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조금 더 쉽고 가벼운 책을 읽는게 제 바람입니다.
고전이 다 좋은 것이 아니듯이 베스트 셀러도 모두가 수준 이하는 아닐 것입니다.
사실 고전이나 베스트셀러나 하물며 자기계발서조차도 내가 재미있고, 이해할 수 있고, 감동 받으면 그 나름의 가치를 다 했다고 봅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건 지식을 얻는 재미도 크지만, 알듯 모를 듯 쾌감을 주는 "느낌"때문에 더 책을 읽게 되는건 아닐까요. 이런 사설을 늘어놓는 이유는 오늘 구입책이 소위 "베스트셀러"에 속하는 책이거든요.
한해를 가볍고 산뜻하게 시작해봅니다.
1. 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잘났거나 못났거나, 매력이 있든 없든 내가 땡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루키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루키의 책"이 그냥 땡기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처럼 그의 책은 그냥 땡기네요. 이유를 달아보라면 이것저것 많지만 결국엔 특별한 이유를 꼽기 이전에 첫 인상에 마음을 뺏겼다고 해야하나.
수많은 장편과 에세이중에 영 재미없거나 실망한 책도 많지만 결국엔 또 하루키의 신간을 사게 되는 것도 "하루키 신드롬"에 빠진 이들의 특징이겠지요
가만히 살펴보면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상실의 시대"부터 꼽힌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이 책에서 꼽혔느냐, 안 꼽혔느냐에 따라 이후 하루키에 대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것을 봤습니다.
전 상실의 시대부터 꼽혀 오늘까지 주~욱 하루키를 좋아하게 된 케이스지요.
취향을 갖고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거 우스운 거 아시죠?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가끔 식성과 취향에 대해 내 주장을 밀고 가는 사람을 꽤 많이 봤습니다.
나이먹어가며 느끼는데 인간관계의 핵심중에 하나는 상대방 취향 존중이 엄청 중요하더라구요.
수백, 수천만의 사람 숫자만큼 취향은 다양하니까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실껍니다. 그리고 그 취향만큼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것도 드물구요. 취향은 곧 자존감과 연결됩니다.
그러니 취향이 다르다고 선을 긋거나 폄하하거나 굳이 내 취향 수준이 높다라는 식으로 열을 낼 필요는 없겠지요.
암튼, 90이 넘도록 많은 책을 내신 버트런드 러셀 영감님처럼 하루키도 오래 살아서 많은 책을 냈으면 합니다.
2. 보건교사 안은영 (특별판)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20년 9월
정세랑 작가는 저와 인연이 좀 특별한 것 같습니다.
제가 일하는 사무실에 옆 짝지가 여직원분인데 정세랑 팬이거든요.
추천을 받아 몇권 읽어봤는데 도무지 안 맞더라구요..
[피프티피플]은 그런대로 읽었는데, [목소리를 드릴께요]는 잘 모르겠더라구요.
이게 취향이다..싶었습니다.
근데 사실 우리는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다양한 간접 경험을 하면서 내면의 변화를 겪자나요.
지금은 재미없고 난해한 책도 나중에 다르게 보일 수있다는걸 경험합니다. 책은 그대로지만 내가 달라져서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유시민의 [표현의 기술]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저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카프카의 [성], 공자의 [논어]같은 책에 여러번 도전했지만 완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도전할 겁니다. 또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 표현의 기술 163쪽
또 이런 글도 있어요
"책은 독자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말을 들려주고 볼 준비가 된 것만을 보여 줍니다. 내가 듣고 보는 것이 그 책이 가진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지요"
- 표현의 기술 164쪽
네. 아직 제가 정세랑 작가의 글을 제대로 듣고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겠네요.
뭐 그런 의미에서 예쁜 리커버판도 나왔겠다..영화로도 만들어졌겠다 해서 다시 한번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이 꼭 삼수째네요 ~
3. 공간이 만든 공간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예전 알쓸신잡에서 뜬 교수님이지요.
제작년엔 제가 일하는 곳에도 강의차 오셨습니다.
유현준 교수님의 첫 작품 [어디서 살것인가]라는 책은 예전에 읽었습니다.
그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 있었어요.
뭐냐면 책을 "날림"으로 쓴 느낌을 받았거든요
전반적으로 인간을 염두에 둔 건축 철학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한 건 좋은 기억으로 남았지만 당시 유명세로 바쁘신 와중에 비행기안에서 책을 마무리했다고 책에 쓰여 있더라구요.
책의 초중반과 후반부가 밀도에 있어 약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이후에는 좀 손이 안 가더라구요.
그래서 한번 더 이분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내돈내산이니까요^^)
내가 착각한건지, 교수님이 지금도 그렇게 글을 쓰고 있는건지요.
북플의 까끄러운 이웃님들 포스팅도 참고해서 한번 질러봤습니다.