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독을 마치며~


p 156 ~ 277 끝


그 상태에서는 달린다는 행위가 거의 형이상학적인 영역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행위가 먼저 거기에 있고, 그 행위에 딸린 것 같은 존재로서 내가 있다. 나는 달린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오늘의 PICK!!

중요한 것은 시간과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만큼의 충족감을 가지고 42킬로를 완주할 수 있는가, 얼마만큼 자기 자신을 즐길 수 있는가. 아마도 그것이 이제부터 앞으로의 큰 의미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나는 즐기며 평가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와는 약간 다른 성취의 긍지를 모색해가게 될 것이다.



또 하나,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번역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중략)

진짜 대단한 소설이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문학으로서의 깊은 자양분이 넘친다. 읽을 때마다 무엇인가 새롭게 발견할 수 있고, 새롭게 강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특성이 있다. 29세의 약관의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예리하고 공정하며 마음 따뜻하게 세상의 실상을 읽어낼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읽으면 읽을수록 불가사의할 뿐이다.


아무튼 레이스에 출장해서 완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골인하는 것, 걷지 않는 것, 그리고 레이스를 즐기는 것 이 세가지가 순서대로 내 목표다.


우리의 의식이 미로인 것처럼 우리의 몸 역시 또 하나의 미로인 것이다. 도처에 어둠이 있고, 도처에 사각이 있다. 도처에 무언의 암시가 있고, 도처에 이중성이 기다리고 있다.


무슨 일의 기본을 착실하게 몸에 익히려면 많은 경우 육체적인 아픔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원칙적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는 것인 1년에 한번으로.


낡은 보스턴백처럼 그것을 둘러메고, 나는 긴 여정을 걸어온 것이다. 좋아서 짊어지고 온 것은 아니다. 내용에 비해 너무 무겁고, 겉모습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군데군데 터진 곳도 보인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짊어지고 갈 것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메고 온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애착도 간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시간을 들이는 것이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 된다.


보통 사람들처럼. 가령 몇 살이 되어도 살아 있는 한, 나라고 하는 인간에 대해서 새로운 발견은 있는 것이다.


효능이 있든 없든, 멋이 있든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그러나 마음으로는 느낄수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개개인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고 확실하게 완주해 가는 것이다.


무라카미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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