 권력관계를 보존할 수 없을 때 폭력적 수단에 의존하게 된다. p169


베버는 권력을 ˝특정한 사회관계에서 반대가 있는데도 자신의 의지를 주장할 수 있는 기회˝로 간단하게 규정한다. p173


8. 정치는 왜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는가?


˝진리와 정치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누구도 진실성을 덕성들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거짓말은 언제나 정치꾼이나 선동가뿐만 아니라 정치인의 일에 필요하고 정당화될 수 있는 도구로 여겨졌다.˝

정치적 거짓말은 도덕적 결합과는 관련이 없다.
정치적 의견은 다양한 세계관과 이해관계에 따라 형성되므로 순수한 사실만 지향하지 않는다.
사실보다는 사실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중요한 것이 정치다. p179



거짓말은 정치적 행위이고, 진리는 비정치적이다. 진리를 말하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이야기할 뿐 바뀔 수 있는 현실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p192


9. 지배 관계를 넘어서는 평등의 정치는 가능한가?


두 혁명 모두 자유를 목표로 하는 정치혁명으로 시작했지만 프랑스 혁명은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혁명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실패했고, 미국혁명은 빈곤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건국의 정치혁명으로 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p211


아렌트는 대의민주주의와 양당 정치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p221


10. 어떻게 정치의 규칙을 만들 수 있는가?


우리는 정치적 행위에 대해 어떻게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있는가?
아렌트에 의하면 관찰자가 기대하는 것을 고려하고 그와 일치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옳은 것이다. p 242


다양한 사건과 사례를 포괄할 수 있는 하나의 보편적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어떻게 자신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우리가 공론 영역의 토대와 조건인 다원성을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의견이 어떻게 합의에 이를 수 있는지도 여전히 수수께끼다.
한나 아렌트가 미적 판단을 끌어들이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p243



이렇게 사적이고 개인적인 미적 판단이 공적 활동인 정치적 행위의 판단과 유사하다는 것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적 취향과 정치적 성향 차이에는 가족 유사성이 존재한다.
지극히 사적인 미적 판단의 타당성 문제는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라는 말과 ˝그것은 아름답다˝는 말을 구별할 때 비로소 제기된다.
어떤 대상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적인 선호도를 표현하고 결코 객관적 타당성을 주장하지 않지만 ˝ 그것은 아름답다˝는 표현은 대상의 특성에 대한 객관적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아름답지만 나는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 누구도 아름다운 대상을 좋아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아름다운 대상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있는 것이다. p245


미적 취향과 정치적 성향이 없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아렌트가 공통감각을 설명하면서 인용한 칸트의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의 한 구절은 정치적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정신 이상의 유일한 일반적 징후는 공통 감각의 상실과 그것을 대체하는 논리적 자기 고집이다˝
p250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기 위해서는 항상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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